Switch Mode

Chapter 58

57화. 

상엽 선배는 날 보며 물었다. 

“무슨 말이야?” 

“그냥 요즘 경제지표와 뉴스를 보니까 불길한 느낌이 들어요.”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잘 살펴보면 징후를 알아채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IMF 전에는 한국 경제력에 비해 원화가 고평가 되어있었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전에는 모기지 채권의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진실은 거짓 속에 숨겨져 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IMF가 터지기 며칠 전까지도 경제부처에서는 한국경제는 문제없다며 소리쳤고,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도 모기지 채권은 트리플A 등급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까. 

당연하지만, 정말로 내가 온갖 경제지표를 분석해 뭔가를 알아낸 것은 아니다. 말 그대로 그런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군대를 전역했을 때만 해도 나는 우연히 초능력을 손에 넣은 애송이에 불과했지만, 그 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적어도 1년이란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다. 그게 초능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걸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나아진 것만은 분명했다. 

여전히 내가 마음먹은 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대신 감이 훨씬 예리해졌다. 

그 때문인지 예지가 떠오르지 않아도 예감이 먼저 반응했다.  

최근 내가 느끼는 것은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당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조만간 폭풍이 밀어닥칠 것 같은 불안감.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에요.” 

상엽 선배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아니. 니가 그렇게 생각한대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이제까지 내가 한 투자는 전부 성공을 거뒀다. 때문에 상엽 선배는 나에게 시장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건 현주 누나와 엘리 역시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고 있는 건 택규뿐이지.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서 난 화제를 돌렸다.  

“K컴퍼니는 어때요?” 

“똑같아.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잘 나가지.” 

자회사인 K컴퍼니는 OTK컴퍼니가 투자한 기업들을 관리하는 일까지 위탁 받아서 하고 있다. 수십 개의 스타트업들에서 매일 같이 발생하는 이슈들에 대해 보고받고,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번에 Edm엔터에서 28퍼센트 유상증자할 예정이야.” 

지분율은 고정적인 게 아니다. 증자와 감자를 통해 얼마든지 주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으며, 그로인해 지분도 변동된다.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지분가치가 희석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때문에 K컴퍼니는 OTK컴퍼니와 마찬가지로 신주 발행에 대한 제한권(일정 비율 이상의 신주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쪽 동의를 받아야 한다)과 우선 인수권한을 명시해두었다.  

이걸 전문용어로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라고 한다. 우리가 권한을 포기할 때만 일반공모와 제3자배정이 가능하다.  

“GJ랑 RCK브로스에서 관심을 보이는데, 업무제휴관계를 생각해서 GJ 쪽에 배정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그쪽이 케이블 채널을 여러 개 가지고 있으니까.” 

“알아서 하세요.” 

웬만하면 국내 쪽 결정은 상엽 선배에게, 해외 쪽 결정은 현주 누나에게 맡기는 편이다. 

지이잉! 

테이블 위에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누구예요?” 

“주 실장이라고 SSK그룹 쪽 사람.” 

“그 사람이 왜요?” 

“개인자산을 좀 투자하고 싶데.” 

상엽 선배의 투자실력은 업계에도 정평이 나있다. 

어찌나 소문이 퍼졌는지, 강남부호들은 물론 재벌일가에서도 개인자산의 운용을 맡기고 싶다며 찾아올 정도였다. 

난 혀를 내둘렀다. 

“선배 진짜 출세했네요.” 

“니가 할 말이냐?” 

K컴퍼니에 돈을 맡기고 싶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전부 거절했다. 

현재 인력으로는 K컴퍼니의 자산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남의 돈까지 맡아서 굴릴만한 여유가 없다. 

굳이 남 좋은 일 시켜줄 필요도 없고. 

“기홍 선배는 잘하고 있어요?” 

“그럼. 정 대리는 지금도 회사에 남아 일하는 중이지.” 

원래 KYB증권에 다니던 기홍 선배는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호쾌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딱 거기까지만 좋았다. 

그 후, RCK브로스나 레인캐피탈 등의 사모펀드에 지원했으나 줄줄이 떨어졌고, 다른 곳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제야 자기 발로 퇴사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열심히 취직을 알아보던 도중 상엽 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마침 K컴퍼니는 상엽 선배 혼자 있었던 터라 극심한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상엽 선배는 입사를 제의했고,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눈칫밥 먹고 있던 기홍 선배는 재빨리 K컴퍼니에 합류했다. 

비록 인맥이라는 낙하산을 타고 입사했만, 금융회사를 다닌 경험이 있는지라 초기에 회사 틀을 잡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경력자들이 줄줄이 들어오며 사실상 막내나 다름없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한 사람 몫은 충분히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애사심이 투철한 것만은 분명하다. 술자리에서 후배들 만날 때마다 K컴퍼니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걸 보면 말이다. 

심지어는 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것과 신입초봉이 7천만 원에 성과급이 수천만 원이라는 것까지 열심히 홍보했다. 

평균 연봉이 높은 금융권에서도 이 정도면 파격적이다. 

소문은 후배들 입을 타고 순식간에 학교 전체로 퍼졌다. 그러자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거나, 취업 못한 동기와 선후배들이 일제히 상엽 선배에게 연락했다.  

목적은 취업청탁.  

‘우리가 남이가’ 정신을 발휘해 학연으로 줄을 대는 것이다. 정작 상엽 선배가 빚지고 힘들어 할 때는 신경도 안 쓰던 사람들이. 

이런 걸 보면 성공은 친구를 양산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취업청탁만이 아니라 선 자리까지 물밀듯이 들어 왔다. 심지어는 수학과 교수가 연락해서 자기 딸 한 번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했을 정도다. 

어찌나 전화가 울려대는지, 상엽 선배는 견디다 못해 핸드폰번호까지 바꿨다. 

“그렇게 연락이 많이 와요?” 

“말도 마라. 오죽하면 기홍이한테 한 번만 더 내 번호 학교사람에게 알려주면 짜른다고 했겠냐?” 

“······.” 

정 대리님 조만간 짤리겠구나. 

식사를 끝낸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아니야, 내가 살게. 법인카드 들고 나왔어.” 

택규가 한마디 했다. 

“법인카드로 긁으면 어차피 우리가 사는 거 아닌가?” 

“······.” 

K컴퍼니는 OTK컴퍼니 꺼(정확히는 98퍼센트)고, OTK컴퍼니는 우리 꺼(정확히는 97퍼센트)다.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고, 법인카드에서 나가는 돈은 우리 지갑에서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냥 긁으세요.” 

정확히 31만 원 나왔다. 

식당 앞에는 검은색 벤츠 S클래스가 서있었다. 

“차 좋네요.” 

상엽 선배는 씨익 웃었다. 

“법인 차니까 어차피 너희 꺼지. 진후 너는 차 안 사?” 

“안 그래도 사려고 알아보고 있어요.” 

잠시 후, 대리기사가 왔고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먼저 삼릉공원에 갔다가, 역삼역으로 가주세요.” 

난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1년 전, 스타트업들에 대한 투자를 끝마친 뒤 딱히 내가 할 일은 없었다. 그저 투자한 기업들의 가치가 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다.  

슬슬 일할 때가 오고 있는 건가? 

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난 택규와 함께 뒷좌석에서 내리며 말했다. 

“스타트업들은 제외하고, 투자하고 있는 장기상품 있으면 단기상품으로 돌리고, 제가 지시 내리면 언제든 현금화 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세요. 뭔가 더 알게 되면 바로 얘기할게요.” 

상엽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 * * 

개강한지 보름이 지났다. 

난 웬만하면 학교를 빠지지 않고 나갔다.  

오랜만의 복학이라 걱정했는데, 유리가 이것저것 챙겨준 덕분에 적응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후배들과도 꽤 친해졌다. 

무엇보다 그날 일 이후로 애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중 가장 태도가 달라진 사람은 바로 얘였다. 

짙은 화장에 커다란 링귀걸이를 한 혜미는 내 옆으로 다가와 친한 척했다. 

“예전에는 내 타입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너 요즘 멋있어졌다. 나 사실 1학년 때부터 너 좋아했던 거 알아?” 

“······.” 

이 말의 모순점을 본인만 못 느끼나? 

애가 갑자기 변하니 적응이 잘 안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한결 같다고 해야 할지도. 

혜미는 다정하게 물었다.  

“나 지금 커피 마시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진후야?” 

“커피 끊었어.” 

“그럼 밥 먹으러 갈래?” 

“밥도 끊었어.” 

“······.” 

난 당황하는 혜미를 놔두고 강의실로 들어갔다.  

먼저 와있던 유리가 손을 흔들었다.  

“여기 앉으세요, 선배.” 

난 유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한 학기에 21학점을 채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네.” 

“에이, 그래도 영어과목 두 개는 출석면제 받았잖아요.” 

한국대에는 유학파나 교포 출신도 많다.  

더 이상 영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애들은 보통 간단한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으로 학점을 이수한다. 

1년 사이 영어실력이 늘어난 덕분에 미국인 교수와 면담하고, 출석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 이건 유리 역시 마찬가지. 어렸을 때 유학을 다녀온 덕분에 유리의 영어는 원어민 수준이었다. 

전공강의를 듣고 있는데, 유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500만 달러가 어디서 난 건지, 정말 말 안 해줄 거예요?” 

“말했잖아. 빌린 거라고.” 

모두가 500만 달러의 출처에 대해 궁금해 했다. 심지어는 소문을 들은 교수님들까지도 물어볼 정도였다. 

난 빌린 돈이라고 얘기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누가 일개 대학생에게 500만 달러를 빌려주겠는가? 

그런데 그에 대한 해답은 기홍 선배를 통해 쉽게 풀렸다.  

‘진후 걔 상엽 선배······ 아니, K컴퍼니 대표님과 친하잖아. 동아리 후배 정도가 아니라 완전 형동생 하는 사이야. 대표님이 걔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데. 500만 달러가 아니라 1천만 달러 빌려달라고 했어도 빌려줬을 걸.’ 

여기에 내가 상엽 선배가 K컴퍼니를 차리기 전 돈을 투자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럴 듯한 얘기까지 덧붙여졌다.(의외로 소문은 진실을 담고 있는 법이다) 

내 입장에서는 편하게 넘어간 셈이다. 

“흐음, 알았어요. 선배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죠. 믿어 줄게요.” 

“······.” 

전혀 믿는 표정이 아닌데. 

대체 얘는 나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유리는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보다 오늘 차 출고하는 날 아니에요?” 

난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유리는 핸드폰을 들어 보였다. 

“택규 오빠가 알려줬어요.  

“······.” 

이 자식은 그걸 왜 말해? 아니, 그전에 번호는 언제 교환한 거야? 

유리는 혀를 살짝 내밀며 말했다. 

“수업 끝나고 같이 가요. 시승식 해야죠.” 

* * * 

그 동안은 한국에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서 차가 별로 필요 없었다. 그러나 학교와 일 때문에 돌아다니며 필요성을 느꼈다.  

언제까지 택규 차를 빌려 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저번 주에 택규와 상엽 선배와 함께 매장에 가서 한 대 구매했다. 그 차가 오늘 출고된다. 

수업이 끝난 후, 난 유리와 함께 삼성동에 있는 포르쉐 매장으로 향했다.  

딜러는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매장 안에는 이미 리스회사 직원이 와있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출고장에는 이번에 모델 체인지 된 흰색 파나메라가 서있었다. 옵션 좀 넣었더니, 가격이 2억을 훌쩍 넘었다. 

유리는 나를 대신해 꼼꼼하게 차를 검수했다. 그러고는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요, 선배? 마음에 들어요?” 

“뭐, 좋네.” 

생각해 보면, 이게 내 첫차다. 

차가 없어서 오택규카를 얻어 타던 시절이 있었지. 이제 우울한 과거는 기억의 저편으로 넣어두도록 하자. 

띠리링! 

“네, 아빠.” 

유리가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 난 서류작업을 하고 차키를 받아들었다.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파나메라는 밟는 대로 시원하게 내달렸다. 직접 운전해 보니 더 마음에 든다. 

“차 좋네요. 학교에 몰고 다니면 인기 더 많아지는 거 아니에요?” 

“더 좋은 차 몰고 다니는 애들도 많잖아.” 

대표적으로 고준형이 벤틀리를 타고 다니지. 

학교 주차장에서 벤츠나, BMW를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포르쉐면 확실히 눈에 띌 것이다.  

이번에 새로 나온 신형모델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 차는 무슨 돈으로 산 거예요?” 

“내 돈 아니고, 법인 리스야.” 

그 법인이 내 꺼지만. 

난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아까 아버지랑 통화한 거야?”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금 영국에 출장 가계신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나 봐요.” 

“왜? 무슨 일 있어?” 

“얼마 전, 브렉시트 투표일이 확정 됐잖아요. 그래서 지금 찬반 양쪽이 대립하고 있데요.” 

“그래?” 

그 순간, 눈앞에 뭔가가 떠올랐다. 

난 멍하니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브렉시트 투표 가결>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