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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5

64. 약혼관계 – 검술

험준한 산을 넘는 인트로 영상이 끝나고, 눈발이 날리는 에이브릴 성에서 민서는 레오 덱스터가 되었다.

두 집이 붙은 뒤뜰에 선 레오, 그는 뺨으로 스치는 찬 바람을 느꼈다.

[ 업적 : ‘11’번째 레오 – 플레이어가 레오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미약하게 빨라집니다. ]

곁에 서 있던 레나 아이나르가 일전과 똑같은, 푸석한 밀짚 머리칼을 바람에 날리며 돌아봤다.

“레오! 내 말 듣고 있어?”

그리운 목소리.

그녀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도, 오똑한 코도, 찬바람에 붉게 달아오른 뺨도, 검을 어깨에 턱 걸치는 자세도 모두 그대로였다.

어쩐지 코끝이 시큰해졌지만 “킁!” 빨개진 코를 들이켜 간질간질한 느낌을 없애버렸다.

“그럼, 듣고 있지. 다음번 사냥에 같이 나가자는 거지? 나야 좋지. 그런데 될지 모르겠네. 난 아이나르 부족원이 아니잖아.”

감상에 젖은 레오는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려 적당히 답했다.

레나는 “괜찮아. 아빠한테 조르면 돼.”, “저번 축제 때 족장님이 그러셨는데…”, “상인은 언제쯤 올까? 사고 싶은 게 있는데.” 등등 전에도 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심경이 복잡하다.

레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른다. 지금껏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도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민서의 기억으로 아는 것들이긴 하지만, 이 당차고 엉뚱한 레나는 홀로 전장에 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소에 덤벙거리다가도 위기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했던 레나. 팔을 잃어버린 그녀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함께 기사가 되어 결혼하자 고백한 레나는 내 목이 날아가는 순간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비극이 반복돼야만 하는가.

자기애가 유독 강한 레오 덱스터는 클리어고 자시고 그냥 레나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민서가 조급하게 그를 재촉했다. 지난 시나리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민서는 안절부절, 눈알에 박힌 ‘11/20’이라는 숫자에 압도되어 있었다.

레오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레나와 자잘한 대화를 나누다가 뭔가 각오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말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땡땡이치려고? 어디 가는데?”

“비밀이야.”

“체, 이따가 다 말해줄 거면서. 알았어. 다녀와.”

그는 바라보고 있어도 그리울 정도로 레나가 반가웠지만,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전쟁} 이벤트를 피해야 했다. 전쟁에 끌려가면 소드마스터를 만나게 되고, 그러면 반드시 죽는다.

검술 능력이 올랐지만, 레오는 ‘전조도 없이 휘둘러진’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검을 막을 자신이 없었다.

소드마스터의 절기인 오러 블레이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그냥… 못 막는다.

지난 시나리오 보상으로 {검술.3v : 바르트류(流)}를 얻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었다.

일정 경지에 오른 검사들은 자신만의 검술을 확립하는데, 그 스타일이 천차만별이었다.

각자의 고유한 검술 형태를 어떻다고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다.

하나는 단점이 노골적인 만큼 큰 장점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기본에 충실하여 이렇다 할 단점이 없으면서도 소소한 이득을 챙기는 것이었다.

카트리나의 검술은 전자였다.

속임수가 난무하고 비정상적인 몸놀림을 필요로 하는 검술. 단기 결전에 특화된 만큼 지구력이 약했다.

일전에 레나와 레오가 카트리나를 상대할 수 있었던 까닭은, 두 개 분대를 상대한 후라 그녀가 상처를 입은 것도 있지만, 그녀가 크게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오의 아버지, 노엘 덱스터의 검술도 똑같이 단점을 안고 장점을 취하는 검술이었다.

하지만 카트리나의 검술과는 정반대의 목적을 가졌다.

한 합의 여유를 숨기는 검술,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만약을 대비하는 안정적인 검술이다. 그 숨겨진 한 합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의 검술은 대체로 폭발력이 약했다.

노엘 덱스터는 차근차근 압박해 상대가 무리한 행동을 하거든 조금씩 이득을 챙기는 다소 수동적인 방법을 즐겼다.

반면 헤르만 포르테 백작의 검술은 예비 동작을 철저히 숨기는, 위의 두 사람과 달리 기본에 충실한 검술에 속했다.

검사들은 검이 휘둘러지기 전에 상대의 동작을 예측해 대비하는 것이 기본인데, 포르테 백작은 그 예측을 차단해버리는 데 집중했다.

그의 검은 예측이 아니라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 반응해야만 해서, 한 박자의 이득이 꾸준히 발생했다.

이건 단점이 없이 장점만 있다. 예비 동작을 숨기려 하는 것은 검을 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행동이었기에 그렇게 엄청난 장점은 아니었으나 그것도 경지의 문제였다.

검술 실력에서 차이가 나면 그의 동작을 알아볼 수가 없어서 일전에 레오가 죽었던 것처럼 반응도 하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다.

어떻게 보면 약자에게 한없이 강한 데다가 비슷한 실력자끼리의 대결에서도 꾸준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실용적인 검술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레오가 얻은 ‘바르트’의 검술은…

“뭘 사러 왔는가?”

레오가 대장간에 도착했다.

“뭘 사러 온 것은 아니고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왔는데요…”

그는 근사한 수염을 기른 대장장이를 한참 설득했다.

{초기 자금}을 모두 털어서 내어준 레오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공터에서는 레나와 노엘 덱스터가 가볍게 대련을 하고 있었다.

“왔구나.”

레나를 뻥 걷어차며 대련을 끝낸 아버지는 평소와 같이 아들을 앞에 세웠다. 레오는 검에서 낯선 느낌을 받으며 대치했다.

짧은 탐색전, 검을 미세하게 돌리던 노엘은 레오의 기세가 바뀐 것을 눈치챘다.

“…호오.”

아들의 안 좋은 버릇이 사라졌다.

오른손잡이인 레오는 오른쪽으로 검이 살짝 치우치는, 검사들이 흔히 가지는 버릇이 있었다.

오랫동안 잔소리해도 쉽게 고치지 못하던 버릇이었는데, 지금은 좌우의 균형이 완벽하게 맞았다.

하루 만에 어떻게 저렇게 모범적인 자세를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아들을 기특하게 여기며 노엘이 선공을 취했다.

– 챙강!

아버지의 사선 베기를 어렵지 않게 흘려낸 레오는 상체를 낮추며 빙글 돌았다.

무릎 베기에 이어지는 올려 찌르기.

노엘은 예측했다는 듯 뒤로 물러서서 베기를 피하고 찔러오는 검을 쳐올렸다.

그리고 발바닥으로 아들의 복부를 밀어버릴 생각으로 발을 들었는데, 레오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이런.’

올려쳐진 검과 함께 뛰어오른 자세. 온몸으로 내려찍어오는 아들의 검을 보면서 노엘은 살짝 당황했다.

너무 만만히 봤다.

평소라면 레오는 발에 밀리면서 자세를 잡느라 한 호흡을 쓰고 노엘의 공격을 받을 것이었다. 한데 그전의 대처가 아주 좋았다.

왼발을 살짝 들어 올린 상태로 강격을 마주하게 된 노엘은 어쩔 수 없음을 느꼈다.

– 카아앙!

그는 들어 올렸던 왼발을 찍으며 똑같은 수직 베기로 응수했고, 두 사람의 검은 깨질듯한 굉음을 내며 상쇄됐다.

손해를 봤다.

위에서 내리찍은 레오는 여유가 있었고, 그걸 이용해 돌진해왔다.

반면 등허리 힘만으로 아들의 몸무게를 모두 감당해야 했던 아버지는 반보 물러서서 공격을 받아내야만 했다.

처음이다. 아들에게 손해를 보기는.

노엘 덱스터는 밝게 웃었다. 치밀어오르는 유쾌함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하하하하하! 아들아! 네가 뭘 깨달았구나!”

그는 돌진해오는 아들의 검에 자신의 검을 가져다 대고 빙그르르 돌려서 방향을 바꾼 뒤, 레오의 가슴에 인정사정없이 어깨를 부닥쳤다.

노엘 덱스터는 고작 한 걸음의 도약으로 세 걸음을 뛴 레오의 돌진을 봉쇄하더니 팔꿈치로 그의 갈비뼈를 찍었다.

“우욱!”

그러면서 검 손잡이를 올려쳐 아들의 턱을 노렸다.

레오는 혼비백산해서 몸을 뒤로 굴렸다. 다행히 아버지는 봐줬다는 듯 따라오지 않으셨다.

대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오는 바르트의 검술을 더 써먹어 볼 생각으로 슬쩍 한 손만으로 검을 쥐어보았으나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바르트의 검술은 좌우 균형에 초점을 둔, 의외로 기본에 충실한 검술이었다.

두 사람이 검을 맞부딪치다 보면 필연적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선택지가 갈리기 마련이었다. 완벽한 수직 베기 또는 완벽한 수평 찌르기를 제외한다면.

그 선택지는 양손검을 쥘 때부터 드러났다.

검을 쥐는 손잡이에서 오른손을 위로 둘 것이냐, 왼손을 위로 둘 것이냐에 따라 어느 방향에 힘이 더 실릴 것인지를 예고했다.

바르트가 검술의 ‘좌우’에 집중하게 된 까닭은 별것이 아니었다.

왼손잡이였던 그는 처음 검술을 접할 때부터 왼손을 위로 두는 습관이 있어서, 다른 오른손잡이들과의 대련에서 은연중에 약간의 이득을 챙겼다. 본디 왼손잡이라는 것이 오른손잡이와의 싸움에서 이득을 보게끔 진화한 것이었으니까 그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한데 어린 바르트는 실력이 뛰어난 사람과 맞붙을수록 왼손잡이로서 가지는 이점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손잡이에서 왼손과 오른손을 바꿔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검을 내지르는 좌우의 궤도에 집중했다.

결국, 그는 완벽한 ‘우’사선 배기나 ‘좌’사선 베기를 위해서는 애당초 검을 잡는 자세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고, 또 온몸의 근육까지도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바르트의 검술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극단에서 균형을 발견하고 아예 한 손만으로 검을 휘두르게 되기까지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검술.3v : 바르트류(流)} 능력으로 바르트의 스타일을 본받게 된 레오는 평소와 달리 왼손을 위로해서 검을 쥐었다.

그립(grip)이 바뀐 것을 단번에 눈치챈 노엘 덱스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이고- 이놈도 고생깨나 하게 생겼네.”

바르트와 같이 그립을 바꿔보는 연습은 검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노엘은 그런 연습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그가 본 기사 중에서 그런 연습을 통해 이득을 본 사람은 없었다.

‘시간 낭비하게 생겼네.’라고 투덜거리는 아버지를 향해 레오는 ‘우’사선 베기를 했다.

– 챙강!

그리고 졌다.

노엘 덱스터는 아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느라 시간을 버리지 않도록 아예 전력을 다했다.

어차피 승패가 의미 없는 대련이었지만, 쓸데없는 행동을 했을 때 박살을 내어두면 금방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까. ─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오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 레오 덱스터의 육체는 바르트의 검술을 원활히 사용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오른쪽이 더 편하고 왼쪽이 불편하다.

더구나 {검술.3v : 바르트류(流)}는 그가 강변에서 보여줬던 실력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런 젠장. 바르트‘류(流)’라길래 잔뜩 기대했는데… 실력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이걸 활용하려면 몸부터 만들어야 하잖아.’

레오도 아버지와는 다른 이유로 투덜거렸다.

“와아! 대단해!”

옆에서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던 레나가 촐싹거렸다. 그녀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다음 날, 레나의 아버지인 데호르만이 사냥에서 돌아왔다. 노엘 덱스터는 아들의 검술 실력이 는 것을 기뻐하며 데호르만과 술판을 벌였다.

레오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매번 그랬듯 레나가 맥주를 훔쳐다 놓고 그를 졸랐지만, 이번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레나는 팽하고 토라져서 행패를 부리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치채고 달려온 레나 어머님께 혼이 났다.

그 이후로 레오는 공터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백날 검술을 연습해봤자 실력은 늘지 않는다. 지난번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확인했듯, 레오의 성장은 막혀 있었다. 그저 시나리오 보상으로 주어진 것을 체득하는 정도가 한계다.

이번에 얻은 검술 능력을 체득하려면 연습도 필요하고 균형 잡힌 몸을 만들 필요가 있었으나 레오는 그보다도 더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는 대장간을 계속 들락거렸고, 아버지도 한 경지를 깨뜨린 아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레나는 혼자서 검술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레오가 성큼 앞서가 버렸다. 최근에야 간신히 따라잡았나 싶었는데 대체 뭘 깨달았는지 실력이 훌쩍 뛰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한참 뒤처졌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레나는 밤늦게까지 훈련하다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 * *

운명의 날이 찾아왔다.

레오는 레나와 함께 데호르만의 사냥팀을 따라 사냥을 나왔다. 그는 {사냥} 능력으로 데호르만과 사냥팀의 인정을 금방 얻어냈고, 레나만을 데리고 덫 확인 조를 이루었다.

그리고 예전과 똑같이 아침 일찍 덫을 확인하러 나왔다가…

“어? 밑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레나가 ‘노구화호’의 발자국을 찾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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