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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3

62. 소꿉친구 – 보석

마차 두 대가 어렵게 스쳐 지나갈 만한 너비의 돌다리. 그 위에서 위풍당당한 테르탄 가문의 기사와, 투구를 벗어 던지고 제멋대로 자란 긴 흑발을 날리는 초로의 기사가 마주했다.

테르탄 가문의 호위기사이자 기사 대장인 타디안 로페로가 검을 뽑으며 외쳤다.

“바르트! 네놈이 올 줄 알고 있었다!”

그는 검을 높이 들어 마차를 호위하는 기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바르트라 불린 기사도 자신과 함께하는 기사들에게 말했다.

“공작가의 하수인들을 모조리 죽여라.”

으르렁거리는 거친 목소리에 다른 여섯 명의 기사들이 변장을 위해 뒤집어썼던 투구를 벗어 던졌다.

불명예스럽게도 투구와 갑옷을 허락받지 못한 기사들, 그들은 하나같이 광기로 눈알을 채우고 달려나갔다.

타디안은 자신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그 여섯 명을 막아서지 않았다. 저쪽에는 가이단 가문의 기사까지 포함해 기사만 열여섯 명이 있었다.

팔라스 테르탄을 호위하는 기사가 많았던 이유는 이놈들 때문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공작령을 습격해 테러를 일으키는 놈들이다.

낙승을 점치며 타디안은 자신의 두꺼운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상대는 형편없이 날이 상한 검을 뒤로 끌었다.

검날이 이곳저곳 뭉개지고 닳아서 도저히 베기가 되지 않을 것 같은 검. 검신이 긴 그 검은 오직 끄트머리만 예리하게 날이 서 있었다.

타디안은 바르트의 볼품없는 검과 어처구니없는 자세를 비웃었다.

양손검을 오른손으로만 붙들고 바닥에 끄는 자세… 독특하게도 상대는 왼손을 들어 견제하듯 흔들었다.

“네놈의 꼴 만큼이나 검술도 형편없어진 모양이구나. 바르트.”

도발해봤으나 상대는 반응하지 않았다. 놈은 발끝을 움직여 거리를 좁혀 올 뿐이었다.

10년 전에는 호각을 이뤘던 상대다. 타디안은 비록 비웃었으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만의 하나를 대비한 견제를 날렸는데,

“흐아압!”

바르트가 기합을 외치며 바닥에 끌리던 검을 벼락처럼 올려쳐 왔다.

– 까앙!

그의 검이 타디안의 검 손잡이 부근을 강하게 쳤다.

타디안은 검을 기울여 적당히 완충했음에도 짜르르 울리는 진동에 놀라 뒷걸음질 쳤다.

옛적에 알던 녀석의 실력이 아니다. 놈의 검은 그가 기억하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강했다.

타디안은 서둘러 “웅- 웅-” 진동하는 검을 물려 세우며 재정비하려 했으나 상대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바르트가 세워진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찔러 들어왔다.

“이놈이!”

차원이 다르게 강해진 검격에 당황했으나 타디안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는 테르탄 가문의 후계자를 지키는 호위기사로서 이미 오래전에 자신만의 검술을 확립한 기사였다.

타디안의 검술은 기본에 충실했다. 한 가닥 한 가닥의 근육까지도 모조리 쏟아붓는 베기를 수천 번 연습한 그였다.

그는 진동하는 검을 움켜잡으며 왼발을 땅에 강하게 찍었다. 찍히는 힘을 시작으로 발, 무릎, 허벅지, 골반, 허리, 등, 어깨, 팔로 이어지는 힘을 모조리 그러모아 내리찍었다.

“헛!”

하지만, 이내 타디안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상대가 찌르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왼손을 검에서 떼어 그가 내려친 검의 검면을 손등으로 밀어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커헉! 말도 안 되는…!”

밀쳐진 타디안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찔러 들어온 바르트의 검은 타디안의 갑옷 틈새로 들어가 그의 복부를 꿰뚫었다.

타디안 로페로는 그 와중에도 검을 회수해 반격하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몸을 바짝 붙이며 간격을 내어주지 않았다.

“네, 네놈이 어떻게 이런…!”

타디안이 입으로 핏물을 흘리며 무어라 말했으나, 바르트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검을 뽑고 찌르기를 반복했다. 그의 내장은 점차 걸레쪽이 되어갔다.

– 스컥- 스컥-

갑옷 틈새로 검이 스치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려 퍼졌다.

타디안 로페로는 욱욱 거리는 비명을 토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소리를 내지 못했고, 바르트는 내장조각이 묻은 검을 뽑으며 몸에 기댄 채 죽어버린 시체를 밀어버렸다.

– 복수

반드시 갚아줘야 할 원한이 하나 해결되었지만, 바르트는 기뻐하지 않았다. 그에겐 남은 생을 모조리 갈아 넣어서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광기로 이글거리는 그의 눈은 뛰쳐나간 여섯 명의 동료들을 쫓았다. 피를 갈구하듯 그도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 * *

마차가 멈추고 병기가 뽑히는 소리를 들은 팔라스 테르탄이 마차 문을 열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공자님! 나오시면 안 됩니다. 웬 것들이 습격해왔사온데, 저희가 처리할 것이니 안에 계십시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을 대비해 문을 꼭 걸어 닫고 계셔야 합니다.”

팔라스는 상황이 궁금했으나 심각한 기사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가 뭘 본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기사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이 도와주는 일일 터였다.

팔라스가 문을 닫자 보고를 올렸던 기사는 전방을 주시했다.

조금 멀리서는 호위기사 대장인 타디안 로페로가 어떤 기사를 상대하고 있었고, 병사로 착각했던 여섯 명의 기사들이 흉흉한 기세를 돋우며 달려오고 있었다.

대장이 없어서 임시로 지휘를 맡은 기사가 전열을 가다듬었다.

돌다리 폭이 그리 넓지 않으니 기사들을 횡렬로 세우고 그 뒤로 병사들을 배치했다.

숫자에서 차이가 크다.

저쪽은 무슨 자신감으로 불나방처럼 달려드는지 모르겠으나 이쪽은 기사가 열여섯 명이나 있었다.

“저 미친놈들을 막아라. 죽여도 상관없다.”

간단한 진영을 구축한 기사들과 병사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마차 행렬 측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미친 기사들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전황이 다급하게 흘러갔다.

전열에 섰던 기사들이 점점 뒤로 밀렸다. 그마저도 갑옷을 입었기에 버티는 것이었다.

“정신 차려! 고작 여섯 명이다!”

임시로 지휘를 맡은 기사가 외쳤으나, 그의 외침은 전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열다섯의 기사와 서른의 병사들을 상대로 갑옷도 입지 않고 달려든 그 미친 기사들은 하나하나가 대단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고유한 검술을 선보이며 병사들과 기사들을 상대했다. 저 정도면 어느 왕실 기사단에 가더라도 상당히 존중받을 실력이었다.

테르탄 공작가의 기사들의 수준이 딸리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이 보유한 기사들은 왕실 기사단의 기사들에 비하면 대체로 한 수쯤 밀리는 경향이 있었다.

허나 테르탄 공작가는 일반적인 귀족 가문이 아니었다.

콘라드 왕국의 저명한 무가(武家)인 테르탄 공작가, 그 가문이 보유한 기사들은 왕실의 기사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쉽게 밀려나는 까닭은 단지 저 미친 기사들 전원이 평기사를 훌쩍 상회하는 실력자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타디안 로페로를 순식간에 죽이고 따라온 바르트가 동료들과 합세했다. 그러자 그나마 숫자로 버티던 전열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바르트는 일검에 기사 한 명, 또는 병사 세 명을 베어 넘겼다.

‘이… 이럴 수가! 공자님을 피신시켜야…!’

임시대장은 달아나려 했으나 후열에 세워둔 병사들이 우왕좌왕 거리는 통에 몸을 빼지 못했다.

그는 미친 기사들의 검에 맞아 죽었다.

“히이익! 도, 도망쳐!”

누군가의 외침, 그것이 신호가 되어 몇몇 병사들이 검을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귀족의 호위고 나발이고 그것도 살아있을 때나 하는 일이었다. 눈앞의 저 괴물들은 번쩍번쩍 근사한 기사들도 어렵지 않게 베어 넘겼으니 병사들이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었다.

“따라가서 다 죽여라!”

바르트의 외침과 함께 여섯 명의 기사들은 더는 싸움이라 할 수 없는 학살을 벌였다. 돌다리 아래로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핏방울이 우수수 떨어졌다.

동료들이 달려나가고, 바르트는 첫 번째 마차를 지나쳤다.

행렬의 첫 번째 마차에는 절대로 귀족이 타지 않는다. 보통 귀족의 생필품들이 실리기 마련이었다.

그는 두 번째 마차 옆에 섰다.

가증스러운 테르탄 가문의 붉은 방패가 매달린 마차, 여기에 공작 놈의 손주가 타고 있겠지.

바르트는 귀족이 탔을 게 분명한 그 마차에 고상히 읍을 올리지도, 마차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대지도 않았다.

그는 검날이 모두 뭉개진 자신의 검을 들어 후려쳤다.

– 콰앙! 콰앙! 콰앙!

한 번 휘두르자 마차 문짝이 휘청이며 위쪽에 달린 경첩이 날아갔고, 두 번 휘두르자 문짝이 반파되어 안이 들여다보였다. 세 번째 휘두름에 아래쪽 경첩마저 날아가며 문짝이 우당탕 떨어졌다.

안에는 새하얀 안색으로도 애써 침착하려 하는 어린 귀족이 있었다. 그 귀족은 떨리는 목소리로도 근엄하게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네놈이 기사라면 응당 보여야 할 기사의 예법을 지켜라!”

팔라스 테르탄은 살려달라고 빌지 않았다. 그는 단지 기사의 무례함을 꾸짖었다.

바르트가 코웃음을 쳤다.

“난 기사가 아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무딘 검이 팔라스의 목을 꿰뚫었다.

– 복수

공작의 손자를 죽이고서야 바르트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테르탄 공작가의 후손을 끊었다.

‘테르탄 공작… 네놈이 언제까지 수도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지 두고 보겠다.’

그는 검신을 따라 흐르는 팔라스의 깨끗한 피를 휙 털어버리며 돌아섰다.

아직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그때, 푸른 사자가 그려진 세 번째 마차에서 한 영애가 내리는 것이 보였다.

‘가이단 후작가의 여식이로군.’

바르트가 동료들을 이끌고 테르탄 가문을 이렇게 습격할 수 있었던 까닭은 모두 저 가이단 후작가의 영애 덕분이었다.

이런 혼약과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야 공작의 손자가 이곳까지 나올 리가 없으니까.

두 사람이 만난다는 정보를 늦게 획득한 바르트, 그는 자신들이 몸을 숨기던 남부 항구도시 ─ ‘노야르’에서 미친 듯이 북상했고, 덕분에 돌아오는 공작의 손자를 아슬아슬하게 마주하는 데 성공했다.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 정보를 획득한 것도, 정확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던 것도.

“팔라스! 팔라스!”

밖으로 나온 영애는 팔라스의 마차 문짝이 떨어진 것을 보더니 사색이 되어 외쳤다. 그녀는 긴 치맛자락을 양손으로 붙들어 올리고 뛰었다.

그녀의 눈에는 바르트가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하기야 어떤 경우라도 귀족 영애는 칼날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법이니까.

바르트는 굳이 가이단 가문의 여식까지 건들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려 했다.

단지 힐끔, 지나치려는 영애를 흘겨보았을 뿐이었는데… 그의 온몸의 솜털이 섬찟하게 일어났다.

영애의 가슴골을 가로막듯 놓인 검붉은 보석, 그것이 바르트를 휘어잡았다.

– 부숴라.

불길하다.

저건 반드시 부숴야 한다!

밑도 끝도 없는 울림에 사로잡힌 그는 스쳐 지나가는 영애의 허리를 왼팔로 막았다.

하리에 가이단은 헐레벌떡 뛰다가 굵은 팔뚝에 허리가 붙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고, 얼굴 곳곳에 자잘한 흉터가 새겨진, 비쩍 말라서 광대뼈가 튀어나온 기사가 있었다. 그는 무례하게도 자신의 검은 눈동자를 그녀의 가슴에 두고 있었다.

하리에가 앙칼지게 외쳤다.

“허락도 없이 숙녀의 몸에 손을 대다니!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장 팔을 치우세요!”

“…그 목걸이는 어디서 났지?”

“뭐라고요? 당신은 기사가 아닌가요? 저는 가이단 가문의 딸이에요! 당신이 기사라면 존칭을 붙이세요. 아니지, 그보다 이 팔을 당장 치워요!”

바르트는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하리에의 가슴팍으로 손을 올렸다. 우악스럽게 목걸이를 뜯어내며 말했다.

“난 기사가 아니오.”

그리고선 그는 목걸이에 매달린 보석을 들여다봤다. 보석은 안에 무언가 들어있는 듯, 발하는 빛의 방향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다.

이게 뭐지? 이게 대체 뭐길래 이토록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걸까?

잠시 멍하니 보석을 관찰하던 그는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목걸이를 강탈당한 하리에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팔라스를 떠올리고는 성급히 달렸다.

저깟 목걸이보다는 팔라스가…

마차 문짝이… 문 아래로 피가…!

안에는…

마차에는 팔라스 테르탄이 있었다. 목이 꿰뚫려 부드러운 미소를 잃어버린 채.

피칠갑한 기사의 뒤로 한 영애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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