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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6

66화 혼돈 (1)

66화 혼돈 (1)

쿠훌린의 눈이 짐승처럼 번득였다.

이어, 사냥감을 노리듯 소리 없이 다가온 그가 나와 루나를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잡았다 루나! 으하하하하!”

“꺄아아악!”

루나가 발버둥 쳤지만 쿠훌린은 놓아주지 않았다. 도리어 더욱 세게 우리를 끌어안았다.

쿠훌린과 엘리샤의 웃음소리가 밤하늘 위로 퍼져 나갔다.

.

.

.

“흠흠······.”

뒤통수를 긁는 쿠훌린의 얼굴에는 루나가 할퀸 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또 그러기만 해봐요! 진짜!”

루나의 외침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루나가 매미처럼 내게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데미안, 너 진짜 따뜻해. 난로 같아.”

솔직히 말하면 기분 좋았다. 이런 미소녀와 붙어있다니. 게다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하다.

쿠훌린이 노려볼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주었다.

“헤헤. 누나가 안아주니까 너도 따뜻하지?”

“누나?”

나는 슬쩍 루나를 밀어내며 얼굴을 마주 봤다.

두 볼을 발갛게 물들인 루나가 큼큼, 헛기침했다.

그러고는 제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앞으로 나를 누나라고 불러도 좋아.”

얘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왜 네가 누나야? 생일도 같은데.”

게다가 나는 원래 세계에서 너보다 나이가 많았단 말이다.

“그, 그렇다고 내가 오빠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

“부르지 마. 나도 누나라고 안 부를 거니까.”

그러자 루나가 묘하게 당황한 표정을 했다.

“그, 그러면 우리는 남매가 아닌 거잖아!”

“남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루나가 내게 ‘오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좋은데?

“나와 남매처럼 지내고 싶으면 네가 나를 오빠라고 불러. 나는 절대로 너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을 거니까.”

나는 당연히 루나가 빽빽 소리치며 거절할 줄 알았다.

그런데 루나의 반응은 의외였다.

“······조, 조금 시간이 필요해.”

얘가 갑자기 왜 이렇게 남매에 집착하는 걸까.

원래 나와 루나, 세실, 카인, 그리고 디네베는 모두 형제처럼 지냈다. 하지만 누나나 오빠 같은 호칭을 쓴 적은 없는데.

‘아. 그건가.’

나는 깨달았다.

루나는 지금 외로움을 느끼는 거다.

디네베는 아프고, 카인과 세실과는 한동안 떨어져 있어야 한다. 남은 것은 나 하나. 그래서 더욱 돈독하게 지내고 싶은 거겠지.

나는 한번 배짱을 부려봤다.

“그렇게 많은 시간은 못 줘. 빨리 결정하도록 해.”

“······아, 알았어.”

배짱이 먹혔다?

쿠훌린과 엘리샤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루나를 봤다. 그들이 보기에도 루나의 반응이 이상한 거겠지.

끄히잉······, 괴상한 신음을 뱉은 루나가 화제를 돌렸다.

“근데 데미안. 별의 샘물은 어디에 있어?”

“혹한의 땅에.”

“여기가 혹한의 땅 아니야?”

“아직은 아니야.”

“······설마 혹한의 땅은 여기보다 더 추운 거야?”

“그럴걸.”

루나가 힉! 소리를 내며 오들오들 몸을 떨었다.

“여기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셰펜비트 산맥이 나와. 언제나 흰 눈으로 뒤덮여 있어서 ‘하얀 산맥’이라고도 불리는. 그리고 그 산맥에는 아주 특별한 생명체에 관한 전설이 있어.”

“특별한 생명체? 무슨 생명체인데?”

“눈의 새.”

루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말똥말똥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뒷이야기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흘끔 쿠훌린을 봤다. 쿠훌린은 아마도 눈새의 전설을 알고 있을 거다.

쿠훌린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이야기하라는 것 같았다.

“눈새의 전설이 사실인지 모두가 궁금해했어. 실제로 봤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눈새의 외형을 제각기 다르게 묘사했기에 신빙성은 없었지. 그래서 점차 사람들은 눈새가 실존하는 생명체가 아닌 혹한의 땅 그 자체, 혹은 그곳의 매서운 눈보라를 생명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어.”

이제는 루나뿐 아니라 엘리샤까지 귀 기울여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나는 조금 재밌어졌다.

“하지만 눈새의 전설은 사실이야.”

루나가 눈을 반짝였다.

“정말? 눈새는 정말로 있는 거야?”

“응. 눈새는 실재해.”

“우와.”

나는 소설에서 읽었던 눈새의 외형을 차근차근 묘사했다.

“눈처럼 새하얀 깃털이 유선형의 몸을 빽빽이 감싸고 있고, 뾰족한 부리에서는 빙결의 마법을 숨 쉬듯이 내뿜어. 날개를 휘두를 때마다 눈보라가 일고, 두 날개를 활짝 펼치면 태양빛을 가릴 정도로 커다래진다고 해. 물론 새끼 눈새는 그 정도로 크지 않아. 아마 너와 비슷한 크기이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마치 쿠훌린이 우리에게 이야기할 때처럼 과장된 손짓과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눈새의 울음소리는 굉장히 독특해.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눈새가 울면 조심해야 해.”

“왜?”

“눈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르거든.”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깔자, 루나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눈새는 혹한의 땅에서만 사는 거야?”

“글쎄. 어쩌면 눈새가 있는 곳이 혹한의 땅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지.”

루나가 ‘오.’ 동글게 입술을 말았다.

하얀 입김이 아른아른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 눈새가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찾으려는 ‘별의 샘물’이야.”

편안하게 이야기를 듣던 쿠훌린의 표정이 변했다. 그도 눈새가 별의 샘물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다.

“자, 잠깐 금발! 별의 샘물을 눈새가 지키고 있다고? 그러면 어떻게 그 샘물을 손에 넣으려는 거야? 설마 눈새와 싸워야 하는 거야? 그런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괴물하고?”

눈새와 싸운다면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아무리 쿠훌린이 소드마스터 중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라 할지라도 눈새를 당할 수는 없다.

엘리샤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발현하는 빙결의 마법은 혹한의 땅, 그 자체라고 불리는 눈새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럼 좀 따뜻할 때 가던가! 왜 이렇게 추울 때 가는 거야! 입술이 얼어서 주문도 제대로 못 읊겠다고! 이거 보여? 앵두처럼 어여뻤던 내 입술이 새파랗게 죽었잖아!”

“지금 말 엄청 잘하는데요?”

“앗!”

“그리고 혹한의 땅은 여름에도 별달리 따뜻하지 않아요.”

“그래도 지금보다는 덜 추울 거 아니냐고.”

나는 툴툴대는 엘리샤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지금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이유?”

“별의 샘물은 일 년 중 단 하루, 한 해의 마지막 날에만 손에 넣을 수 있어요.”

별의 샘물은 하얀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일 년 동안 별빛을 흡수해 만들어진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진 샘물의 양은 매우 적다.

소설에서는 루나의 주먹만 한 부피라고 표현됐었다.

“저, 정말 그렇게 적어? 샘물이면 잔뜩 있는 거 아니었어?”

루나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알만했다.

루나는 치유제를 많이 만들고 싶었겠지. 리아논과 디네베를 치유한 뒤에도 은월병에 걸리는 사람은 계속 나타날 테니까.

“응. 그래서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별의 샘물로는 치유제를 최대 세 개까지 만들 수 있어. 그러니까 리아논과 디네베를 치유한 뒤에도 하나가 남을 거야.”

나는 남은 하나의 치유제를 루나를 위해 남겨둘 생각이다.

“······근데 우리 정말 눈새와 싸워야 해?”

루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눈새와 싸울 필요 없어.”

엘리샤의 안색이 밝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더러 혹한의 땅에 가본 적은 있냐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냐고 윽박지르더니 이제는 내 말을 완전히 믿는 눈치였다.

“왜? 혹시 눈새는 온화한 성격인 거야? 인간에게 우호적인 거야?”

“그건 아니야. 눈새는 눈보라처럼 사납고, 인간을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눈새가 경계심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 있어.”

“그게 누군데?”

성냥팔이 소녀처럼 홍조를 띤 루나를 보며 나는 웃었다.

“아르테미스.”

***

소설에서 루나가 별의 샘물을 손에 넣은 것은 우연이었다.

루나는 언젠가 쿠훌린이 들려줬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혹한의 땅으로 떠난다. 그렇게 눈새를 마주한 루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눈새는 루나에게 우호적이었고, 의사소통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눈새는 루나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을 알아본다. 그즈음 루나에게는 은월병의 징조가 드러나고 있었다.

– 별의 샘물이 도움이 될 것이다.

눈새는 루나에게 별의 샘물을 가져가라고 한다. 마침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며칠 남지 않았기에, 루나는 그곳에서 눈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루나는 눈새와 많은 이야기를 한다. 소설에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상세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눈새가 루나의 궁금증을 그리 많이 해소해 주지는 못했다는 거다.

– 나는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눈새는 자신의 기억이 불완전하다고 말했다. 또, 루나를 괴롭히는 은월병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병이라고도 했다.

이후 별의 샘물과 함께 혹한의 땅을 벗어난 루나는 눈새와 나눴던 대화와, 자신이 아는 지식과, 대륙을 돌아다니며 파악한 여러 정보를 취합해 ‘별의 엘릭서’를 만드는 것에 성공한다.

여기서도 그래야 했는데.

.

.

.

“이, 이, 이런 미친 금발! 누, 눈새가 공격 안 할 거라면서! 안 할 거라면서어어어!”

엘리샤가 오리처럼 꽥꽥댔다.

우리는 하얀 산맥에 도달했다.

그런데 눈새가 미쳤다.

녀석은 이곳에 두 명이나 있는 아르테미스를 알아보지 못했다.

키요오오오오오!

눈새가 울자 눈사태가 일었다.

부리에서 빙결의 폭풍이 쏟아졌다.

날갯짓할 때마다 눈보라가 몰아쳤다.

사실 우리는 눈새의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새하얗게 밀려드는 눈과 바람의 악의(惡意)를 봤을 뿐이다.

“우, 우리는 여기서 죽을 거야! 싹 다 죽을 거라고! 아직 시집도 못 갔는데! 아기도 못 가져봤는데에에!”

엘리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었다.

눈사태로부터 몸을 숨길 동굴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벌써 죽었을 거다.

“다, 단장! 어떻게 좀 해 봐요! 당신 아르테미스잖아! 소드마스터잖아!”

꽥꽥! 오리샤가 쿠훌린을 다그쳤다.

그러나 쿠훌린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싸워서 이길 수 없다면 피해서 가는 수밖에요.”

내 말에 루나가 동의했다.

“별의 샘물은 하얀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다고 했지? 눈새를 피해서 가자 데미안. 너와 나, 둘이서.”

나는 조금 놀랐다.

내 생각과 루나의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몸집이 작은 나와 루나가 눈새의 눈을 피하기 좋다.

또, 미끼 역할에는 상대적으로 덩치가 큰 쿠훌린과 엘리샤가 적격이다. 게다가 그들은 강하고, 실전 경험이 많다. 우리가 미끼가 되는 것보다는 훨씬 생존 확률이 높을 거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미끼가 되어줘야겠어요. 어른이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루나의 말에 엘리샤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루나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내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데미안.”

“잠깐만.”

“왜?”

“우리가 먼저 나가면 안 돼. 미끼가 먼저 가야지.”

“아.”

“미끼라니! 내가 미끼라니!”

엘리샤의 비명을 무시하며 나는 아공간에 손을 넣었다.

혹시라도 이런 상황이 생길까 봐 준비한 것이 있었다.

빌어먹을.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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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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