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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9

59화 축제의 밤 (1)

59화 축제의 밤 (1)

라이칸이 이어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확신은 아닙니다. 보존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았고, 어쩌면 다른 이의 시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카인 하센베르크로 추정됩니다.”

쿠훌린의 머릿속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하센베르크 가문을 찾은 일이 있었다. 애초부터 아르테미스와 하센베르크는 오랜 인연을 맺은 사이다.

쿠훌린은 그곳에서 카인 하센베르크를 만났다. 그때의 카인은 기사단과 함께 훈련 중이었다. 가주가 카인을 불러오겠다는 것을 쿠훌린은 한사코 거절했다. 그래서 쿠훌린은 먼발치에서만 카인을 바라봤다.

밤하늘처럼 짙은 흑청빛 머리카락.

따스하지만, 그 안에 맹수의 기운이 깃든 호박색 눈동자.

“그 말은 즉, 카인 하센베르크의 시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로군.”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 잠깐 라이칸. 만약 그 시체가 정말로 카인 하센베르크라면 지금 섬에 있는 쟤는 누구야?”

엘리샤의 물음에 라이칸은 어깨를 으쓱했다.

쿠훌린이 말했다.

“카인은 하센베르크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머리색도, 눈동자의 빛도.”

“그러나 단장께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조사를 명하신 것이 아닙니까.”

쿠훌린도 하센베르크 사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쿠훌린은 후계자인 카인을 포함해, 하센베르크의 피를 이은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던 중 지금의 카인을 만났다. 그리고 쿠훌린은 예전에 보았던 카인과 지금의 카인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명확히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다. 같지만, 미묘하게 틀어진 느낌.

“혹시 형제가 있었던 거 아니에요? 서자라든지, 뭐 방계의 자식이라든지.”

그럴 수도 있다. 쿠훌린이 알기로 하센베르크의 가주에게는 서자도, 방계도 없었지만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정말로 카인이 서자나 방계의 자식이라면 하센베르크의 검술을 사용하는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쿠훌린은 카인의 검술을 유심히 지켜봐 왔다. 분명 뿌리부터 제대로 익힌 검술이다. 하센베르크의 검술은 결코 아무에게나 전수되지 않는다.

“하센베르크 기사단도 대부분 전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생존자의 흔적을 쫓고 있지만 발견된 것은 없습니다.”

“쟤는 카인이 맞고, 그 시체가 서자나 방계의 자식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지. 그냥 확 카인한테 물어보죠? 너 카인 맞냐! 만약 아니라고 하면, 그럼 넌 누구냐! 솔직히 말해라! 뭐 이렇게.”

“엘리샤의 말은 무시하십시오. 아직 술이 덜 깬듯합니다.”

“무슨! 아니거든 라이칸!”

엘리샤가 라이칸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그러자 라이칸이 엘리샤의 볼을 꼬집어 당겼고, 그에 엘리샤가 아악! 비명을 지르며 라이칸을 걷어찼다.

그러나 둘의 다툼은 스카자하의 ‘조용히 하라’는 한 마디에 종료됐다.

“엘리샤. 너는 정말로 철이 들지 않는구나. 대체 언제쯤 정신을 차리려는 게냐. 라이칸, 너도 마찬가지다!”

스카자하의 꾸짖음에 엘리샤와 라이칸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고개를 숙였다.

쿠훌린이 라이칸에게 물었다.

“시체는 어디에 있지?”

“은월호에 있습니다. 가주의 시체와 함께.”

“뭐, 뭐야. 남의 시체를 막 가지고 와도 돼?”

엘리샤가 호들갑을 떨며 끼어들었으나, 스카자하의 사나운 눈빛을 보고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쿠훌린은 고민했다.

만약 신녀께서 살아 계셨다면 두 시체를 비교해 진위를 판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은월섬에 신녀는 없었다.

***

“어이, 예쁜이.”

먼발치에서 데미안과 카인의 대련을 구경하던 세실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엘리샤가 히죽 입가를 올리며 서 있었다.

“단장이 너한테 가보라고 해서 말이야.”

엘리샤가 세실의 옆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세실이 코를 쥐며 말했다.

“술. 냄새.”

“아하하! 딱 한잔했어! 한잔!”

깔깔대던 엘리샤의 눈이 초승달처럼 좁혀졌다.

“어디 보자. 우리 예쁜이 흉터는 안 생겼나 몰라?”

그러더니 세실의 앞섶을 확! 벌리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세실이 비명을 질렀다.

그에 놀란 데미안과 카인이 세실을 돌아봤고, 세실은 황급히 옷을 추스리며 엘리샤를 가리켰다.

“엘. 엘리샤가. 했어!”

그러자 엘리샤가 조금 전 세실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꺄악! 하고 소리쳤다.

고개를 갸웃하던 데미안과 카인이 다시 대련을 시작했다. 세실은 파르르 입술을 떨며 엘리샤를 노려봤다.

“뭐. 하는. 거예요······!”

“흉터가 안 남았는지 보려고 했지.”

엘리샤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근데 안 답답해? 그렇게 가슴에 붕대를 둘둘 말고 다니면.”

“······.”

“머리 염색을 하고 싶다면서? 은빛으로.”

세실의 눈빛이 변했다.

“해줄. 거예요?”

“네가 정말로 원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주지?”

엘리샤가 세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난 지금의 네 머리색이 너무 예쁜데. 정말로 염색하고 싶어?”

“······네.”

“좋아! 까짓것. 바로 시작해 볼까!”

“여기. 서요?”

“이따가는 술 마셔야 하니까 지금 해야지. 아, 근데 아쉽네. 금발 녀석이 네 머리색을 무척 좋아했었는데.”

세실의 눈이 동글게 커졌다.

“데미안이?”

“응. 그때 돼지 오줌보 여관에서 너 기절해 있을 때.”

“거짓말.”

“얘가 무슨 소리를. 거짓말 아니야! 금발이 그때 뭐라고 했었더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뭐 대충 그런 말을 했었다고!”

“무슨. 말?”

세실은 눈을 깜빡거리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엘리샤가 실실 웃으며 말을 돌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술 마시러 가야 하니까 빨리 염색하자. 뒤돌아봐.”

세실은 당황했다.

“염색하고 나면 원래대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단장이야 워낙 괴물 같은 힘을 지녔으니까 가능한 거고, 너는 완전히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려면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야. 근데 이 정도까지 다시 기르려면 몇 년은 걸리겠는데?”

“자. 잠깐.”

“와, 윤기 봐. 이렇게 예쁜 머리카락을 염색하다니. 너무 아깝다. 분명 금발 녀석도 아쉬워하겠지? 하지만 뭐, 네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저. 대. 대련······.”

저만치에서 손을 흔드는 루나를 보자마자, 세실은 도망치듯 루나에게 달려갔다.

등 뒤에서 엘리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침 데미안과 카인도 대련을 끝낸 듯했다. 언제나처럼 카인이 데미안을 놀렸고, 데미안은 발끈한 금색 강아지처럼 으르렁댔다.

***

“축제야! 축제라고! 아하하하!”

루나가 고대하던 축제일이 찾아왔다.

달빛나무 언덕은 왁자지껄한 소리로 가득했다. 섬의 모든 이들이 이곳에 모였다. 이날만큼은 리아논도 긴 망토와 후드로 몸을 가린 채 언덕을 올랐다.

“카인! 데미안! 세실! 저기 좀 봐!”

리아논이 있어서인지 루나는 더욱 즐거워 보였다. 디네베의 손을 잡은 채, 정말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달빛나무 주변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달빛나무 주스가 가장 인기가 좋았다.

“루나. 저기 매달린 게 달빛나무 열매야?”

내 물음에 루나의 눈이 동그래지더니, 배를 쥐며 웃었다. 옥구슬처럼 맑은 웃음소리가 밤하늘로 퍼져 나갔다.

“열매가 아니고, 달빛누에의 고치야.”

“달빛누에?”

“응. 저건 달빛누에의 집이야. 달빛누에는 탈태할 시기가 다가오면 입에서 실을 뽑아 집을 지은 뒤 그 안에 숨거든.”

“탈태?”

세실이 빠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응, 탈태. 껍질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거야. 지금 고치 안에는 달빛누에가 잠자고 있어. 머지않아 깨어날 거야.”

루나가 머리 위로 눈을 돌렸다. 우리도 같은 곳을 바라봤다. 밤하늘은 금세라도 별의 비가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달이 저 하늘 꼭대기에 오를 때.”

달빛나무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저들 모두 달이 가장 높이 오를 때를 기다리는구나.

“달이 평소보다 커 보여.”

“맞아 데미안. 오늘이 일 년 중 달이 가장 크게 뜨는 날이야. 그래서 달빛나무도 평소보다 환하게 빛나는 거고.”

달빛나무는 보름달이 뜨는 밤에만 지금처럼 은빛으로 빛나고, 평소에는 보통의 나무와 비슷한 빛깔을 띤다고 한다. 그래서 루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달빛나무가 은빛이었던 것이다.

달이 위로 솟을수록 나무의 빛이 강해졌다. 주위의 들풀도 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뭐? 달빛누에의 고치로 은월의 망토를 만든다고?”

내 물음에 루나가 까르르 웃었다.

“달빛에는 신비한 마력이 담겨 있거든. 그래서 달빛누에가 뽑아내는 실에는 조금이지만 달의 마력이 담겨 있어. 게다가 매우 가늘고 튼튼하기 때문에 은월의 망토는 모두 달빛누에의 고치실로 만드는 거야.”

행복해하는 루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따스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때, 쿠훌린이 기습하듯 루나를 안아 올렸다.

“우리 큰 공주가 여기 있었구나. 하하하!”

“꺄아악!”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봐. 이런 건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루나가 바락바락 소리치며 쿠훌린의 얼굴을 할퀴었다. 하지만 쿠훌린은 껄껄 웃기만 할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루나를 내려놓은 쿠훌린이 씩씩대는 루나를 뒤로하며 달빛나무를 향해 걸었다. 오늘은 달과 달빛나무뿐 아니라 쿠훌린의 은빛 머리카락도 가장 밝게 빛나는 날인 듯했다.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달빛누에의 고치에서 연기처럼 뽀얀 빛이 피어올랐다. 퍼져나가던 빛의 곡선이 다시 고치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러고는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달빛누에나방이야.”

루나의 목소리가 풍경의 일부처럼 스며들었다.

어느새 달빛누에나방은 완전한 형태가 되었다.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푸르르······. 푸르르르르······.

날아올랐다.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달빛의 점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나는 홀린 듯이 그것을 바라봤다. 그러나 길지 않았다.

점차 빛이 약해지더니, 사라졌다.

하늘은 고요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아쉬울 정도로 짧았다.

“하늘에서 눈을 떼지 마.”

루나가 웃음을 참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와 동시였다.

푸르르! 푸르르르르르······!

수많은 자줏빛 별이 불을 밝혔다. 그것이 검푸른 하늘 위로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날갯짓할 때마다 빛이 흩어지며 주위를 같은 색으로 물들였다.

달빛누에나방은 스스로의 광채를 잃었다. 그러나 새로운 빛의 옷을 입었다.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루나의 손 위로 자줏빛 가루가 떨어졌다. 그녀의 하얀 손과, 행복하게 웃는 얼굴과, 반짝이는 은빛 머리카락 위로 뽀얀 광채가 어렸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크게 기울어집니다.]

달빛의 누에는 몇 번의 허물을 벗고, 고치를 만들고, 은빛의 나방으로 탈태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날개를 펼쳐 자유롭게 밤하늘을 비행한다. 인간의 삶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 고치를 만드는 중인지도, 어쩌면 이제야 첫 번째 허물을 벗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모든 것을 훌훌 벗는 날이 올 것이다. 한 겹, 두 겹, 또 세 겹을 벗고, 가능성을 둘러싼 껍질마저 벗어던지고, 마침내 우리는 하늘을 날게 될 것이다.

누에에서 나방으로 변신한, 저 밤하늘의 자줏빛 별처럼.

.

.

.

눈을 뜨자 기시감이 느껴졌다.

창밖은 어두웠고, 커다란 보름달이 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창 아래로 눈을 돌렸다.

언젠가의 그날처럼, 하얀 원피스 잠옷을 입은 디네베가 창틀에 기대앉아 있었다.

“깼니?”

디네베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역시 그때의 일은 꿈이 아니었던 건가.

아니면 지금 이 광경도 꿈인 걸까.

“꿈이 아니야. 데미안.”

디네베가 웃었다. 그때와 같은 표정과, 말투로.

“어서 가야 해.”

“······가다니. 어디를?”

“나는 미성숙한 육체에 깃들었어. 그래서 일 년 중 가장 달빛이 강한 지금이 아니면 네게 보여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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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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