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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4

64화 성배기사 게오브릭(5)

도주극이 시작된다.

균열의 틈새가 열린 것만으로 이미 세는 것조차 무의미한 짐승들이 쫓아온다. 그들이 쫓는 건 들판을 내달리는 기마들.

오백 기의 기마들은 기묘한 형세를 취하고 있었다.

편력기사들의 말을 빌려탄 헌터들이 가장 중심에 있고, 이를 다른 수백의 편력기사들이 보호하는 모양새.

“측면에 백랑무리 오십! 빠릅니다!”

“궁수들 대응해!”

헌터들의 마력화살이 짐승들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빈말로라도 명중률이 높지 못하다.

당연한 것이다. 말 위에서 화살을 쏘는 건 평지에서 쏘는 것보다 훨씬 노련한 기술과 연습을 강요한다.

라이온하트의 정찰기병인 평민 출신 요먼들조차 다년의 훈련 끝에 실전에 투입되는데, 오늘 막 말에 탑승해본 현대인들이 쏘는 화살은 말할 것도 없다.

헌터들의 일제사격이 무색하게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마력시들. 이용완이 이를 갈았다.

“젠장….”

다른 헌터들은 둘째 치고 S급 궁사인 자신이 이 꼴이라니… 말 위에서 화살을 쏘는 게 이렇게나 어려웠단 말인가.

“측면에서 접근하는 놈들을 떼어내시게!”

“가호 성법을 아끼지 말고 써라!”

달리는 와중에도 덤벼드는 짐승들을 척살하는 편력기사들. 그들은 노련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와중에도 측면에서 급습해오는 짐승들에게 랜스로 눈을 찌르거나 다리를 걸고 넘어뜨렸다.

말을 탄 상태에서 쓸모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헌터들과 달리 편력기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평생에 걸쳐 무(武)를 쌓아온 전투의 달인들. 그런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주고 있음에도 덤벼드는 짐승은 점점 늘어났다.

“괴조 무리 출현!”

“공중은 제가 맡지요.”

페가수스로 각성한 스탈리온이 날아든다. 레온의 등 뒤에서 마력을 화살을 쏘아대는 베아트리체.

그녀의 압도적인 화력은 기마를 낚아채려는 괴조들을 쓸어버렸다.

그러나 균열은 한곳에서만 생기지 않았다. 클로징으로 철거되어가는 게이트 곳곳에서 발생했다.

“정면에서 멧돼지 무리가 돌격해옵니다!”

한 편력기사가 헌터들에게 외쳤다.

“측면으로 빠져 우회해라! 선두 30기는 나와 함께 돌격한다!”

측면으로 빠지는 헌터들을 뒤로하고 선두의 편력기사들이 멧돼지들을 향해 돌진했다.

마저는 그 돌격력이 특히나 위협적인 짐승이다. 본래라면 정면충돌을 피하고 측면에서 착실히 깎아내는 게 상책.

편력기사들은 능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꽈아앙!

정면에서 충돌하는 마저와 기사들. 서로를 꿰뚫으며 충격과 함께 사방으로 육편이 튄다.

-꾸에에엑!

-한 마리도 벗어나게 하지 마라!

서로 얽키고 설킨 기마와 멧돼지들이 난전을 벌인다. 멧돼지들은 물고 늘어지는 기사들로 인해 헌터들을 쫓을 생각 따윈 할 수도 없었다.

“…….”

“폐하?”

그것을 공중에서 바라보던 레온이 으드득 이를 악물었다. 방금 그 충격으로 재생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고 즉사한 기사가 일곱.

그들의 영혼이 성배로 흘러들어왔기에.

“계속 괴조들을 요격해주시게.”

베아트리체는 더 묻지 않고 대마술을 연발했다.

게이트 입구까지.

편력기사들은 하나둘씩 스러져갔다.

* * * *

게이트 입구. 축 늘어진 연합 공략대 헌터들이 차례차례 게이트를 탈출한다.

최후의 탈출 순간까지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게이트에 도착한 지금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짐승들이 그들을 습격한 탓이다.

-키에에에!

-까아악!!”

“지켜라!”

“방패벽!”

그러나 최후미는 편력기사들과 사자심왕, 마술사 여왕이 지키고 있다.

말에서 내려 게이트를 지키는 편력기사들 앞에 수많은 시체가 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새를 뚫고 퇴로를 막으려는 짐승들. 그들을 영격하는 또 다른 헌터들.

-까악?!

흑수리들은 날아드는 화살에 격추당했고, 미친 듯이 내달리던 마저가 거구의 사내에 막힌다.

-꾸엑?

“연하야!”

“꽉 붙들어 매!”

게오브릭에 의해 무기를 잃은 황금철이 멧돼지를 붙잡는 사이, 황연하가 옆구리를 연이어 후려쳤다.

두꺼운 멧돼지의 가죽에 구멍이 뚫리며 피를 쏟아낸 끝에 축 늘어지는 마저.

“그쪽은 일단락됐습니까?”

이용완이 다가왔다. 길드원들을 먼저 보낸 그는 자리에 남아 편력기사들과 레온을 도왔고, 고정포대인 그는 베아트리체 다음으로 공중의 위협을 일소했다.

“우리야 뭐 한게 있슴까. 사자심왕 폐하와 여왕님이 다 했지.”

황금철은 지금도 짐승들을 격추하는 두 사람을 보며 감탄했다. 강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저토록 강할 줄이야.

구해진 입장으로서 후미의 안전에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나섰지만, 두 사람의 싸움을 볼수록 스스로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저것이 기사인가…….’

오늘 그들은 명예로운 기사와 그 최후를 목도했다. 사자심왕의 덤이라곤 하나 목숨값을 빚졌다.

오늘 진 이 빚은,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겠지.

“자! 슬슬 다 빠져나간 것 같고. 우리들도 나갑시다.”

“…….”

연합 공략대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으로 나가는 길. 네 사람은 굳건한 등을 보인 채 떠나온 길을 응시하는 레온을 확인하며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 * * *

짐승들은 아직도 몰려오고 있다. 더 지체하면 저 파도처럼 몰려오는 짐승 무리에 휩쓸릴 것이다.

편력기사들이 방패가 되어주는 동안 하루 빨리 빠져나가야 함에도 레온은 자리에 남았다.

-막아!

-한 놈도 뒤로 보내지 마라!

영광의 기사들이 스러져간다. 아무리 기사들이라도 지형, 숫자 모든 것이 불리한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그들의 최후가 머지않았음이다.

“폐하!”

등 뒤에서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하리와 생도들이었다.

“내 먼저 가라 일렀거늘.”

“…….”

그들은 자신들이 큰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사자심왕과 마술사 여왕에게 맡겨두고 먼저 퇴각하는 것이 옳다는 것도. 하지만…….

“마지막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서요.”

하리는 그들을 마지막까지 바라봐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정의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영광과 명예를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들.

누구 하나 울먹거리는 이가 없었고, 누구 하나 원망과 증오를 내뱉는 이도 없었다.

그들이 이토록 맹신하는 명예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 목숨을 내던질 수 있을까?

그리고 레온은… 기사들의 그런 충정을 알면서도 왜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걸까?

그것은 아마 기사들과 다를 바 없는 비슷한 의무일 것이다.

충성스러운 기사와 병사들을 위해 마지막까지 남아 그 한풀이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위험하고 비합리적이더라도.

“남겠다면. 남아라.”

그 말을 끝으로 레온은 하염없이 떠나온 방향을 응시했다. 이제 한 사람도 남지 않은 편력기사들을 끝까지 응시했다.

그리고 끝내 지평선 너머에서 보이던 짐승들이 도달했을 때, 레온은 그들과 대치했을 때…….

-끼이이익…!

하늘을 덮는 검은 얼룩. 지상의 네발 짐승들이 분투하는 동안 숫자를 끌어모은 흑수리들이 일제히 몰려들고 있었다.

“폐하… 이제는 빠져나가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아직이다.”

레온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 그 마지막 한 명을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다. 괴조들이 끝내 급강하를 시도하려는 그 순간──

-키이?

-키이에에에에에에엑!!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괴성. 하늘을 덮었던 검은 얼룩들이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펴지 못하고 추락한다.

“가, 갑자기 왜 저러지?”

생도들이 당황했으나 레온은 그 뜻을 알았다.

다음 순간 성배로 회귀한 ‘령(靈)’을 감지하고 그 위대한 영혼의 일격이 괴조의 화신체를 찔렀음을 깨달았다.

“결국…….”

레온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치솟는 분노와 주체할 수 없는 증오가 핏발 선 눈에 서렸다.

“너희들은 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너희들이 섬기는 사특한 짐승들은 가장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성배기사들은 성법으로 결과를 강제한다.

그렇다면 이 가장 위대한 성배 수호자가 음성으로 내뱉는 맹세는 과연, 강제력을 지닐까?

그것은 오롯이 이 기사왕이 만들어낼 것이다.

“물러난다. 오늘을 기억하리라.”

고삐를 돌리며 퇴각하는 세 사람. 백랑과 마저들 중 그 누구도 레온을 쫓는 이가 없었다.

* * * *

제주도 게이트가 클로징되고 레온과 생도들은 오강혁 협회장의 감사를 받으며 국내로 귀환했다.

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는데, 인솔자인 레온이 말없이 침묵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게이트 공략에 참전하지 않은 생도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김재혁과 한수호가 눈치를 주면서 일단락됐다.

그렇게 모든 업무를 끝내고 돌아온 침실. 레온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가 전우들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악마들과의 대전쟁에서 숱한 기사들이 스러졌고, 병사들이 최후를 맞이했다. 등을 맡길 수 있었던 성배기사들은 하나둘 승천했고, 성녀와 신관장들이 신들의 품에 안겼다.

끝내 살아남은 건 레온 뿐. 신들이 만신전을 제 심장으로 옮겼을 때,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으나 결코 그 무게가 가볍지는 않았다.

“후…….”

잠들지 못한 그가 일어섰다. 옆에서 야피가 끼룩, 하고 갸웃거렸지만, 레온은 그의 등딱지를 쓰다듬으며 방을 나선다.

만신전에는 술을 마시기 위한 바가 있다. 도시의 화려하고 고급진 바가 아닌, 병사들에게 술을 공급하고 그들의 피로를 풀기 위한 투박한 시설이다.

이곳에서 술을 마시는 게 허락된 건 훈련기간을 수료한 1기생뿐. 그마저도 규칙적인 훈련을 위해 일찍 잠드는지라 적막한 시설이다.

“어머, 폐하?”

의외로 선객이 있었다.

“여왕.”

“잠이 안 오시나요?”

“그대도 그런가?”

베아트리체는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의 손에는 붉은 와인이 가득 담긴 잔이 쥐어있다.

“어찌 안주도 없이 술을 드시오.”

“취하고 싶어서요.”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발그레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기대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지금의 그녀는 위태로워 보인다.

“나도 한 잔 주시겠나.”

“같이 마셔주시는 건가요?”

“그대가 나와 마셔주는 게지.”

“후후…….”

베아트리체는 비틀거리면서도 새로운 잔을 꺼내 와인을 따랐다. 넘치도록 따른 잔에는 붉은색이 가득하다.

“폐하도… 먼저 간 이들을 추모하시나요?”

베아트리체의 시선이 잔에 비친다. 레온은 찰랑거리는 와인 속 붉은 눈을 바라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군주란 피곤한 일이야.”

누구보다도 많은 짐을 짊어지고, 누구보다도 강해야 하며, 그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선 안 된다.

설사 싸움의 끝에 그 누구도 곁에 남지 않더라도.

레온은 술잔을 들이켰다. 독했다. 아주 많이.

베아트리체는 말없이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찰랑거리는 술잔을 흔들며 싱긋 웃는 베아트리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잔을 부딪쳤다. 의외로 세계를 넘어 만국공통의 문화인 모양이다.

“여왕.”

“비체라고 불러주세요. 제겐 이제 지켜야 할 왕국도, 백성도 없으니까요.”

백성이 없는 왕국의 왕을 어찌 왕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베아트리체는 자조적인 슬픔을 읊으며 측은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하자면 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폐하는 다르지요. 폐하께서는 혼을 짊어지고 계시지요. 신들께서도 폐하께 의지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폐하께서는 그들의 넋을 달래고 대망을 이루고 계십니다. 저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대왕이시지요.”

“……그리 자신을 탓하지 마시게. 그대 또한 누구보다도 훌륭한 왕이네.”

그녀는 백성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악마들의 계략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백년에 가까운 멸망과 재생을 반복하며.

설령 실패했을지언정 그 의기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폐하께서는 끝내 승리하셨지요. 악과 타협하지 않으시고, 정의와 신념을 지키셨지요. 그렇기에 지금도 폐하의 백성과 기사들은 낙원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어요.”

베아트리체는 레온을 칭송하는 듯하면서도 슬픈 눈을 했다.

“그렇기에 폐하가 안쓰럽답니다. 당신께서는 영원토록 그 짐을 짊어질 것이기에. 잃고 또 잃어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 분이니까요.”

베아트리체는 레온이 게오브릭의 승천을 지켜봐야만 했을 때의 표정을 보았다.

지독한 외로움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사투의 길이었다. 그는 분명 좌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좌절했다고 무너져 내릴 사람이 아니기에, 결국 끝없이 일어설 사람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무게에 힘겨워하며 레온에게 기대고 싶었다. 취중의 잠시뿐인 기댐이라도, 그의 어깨에 기대며 짐을 떠넘기고 싶었다.

최후까지 자신을 보필해주던 죽음의 기사들. 그 충성에 보답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안전한 윤회에 성공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것이다.

이이상 그에게 기댈 순 없는 것이다. 무엇 하나라도 그의 짐을 덜어줘야만 하는 것이다.

“제게 바라시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세요.”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베아트리체는 레온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것이다. 레온은 그녀의 각오와 의지를 읽고 쓴웃음을 지었다.

“짐은 홀로 너무 오래 싸웠어. 그렇기에 잊어버린 것 같군. 한때, 짐의 곁에서 함께 싸웠던 그 많은 전우들을…….”

오늘 레온은 그때의 상실감을 되새겼다.

“나의 백성, 나의 친구, 나의 왕국. 나의…….”

레온은 그 이상 떠올리지 않았다. 그 두 사람만큼은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그만이 기억하는 상실과 슬픔은 오롯이 홀로 남겨진 그의 것이었으니.

레온이 베아트리체를 응시했다.

“그대는 짐보다 먼저 죽지 말게. 옆 사람이 죽는 것은 몇 번을 겪어도 뼈에 사무치거든.”

밤이 깊어간다.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작하며 시간을 보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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