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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2

빌어먹을 아이돌 64화

컨셉 자체는 꽤 그럴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저런 의상을 입으면 난잡해 보이지 않을까?

‘아닌가? 색감이 똑같으면 통일감을 줄 수 있으려나?’

강석우 피디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때쯤 테이크씬이 셀프 의상 시안을 의상팀에 전달했다.

‘영화 촬영 중’이라는 팀 컨셉에 잘 어울리는 의상이었다.

“잘 짰네? 옷도 금방 뽑을 수 있겠다. 근데 여기 포인트들은 투머치라서 빼든지 하나로 합치든지 하는 게 어떨까?”

“알겠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의상팀의 조언을 수용한 테이크씬이 시안을 수정하고 있을 때쯤, 세달백일도 셀프 의상 시안을 완성했다.

세달백일의 시안을 유심히 보던 수석 디자이너가 피식 웃었다.

“아이디어 재밌네. 근데 현실적으로 색감을 완전히 똑같이 가져가긴 힘들걸?”

“그런가요?”

“응. 영국식 클래식 정장과 한복이 어떻게 같은 채도와 명도를 줄 수 있겠어. 청바지랑 교복도 완전히 같은 질감의 블루로 맞추기 힘들 텐데.”

오늘 촬영 순서는 잡지에 게재될 버전을 먼저 찍고, 그사이에 각 팀이 제출한 셀프 의상을 공수해 올 예정이었다.

사실 테이크씬이나 세달백일이 의상의 구체적인 디자인까지 정한 건 아니다.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각 팀이 아이디어 레벨의 시안을 제출하면, 의상 팀이 레퍼런스 삼아 적절한 옷을 픽업해 온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러니 세달백일처럼 색감의 통일성을 요구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전혀 다른 디자인이지만 동일한 색감을 지닌 옷을 몇 시간 만에 구하긴 쉽지 않았다.

그때 한시온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촬영 후 색감을 보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보정?”

“네. 의상을 제작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여건이 아니니 그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흠……. 어려운 건 아니지만 사전에 이야기가 된 게 아니라서.”

수석 디자이너가 강석우 피디를 힐끔 쳐다보자, 강석우 피디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한시온의 요망한 세 치 혀가 벌써 수석 디자이너를 감아 버렸다.

얼핏 들으면 평범한 대화처럼 들리지만, 한시온은 현 상황의 책임을 전부 제작진에게 떠넘겨 버렸다.

의상을 제작할 수 있다면.

그럴 여건이 아니니.

이 방법뿐이다.

자연스럽게 배치된 문장들이 책임은 전부 너희한테 있지만, 내가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맥락을 만들어 낸다.

거기에 휘말린 디자이너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도 되나?’라는 포인트에만 집중했다.

의상 시안 자체의 가부를 논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사실 이런 건 직급 좀 있는 직장인들이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스킬이긴 하다.

엄청나게 특별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은 곧, 스무 살짜리 가수 지망생이 쓰기에는 어렵다는 소리기도 하다.

‘참 희한한 놈이야.’

강석우 피디는 그런 생각을 하며 디자이너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동시에 테이크씬 쪽을 쳐다봤다.

세달백일에만 편의를 제공하지 말고, 테이크씬도 색감을 보정해 주라는 뜻으로.

수석 디자이너는 찰떡같이 알아들은 듯했다.

“그래, 그렇게 해 보자. 그러면 컨셉 시안에 어울리는 디자인만 찾으면 되겠네?”

“가능할까요?”

“컨셉이 명확해서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원하는 바를 쟁취하자 다시 병아리 행세를 하는 한시온을 보며 강석우 피디가 피식 웃었다.

*  *  *

셀프 의상이 준비되는 사이, 잡지에 게재될 화보 촬영이 먼저 시작되었다.

오늘 촬영은 A스튜디오에서 테이크씬이, B스튜디오에서 세달백일이 동시에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자, 단체 컷부터 찍을게요!”

재미있게도 두 팀의 에이스와 구멍은 명확했다.

테이크씬의 에이스는 아이레벨이었다.

테이크씬의 예명은 전부 촬영장 용어인데, 아이레벨은 피사체를 눈높이에서 바라본 앵글을 뜻했다.

아이레벨 앵글은 배우의 연기력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명배우의 아이레벨 앵글은 안정적이고 편안한 느낌을 주지만, 3류 배우의 아이레벨 앵글은 심심한 느낌 밖에 못준다.

이런 맥락에서 테이크씬의 아이레벨은 명배우의 그것이었다.

다른 멤버들과 똑같은 구도로 똑같은 컷을 받아도 빛이 났으니까.

“나이스! 좀 더 집요하게 노려보면서!”

포토그래퍼도 찍을 맛이 나는지 이런저런 제스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테이크씬의 에이스가 아이레벨이었다면, 구멍은 페이드였다.

“페이드 씨! 눈에 힘 줘요! 아니, 빡 쳐다보라고!”

자신감이 없어 보이고, 잡생각이 많아 보였으니까.

테이크씬 멤버들은 이런 페이드의 모습에 낯섦을 느끼고 있었다.

페이드가 어떤 놈이던가.

가끔은 당황스러울 만큼 직설적이고, 가끔은 불쾌할 만큼 대범하다.

사실 페이드는 데뷔조에서 한 번 탈락했다가 결원이 발생해서 복귀한 멤버였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탈락했었다’라는 기억 때문에 의기소침할 확률이 높지만, 페이드는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무너질 뻔한 팀의 구원자라도 되는 듯 자신감 있게 행동했으니까.

물론 페이드의 이런 태도를 좋아하는 팀원도 있었고, 아니꼬워하는 팀원도 있었다.

하지만 페이드가 자신감으로 꽉 차 있는 사람이라는 건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 페이드가 기가 죽어 있다고?

‘무슨 일이 있었나?’

‘설마 버스에서 한시온이랑?’

아무리 생각해 봐도 버스 때 말고는 별다른 게 없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페이드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으니까.

멤버들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한시온은 페이드의 옆자리에 앉은 것 말고는 별다른 압박을 가하지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페이드에게 굴욕적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한시온이 시비를 걸었으면 페이드는 분노했을지언정 좌절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한시온은 시비를 걸지도 않았고, 어깃장을 놓지도 않았다.

그저 페이드의 옆에 앉아서 가만히 스마트폰 어플로 악보를 그릴 뿐이었다.

진심으로 페이드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페이드는 계속 한시온이 신경 쓰였다.

한시온의 생각처럼 페이드는 암묵적인 상하 관계나 보이지 않는 영향력에 민감한 타입이니까.

그 어떤 부분으로 비교해 봐도 한시온에게 비빌 수 없다는 게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회가 됐다.

한시온에게 시비를 걸었던 게.

‘……씨발!’

후회를 했다는 사실 자체에 자괴감이 들었다.

이게 페이드의 멘탈을 박살 낸 원인이었다.

“페이드 씨!”

“……죄송합니다.”

“탈의실 가서 잠깐 머리 좀 식히고 와요. 지금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 게 보이니까.”

이렇게 페이드가 테이크씬에서 구멍 취급을 받고 있다면, 세달백일에서 구멍 취급을 받고 있는 건 온새미로였다.

“조금 더 환하게 웃을게요. 아니! 진심으로 좀 웃어 봐요!”

다만 페이드와는 결이 달랐다.

자신감이 없다기보다는 어색해 보였다.

무대 위에서는 넘치는 야망과 의욕 때문에 ‘날 증명하겠다’는 감정까지 가졌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아니었다.

뭘 해도 어색하다.

카메라를 응시해도, 환하게 웃어도, 개구쟁이처럼 뛰어 놀아도.

그에 반해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는 건 한시온이었다.

사실 최재성도 다른 멤버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능숙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한시온 때문에 빛이 바랬다.

‘와, 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천직이네.’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모델로도 성공했겠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포토그래퍼들이 이렇게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한시온 씨, 혹시 아직 성장판 열려 있어요?”

심지어 진짜 아쉬워져서 이런 질문을 던진 이도 있었다.

“글쎄요.”

“키가 몇이에요?”

“178입니다.”

“좀 더 클 수 없어요? 한 10cm 정도만?”

“2~3cm 정도 크면 끝일 것 같은데요.”

사실 한시온의 활약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껏 그가 찍어 본 화보만 수천 장일 거고, 같이 작업해본 포토그래퍼만 수백 명일 거다.

심지어 한국이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들과 작업을 해 왔다.

능숙해지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주변인은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시온은 신이 실수로 만든 인간 같다.

말도 안 되는 작곡 능력과 가창력을 줬으면 다른 부분은 좀 부족해야 균형이 맞을 건데…….

도무지 부족한 점을 찾을 수가 없다.

춤도 잘 추고, 외모도 훌륭하고, 말도 잘하고, 카메라 앞에서 끼도 넘친다.

심지어 괴팍한 천재 스타일도 아니라서 팀원들과도 원만하게 지낼 수 있다.

플라워스 블룸의 작곡가가 크리스 에드워드인 것처럼 운까지 따라 주고.

게다가 강석우 피디는 한시온의 사회적 지능이 얼마나 높은지도 알고 있었다.

‘진짜 완벽하네.’

가끔씩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 기복을 겪는 것만 제외하면 무결점이라는 칭호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다.

이런 사람이다 보니, 매번 달라지는 상황 속에서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주인공은 여지없이 한시온이었다.

“개인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단체 촬영이 끝나고 한시온의 개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카메라 앞의 한시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온새미로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토그래퍼는 두 번째로 예정되어 있던 온새미로의 개인 촬영 순서를 제일 뒤로 미뤘다.

멤버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우라는 뜻이다.

그래서 온새미로가 자리를 떠나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로 가지.’

온새미로는 제법 넓은 스튜디오를 불청객처럼 살펴보다가 탈의실로 향했다.

테이크씬과 세달백일만 사용하는 공간이니, 아무도 없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하지만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테이크씬의 페이드였다.

*  *  *

내 개인 촬영은 예상보다 딜레이가 되어서 끝이 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못해서 딜레이된 건 아니다.

너무 잘해 버리니까 포토그래퍼가 작업물의 목표점을 확 올려 버린 탓이었다.

그래도 뭐, 어렵진 않았다.

내가 마신 할리우드 방송국 물이 몇만 리터는 될 텐데.

다만 한 가지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사람들이 내게 잘생겼다고 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내 외모가 괜찮은 편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미국에서 특별한 취급을 평가받는 건 불가능했다.

‘톱스타들 사이에서 그냥 저냥 괜찮은 수준? 근데 넌 분위기가 독특해서 상관없어. 외모도 그 독특함을 강조하는 느낌이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메이크업에 만 달러 가까이를 지불하는 톱 티어 아티스트가 내게 한 말이었으니까.

빙빙 돌려 말하긴 했지만, 아마 무난하게 생겼다는 뜻이었을 거다.

인종의 낯섦을 뛰어넘으려면 이이온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수십 회차 동안 저런 평가만 받다가 난데없이 극찬을 받으니까 좀 민망했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며 탈의실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온새미로가 탈의실 쪽으로 향하는 걸 봤는데, 그 뒤로 계속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혹시 포토그래퍼한테 지적받고 탈의실에 숨었다가 본인도 모르게 잠든 건 아니겠지?

자면 붓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탈의실 문을 노크하려는데,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화 내용이 또렷하게 들리진 않았다.

하지만 방음을 위해 만들어진 문이 아닌지라, 귀를 기울이니 얼추 내용을 짐작할 순 있었다.

그리곤 어이가 없어졌다.

페이드가 원색적인 단어로 온새미로를 욕하고 있었으니까.


           


Damn Idol

Damn Idol

빌어먹을 아이돌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a harrowing car accident that defies the odds of survival, Han Si-On finds himself once again at the crossroads of fate, quite literally. Miraculously walking away with his life, he faces the daunting task of navigating a life he’s all too familiar with—due to a cryptic deal that traps him in a cycle of regressions. [Mission failed.] [You will regress.] His mission? A seemingly impossible feat of selling 200 million albums, a goal dictated by the devil himself. With each regression, Han Si-On returns to the age of 19, burdened with the knowledge and memories of countless lives lived, all aimed at achieving a singular, elusive go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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