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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8

68화 혼돈 (3)

68화 혼돈 (3)

‘별의 샘물’이 되기 전의 샘물에 정확히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눈새가 가끔 그 샘물로 목을 축인다는 것과, 소설 속의 루나가 샘물을 마신 후 몸 안의 마력이 더욱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

그런데 그 안정이라는 것이, 세계수의 혼돈과 아주 궁합이 좋았던 모양이다.

빠드드드드!

내 손에서 뻗친 나무줄기들이 넓게 펼쳐졌다. 충분한 수분을 보충해 순식간에 자라나는 식물처럼. 그것이 빙결의 폭풍을 가로막았다. 그러면서 나는 확실히 봤다. 지금의 눈새는 정상이 아니다. 몸 곳곳에 얼룩처럼 번진 저 검은 깃털 때문이겠지.

나의 의지를 받아들인 나무줄기들이 더욱 길게 몸을 늘였다. 눈새를 휘감기 시작했다.

키요오오오오오!

눈새가 몸을 뒤틀었다. 엄청난 힘과 분노가 줄기를 통해 전해졌다. 오래는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눈새와 싸워 이기려는 것이 아니다. 내 목표는 눈새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드는 검은 깃털들이다.

나무줄기에서 빛이 뿜어지며 검은 깃털들이 진동했다. 일부는 눈새의 몸에서 이탈해 떨어졌다. 나머지는 점차 희게 변해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70도 기울어 있습니다.】

내 머릿속에 각인된 메시지.

【리메이크의 위력이 70퍼센트 감소합니다.】

57퍼센트 이상 감소했을 거라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70퍼센트나 될 줄이야.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16도 기울어집니다.】

달빛나무 축제 때.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14도 기울어집니다.】

루나를 처음 봤을 때.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13도 기울어집니다.】

그리고 퀵피를 탔을 때.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

– 수달■■■팡: 뭐■ 세실 ■■였음?

└ Flap■l■m■o: 뭔가 ■■ 뉘■스가 계속 느껴지기는 했는데 ㄹㅇ■네

【RP가 ■■■ ■■합■다.】

– 세■■랑: 세실이 ■■라니! ■■■니! 더 좋아! ㅋㅋㅋㅋㅋ

└ 박■■간: 넌 세■커 자격이 없다 ■ 진■■터 암

└ ■■전사: 박■■끼 잘난 척 ㅋㅋㅋ

└ 박■■간: ㄲㅈ

【RP가 4■■ ■■합니다.】

.

.

.

– ■■리바라기: 근데 카인 ■■는 뭐임?

└ ■■전사: 몰루

└ 강아지■■옹■옹: 카■ ■■ 거임? ■ ■임?

【■■가 ■■큼 상■■■다.】

.

.

.

– 먼■털■간질: 앗 ■■ 변신

【R■■ ■■큼 상■합■다.】

.

.

.

이럴 수가.

나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동안 댓글이 뜨지 않은 이유는 작가가 연중했기 때문도, 한 화에 10만 자를 욱여넣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댓글은 달리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키요오오오오오!

눈새의 포효가 나의 정신을 깨웠다.

나는 내가 발현한 혼돈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구속력이 헐거워진 눈새가 날개를 휘둘렀다. 그러자 가공할 돌풍이 쏘아져 내려왔다.

나는 혼돈의 일부를 떼어 나와 루나의 몸을 묶고, 땅속에 뿌리 내렸다. 달아난다는 선택지는 없다. 눈새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먼저일지, 아니면 혼돈이 사라지는 것이 먼저일지 목숨을 건 도박일 뿐.

파드드드드드!

돌풍이 우리를 덮쳤다. 부릅뜬 두 눈에서 습기가 증발했다. 안구가 뽑혀 날아갈 것 같다. 그 와중에도 나는 혼돈에 집중했다. 혼돈은 분명 약해지고 있지만, 미스트를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샘물을 마셨기 때문일까. 세계수로부터 포식한 혼돈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쩌면.

“······!”

나는 루나의 비명을 들었다. 돌풍 탓에 들릴 리 없었건만 내 안의 무언가가 감지했다. 루나는 죽은 식물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홍조가 사라졌다. 파랗게 질려가고 있다. 질식 증상이다.

‘너와 카인은 참 비슷한 것 같아.’

루나의 말은 사실이다. 나는 카인과 비슷한 면이 많다. 그래서 무한회귀를 읽을 때 카인에게 이입할 수 있었다.

그래. 다시 한번 이입하는 거다. 나는 나의 혼돈이 이전보다 강해진 이유에 주목하고 있다. 어쩌면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그때보다 오른(현실)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 아닐까. 리메이크 스킬과 반대로, 내가 이 세계를 현실로 인지할수록 혼돈은 더욱 강력해지는 것이 아닐까.

감정을 폭발시켜라. 나는 덧씌워진 이 세계의 주인공이다. 그런 내 곁에서 루나가 죽어가고 있다. 눈새를 되돌리지 못하면 나 또한 죽는다. 그렇게 되면 리아논도 디네베도 죽는다.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그그그그······!

거대한 쇳덩이가 긁히는 듯한 소음이 머리를 울렸다.

【아스트레아의 천칭이 오른쪽으로 13도 기울어집니다.】

꺼져가던 혼돈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마치 수천만 개의 성냥에 동시에 불이 붙은 것처럼.

내 몸 안에서 폭발적으로 혼돈이 방출됐다. 더욱 길고 단단해진 나무줄기들이 눈새를 덮쳤다. 눈부신 빛을 뿜었다.

키요오오오오오!

빛의 줄기에 포박된 눈새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명을 질렀다. 나는 눈새의 외형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깃털이 더욱 하얘졌다.

악의가 사라진 눈동자에서 옥빛의 광채가 일었다.

【■■의 파편을 포식합니다.】

눈폭풍이 잦아들었다.

나의 혼돈도 그에 맞춰 사그라졌다.

별무리 가득한 밤하늘에는 고고하게 날갯짓하는 순백의 새가 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생명체가 유유히 하강해 내 앞에 내려섰다. 루나를 향해 말했다.

– 이그드라실인가.

.

.

.

나는 깨달았다.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 속의 눈새가 루나에게 우호적이었기에, 그리고 루나의 핏줄에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기에 나는 눈새가 ‘아르테미스의 핏줄’에 반응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새는 루나에게서 아르테미스가 아닌, ‘이그드라실’을 봤다.

– 곧 깨어날 것이다.

눈새의 몸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빛이 루나를 감쌌다. 루나의 안색이 빠르게 회복됐다. 눈새는 같은 방식으로 내 몸도 회복시켜 줬다.

루나는 머지않아 눈을 떴다.

“루나.”

몇 차례 눈을 깜빡이던 루나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표정이 멍한 것이, 아직 제대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했다.

“······데미안?”

멀뚱멀뚱 주위를 돌아보던 루나의 눈동자가 화등잔처럼 커졌다.

“누, 누누누눈새!”

튕기듯 몸을 일으킨 루나가 검을 뽑았다.

순식간에 변하는 루나의 표정을 보며 나는 웃었다.

“이제 괜찮아, 루나.”

“응?”

“눈새는 정상으로 돌아왔어.”

“저, 정상?”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눈새를 바라봤다.

– 깨어났는가. 이그드라실.

루나의 눈이 다시 커졌다.

“누, 누누눈새가 말을 해!”

아, 내가 말해주지 않았었나.

루나는 아직 눈새를 못 믿겠는지 내 옆에 달라붙어 있었다.

– 경계할 필요 없다. 이그드라실.

“무, 무슨! 우리를 막 죽이려고 했으면서!”

루나가 으르렁댔다.

묘하게 쿠훌린과 표정이 닮아서 웃겼다.

– 나는 정신의 침식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그드라실의 혼돈이 나를 되돌렸다.

내가 물었다.

“세계수 이그드라실의 혼돈을 말하는 거야?”

“세계수? 혼돈?”

루나가 빠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하긴, 루나는 세계수와 혼돈에 대해 알지 못하니까.

– 그렇다. 나와 세계수 이그드라실은 본래 하나였다.

뭐라고?

– 그대와 함께하는 존재 역시 우리와 하나였다.

주머니 안에서 먼지가 튀어나왔다.

먼지를 본 루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녀 버전의 디네베를 제외한다면, 먼지를 보는 사람은 루나가 처음이었다.

“귀, 귀여워······!”

눈새가 날개 한 짝을 바닥에 드리우자 먼지가 계단처럼 그것을 밟으며 올랐다.

먼지는 눈새의 머리 꼭대기에 자리를 잡았다.

– 오랜만이군 브류나크. 나의 형제여.

나는 언젠가 디네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은빛 늑대로 변한 먼지의 등 위에서 디네베는 내게 물었었다.

‘이 아이의 진짜 이름을 아니?’

눈새에게 물었다.

“너는 이름이 뭐지?”

– 라바다.

눈새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아마도 소설 속의 루나는 알고 있었겠지.

나와 루나도 라바다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 그대는 라플라스였던 것인가.

“그 이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거야?”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던 라바다가 소설에서와 같은 대답을 했다.

– 나는 기억의 일부를 잃어버렸다.

빌어먹을 녀석.

저래서 소설 속의 루나도 그다지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구나.

그래도 궁금한 건 전부 물어봐야지.

“우리와 함께 왔던 두 사람은 어떻게 됐지?”

– 그들은 무사하다.

나와 루나가 서로를 보며 히죽 웃었다.

“너는 왜 정신의 침식을 겪고 있었어?”

– 혼돈 때문이다.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혼돈은 세계수 이그드라실에도 담긴 힘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라바다는 이그드라실과 원래 하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라바다 역시 혼돈을 품고 있을 터인데.

– 그대는 혼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동안 혼돈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그리고 나는 혼돈에서 리메이크 스킬과 유사한 기운을 느꼈다.

그래서 가정했다. 만약 리메이크 스킬과 혼돈의 본질이 같은 것이라면, 그래서 두 힘의 구동 원리가 동일하다면 리메이크 스킬을 탐구함으로써 혼돈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데미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지금의 선택이······】

리메이크 스킬을 발현할 때마다 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세계가 흑백으로 변하고, 진동하고, 어디선가 튀어나온 활자들이 요정처럼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활자들을 나는 이 세계의 원자 같은 것, 다시 말해 세계의 기본 요소로 받아들였다.

“이 세계를 이루는 본질(本質).”

– 흥미로운 답변이군.

“아니라는 거야?”

– 아까도 말했듯, 나는 기억이 온전하지 않다. 그러나 형제들 덕분에 일부의 기억을 되살릴 수는 있겠군.

라바다의 몸이 희게 빛났다.

그와 동시에 먼지가 라바다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렸다. 착지한 먼지는 커다란 은빛 늑대가 되어 있었다.

루나가 아앗! 소리쳤다. 먼지와 라바다가 부드럽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고 보니 먼지와 라바다의 눈이 닮았다. 보석 같은 옥빛 눈동자.

– 브류나크는 많은 힘을 잃었다.

라바다의 몸에서 발하던 빛의 일부가 먼지에게 흡수됐다.

– 브류나크는 혼돈의 감옥에 갇혀있다. 이유는 그대가 알고 있을 것이다.

알기는커녕 생각지도 못했다.

혼돈의 감옥이라니.

– 브류나크가 지녔던 힘의 일부를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깨워주었다. 덕분에 나도 그의 일부를 깨워줄 수 있게 되었다.

먼지가 나를 돌아봤다.

먼지는 지난번에 변신했을 때보다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은빛의 털도 더욱 밝게 빛났다.

그럼에도 나는 녀석이 내가 아는 먼지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그대는 세계수의 혼돈으로 나를 되돌렸다. 그동안 이그드라실은 자신의 혼돈을 제어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 힘이 라플라스, 그대에게 전해졌다.

“이그드라실이 혼돈을 제어하기 위해 노력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혼돈은 원래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지닌 힘이잖아.”

라바다의 대답이 나를 놀라게 했다.

– 그대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혼돈은 원래 우리의 힘이 아니었다. 나도, 이그드라실도, 브류나크도, 그 외의 모든 존재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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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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