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62

61. 소꿉친구 – 두 사람

저녁 만찬을 마치고 하리에 가이단과 팔라스 테르탄은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테라스로 나왔다.

두 사람은 일주일 만에 급속도로 친해져서, 이제는 사용인들을 물리고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었다.

말없이 노을을 감상하던 팔라스는 겉옷을 벗었다. 테라스에 놓인 돌의자를 덮고 하리에를 자리에 앉혔다. 빛나는 노을 아래에서 웃음을 교환하던 두 사람. 침묵을 깨뜨린 것은 하리에였다.

“기사님들을 많이 데려오셨더군요. 어째선가요? 저를 납치라도 하실 생각이신가요?”

하리에는 자칫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질문을 이제야 농담을 섞어 꺼냈다. 그녀는 고작 두 명의 호위기사만을 데려온 반면 팔라스 테르탄은 열다섯 명의 기사를 대동했다.

타국으로 넘어왔으니 호위가 많아지는 건 당연했으나, 그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팔라스는 빙긋 웃으며 답했다.

“어찌 감히 숙녀를 납치하겠습니까. 제 할아버지께서 절 너무 아껴주신 덕이지요.”

기사를 이렇게 많이 데리고 온 연유는 따로 있었지만, 팔라스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리에도 더 묻지 않고 본래 하려던 말을 이었다.

“어머… 왠지 아쉽네요. 전 콘라드 왕국을 이제야 구경하게 되는 줄 알았답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며 촉촉한 말투로 말했다.

그 말을 알아들은 팔라스는 드디어 자신의 각오를 뱉을 순간이 왔음을 알았다. 그는 끝내 할아버지의 명을 어길 마음을 먹었다.

‘어기는 건 아니야. 목걸이를 주고 돌아오라 하셨지 데려오지 말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팔라스는 하리에 가이단을 공작가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가서 할아버지께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청할 것이었다.

주제넘은 짓임이 분명하지만, 이 여자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팔라스 테르탄은 침을 삼켜 목을 다듬으며 안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이걸 받아주시겠어요?”

“어머나! 이게 뭔가요? 정말 예쁘네요.”

하리에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목걸이를 건네줄 것을 총관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귀족 간에 선물을 주고받을 때는 불순한 마법이 걸리지 않았는지 마법사에게 검증을 받아야만 했다.

팔라스는 이곳에 도착한 직후 총관에게 마법사를 불러 달라 청했고, 검증을 받았다.

당연하게도 목걸이에는 어떤 이상도 없었다.

‘유혹마법 같은 것이 걸려있어도 상관없는데.’

이 남자라면…

하리에는 받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팔라스는 얼굴을 붉히며 그녀의 고운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은과 구리가 섞여 은은한 핑크빛을 띠는 금목걸이 끝에는 검붉은 보석이 오므라져 꽃봉오리처럼 달려 있었다.

그 보석은 지상을 덮은 노을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색을 온전히 발했다.

목걸이를 걸어주느라 바싹 가깝게 다가선 팔라스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전… 당신이 좋습니다.”

그는 진지했고, 하리에는 사정없이 붉어지는 팔라스의 목덜미를 보며 벅찬 감동을 느꼈다.

싸늘한 귀족사회에서 이토록 풋풋한 인연을 만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는가. 아마도 이 순간은 온 대륙의 영애들이 꿈꾸는 장면일 것이었다.

그녀의 가슴이 심하게 두방망이질 치더니, 기어이 하리에가 쓴 가면이 깨져버렸다. 그녀는 행복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흔들림 없이 마주한 팔라스의 흑갈색 눈동자에 자신의 초록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이제는 추잡한 왕자들을 피하기 위한 만남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

“저, 저도… 당신이 좋습니다.”

수줍게 고백하며 하리에와 팔라스의 입술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팔라스가 그녀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의아해하는 하리에에게 팔라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할아버지께서 우리의 결혼을 거절하려 하신다. 어떻게든 허락을 받아낼 테니 콘라드 왕국으로 함께 가서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부탁이었다.

끝까지 사랑스러운 사람.

팔라스는 사실을 숨기지도, 혼자 끙끙 앓으며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도움을 청했다.

하리에는 그의 옷깃을 잡아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신께서 점해주신 짝의 귓가에 들뜨고 달뜬, 숭고한 기사의 맹세와도 같은 언약을 흘렸다.

“제게 도움을 청해주셔서 고마워요. 어디든 따라가겠어요. 그 앞이 지옥이라 해도 좋아요. 저희는 이제 연인인걸요. 누구도 우리를 가르지 못할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진한 키스를 나눈 두 귀족은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두 연인은 노을이 저물도록 테라스를 벗어나지 않았다.

* * *

며칠 뒤,

“뭐라고? 레나! 그게 무슨 말이야!”

레오는 레나의 난데없는 말에 놀라 외쳤다.

“왜? 잘 됐잖아?”

하리에 가이단은 콘라드 왕국의 수도 루티나로 떠나겠다고 밝혔다.

총관은 계획에 없던 영애의 장거리 여행에 놀라 만류했으나 그녀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레나는 하리에의 요청을 받았다. 자신을 돌봐줄 시녀가 부족하니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요청이었다.

처음에는 사제가 되기 위해 루테티아로 가야 한다며 거절했으나, 십자교회에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하리에의 말에 승낙했다.

레나가 말했다.

“임금도 넉넉하게 챙겨주시고 추천서도 써주신다고 했어. 길어야 반년이면 돌아올 거라고도 하셨고. 어차피 루테티아에 가서 교육비를 벌어야 했는데 훨씬 잘 된 것 아니야?”

“하… 하지만!”

망했다!

레나가 추천서를 받아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추천서가 있으면 그녀는 루테티아에 도착하는 즉시 교육비를 면제받으며 십자교회 교육 시설에 들어가 버릴 터였다.

그러면 레나가 수도에서 부족한 돈을 버는 동안 왕자를 찾아 인연을 이어주려던 당초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

레나는 난처해하는 레오를 흘겨보며 말했다.

“안 기뻐?”

“…기쁘지. 왜 안 기쁘겠어. 정말 잘 됐다.”

레오는 그녀의 의심스러운 눈총에 억지로 웃으며 답했다.

“잠깐만 레나야. 그런데 그 전에 부모님께 돈을 가져다드려야지. 몇 달 뒤면 겨울인데…”

잔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그 꼼수는 레나가 냉큼 내뱉은 말에 쉽게 막혔다.

“벌써 보냈어.”

“엉? 언제?”

“어제 영애께 부탁해서 내가 받을 품삯을 데모스 마을로 보내 달라고 했어.”

“……”

틀렸다. 레나가 자기 멋대로 움직여버렸다.

레오가 허탈해져서 넋을 놓자 레나는 답답하다는 듯이 그를 졸랐다.

“레오. 너 뭔가 숨기는 게 있지? 말 좀 해줘. 어쩐지 내가 아는 레오가 아닌 것 같아서 무서워.”

그녀의 똘망똘망한 눈이 레오에게 닿았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레나는 입을 삐죽이며

“어쨌든 난 영애님을 따라갈 거야. 너도 따라갈 거면 알려줘.”

라고 말하곤 가버렸다.

이게 이렇게 될 수가 있나?

레오는 숙소로 돌아와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머리를 감싸 쥐고 성질을 부렸다.

뭣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

{추적술}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신성왕국으로 가려 했는데, 국경 통행증 때문에 영주성에서 붙들리고, 레나는 부모님 때문에 돈을 벌려 하고, 그걸 기다려줬더니… 스스로 십자교회에 들어갈 방법을 찾아버렸다.

‘뭐가 이렇게 꼬이냐.’

억지로 레나를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부터 그녀의 태도가 묘하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눈으로 압박해왔다.

이런 상태에서 억지스러운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초기 자금}과 아버지께 받은 돈을 모두 보여줬어야 했나? 레나 부모님께 돈을 드리게?’

하지만 그랬다가 덜컥 레나의 부모님께서 돈을 안 받으시면 수도교회 교육비가 해결돼버릴 위험이 있었다.

‘레나는 어쩌다가 영애랑 가까워진 거지? 귀족들은 평민들을 신경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레오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소꿉친구 시나리오는 다른 시나리오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눈에 띄는 위기도 없는데, 은근히 뭐가 많이 막혀있었다.

가장 가까운 수도, 네비스에 있는 왕자들은 다 쓰레기라 외국으로 나가야만 했는데, 레나를 데리고 국경을 넘으려면 합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영주성에 들렀더니 이 꼴이 났다.

그렇다고 귀족들의 만남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떠날 수도 없었다.

데모스 마을에서 머무르면 수도교회로 떠나는 {이벤트}가 발생해서 양자택일의 순간에 직면했다.

보내면 레나가 사제가 되어버리고, 안 보내면 레나와 결혼해야 한다.

또, 이런 와중에 레나의 눈치가 장난이 아니어서 그녀를 억지로 끌고 다닐 수도 없으니… 소꿉친구 시나리오도 마냥 편안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잠시 다 망했다는 생각을 하던 레오는 거칠어진 숨을 다스리며 진정을 되찾았다.

‘…그래. 콘라드 왕국에 가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야.’

이 시나리오도 문제지만, 거지남매 시나리오도 빡빡했다.

오르빌에는 남매의 혈통을 알고 있는 페테르 백작이 있어서 벨리타 왕국에서 동생을 공주로 만들기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그 시나리오에서는 {혈통}을 되찾기 위해 콘라드 왕국에 가야 하는데, 이번 시나리오에서 미리 정보를 모아두면 틀림없이 도움이 될 터였다.

더군다나 마침 이곳을 찾아온 귀족이 바로 팔라스 ‘테르탄’이다. 그리고 거지 남매를 쫓아낸 왕자의 가장 큰 조력자가 바로 테르탄 공작이었다.

‘하인으로 하리에 가이단을 따라 공작가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알아낼 수 있는 게 많다!’

그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젠 레나가 수도교회에 들어가는 걸 막기 힘들다. 그러니 이번 시나리오는 그녀가 하자는 데로 콘라드 왕국으로 따라가서 최대한 정보를 모아야겠다.

그 이후에는 수도교회에 들어간 레나가 사제가 되면서 엔딩이 뜨기 전까지 신성왕국의 왕자를 찾는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사제가 되기까지는 삼 년 정도가 걸릴 것 같다고 했으니… 남는 시간에 뭘 할지는 그때 루테티아에서 다시 생각하자.

레오는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며 계획을 다시 세웠다.

그가 필기구도 없이 손가락을 꼽으며 고민하는 사이, 바닥에 몸을 눕힌 하인들의 코골이 소리는 커져만 갔다.

* * *

단풍이 울긋불긋한 완연한 가을, 도시 보스포에서는 여섯 대의 마차가 행렬을 이루어 동쪽을 향해 출발했다.

높으신 두 귀족의 행차인지라 마차를 둘러싼 17명의 기사와 서른에 달하는 병사들의 경비가 삼엄했다.

팔라스 테르탄과 하리에 가이단을 모시는 시녀들은 한 마차를 차지했고, 레나를 핑계로 하인으로서 동행하는 데 성공한 레오는 영애의 마차를 모는 마부 옆에 앉았다.

국경 관문 통과는 손쉬웠다.

오른 왕국의 관문에서는 가이단 가문의 기사가, 콘라드 왕국의 관문에서는 테르탄 가문의 기사가 증표를 내밀자 검문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종종 행렬이 멈출 때마다 팔라스와 하리에는 각자의 마차에서 내려 서로를 찾았다.

아직 약혼한 사이가 아니어서 마차를 함께 타지는 못하지만, 자투리 시간에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 그들은 마차가 출발할 때마다 아쉬워했다.

레오도 마차가 설 때마다 레나를 찾았다. 하지만 레나는 뾰로통해져서 쌀쌀맞게 굴었다.

“뭘 숨기고 있는지 안 알려주면 나도 말하지 않을 거야.”

“레나. 나 숨긴 것 없어. 진짜야.”

“흥.”

이걸 말해버릴 수도 없고 진짜. 설명할 방법이 없는데!

레오는 답답했으나 이 투정이 언젠간 풀리리라 믿었다. 레나는 어쨌든 그의 오랜 소꿉친구니까.

이 주일도 걸리지 않아서 마차들은 테르탄 가문이 변경백으로서 소유한 서부 영지에 들어섰다.

그들은 콘라드 왕국의 서부 무역 중심도시인 ‘라도가’까지 하루를 남기고 큰 강을 만났다. 콘라드 왕국을 부유하게 만들어 준 3개의 강 중 하나인 ‘이로타시 강’이었다.

이로타시 강의 강폭이 좁아지는 지점에는 먼 옛날 아카이아 제국이 건설한 돌다리가 있었다.

행렬은 그 다리로 올라섰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한데 다리 중간을 막아서는 7명의 병사가 있었다.

미리 앞서나가 테르탄 가문의 기사가 증표를 보였음에도 병사들은 어쩐 일인지 길을 비키지 않았고, 행렬은 기어이 다리 위에서 멈춰 서고야 말았다.

팔라스 테르탄을 호위하는 기사 대장인 ‘타디안 로페로’가 불쾌함을 표시하며 말을 몰아 앞으로 나섰다.

“이게 무슨 짓이냐! 뒤따르는 마차에는 테르탄 가문의 공자님께서 계신다. 썩 길을 트지 못할… 앗!”

하지만 그의 얼굴은 한 병사가 투구를 벗자 싸하게 가라앉았다.

그 병사는 눈을 광기로 번뜩이며 씹듯이 말했다.

“오.랜.만.이로군. 타디안.”

그 말을 기점으로 7명의 병사가 검을 뽑아 들었다. 병사들이 뽑아 든 검은 양손검, 그들은 병사가 아니었다.

7명 전원이 기사였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