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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8

67. 약혼관계 – 레나, 미안해

레나는 살았다.

노구화호를 잡은 직후 전사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레나의 상태를 보고는 사냥감을 싣고 나르는 썰매를 끌고 와 그녀를 싣고 내달렸다.

그 이후,

“똑바로 들어라! 이 멍청한 자식!”

집으로 잡혀 온 레오는 노엘 덱스터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하고도 모자라 큰 물통을 들고 벌을 받았다.

“그까짓 것을 잡겠다고 목숨을 걸어?!”

노엘은 화가 풀리지 않는지 무릎 꿇은 아들 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잔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기사가 되겠다는 녀석이 공명심에 눈이 멀어서 제 목숨을 소중히 하지 않다니. 못난 녀석. 기사가 지켜야 할 것은 올바른 신념이야. 그까짓 작은 명예가 아니라!”

그의 훈계는 온종일 이어질 기세였으나, 데호르만이 친우를 말렸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그만하게. 그리고 기사인 자네에겐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우리 부족사람들에겐 큰 업적인 것이 맞네.”

그는 레오를 두둔해줬지만, 심경이 복잡한지 평소와 달리 웃지 않았다.

사실 레오는 데호르만에게도 혼이 났다. 레나가 긴급히 호송되기 전에 데호르만은 애들이 멋대로 마수를 사냥하다 사고가 났다는 말을 듣고 엄청나게 화를 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이 된 레오는 그 자리에서 데호르만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

큰 부상을 당해 썰매에 실린 레나도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에게 걷어차일 뻔했으나 부족원들이 달려들어 뜯어말렸다.

“대전사님! 고정하세요. 얘들이 멋대로 규칙을 어긴 것은 맞지만, 일단 치료는 하고 혼을 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이건 엄청난 업적이에요. 대전사의 시련을 통과한 것이나 마찬가지… 죄송합니다.”

말리던 한 전사는 데호르만의 부릅뜬 눈을 보고는 깨갱 눈치를 봤다.

대전사의 시련.

아이나르 부족뿐만 아니라 북부의 많은 야만인 부족들에는 일명 ‘대전사의 시련’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건 부족에서 두루 인정받은 몇몇 젊은 전사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것이었다.

다섯 명 이하로 꾸려지는 시련 참가자들은 외부의 도움 없이 그들의 힘만으로 마수를 사냥해야 했는데, 그 시련에서 독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독을 이용해 잡은 사냥감을 누가 먹는단 말인가.), ‘시련’인 만큼 덫의 사용도 금지되었다.

데호르만도 과거에 대전사의 시련을 치렀다.

그를 포함해 다섯 명으로 출발했던 전사들은 세 명이 되어 돌아왔다.

그 세 명은 나란히 아이나르 부족을 대표하는 대전사가 되었고, 그들은 함께 술잔을 기울일 때면 항상 죽은 두 전우를 위한 잔을 따로 두었다.

대전사의 시련은 대단히 위험했다.

많은 경우 다섯이서 출발한 전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런 야만적인 풍습이 뚜렷한 규칙을 두고 이어져 내려오는 까닭은 북부의 미신 때문이었다.

마수들은 새끼를 치지 않음에도 어디선가 끊임없이 자연 발생했다.

북부의 야만인들은 이 현상을 두고 신께서 전사를 시험하고자 함이라 믿었다. 그래서 몇몇은 위대한 전사가 되고자 소수의 인원으로 자신의 운명을 시험했다.

마수를 사냥해 대전사로 인정받은 이들은 다른 마수를 사냥하러 다니지 않았다. 그들은 다음에 탄생할 위대한 전사를 위해 영광을 양보했다.

데호르만과 같은 대전사들이 정작 부족의 사냥이나 도축에 잘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사냥팀을 이끄는 이유도 그 양보와 비슷한 맥락에 있었다.

시련에 도전하지 못한 전사들이 팀으로 사냥하다 마수와 조우했을 때, 그들도 위대한 시험에 작게나마 참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전사들에게 시련이란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노엘이 말했다.

“일어나.”

레오는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께 얻어맞은 다리가 휘청였다.

노엘 덱스터는 여전히 엄한 표정이었지만, 몸을 돌려 데호르만에게 레나의 안부를 물었다.

데호르만은 딸의 무사함을 알렸다. 한동안 교회에서 요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며 레오에게 눈짓했다.

안절부절못하는 레오의 심경을 읽은 것이다.

레오는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밖으로 나왔다. 교회를 향하는데 부족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레나와 레오는 대전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고작 두 명이서 마수를 잡기는 했으나 덫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치열한 혈전이 벌어졌던 계곡을 본 아이나르의 전사들은 “그래도 이 정도면 대전사의 자격을 내릴 법하지 않나?”라며 수군거렸다.

다리에서 피를 쏟으며 사방팔방으로 날뛴 여우의 흔적은 그만큼 어마어마했다.

레오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는 교회 병동에서 레나를 찾았다.

그녀는 잠들어 있었다.

사제의 치유가 좋긴 좋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을 피멍이야 그대로 내버려뒀지만, 부러졌던 팔다리뼈는 벌써 단단히 붙어있었다.

다만, 갈비뼈가 조금 어긋나게 맞춰졌는지 그녀의 흉부 왼편은 눈에 띄게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레나, 미안해.’

그녀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본 레오는 병상 옆에 앉았다. 그리고는 자책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전쟁을 피하려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변명은 다친 레나 앞에서는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얼굴 왼편을 덮은 시꺼먼 피멍. 얼마나 아팠을까. 어깨도 으스러져서 터졌었는데… 치유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레나, 미안해.’

{사냥} 이벤트에 성공하고 레나가 크게 다치면서 처음으로 약혼관계 시나리오에 새로운 루트가 열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된 우리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레오는 {사냥} 이벤트 이후에 할 일을 이미 오래전에 계획해 뒀다. 전쟁에 나가지 않게 되었을 때,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기 위해 해야 할 일…

‘레나, 미안해.’

{귀족 사회} 정보에 따르면 레나를 공주로 만들 방법은 세 가지였다.

[왕자의 광적인 사랑] 또는 {혈통} 이벤트 또는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인데, 고귀한 혈통이 없는 약혼관계 시나리오는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스틴 왕국에서의 반란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십수 년 전 북부 왕국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겪으며 두 개의 왕국으로 쪼개졌다.

아스틴 왕국과 아스터 왕국이다.

그 참담한 내전은 아스틴 왕국에 빈곤과 위대한 소드마스터인 아르펜 알바세테 남작, 그리고 중앙집권체계를 남겨주었다.

‘구일 전쟁’ 당시 수많은 귀족이 죽었다.

기사들과 달리 귀족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이 어느 진영을 지지하는지 밝혀야만 했는데, 귀족은 쉽게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들은 몸을 숨긴 기사들의 표적이 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귀족이 암습으로 명을 달리했다.

더군다나 당시는 서쪽이 아스틴 왕국, 동쪽이 아스터 왕국이 될 거라는 것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서쪽에 영지를 두고 아스터 왕국을 지지했던 귀족들은 대부분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았더라도 영지를 몰수당했다. 이건 아스틴 왕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양국 귀족의 수가 격감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영지들이 왕의 소유가 되면서 왕권이 비대할 정도로 커졌다.

하지만 이건 정상적인 권력의 변천사가 아니었다.

온 국민과 국토를 왕 홀로 다스릴 만큼 행정 시스템이 발전한 것도, 귀족을 대체할 새로운 권력 집단이 그 자리를 메운 것도 아니었다.

결국, 신체제를 표방한 구체제의 재탕이 이루어졌다.

가문을 이어받지는 못했으나 어엿한 귀족인 차남들과 천시받던 서자들에게 권력이 양도되었다. 그들은 빈 영지로 왕의 대리자로서 파견되었다. 이곳 에이브릴 성과 마찬가지로.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오직 성(姓)뿐이던 차남, 서자들은 기쁘게 이를 받아들이며 왕께 충성을 맹세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아스틴 & 아스터 왕국의 왕권은 그 옛날 아카이아 제국 시절의 황제를 떠올릴 만큼 강력해졌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자신이 맡은 영지를 세습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부릴 것이고, 차츰 본래의 귀족 사회로 환원하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대리인으로서 왕의 명령에 충실했다.

이건 지금껏 있었던 약혼관계 시나리오에서 아스틴 왕국이 대놓고 병사를 ‘징집’할 수 있던 까닭이기도 했다.

국토 대부분과 평민들이 왕의 소유였으니까.

귀족 사회가 멀쩡히 돌아가는 벨리타 왕국은 사정이 아주 달랐다. 벨리타 왕국은 왕실이 나서서 병사들을 ‘모병’해야 했다.

왕실의 소유인 영지에서야 징집이 가능했으나, 귀족의 소유인 영지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해서 벨리타 왕실은 영주에게 양해를 구한 뒤, 모병을 했고, 왕실이 병사들에게 내놓은 돈 대부분은 해당 영지의 귀족이 세금으로 걷어갔다.

‘레나, 미안해.’

일시적이나마 중앙집권체계가 갖춰진 이 아스틴 왕국을 뒤엎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레나의 나이와 약혼 때문에 오랜 세월을 들여 반란을 계획할 처지도 아니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이렇다 할만한 것이 없었다.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시작점인 오른 왕국 같은 경우는 (중앙집권체계도 아닐뿐더러) 야만인들을 탄압한다는 여지라도 있었다.

하지만 여긴 공식적으로는 야만인이 아예 없었다.

북부 왕국들은 야만인들을 국민으로 받아들인 게 옛날이었다.

그러니 남은 방법은…

레오가 레나의 손을 꾸욱 움켜쥐었다.

‘미안해.’

약혼관계 시나리오는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세 명의 레오들 중에서 가장 강한 레오가 있는 시나리오이지만, 왕이 되기에 가장 까다롭고, 크나큰 모순이 내재되어 있었다.

약혼관계 시나리오에 걸려있던 모순, ‘약혼’을 깨야 할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는 레나와 파혼할 계획이었다.

[ 업적 : 마수 사냥 – ‘1’,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마수를 사냥해 힘을 얻을 길이 열렸으니 다른 시나리오에 도움이 되도록 이 시나리오에서는 힘을 쌓기만 할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세 개의 시나리오 중 하나만 깨면 정말 끝일까?’

소름돋는 의문이 매 시나리오가 시작될 때마다 그를 괴롭혀왔다.

이 잔혹한 게임이 고작 거지남매의 {혈통}을 되돌려주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결론은 부정적이었다.

이 게임은 정말이지 높은 확률로 세 개의 시나리오 모두를 클리어하라 강요할 터였다.

민서에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 사망하셨습니다. 2/3 ]

[ 업적 : 두 번째 사망 – 플레이어가 레오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

그러니 두 번의 사망으로 레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회차가 아직 11번째밖에 되지 않은 지금이 파혼을 시도해볼 마지막 기회였다. 진짜 레오 덱스터는 절대로, 결단코, 레나와 파혼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

‘레나, 정말 미안해.’

레오는 레나의 손을 놓았다.

사실 그는 이번 약혼관계가 시작된 날부터 이 순간을 대비해왔다.

첫날, 레나가 훔친 맥주를 숨기고 헐레벌떡 계단 위로 뛰어왔다. 헥헥거리며 같이 술을 마시자고 생떼를 썼으나, 레오는 거절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뒤, 대장간을 들락거리는 동안에도 공터를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정이 들면 안 됐다. 이제부터는 레나에게 못되게 굴어야 하니까.

레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상을 지었다.

앞으로는 레나가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네더라도 무시해야 할 것이다. 그녀가 짓궂게 장난치거든 애 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고 지적해 무안을 주어야 한다.

레나가 나를 싫어하도록.

그래서 파혼하자는 말을 꺼냈을 때, 그녀가 덜 상처받고 덜 슬퍼하게끔.

물론, 왕자를 찾을 때까지 레나와 살갑게 지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파혼하겠노라는 마음을 숨긴 채, 그녀와 잡담하고 떠들 수도 있다.

하지만 레오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그렇게 요령 좋은 인간이 못 되었다. 아니, 그거야말로 레나를 우롱하는 짓이라 생각했다.

언제고 나란히 기사가 되어 레오와 결혼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에게 불시에 비수를 찌르고 싶지 않다.

상황에 몰려 레나와 헤어질 궁리를 하게 됐지만, 마지막에 그녀가 조금이라도 덜 슬프기를 바란다.

그러니… 서서히 거리를 두겠다. 그녀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레오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래로 으스러지게 쥔 주먹이 떨렸다.

신이 원망스럽다. 이따위 것을 게임이랍시고 만든 놈이 밉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내가 밉다.

인간을 장난감 다루듯 살벌하게 쥐어짜는 게임. 이에 당당히 맞서 왕이 되겠노라 나서지 못하고 파혼해 공주를 만들겠노라는, 그나마 손쉬운 길을 택한 멍청이가 바로 나다.

하지만, 거대한 대륙에 깃발을 꽂고, 수많은 백성의 우러름을 받으며 영악한 귀족들 위에 군림하는 왕(王).

그건 대통령은 고사하고, 중학교 학급의 마흔이 되지 않는 꼬맹이들 사이에서 반장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그가 쉽사리 목표할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레오가 눈물을 훔치는 사이 창가에 노을이 내렸다. 그는 레나가 노을에 비쳐 낙엽처럼 빛나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푸석하지만 풍성한 밀짚 머리, 부드럽게 높은 콧대, 두껍고 곧은 눈썹, 세모꼴로 귀엽게 접힌 귓바퀴, 평소에는 고집스럽게 다물렸지만 잘 때만큼은 살짝 벌어지는 입술…

그리고 낮게, 규칙적으로 내쉬어지는 숨결.

그는 레나의 모습을 꼼꼼히 눈에 담았다. 지금이 그녀를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니까.

앞으로는 거짓 감정을 내비치며 그녀의 눈을 피해야 할 테니까.

레오가 벌떡 일어났다.

‘이런 짓도 하면 안 돼.’

이를 악물어 각오한 그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병동을 떠났다.

“흐음냐. 여우 자바따아… 네오낭…”

레나가 잠꼬대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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