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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6화 신성(2)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방송 켰습니다. 전라도 농사꾼 박씨입니다.”

-ㅎㅇ 이 시간에 웬일?

-전통주 컨텐츠 언제 올림?

농사꾼 박씨는 겸직으로 윱튜버를 하고 있는 농사꾼이었다.

농사 컨텐츠나 개구리 먹방, 멧돼지 사냥 등 시골 라이프를 보여주며 농사일과 겸하는 전형적인 지방 윱튜버.

그는 최근에 게이트 출현으로 일이 중단됐다는 옆동네 김씨의 논밭을 구경하러 이곳에 왔다.

“커뮤니티서 한번 언급 드렸지요? 옆동네 김씨네 밭에 게이트 떳다고.”

-ㅇㅇ 그랬지

-그거 불새 길드가 낙찰받았잖았음.

-김씨 아재가 그래서 잘 좀 해결해달라고 불새 길드 헌터들한테 밥상, 술상 차려줬었자너.

“아 근데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 부렸다지 뭡니까?”

-박씨 아재 구라 ㄴㄴ

-S급 이용완에 A급만 마흔이 넘는 불새가 주홍 게이트를 클리징 못했다고?

-개소리 ㄴㄴ 이용완이 직접 안 나서도 무난하게 클 가능

시청자들의 반응에 박씨는 억울한 기분이었다. 밭 주인인 김씨가 마소로 오염된 밭을 보며 꺼이꺼이 우는 꼴을 직접 보았던 탓이다.

박씨는 헌터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그 유명한 10대 길드이며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럼에도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고 김씨의 밭은 지금도 마소에 오염되고 있었다. 30년 전 대격변 이후 농사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참극인 것이다.

“아 진짜라니깐요. 여기 협회 직원들도 오고 난리도 아니에요. 마소에 오염되서 벼가 다 썩어버렸다니깐요.”

박씨는 카메라 영상을 줌인하면서 오염된 땅과 불새 길드와 대치 중인 협회 직원들을 보여줬다.

비단 썩어버린 벼뿐 아니라 주변에 널부러진 해골 잔해는 스켈레톤의 잔해임을 짐작케 했고.

-……진짜? 호남에 마소 퍼졌으면 올해 농사 조진건데, 뉴스 안 나옴?

-좆된 거 아님? 안 그래도 요즘 식량 자급률 떨어져서 농사 보조금 늘어났잖아.

-보조금이 늘면 뭐하나. 농사할 땅이 없는데.

-답은 스마트팜이다. 두정미래식품 지금 사야 함

-주식충 OUT!

그뒤로도 박씨는 게이트 주변 영상을 찍었다.

통제선이 그어져 있었지만, 작물들 틈 속에서 살금살금 나다니는 박씨는 운 좋게 발견되지 않았고 시청자들의 반응은 더욱 심각해졌다.

“오… 외국인 있다.”

그때, 그의 카메라에 금발의 사내가 들어왔다. 시청자들도 의문을 올렸고.

-웬 외국인이지? 불새 길드 쪽 사람인가?

-그런 것 치곤 장비가 부실한데. 장비도 안 입었잖아.

-그럼 협회 직원인가?

-협회 직원 중에 유럽인 없음. 근데 되게 잘생겼다.

-저기 아지매들 웰케 많냐? 다들 뭐 하나씩 들고 있는데? 박씨 줌인 좀 해봐.

박씨는 레온이 쌓은 제단과 볏짚인형들을 보았다. 새벽녘이라 선명하진 않지만, 마치 제단 같은 느낌의 조형물이다.

‘굿판이라도 하나?’

마소로 오염된 땅에서 굿판을 벌이는 일이야 흔한 풍경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오염된 땅이 정화되기를 비는 것이지만, 결국 오염된 땅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제때 마탑제 시약을 주입하는 것 말곤 없다.

저 금발 남자는 마탑에서 파견된 마법사라도 되는 걸까? 아니, 아무리 봐도 마법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박씨는 이상하게 저 남자가 신경이 쓰였다.

비단 그의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비록 저 멀리서 원거리로 촬영 중임에도 살아있는 성자인 레온이 가진 광채는 고결과 고귀한 기품을 은은하게 흘렸으니.

TV나 인터넷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상류층이나 배우 등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짜’를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현대의 귀족이 고위 각성자와 기업인들이라지만, 그들의 기품과 혈통은 진짜를 흉내낼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농사꾼 박씨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 * * *

레온은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첫 번째 기사다.

신성기사왕국 라이온하트의 역대 사자심왕들은 아리아나의 첫번째로 섬기는 그녀의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신들과의 조화와 섬김을 미덕으로 삼는 라이온하트 왕국에서 몇몇 신들은 필수적인 신앙이어서 자연스레 사자심왕은 그들의 챔피언도 겸하기도 했다.

「라이온하트. 내 아이야.」

“대지모신께 인사드립니다, 생명과 풍요의 신성, 데메라시여.”

레온은 한쪽 무릎을 꿇는 예의를 갖추며 볏 인형에게 존경과 경외를 바쳤다.

만신전에서도 데메라의 위상은 드높다. 모든 생명을 품으시며 풍요를 관장하시는 신성이기에.

모두가 볏짚 인형에게서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볏짚 인형에 깃든 신성 데메라는 말했다.

「이 새로운 땅도 악의 침공을 받고 있구나. 땅이 오염되었어.」

“예, 악종들이 이땅에 존재하나이다. 헌데도 신성이 부재하고 천박하고 천한 돼지들이 여신의 눈을 더럽힐까 두렵습니다.”

레온이 지구에 귀환하고서 느낀 첫 감정은 ‘실망’이었다.

각성자니 생존자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자신이 살아왔던 희미한 20년의 기억이야 추억 정도로 남았다.

하지만 귀환하자마자 본 것이 10대 길드의 횡포와 무능한 정부이니 한심스러우면서도 안타깝기도 했다.

「무지와 탐욕이 마냥 죄라고는 할 수 없지. 필멸자들의 삶이란 본디 그러한 것이니까. 앞으로 어쩔 생각이니?」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그렇다 하여 적법한 지배를 몰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이 땅은 투표라는 한심한 수단으로 지도자를 선출하나 그 또한 이 땅의 정통성이며 적법한 일입니다.”

그가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고작 칼잡이들 하나 다루지 못해 휘둘려 다니는 무능은 기가 차지만, 지배의 권리는 신성하기에 그는 적법한 절차를 따를 생각이다.

“이 땅 위에 권리와 의무가 평행할 수 있음을 세우겠습니다. 무지몽매한 것들을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이끌 셈입니다.”

지구.

힘과 돈이 정의가 된, 자신의 고향.

무엇보다 신성이 부재한 땅.

레온은 이 땅위에 새로운 만신전을 세울 셈이다.

지금은 힘을 잃고 스러져간 만신전의 신성들을 회복시키고 새로운 성배 기사단을 부활시킬 것이다.

그를 위해선 신앙이 필요했다. 수많은 신도들과 사제, 만신전에 경배할 진실한 신앙이.

「아가, 이 어미에게 부탁할 것이 있지 않니?」

데메라는 레온의 의도를 읽고 미소 지었다. 아리아나의 첫 번째 기사. 그는 이제 빛과 정의만을 대변하는 챔피언이 아니다.

만신전의 신들이 레온이라는 성배 수호자를 그릇으로 뽑고 자신들의 모든 신성을 그의 심장 속 만신전에 깃들기로 결정했을 때.

신들은 레온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그가 마땅히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고 최후까지 생존하리라 믿었다.

그는 200년에 걸쳐 훌륭하게 그것을 해내었고, 새로운 땅에서 기회를 찾았다.

따라서.

만신전의 신성들은 그가 바라는 무엇이든 이루어주리라.

끝내 명예와 신성을 지켜낸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사를 신뢰하리라.

“예, 데메라시여. 이 땅 위의 자유민들이 마소라는 삿된 기운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비록 여의치 않으시겠지만, 이 땅을 치유하고 정화해주소서.”

볏짚 인형의 데메라는 손끝에 신성을 맺었다. 수많은 신도들의 신앙을 받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미약한 축복.

하지만 이 신앙이 부재한 땅에서는 더없이 큰 기적으로 보이겠지.

「그대는 나의 신관장. 우리의 챔피언. 이 세계의 대지는 이 어미의 육신이 아니다. 나의 신성을 퍼뜨리고 이 메마른 땅을 나의 육신으로 대체하여라. 그리하면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너의 아군이 되리라.」

땅에 신성이 깃든다.

살아있는 성자, 반신, 사자심왕… 나아가 생명과 풍요의 신관장이 자리한 땅에 생명의 어머니가 축복하였다.

땅은 곧 생명이다.

생명의 근원이며 풍요로운 세상의 시작이다.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지상에 신성이 깃들자 경탄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마소로 오염된 땅이, 썩어 문들어가던 벼들이 소멸한다.

삿된 것을 용서치 않는 신성이 새로운 생명을 싹텄다.

그와 동시에.

땅에 뿌리 박은 모든 생명들이 가진 마땅한 의무가 성자의 손에 의해 일궈지니, 오염된 땅도, 썩은 벼도 그들의 생장을 멈출 수는 없었다.

레온은 이 모든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모든 이들에게 고했다.

“보고 깨닫거라!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우민들이여! 이것이 신성과 함께하는 세상이다!”

황금처럼 치솟은 벼의 행렬. 오염된 땅을 모조리 정화하고 생장한 생명의 기적 앞에 모두가 떨리는 손과 입을 부여잡는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는 생명 있는 자들의 마땅한 의무이니. 이 풍요로운 땅이야말로 영세까지 이를 언약의 증거이니라.”

* * * *

한하리와 김진수 과장을 비롯한 헌터협회 직원들은 눈앞에서 펼쳐진 기적 앞에 어안이 벙벙했다.

마소가 어찌 땅을 오염시키는가?

오염된 땅에서는 어찌 생명이 자라나지 못하는가?

모든 의문을 통틀어 귀결된 결론은 하나였다.

인간의 상식이나 기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악질적인 의지가 세상을 황폐화하기 위해 작동한다고.

오염된 땅에서는 작물이 자라지 못한다. 정화 작업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귀중한 헌터들의 마력을 대폭 투입해 상쇄하는 것에 가깝다.

마소에 오염된 땅에서는 작물을 키울 수 없다.

그것이 현대의 상식이었고, 현대의 인류가 프린트된 배양식량이나 팜 농장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유였다.

던전 브레이크로 차츰차츰 오염된 땅이 늘어날수록 인류의 식량 자급률은 바닥을 칠 테니까.

“이, 이게 무슨…….”

하리와 진수는 눈앞에서 보이는 현상에 눈을 의심했다.

땅을 가득 메운 황금빛의 작물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풍요로운 지상의 황금밭은 방금까지 오염되었다는 사실이 거짓인 것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과장님… 이, 이거 진짜 벼예요.”

“나, 나도 보고 있어.”

순식간에 자라버린 벼. 그것을 보고 경악한 건 헌터 협회뿐만이 아니다.

땅을 오염시켜 헌터 협회를 겁박하려던 불새길드 길드장 이용완도 마찬가지였다.

“하! 마법으로 급속성장시킨 작물은 독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요!”

이용완의 지적은 맞았다.

대격변 이후로 인류는 마력으로 작물을 성장시키는 방향에 대해 연구해왔다.

하지만 마력이 깃든 작물은 평범한 인간이 먹을 수 없었고, 오히려 독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런 무지몽매한 것을 보았나. 신성께서 직접 축복하신 작물이시다. 그것을 어찌 독이라 판단하느냐.”

“그깟 볏짚 인형이──”

“무지함을 용서하는 건 한번뿐이다. 네 가벼운 혓바닥으로 여신을 더럽히지 마라.”

레온의 말은 힘이 있고 복종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보다 생존자에 대한 암묵적인 경계심이 그를 헛되이 행동하지 못하게 했다.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호남 평야는 인질이었다. 협회의 짐작대로 불새 길드는 일부러 던전 브레이크를 유도했다.

한국 10대 길드는 지금도 수없이 많은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더 많은 걸 원했고 그 핵심이 던전 부산물에 대한 면제 혜택이다.

지금은 일년에 1조원 규모의 면제를 원하지만, 앞으로 더더욱 규모를 늘릴 것이며 끝내 완전한 면제까지 요구할 것이다.

결국 던전 브레이크를 핑계로 정부를 겁박하면 국토와 국민 피해라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테니.

하지만 그것이 웬 생존자 한놈 때문에 어그러졌다. 이용완은 뭐라도 트집을 잡고 싶었다.

“감정을 해보죠. 저 쌀을 먹게 될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검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의 의도는 둘째치고 주장은 사실이긴 했다.

마법으로 자란 작물은 평범한 인간은 먹을 수 없다. 그렇기에 검증을 당연히 필요했다.

“저희 길드의 감정사를 빌려드리죠. 궁금하네요. 1초만에 자란 작물이 과연 어떤 물건일지.”

이용완은 특유의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결과를 기다렸다.

저 뻔뻔한 낯짝의 가면을 벗길 순간을 기대하며.

작물에서 마력의 마 자라도 나오는 순간, 사기꾼이라 매도할 생각이다.

“가, 감정결과 나왔습니다!”

“빠, 빠르군요.”

“저희 길드의 감정사는 우수하니까요.”

이용완이 감정사의 입에서 이 쌀은 먹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하던 와중, 식은땀을 흘리던 감정사의 입이 겨우 떨어졌다.

“감정결과 등급은 레어!”

“응?”

“이, 이 벼들 하나하나가 전부 레어 등급입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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