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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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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뢰(天雷)(5)

나는 김영훈에게 허락을 받아 진씨세가의 영지에 있는 내 제자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삶에도 역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계화는 아이를 둘 낳았다.

만호는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둘은 좋은 부모가 될 듯 했다.

녹현의 조각술은 지난 삶보다도 훨씬 뛰어나게 성장했다.

녀석도 새로 부인이 생긴 것 같았다. 다만 내가 모르는 얼굴인 것으로 보아, 진씨세가 영지에서 만난 다른 여인인 것 같았다.

청야는 비단을 짜내는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녀가 뽑아내는 비단은 굉장히 고왔다.

희아는 곽기와 혼인했고, 아직 아이는 없는 것 같았다.

지난 삶과 비슷한 인연들도 있었지만.

나비효과로 인해 조금씩 달라진 모습들도 보였다.

그들 모두 잘들 지내고 있었으며.

누구도 죽은 녀석은 없었다.

나는 녀석들이 사는 마을을 몰래 한번 돌아본 후, 김영훈과 다시 영지를 빠져나왔다.

“좋군요. 모두 잘들 사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런데 아는 이들이냐?”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르는 인물들이지요.”

“무슨 인연인지 물어도 되겠느냐?”

무슨 인연이냐라…

난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냥, 인연입니다.”

한번 맺어졌던 인연에 어떤 이름을 붙여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냥, 인연일 뿐이다.

사제의 연이 아니더라도, 내 가슴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인연들…

“그냥 인연이라…”

김영훈은 뭔가 더 궁금한 듯 싶었지만, 내 복잡한 의념을 읽고는 딱히 더 묻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배웅해주며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40년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지냈느냐, 무공을 익히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어떻게 수도법술과 무공을 전부 그 수준으로 익힐 수 있었느냐 등…

“벽라국 쪽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김 형이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눈을 떠보니 완전 다른 곳이더군요.”

“하하, 그러냐. 눈을 떠보니, 연국의 언어랑 처음 보는 무공 등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기에 사실 큰 어려움은 없더구나.”

“…저도 그랬습니다. 등선향에서 보았던 그 괴인들이 한 짓이 아니겠습니까?”

난 내가 김영훈에게 생존을 위해 넘겨준 지식을,

등선향의 천인기 수도자들이 한 것으로 돌렸다.

“…쯧, 동료들 다 납치해가고 이런 걸 해 줘 봤자지만… 됐다. 뭐 지나간 일을 내가 어쩔 순 없지.”

그는 혀를 차며 한숨을 쉬었고, 나는 그와 무공에 대한 여러 깨달음을 나누었다.

그리고, 연국의 서쪽 경계지역.

그곳에서 나는 김영훈에게 세 권의 책을 넘겨받았다

“월도월무록이라는, 그 괴인들이 내 머릿속에 넣어준 무학서. 그 무학서를 극한까지 익히고, 다음 경지에 대해 알기 위해 시행착오를 한 깨달음들이 추가된 것이다. 너도 읽어보면 썩 도움 될 거다.”

“음, 제목은… 그대로 월도월무록입니까?”

난 이번에도 김영훈에게 그가 분량을 늘려놓은 무학서를 받아들며 되물었다.

그러나 김영훈은 자조적인 표정으로 혀를 찰 뿐이었다.

“제목을 바꾸긴 뭘 바꾸느냐. 간신히 매달려서 멍청한 시행착오만 반복해 추가한 것들이다. 등봉조극 그 너머 경지라는 게 실존하는지조차 솔직히 의문이고. 뭐가 나올때까지 무식하게 부딪힌 일기나 다름없는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등봉조극이 무림인이 도달할 수 있는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말이다.”

푸흣!

“…뭐가 웃기냐?”

난 문득 그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림인이 도달할 수 있는 끝?

김영훈에게 몇 번이나 들었던 말이었더라?

하지만, 그는 여태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기어코 그 너머 경지를 만들어내었다.

끝의 끝조차 몇 번이고 그 한계를 박살내버리고 전승되며 강해지고 높아졌다.

그것이, 김영훈이었다.

“…산 너머 산이 다함이 없으니(山外山不盡), 길 가운데에 길도 다함이 없더라(路中路無窮).”

나는 천천히 경구를 읊으며 말했다.

“끝이라 생각해도 그 너머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김 형이라면 반드시 그 너머에 도달할 겁니다. 정 바꿀 생각이 없으시다면, 아쉽지만 월도월무록으로 받아놓지요.”

“…괜히 띄워줘봤자… 후, 됐다. 그나저나 정말 성제국으로 갈 게냐?”

“예. 성제국에 찾을 것이 있습니다.”

성제국 서쪽 대산맥에 있다는 금신천뢰문에 대한 기록.

나는 그를 뒤져서 최대한 승천문에 대한 정보를 더욱 더 끌어모을 예정이었다.

“아쉽군… 네가 남아서 더욱 더 나와 대련해줬으면 싶었는데.”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무래도 꼭 찾아야 할 것이 있어서요.”

“그래, 알겠다. 그래도 간혹 들르기는 하거라.”

나는 그에게 말없이 포권을 했다.

김영훈도 마찬가지로 포권을 했고, 우리 둘은 그렇게 짧은 작별인사를 했다.

* * *

성제국은 경전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국가였다.

온갖 경전과 학식이 범람했고, 문인의 나라라고도 불리는 만큼 수많은 시구들과 시집들이 거리마다 넘쳐났다.

성제국어에 대한 지식은 약소한 편이었지만, 한껏 강화된 수도자의 정신으로 말을 배우니 달포가 되지 않아 성제국어를 모국어마냥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말을 배운 이후부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성제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성제국은 총 일곱 개의 수도가문이 통치하고 있다 하였다.

하지만 수도가문의 수가 많다 하여 이들이 연국이나 벽라국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막리세가, 진씨세가보다 조금 세력이 큰 진루세가(珍累勢家)라는 거대가문이 성제국의 절반을.

그 외에 하씨세가, 거씨세가, 준씨세가, 열전세가, 오리세가, 전씨세가 등 여섯 군소 가문의 연합이 나머지 절반을 장악한 형태라 하였다.

여러 수도세가들이 난립하는 국가인지라 각 가문에서 주장하는 여러 사상과 학문이 쏟아져 나오는 학문과 경전의 성지.

그곳이 성제국인 셈이었다.

나는 성제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 * *

성제국에 온지 약 1년차.

나는 곳곳의 하청산수들과 수도가문의 방계 등을 찾아 묻고 다닌 결과.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얻을 수 있는 곳을 알아냈다.

“성제국 제일종문이었던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라면야, 성제국 황실 서고에 상당히 많을 거요.”

“황실 서고라…”

성제국의 황실은 놀랍게도 딱히 어느 가문의 방계가 아닌, 순수한 범인이라 하였다.

여러 가문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어느 특정 가문의 방계가 황실을 차지한다면.

연국과 같이 나라 배후의 가문들끼리 엄청난 혈투가 벌어질 터이니, 일곱 가문이 서로 약조를 맺어 범인들끼리 황조를 맺게 하였다 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의 균형 속에서, 범인들의 황조인 난씨황조는 무려 칠백 년을 존속했고.

그 칠백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도계의 귀중한 공법 등은 수집하지 못했지만,

수도자들이 공법서적보다는 비교적 덜 중요히 여기는 역사서적 등은 꾸준히 수집했다고 한다.

때문에 성제국 황실의 서고에는 온갖 수도종문들에 대한 역사, 특히 성제국 제일종문이었던 금신천뢰문에 대한 비사는 상당히 많이 비치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황실 서고에 접근하는 방법이었다.

‘수도자는 서고는 고사하고 황궁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안 된다니..!’

일곱 수도가문이 혹여 상대 가문의 수도자들이 황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제약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일곱 가문의 가원은 물론이고, 산수들도 황궁 안쪽으로는 못 들어가게 황궁 내부에는 강력한 결계가 쳐져있다고 하였다.

‘흐음, 이것 참 곤란하군. 결계를 뚫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는건가.;

나는 정보를 제공한 눈 앞의 하청산수에게 물었다.

“하면, 황궁 안에는 수도자가 한 명도 없다는 말인가? 수도자는 아예 들어가는 게 불가능한 거고?”

“아, 아마 그건 아닐 겁니다 선배님. 황궁 안에도 황실 감시역으로 연기기 고계 수도자들이 몇 정도는 있다 들었습니다. 그들은 칠대 가문에서 제작한 결계에 저항하는 특별한 부적을 받아,

유사시에 황실을 보호하거나. 황실이 칠대가문의 의지에 반할 때에 황제를 갈아치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 말인 즉슨, 들어가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는 거로군?”

“예, 맞습지요.”

“흠…”

아무래도 결계에 대해서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할 듯싶었다.

나는 성제국의 수도인 진경(津京)으로 가서 황궁의 배치와 황궁 주변을 흐르는 영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스승님께 배운 진도에 대한 지식과, 하청산수들에게 들었던 증언 등으로 보아.

황궁에 쳐진 결계는 수도자의 진입을 막는 결계가 아닌, 결계 내부로 들어온 수도자의 법력을 억누르는 결계였다.

즉, 결계 내부에서는 수도자라고 해도 칠대가문에서 지급한 특수한 부적을 지니지 않으면 일반인과 다름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이 말인 즉슨.”

나는 황궁을 드나드는 이들과, 황궁 안쪽에서 얼핏얼핏 보이는, 검기를 뿜어내는 무림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난 그냥 들어가면 된다는 말이군.”

법력이 제약당하든 말든 내 알바는 아닌 것이었다.

법력을 가진 존재가 아예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 법력을 가진 존재가 들어가면 법력이 제약당하는 형태의 결계.

하지만, 나는 법력 말고도 다른 힘이 있었다.

슈칵!

월수궁무록으로 인식을 베어낸 후, 나는 유유히 황궁의 정문으로 들어갔다.

쿠구구구!

황궁 안쪽으로 들어가자 확실히 법력이 제약당하는 게 느껴졌지만.

의식과 내공, 내단 등은 멀쩡했다.

하기사 결계 내에서 무림인마저 무공을 못 쓴다면 황궁에서 일어나는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가 아예 안 되는 수준일 것이다.

‘거기다가 힘을 쓰는 게 허용된 수도자들도, 어차피 전부 연기기 수준이라 하니…’

유사시엔 황궁을 뒤엎어버리고 도망쳐도 아무 문제가 안 될 수준이었다.

나는 황궁 곳곳을 돌아다니며 황실 서고를 찾아, 그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어디보자,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 서적이…”

나는 그렇게 서고에서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 * *

나는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을 찾아 읽어가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금신천뢰문은 무려 12만 3천 200여 년 전에 세워진 종파라고 했다.

12만 3천년!

기가 질리다 못해 어이가 없을 정도의 숫자단위였다.

‘무슨 정신나간 숫자단위란 말인가..?’

그냥 장난이나 전설 같은 것이라 치부하며, 다른 서적들을 전부 찾아보았다.

그러나 황실에서 보관하고 있는, 연국어나 벽라국어로 된 완전히 다른 서적들 역시 금신천뢰문의 출현을 약 12만 3천여년 전으로 잡고 있었다.

물론 3천년 이하의 세세한 년도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모든 서적에서 동일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진짜란 말인가…’

하기사, 천인기 수도자만 하더라도 수명이 2000년을 넘는다.

‘지구에서 서기가 2000년을 조금 넘은 수준이었는데, 가진바 수명이 이천년이 넘는 괴물들이면…’

그렇게 생각하니 12만년이란 정신 나간 시간단위도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았다.

‘음? 심지어 흑색귀골곡 이 종파는… 50만년? 이게 숫자놀음인가 아니면 진짜인건가…?’

난 흑색귀골곡에 대한 허황된 숫자는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빠르게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로 눈을 돌렸다.

저런 머리아픈 숫자는 잡고 있어봤자 어이만 없어질 뿐이었다.

난 금신천뢰문에 대한 서적들을 읽고 정보들을 취합했다.

여러 서적에서 교차검증이 된 정보들은 신빙성 있는 정보로.

한두 서적에서만 언급된 정보들은 야사 정도로.

그렇게 교차검증을 하며 신빙성 있는 정보들을 모아 추려낸 금신천뢰문에 대한 정보들은 다음과 같았다.

금신천뢰문은 12만 3천여년 전 금신자(金神者) 앙수진이라는 도인이 세운 종파라고 했다.

이 금신자 양수진이라는 자에 대한 기록은 황실 서고 어디를 찾아보아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냥 갑자기 뚝 떨어진 존재였다.

하지만 양수진이라는 자에 대한 특이한 기록이 존재했는데, 바로 천거(天拒) 현상이었다.

‘내가 겪은 것과 같다…!’

그는 연기기 7성에서 칠성제의를 치룰 당시.

하늘에 먹장구름이 끼며 그의 수선을 불허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온갖 고련을 다해 강환으로 먹장구름을 찢어발기고 칠성제의를 완료한 것에 비해.

양수진은 가진 바 재능이 워낙에 엄청났어서, 그 재능으로 하여금 천거 현상을 스스로 극복하였다고만 기록되어 있었다.

무슨 재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나와있지 않았다.

‘신기하군, 12만 년 전의 사람도 천거 현상이란 걸 일으켰다니…’

하지만 신기한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이하게도, 양수진의 시대에는 천거 현상을 겪은 이들이 대여섯 정도 더 존재했다는 정보들도 있었다.

‘대여섯 명이라…’

안타깝게도 그들이 누군지에 대한 정보는 수록되어있지 않았고.

그들이 천거 현상을 극복한 방법에 대해서도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 중 한명은 아예 그냥 천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늙어죽었다는 야사까지 있는 마당이었으니.

어쨌든, 한 시대에 그토록 희귀한 천거 현상의 보유자가 그토록 많이 동시에 등장했다는 건 조금 신경쓰이는 대목이었다.

‘신경쓰이는데…’

하지만 뭔가 결정적인 단서가 없어 섣불리 생각을 정리할 수는 없었다.

양수진에 대한 기록 중, 가장 특이한 기록은 바로 금신천뢰문의 개파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리하여 조사(祖師)께서 하늘에 손을 뻗자, 하늘이 갈라지며 중령성국(中靈聖國)의 수도 개천성(開天城) 위로 빛의 문이 열리니. 그곳으로 문파의 신물(神物)이 떨어져내렸노라. 금신자(金神者)의 도호와 신물(神物)의 이름을 따, 그분께서 금신천뢰문(金神天雷門)을 세우시니. 성국(聖國)의 백성들은 이를 기리고자, 개천성에 금신천뢰문을 숭앙하는 사당을 세워 기도하고…

“빛의 문…?”

나는 다른 서적들을 찾아 정보를 교차검증하며, 해당 비사가 신빙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여러 서적들에서 묘사하는 ‘빛의 문’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건, 승천문(昇天門)이군.”

확실하다.

“그리고 여러 서적에서 묘사하는 성국이라는 나라는…”

12만년 전에 존재한.

현재의 답천사막의 위치에 있던 국가였다.

“12만년 전에는 답천사막이 사막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나본데, 하면 승천문이 있던 답천사막은 성국이라는 국가의 중심에 있던 것이고, 등선향에 있던 석재 사당은, 12만년 전의 그것이란 소리인가…?”

그 돌조각들이 무려 12만년 전의 것이라니.

조금 단단하다 싶긴 했지만, 그 정도로 오래 묵은 물질인줄은 몰랐다.

‘일반적인 돌이 그게 가능한가 싶긴 하지만, 날아다니는 신선 같은 것들이 있는 시점에서 그런 건 생각해봤자긴 하지.’

하여튼, 여러 정보들을 종합한 나는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승천문이란 것은, 금신천뢰문의 개파조사인 금신자 양수진이란 이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면, 이 자가 우리를 이 곳에 떨어지게 만든 원흉인 건가?

‘아니, 그건 아닐 것 같다.’

양수진이라는 이가 연기기일 때 겪었다는 천거 현상.

그리고 그와 동시대에 있었다는 대여섯명의 천거현상자들.

그리고 나와 회사 동료들.

이들간의 결정적인 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어째선지 양수진 역시 하늘로부터 휘둘린 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양수진이 승천문을 연 곳 근처엔 애초에 공간이 불안정해서 공간균열이 많았었군.’

이 역시 여러 서적에서 교차검증한 정보였다.

중령성국이란 곳의 수도가 개천성이란 것 역시.

수시로 하늘의 공간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기현상에서 발원한 것이라 하였다.

‘더 자세한 정보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12만년 전의 비사인 탓인지.

수도자들에게서 구한 정보를 간직한 황궁서고에도 세세한 사정 같은 것은 없었다.

그냥 그 때엔 이런 일이 있었다 하더라 라는 식의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그럼 금신천뢰문의 신물이란 건 뭐지…?”

나는 또 다시 여러 서적을 뒤지며 금신천뢰문의 신물이란 것에 대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금신천뢰문의 신물은 종파의 핵심기밀이라는 이유로 민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라는 정보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알려진 것은 금신천뢰문의 모든 문인은 신물과 자신의 수행이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금신천뢰문에서 신물을 어마어마하게 중요히 여기며 대대로 문주에게만 전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신물이니 중요하게 여기고, 문주 같은 최상위층에게만 전하는 게 맞겠지!’

너무 당연한 정보라서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나는 다른 서적들을 계속 뒤적여 봤지만, 신물에 대한 정보는 황실 서고 어디에도 없었다.

황실 서고에 12만년 전의 정보가 있다고 해서, 황실에 12만년어치의 모든 서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몇천년 단위로 굉장히 유명한 사건들을 담은 서적들이 있었을 뿐이었고.

금신자가 승천문을 열고 금신천뢰문을 세운 사건은 너무 유명한 사건이라 기록된 것이 많을 뿐이었다.

“흠, 이건 야사집인가.”

나는 서고를 뒤지던 중 금신천뢰문에 대한 또 다른 야사집을 발견하곤 펼쳐서 읽었다.

야사집에는 신빙성은 없지만 재미있는 내용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는 양수진이 승천문을 연 것에 대한 것이었다.

야사집에서는 양수진이 승천문을 열고 하늘 너머에서 신물을 받아낸 것이 아닌.

애초에 천인기에 올라 상계로 비승을 한 후, 상계에서 신물을 가지고 다시 이 세계로 내려올 때 공간을 가른 것이 신물이라는 추측을 제기하고 있었다.

‘확실히, 승천문이 상계와 이어지는 이유로는 이게 적합하군.’

애초에 상계에서 내려오며 만들어진 균열이기에 상계와 이어져있다.

하지만 이 야사집에서 논하는 추측엔 기묘한 것이 있었다.

‘그 말대로라면, 양수진은 천인기에 올라 상계로 비승을 하고, 다시 이 세계로 내려와야만 했던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양수진이라는 인물이 어떤 말년을 보냈는지를 마구 찾아보았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기록이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기이하게도 전부 서적마다 기록이 달랐다.

어떤 서적에선 자살했다고도 하고.

어떤 서적에선 다시 상계로 비승했다고도 하고.

어떤 서적에선 치매에 걸려 이상한 소리를 하다가 미쳐서 공간 균열로 들어갔다고도 했다.

어떤 서적에선 수명이 다 되어 늙어죽었다고 하기도 했으며.

어떤 서적에선 그냥 실종되었다고 하기도 했다.

‘왜 다 다르지?’

하지만 분명한 건, 일단 양수진은 죽거나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기이한 자로군.’

출생도 명확하지 않고, 사망도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기록이 오래되어 정확하지 않은 게 아닌, 그냥 정보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시대의 다른 흑색귀골곡 곡주나 거대 종문 문주들의 출생은, 그 지역이 어딘지라도 대략적으로나마 추정하는 기록이 많다. 하지만 양수진에 대한 것은 아예 추정기록조차 없다.’

이 자는 어쩌면…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며 다른 서적들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었다.

승천문, 혹은 기타 정보를 통해서 뭔가 새로운 정보를 도출해낼 수 있을 테니까….

* * *

내 수명이 다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황실 서고에서 숨어지내며, 서적들을 읽고 정보를 규합하며.

끊임없이 지월입도결의 수행도 멈추지 않았다.

대지에서 토 속성의 영력을 추출하며 오행의 의를 전 영맥에 적용시킨 결과.

나는 3년여만에 오행진의를 완공하고 연기기 10성, 사상이의로 넘어갈 수 있었다.

사상이의는 체내의 팔괘완로로 구성된 여덟 괘상의 영력을 네 가지 사상의 이치에 따라 이의(二意)로 이어 두 줄기의 음맥과 양맥으로 나누는 작업이었다.

이 부분은 선각후통의 방식으로 미리 전부 깨우쳐 놓기도 했고, 애당초 법력을 인도하는 게 주인 경지였기에 내가기공으로 훈련한 진기도인 경험으로 충분히 선행을 할 수가 있었다.

쿠구궁!

나는 황궁의 심처, 영력이 잔뜩 모이는 곳에 월수궁무록을 사용하며 자리를 잡고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

1년 반 만에 사상이의를 완공하고, 연기기 11성 천지인규일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삼재규일의 단계는 삼재에 해당하는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을 잇는 길을 영맥으로 더더욱 강화시켜 삼단전을 이어놓는 작업이었다.

나는 다시 3년 반의 시간을 거쳐, 삼재규일을 겨우겨우 뚫고 연기기 12성, 이의합일에 진입하였다.

‘천지인은 곧 하나라…’

삼재가 곧 하나.

그것이 삼재규일에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부웅, 부웅, 부웅…

동시에 나는 삼재규일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내 강환에도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뭐지? 뭔가 알 것도 같은데…’

왜 김영훈은 항상 하나의 강환을 세 개로 쪼개고, 그걸 다시 세 개로 쪼개서 아홉 개의 강환을 생성할까.

그냥 처음부터 아홉 강환을 뽑아내면 안 되는가?

‘종이 한 장 차이의 깨달음이 부족한데… 그걸 알 도리가 없군.’

도대체 무슨 깨달음이 부족한 것일까.

‘천지인은 곧 하나라…’

나는 어쨌든 11성 삼재규일을 완공하고, 12성 이의합일로 진입하였다.

이의합일은 음맥과 양맥으로 나눈 영맥의 음양이기를 끊임없이 순환시켜, 두 개의 음양쌍맥을 단 하나의 일맥(一脈)으로 통합시키는 단계였다.

이의합일의 단계는 영기의 끊임없는 순환이 중요했고, 이것은 진기의 흐름과도 비슷했기에 이전에 해왔던 어떤 단계보다도 더욱 빨리 경지를 뚫는 것이 가능했다.

퍼버벙!

약 6개월만에 나는 이의합일을 끝내고, 연기기 13성 일원일응으로 진입하였다.

그리고.

내 수명이 거의 다 되었다.

* * *

우우웅!

나는 그날도 서적을 꺼내 읽으며, 체내를 흐르는 영기의 흐름을 느꼈다.

연기기 13성, 일원일응의 경지는 하나로 통합한 영맥의 영기를 빠르게 돌려, 단전에 일점(一點)으로 영기를 응집시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영기의 일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에 깨달음을 요하고는 있었으나.

나는 이제 곧 13성도 완공에 달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생에 14성. 연기기의 극한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다음 생만 해도 충분히 연기기의 극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축기기가 문제군.’

연기기 14성, 무극영운의 경지까지는 사실 스승님에게 워낙 잘 배워두어서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그러나, 축기기에 이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자질이 좋은 진영근 수도자들조차 축기기에 오르는 것은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했고.

천영근자 정도나 되어야 무난하게 수련만으로 축기기에 오르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랬기에 인간을 갈아서 만드는 축기단 같은 단약이 여기저기에서 떠도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축기단을 먹을 수 없다.’

그 역겨운 것을 입에 대기조차 싫다.

인간이 같은 인간을 갈아만든 단약을 먹는다고?

‘인간이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선은 있지 않느냔 말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현실적으로 내 오영질로는 진영근자들조차 힘들어한다는 축기기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찌해야 하는가…’

성제국의 황궁 서고를 뒤적이며, 나는 금신천뢰문뿐이 아닌 기타 서적들도 10여년간 굉장히 많이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 축기단 없이 축기기에 오른 사례를 찾아보려 했지만.

축기단 없이 축기기에 오른 이들은 특이한 체질을 지녔거나, 천영근자. 혹은 아주 오성이 뛰어난 이영근자 정도가 다였다.

사영근자 이상이 축기단 없이 축기에 성공한 사례는, 전무(全無) 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내 수명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두 번의 생을 바쳐 겨우 연기기 13성일 뿐이다.

그조차도 최고의 스승을 만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을 한 덕에 도달한 것이니.

일반적인 둔재의 노력으로는, 사실상 도달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축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시간이 부족하다.”

한 번의 생은 어째서 고작해야 50년도 채 되지 않는가.

어째서 그렇게 딱 정해져 있다는 말인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을텐데.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준다면…”

축기기.

축기기에 오르기에는 수명이 부족하다.

하지만 새로운 수명은 오직 축기기에서부터만 주어진다.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사락-

나는 문득, 서적을 뒤지던 중 수명(壽命)에 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이론을 발견해냈다.

-대저 인간의 수명이란 하늘이 정해준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간은 수명을 극복하고 싶다면 축기에 성공하여 새로운 수명을 내려받아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는 다르게 생각한다.

하늘은, 어쩌면 수명을 내려주는 존재가 아니다. 하늘은 그저 정해진 수명을 기록하는 존재고, 인간이 그 기록을 넘어서지 못하게 운명을 부여하여 막아설 뿐이다. 그 말인 즉 하늘이 보내는 운수조차 막아설 힘을 손에 넣는다면.

하늘은 그 인간의 명을 다시 기록하게 된다. 다시 한번 기록하는 명의 길이는 약 300여년. 그리고 또 다시 인간이 300여년의 명조차 뛰어넘을 힘을 가지게 되면 다시 하늘이 황급히 새로 수명을 기록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하늘이 수명을 내려준다는 이야기의 진실이리라.-

“호오…”

나는 이 글귀를 눈여겨보았다.

여지껏 보았던 논지 중 가장 흥미로운 논지이기도 했고.

“왜… 이 이야기 앞에 수록된 거지..?”

먼 옛날.

스승님과 함께 찾았던, 어머니에게 먹일 잉어를 찾기 위해 한겨울에 옷을 벗고 빙판을 녹인 사내와, 다른 여러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설화들의 사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고전설화 모음집의 앞에 수록된 말이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꼭…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설화의 저자, 혹은 엮은이가 하늘이 부여하는 수명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보이는군.’

난 설화집의 앞뒤를 펼쳐보았다.

하지만 설화집에는 저자명이 없었으며, 제목도 없이 그냥 설화집일 뿐이었다.

황궁서고에 있던 것과 청문세가 서고에 있던 두 설화집은, 책의 표지와 설화집 앞에 쓰인 말을 빼고는 모든 부분에서 똑같았다.

난 내공과 법력을 불어넣고, 불을 쬐거나 물에 종이를 적셔보는 둥 몇몇 방법으로 종이를 자극했지만.

책이 너덜너덜거려지기만 할 뿐 딱히 숨겨진 것도 없었다.

‘헛수고했나…’

난 혀를 차며 다시 설화집을 제자리에 꽂아놓았다.

흥미로운 주장이었지만, 딱히 증명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저 글을 쓴 설화집 엮은이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맞는 말이라면 굉장히 흥미로운 주장이다.’

저 말에 의하면, 축기기에 이르지 못해도 하늘이 부여하는 운수를 전부 뿌리칠만큼 강한 힘을 가진다면 하늘이 수명을 재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기 초기급의 전력을 가진, 등봉조극에 이른 무인인 나라면.

과연 수명을 극복할 수 있을까?

‘분명, 이전 삶에선 내 정해진 수명보다 하루를 더 살았다..!’

하늘이 내게 심장마비를 내렸지만, 나는 강기를 억지로 짜내서 심장을 강제로 자극시켜 아침해가 뜰 때까지 살아있었다.

물론 고작 하루밖에 되지 않아, 그게 수명을 극복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힘이 있으면 수명을 티끌만치 극복하는 정도는 가능하단 것이었다.

‘수명을… 극복할 수 있는가…?’

어째서인지 무명의 엮은이가 펼쳐낸 저 이론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엮은이의 말이 왠지 마음에 끌렸다.

앞으로 남은 내 수명은 약 달포.

과연, 등봉조극에 오른 이는, 축기기처럼 수명을 극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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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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