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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3

63화 꼭두각시 (1)

63화 꼭두각시 (1)

“아앗! 아······. 헤헤헤······.”

루나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이럴 수가.

토라져서 방 안에 처박혀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나무통 안에 처박혀 있었다니.

“욱······. 우욱······.”

루나가 다시 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생각났다.

소설 속의 루나는 뱃멀미가 매우 심했다.

“쿠! 쿠훌린! 쿠!”

세실이 쿠훌린의 이름을 외치며 달려갔다.

루나는 제발 모른척해 달라며, 어서 가서 세실을 붙잡아 달라며 온갖 눈짓, 손짓, 발짓을 했다. 그러나 결국 멀미를 참지 못했는지 내 손에 들린 뚜껑을 빼앗아 덮고는 우웨에에엑······! 토사물을 쏟았다.

“우리 큰 공주가 여기 있다고!”

쿠훌린은 금세 달려왔다. 눈으로는 화를 내고, 입꼬리는 꿈틀꿈틀 올라가는 묘한 표정으로.

그가 나무통을 열려고 하자 루나가 비명을 지르며 뚜껑을 붙잡았다. 제발 열지 말라고. 지금 이것을 열면 나는 평생 결혼하지 못할 거라고.

쿠훌린이 그런 말에 눈 하나 깜짝할 리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할지도. 쿠훌린이 힘으로 뚜껑을 들어 올리자 세트처럼 루나가 딸려 나왔다. 루나가 절규했다.

“아, 안 돼! 보지 마 카인!”

예상대로 카인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뚫어져라 루나를 보고 있었다. 인간의 껍질을 쓴 악마 새끼.

뱃멀미에 정신적 충격이 더해진 탓인지 루나는 혼절했다. 그런 루나를 애지중지 품에 안은 쿠훌린이 선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루 종일 루나를 끌어안고 있을 심산이 분명했다.

.

.

.

검푸른 해수면 위로 흔들리는 달이 떠올랐다.

우리는 수개월 전의 그날처럼 갑판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오늘도 흰 새 한 마리가 뱃머리 위를 날며 빛의 가루를 뿌렸다.

“몇 년은 지난 것 같군.”

희미하게 미소 짓던 카인이 나를 돌아봤다.

“은월병의 치유제를 찾겠다고?”

루나 효과인가. 카인이 스스럼없이 내게 말을 붙였다.

“그래.”

“오를리안 왕국의 전쟁은 어쩔 셈이지? 페르디나는 오를리안과 티롤의 국경에서 멀지 않다. 도시가 전쟁터가 될 수도 있어.”

카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곳에는 네 친구들도 있다.”

카인이 내 마음의 불안을 건드렸다.

녀석의 말이 맞다.

높은 확률로 페르디나는 전쟁터가 된다.

“라이칸은 페르디나로 가지 않아. 브리앙스 백작령의 루베르 자작군에 합류한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데미안, 너는 페르디나를 무시할 생각인가.”

나와 카인의 시선이 부딪쳤다. 중간에서 세실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봤다.

빌어먹을. 나라고 페르디나의 위험을, 아니 테오와 덩치와 족제비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치유제를 구하지 않으면 리아논은 죽는다. 디네베도.

‘게다가 이 시기를 놓치면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해.’

내가 지금까지 은월섬에 머물렀던 또 다른 이유였다. 치유제의 재료 중 하나는 일 년 중 단 하루만 손에 넣을 수 있다. 당연히 한 해를 더 기다릴 여유는 없다. 리아논과 디네베가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동안 나는 때를 기다리며 착실히 단련했다.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쿠훌린이 곧 대륙으로 떠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아직 혼돈을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과, 입단 시험 이후 댓글이 달리지 않는다는 것.

◎ RP: 43

‘혼돈을 제어할 수 없으니 RP라도 잔뜩 모으고 싶었는데.’

이 미친 작가가 설마 또 연중한 건가.

아니면 한 화에 10만 자라도 욱여넣고 있는 걸까.

이러다가 나중에 ‘몇 년 후······.’ 이러면서 나의 몇 해를 세 글자로 퉁칠 생각은 아니겠지.

“나는 페르디나로 간다. 내게는 ‘푸른 매의 단’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카인이 돌연 선언했다.

“세실은 내가 데려간다.”

나는 놀란 눈으로 카인을 봤다.

세실의 눈동자도 크게 벌어졌다.

“페르디나의 네 친구들은 보호해 주지. 푸른 매의 단의 중요한 고객이기도 하니까. 단, 세실은 내가 데려간다.”

어쩌면 좋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카인은 소설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저 직감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달빛나무 위에서, 카인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카인에게 세실을 빼앗길 것 같아 불안했다. 루나도 카인에게 호감을 드러내는 이 상황에.

‘아니, 루나는 괜찮아.’

루나는 고결한 검사다. 아무리 카인에게 호감이 있다고 해도, 카인이 소설에서처럼 악의 길을 걷는다면 전력으로 막아설 거다.

문제는 세실이다. 소설 속의 세실은 카인의 꼭두각시나 마찬가지였다. 카인이 실을 흔드는 대로 움직이는. 설령 그것이 악의(惡意)에 가득 차 있더라도.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러다가 소설의 결말이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세실도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을 테지.”

카인이 세실을 돌아봤다.

“네 생각은 어떻지? 세실.”

“나. 나는.”

세실이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봤다.

그러나 카인이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를 봐라, 세실. 너는 데미안의 꼭두각시가 아니야. 너 스스로 선택해라.”

저 자식이.

소설에서 세실을 꼭두각시처럼 다룬 게 누군데.

“세실. 그들은 네 친구다. 그리고.”

카인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나 역시 너의 친구다.”

세실의 눈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소설 속의 카인은 단 한 번도 세실에게 ‘친구’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가장 믿음직한 부하로 취급했을 뿐.

“나 또한 리아논과 디네베의 병이 낫기를 원한다. 그러나 페르디나의 일도 무시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팀을 나누는 수밖에. 데미안, 네 쪽으로는 쿠훌린과 엘리샤가 함께한다. 게다가 루나도 합류했다. 세실은 나와 함께 페르디나로 가는 것이 맞아.”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카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세실은 암영의 추격을 받고 있다. 쿠훌린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세실은 큰 위험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카인의 눈이 푸른 광채를 뿜었다. 이어 퍼엉! 대포알이라도 떨어진 듯한 폭발음이 등 뒤를 울렸다.

돌아보니 시커먼 물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치 바다의 용이 승천하는 것처럼. 나는 깨달았다. 카인이 소서러의 힘을 드러냈다. 일루산을 만났을 때 발현했던, 그 힘을.

“나는 강하다. 데미안.”

카인의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세실을 보호할 수 있다.”

녀석은 언제부터 저 힘을 제어할 수 있게 된 걸까.

소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빠른 각성이다.

이제 카인은 더 이상 레벨로 가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선실에서 단원들이 뛰쳐나왔다.

그러나 나도, 카인도, 세실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

“이, 이 변태 아저씨! 없애 버리겠어!”

육지에 내려서고 정신을 차린 루나가 고래고래 소리치며 쿠훌린에게 달려들었다.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경험을 한 것이 분명했다.

쿠훌린은 낄낄대며 도망쳤다. 나는 오랜만에 평소와 같은 쿠훌린과 루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곧 해가 저물 것 같았기에 우리는 ‘흰 새’ 여관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이히힝!

몇 달 만에 재회한 스트라이더가 쿠훌린을 보며 반갑다고 난리를 쳤다. 쿠훌린은 껄껄 웃으며 스트라이더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나와 카인과 세실도 각자의 말을 쓰다듬어 주었다.

“브란델!”

“오, 루나! 많이 컸구나!”

놀랍게도 흰 새 여관의 주인 ‘브란델’은 리아논의 남동생, 즉 루나의 외숙부였다.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남동생이 아니라 한참 오빠 같은데.

엘리샤가 히죽 웃으며 다가와 으스댔다. 브란델도 원래는 리아논과 같은 은백색 머리카락인데, 자신이 마법으로 염색해 준 거라고.

.

.

.

“저 아저씨,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어.”

루나가 사나운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여관에 들어서자마자 쿠훌린이 술판을 벌였기 때문이다. 무려 영업 종료 팻말까지 내건 채.

우리는 구석의 테이블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세실이 슬쩍 내 접시에 쿠키를 올렸다.

“이거. 맛있어.”

결국 루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판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 루나가 쿠훌린의 다리를 콕콕 찔렀다.

풀어진 실타래 같은 얼굴이 루나를 돌아봤다.

“에엥?”

“이봐요 아저씨. 그만 좀 마시라고요. 그래가지고 내일 출발할 수나 있겠어요?”

“오, 우리 큰 공주가 왔구나! 하하하하!”

쿠훌린이 껴안으려 하자 루나는 재빨리 물러섰다.

“언제까지 술독에 빠져있을 생각이냐고요!”

앙칼진 외침에 쿠훌린이 질끈 눈을 감았다.

루나가 화살비처럼 잔소리를 퍼부었다. 결국 쿠훌린이 딱 한 잔만 더 하고 끝내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루나의 설교는 멈췄다.

그런 줄 알았는데.

“거짓말쟁이 수염 괴물! 딱 한 잔만이라면서!”

***

별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가울은 제 방의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는 수개월 전의 일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오메가 사냥 실패 후, 가울은 일루산을 찾아갔었다.

‘이번 일은 수장께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죽은 살수들의 문제도 적당히 무마해 드리지요.’

가울은 네몬의 말을 무시했다.

네몬에게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또, 형님이 어느 정도는 온정을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한 행동이기도 했다.

‘당분간 지휘권은 박탈한다.’

그러나 대가는 지휘권 박탈이었다.

미스트에게는 없는 지휘권.

그것이야말로 가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단 하나의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형님에게 가장 고마움을 느끼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 후로 반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건만 형님은 지휘권 복구에 대해 언급조차 없었다. 가울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형님에 대한 죄송스러운 마음은 점차 분노의 감정으로 변색하고 있었다.

“가울.”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

검은 그림자가 가울의 눈앞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네몬.”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저절로 목소리가 흔들렸다.

가울은 네몬이 두려웠다.

“제안할 것이 있어 왔습니다.”

“말해보라.”

서열에서는 네몬이 위였지만, 가울은 일루산의 동생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그를 하대했다.

네몬은 그런 것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도리어 깍듯이 존대하며 대응했다.

“당신이 꼭 맡아주셔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참고로.”

네몬이 웃었다.

“수장께서는 알지 못하는 임무입니다.”

가울은 제 귀를 의심했다. 암영의 모든 임무를 내리는 이는 형님이다. 그런데 형님 몰래 독단으로 일을 처리하겠다는 것인가.

가울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자신도 수개월 전 같은 일을 저질렀던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형님을 배신할 셈인가! 네몬!”

“아닙니다.”

“그게 무슨 궤변인가!”

“수장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날처럼.”

그날이라고?

“아직 눈치채지 못하신 겁니까? 그날, 당신과 미스트의 실패는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제가 당신들의 계획을 흑월의 귀에 흘렸으니까요.”

“뭐라고······?”

가울은 네몬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물론 자신이 네몬의 함정에 빠졌었다는 것은 짐작했다. 구체적인 과정까지는 몰랐지만.

그런데 그 일을 형님이 눈감아 주었다고?

“당신도 구미가 당길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네몬의 눈에 엷은 조소가 스치는가 싶더니,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무는.”

그리고 그 말에, 가울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오메가 사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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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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