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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8화 결행 (1)

8화 결행 (1)

역시 나는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소설 속 세계에 떨어진 후 처음으로 보았던 시체.

광산에서의 첫 하루를 보낸 다음 날, 숨이 멎은 채 발견됐던 소년.

119번.

키에에엑!

119번이 괴성을 지르며 창자루를 잡아 뽑았다. 시커먼 구멍에서 먹물 같은 피가 쏟아졌다.

놈이 내게 나무창을 휘둘렀다. 마석 단검으로 막았지만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났다.

[하센베르크 격투술(Lv.1)이 낙법을 시도합니다.]

데굴데굴 구른 나의 몸이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어느새 코앞엔 도끼날이 있었고, 나는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피했다.

혼란스럽다. 나는 여전히 눈앞의 상황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한회귀의 세계관에 언데드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무한회귀는 언데드가 없는 세계였어. 그런데 어떻게.’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119번이다. 나는 이 세계에 진입했던 날 F조의 모든 소년을 관찰했었다. 그 안에는 119번도 있었다. 그리고 녀석은 죽었다. 차갑게 굳은 시체가 수레에 실리는 광경을 똑똑히 봤다.

‘그렇다면.’

나는 통찰을 발현했다.

————————

◎ 토Φ■ 마■ [1Ω세]■ ΔLv.■■]

■ 속Σ: Φ■■■

Φ ■성■ [망■■ 육Φ]

■ 적Δ: [ΩΣ ■v.■]Δ [탐■ Lv.2■

Δ ■반 ■킬Φ [■Δ기 L■Ω2], [물Δ■기 Lv.■]

◎ ■Φ 스■: ■흡Σ Δv.Φ■

————————

지금까지 본 중 가장 지저분한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레벨은커녕 무슨 능력을 지녔는지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30레벨의 병사를 통찰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카앙!

손도끼와 마석 단검이 재차 부딪쳤다. 나의 몸이 또다시 옆으로 밀렸다. 무지막지한 힘이다.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다.

‘도망쳐야 하나.’

아직 동기화의 시간은 남아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목숨을 걸고 파훼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탈출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여전히 미심쩍다. 여기서 죽어도 괜찮은 걸까. 동기화로 카피한 회귀의 힘을 믿어도 되는 걸까.

난 죽으면 정말, 회귀할 수 있는 걸까.

마석 단검과 손도끼가 부닥치며 불꽃을 튀겼다. 놈은 마구잡이로 무기를 휘둘렀지만 대응이 쉽지 않았다. 관절의 가동 범위가 인간을 넘어섰다. 거기에 더해 나무창까지 휘두른다.

[하센베르크 격투술(Lv.1)이 반격의 실마리를 잡습니다.]

기회가 왔다. 녀석이 나무창을 크게 휘두르며 틈이 생겼다. 놈의 품으로 파고들며 마석 단검을 뻗었다. 둔탁한 파육음과 함께 놈이 비명을 질렀다.

[단검술(Lv.1)을 획득합니다.]

이번의 공격은 유효했다. 놈의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불에 덴 것처럼 쭈글쭈글해졌다. 어떻게? 고작 이 정도의 공격이 가슴을 관통시킨 최초의 일격보다 효과적인 거지.

‘마석의 힘?’

우우웅, 마석이 진동했다. 실제로 진동했다기보다는 나의 심장이 그렇게 느꼈다.

나는 찰나의 틈을 노려 상대의 손등을 베었다. 놈의 손가락이 뭉텅 잘리며 나무창이 떨어졌다. 그것을 걷어차며 마석 단검에 통찰을 시전했다.

◎ 개화하지 않은 라이프 스톤

[생명의 힘이 잠재된 마석.

개화를 마친 라이프 스톤은 순도와 마력량에 따라 상처를 치유하거나 소모된 체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라이프 스톤이라고?’

라이프 스톤. 무한회귀 세계에 등장하는 마법석(魔法石)의 한 종류다.

무한회귀의 마석 설정은 독특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채굴된 마석의 대부분이 ‘무속성’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후 개화한 마법석은 속성에 따라 저마다의 고유한 빛을 가진다.

‘라이프 스톤은 녹갈색이었지.’

하지만 내 손에 들린 단검은 회백색. 그렇다면 이 상황은.

머릿속이 가속하며 인과를 짜 맞췄다.

나에게는 자연 감응 적성이 있다. 자연 감응은 통찰과 교감이 가능하다. 그리고 라이프 스톤은 자연 감응력이 높은 이들이 애용하는 대표적인 마법석이다.

결론은.

‘통찰의 눈으로 알아본 거야. 마석의 잠재력을.’

이 마석 단검에는 생명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 그 힘이 상대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가했다.

‘녀석은 언데드야.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생각한다면 생명의 힘에 취약할 수밖에.’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마석에 담긴 잠재력만으로 놈을 쓰러뜨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을 증명하듯 놈의 상처는 재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도 비장의 수는 남았다. 나는 카인과의 대결에서 그것을 시험한 적이 있다.

카앙! 놈이 내리치는 손도끼를 마석 단검으로 막았다. 엄청난 괴력에 저절로 무릎이 굽어졌다. 그것을 견디며 발현했다.

‘리메이크.’

[리메이커가 세계의 현상에 간섭합니다.]

세계가 진동을 시작했다. 나의 시야가 흑백으로 바뀌었다. 신비로운 활자들이 눈앞을 뛰놀며 문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데미안은 손에 쥔 마석 단검에 의지를 주입했다. 그러자 회백색이던 칼날이 녹갈색으로 변화하며 더욱 길고 예리해졌다. 데미안은 놀란 눈으로 단검을 바라봤다. 그렇게 생명의 잠재력만을 지녔던 투박한 마석 단검이 ‘라이프 스톤 단검’으로 변했다.】

끼에에엑!

119번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원인은 명확했다. 재생이 끝나지 않은 놈의 상처에 내가 힐링 블룸을 쑤셔 넣었기 때문이다.

‘좋아!’

힐링 블룸은 치유의 마력을 지녔다. 언데드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나는 놈의 완력으로부터 자유의 몸이 되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짐승처럼 달려들어 놈의 이마에 단검을 꽂았다. 뒤로 넘어진 녀석을 깔고 앉아 수차례 더 단검으로 내리 찔렀다.

퍽! 퍽! 퍼억!

발버둥 치던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헉······! 허억······!”

거친 숨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나는 시체 옆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온몸이 욱신거린다. 이것으로 나는 10레벨이 됐다.

그런데.

[죽일 수 없는 대상을 쓰러뜨렸습니다.]

[레벨이 추가로 상승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 데미안 라플라스 [14세], [Lv.12]

나는 벽을 향해 달렸다.

119번과 싸우느라 너무 시간이 지체됐다. 동기화의 지속 시간도 끝났다. 이제는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

‘테오 녀석.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괜히 나를 찾아보겠다고 숲에 들어오는 것은 위험하다.

조원들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녀석이라 위험한 짓을 벌일 것 같지는 않지만, 지난 회차에서 나를 구하겠다고 감독관과 싸우던 모습을 생각하면 안심이 되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수밖에.’

미니맵으로 힐링 블룸, 언데드, 고블린의 표식을 수시로 바꿨다.

언데드는 보이지 않았지만 간간이 고블린의 표식이 발견됐다.

‘힐링 블룸을 더 찾으면 좋겠는데.’

주머니 속의 먼지가 훌쩍 뛰어내렸다.

나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먼지의 뒤를 쫓았다. 나의 예감은 맞았다. 먼지는 저만치 나무 아래 돋아난 힐링 블룸을 향해 코를 킁킁대고 있었다.

‘잘했어 먼지야.’

나는 먼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먼지가 힐링 블룸을 향해 쩌억 입을 벌리더니, 삼켜버렸다.

‘······.’

나는 멍하니 먼지의 뒤통수를 봤다. 뭐야. 얘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얼른 뱉어 먼지야. 뱉으라고.”

나는 먼지의 입을 억지로 잡아 벌렸다. 이제 막 삼켰으니 바로 꺼내면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 먼지의 입 안에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공간(Lv.1)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아공간?’

아공간이라면 알고 있다.

무한회귀의 세계관에는 마력을 다루는 여러 존재가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아공간이라는 가상의 물리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아공간 능력을 지닌 존재는 흔치 않다. 더욱이 인간형 캐릭터 중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그 희소한 능력을 먼지가 갖고 있다고?

‘먼지야. 너 진짜 최고다.’

먼지가 나를 보며 헥헥 혀를 내밀었다.

아공간의 사용법은 어렵지 않았다.

먼지에게 의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이제 가자. 테오 녀석이 쓸데없는 짓 하기 전에.’

숲을 벗어나기 무섭게 테오의 속삭임이 들렸다.

“데미안?”

테오는 피범벅이 된 내 모습을 보고는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기세였다.

“괜찮아 테오. 내 피가 아니야.”

물론 내 피도 섞여 있긴 하지만.

감독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서둘러 사다리를 올랐다.

“정말 괜찮은 거야? 근데 이게 다 뭐야? 활하고 도끼?”

“고블린에게서 빼앗았어.”

“고블린? 숲에 고블린이 있는 거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일단은 숙소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어.”

***

이튿날, 우리는 갱도의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 밤의 탈출이 성공한다면 우리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작업을.

“데미안. 그 단검은 대체 어떻게 된 건데.”

테오가 라이프 스톤 단검에 관해 물었다.

대충 둘러댔는데 또 궁금해졌나 보다.

“숙소로 돌아가면 마석 단검들을 모아줘. 아니, 갱도를 떠나기 전에 오늘 채굴한 마석부터 봐야겠어.”

“마석은 왜? 괜히 감독관에게 걸리면 귀찮아질 텐데.”

그렇게 말하던 테오가 피식 웃었다.

“아무렴 네게 생각이 있겠지. 그래. 이번에도 너의 직감을 믿어보마.”

나는 지난밤 잠들기 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숲엔 언데드가 있다.

마주친 것은 119번 하나뿐이지만, 더 있을 가능성은 차고 넘친다.

‘이 광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소년들이 죽어.’

죽은 소년들은 숲에 버려진다.

짐승이나 몬스터들이 먹어 치우게 하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119번은 먹히지 않았어. 오히려 몬스터를 사냥하는 포식자가 됐지.’

대비해야 한다.

직접 싸워본 나는 알고 있다.

우리 중 정면 승부로 언데드를 쓰러뜨릴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최대한 확보해야 해. 라이프 스톤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테오에게 방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갑자기 방패를 만들라고?”

“숲에는 고블린들이 있어. 놈들의 화살이나 손도끼 투척에 대항하려면 방패가 필요해.”

아쉽게도 오늘 채굴한 마석 중에서 라이프 스톤의 잠재력을 지닌 것은 없었다.

테오가 보유한 마석 단검 중에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프 스톤은 여러 마법석 중에서도 희소한 편에 속한다.

‘힐링 블룸을 활용하는 수밖에.’

짙어지는 노을을 보며 먼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

.

.

어두운 밤, 내 신호에 맞춰 벽에 사다리가 세워졌다.

가장 먼저 벽에 오른 건 테오와 덩치였다.

그들은 추가로 제작한 사다리를 벽 바깥으로 내린 뒤 조원들을 도왔다.

“조심조심. 천천히 올라와.”

조원들은 비장한 얼굴로 사다리를 올랐다.

이어 반대편 사다리를 타고 벽 바깥으로 넘어갔다.

“잠깐. 감독관들이 와.”

미니맵에 감독관의 표식이 나타났다. 두 명이다.

테오와 덩치가 사다리를 끌어 올렸다. 나를 포함해 벽을 오르지 못한 조원들은 발소리를 죽이며 숙소 앞으로 돌아왔다.

꿀꺽.

우리는 그늘에 도사린 채 상황을 살폈다. 벽 위로 테오와 덩치가 납작 엎드린 것이 보였다. 하지만 감독관은 그들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겠지.

그런데 감독관들이 멈춰 섰다. 테오와 덩치의 바로 아래에서. 감독관 중 하나가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쥐었다. 그의 손에서 금속의 번쩍임이 일었고, 내 옆의 누군가가 헛숨을 들이켰다.

“히엑!”

족제비였다.

그리고 감독관이 주운 것은 족제비가 테오에게 졸라서 얻어낸 고블린의 손도끼였다.

다급히 움직이다가 떨어뜨린 것이다.

“이, 이런 시발······!”

족제비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나 감독관들은 이미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조원들에게 ‘쉿.’ 하며 손가락을 세웠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감독관들은 우리를 발견할 거다. 설령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숙소 안을 확인하겠지.

‘그렇다면.’

라이프 스톤 단검을 쥐며 속삭였다.

“싸워야 해. 족제비.”

“뭐, 뭐라고?”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 싸우는 건 나와 족제비만이다.”

족제비가 울상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덩치에게 배웠던 대로 하면 돼. 놈들이 근처에 오면 내가 시선을 끌겠어. 그때 하나를 공격해.”

“그, 금발 약골 너······!”

“쉿. 조용. 가까이 온다.”

소년들의 몸에서 떨림이 전해졌다.

그와 반대로 나의 심장은 차분하기만 하다.

어떻게 된 걸까. 나는 지금 인간을 죽이려 하고 있는데.

‘아니. 그렇지 않아.’

이 세계는 활자로 만들어진 세상.

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탓!

자세를 낮추며 몸을 날렸다.

감독관들은 모두 덩치가 컸고, 그래서 어둠을 틈타 발밑으로 접근하는 나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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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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