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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

7화 신성(3)

대격변 이후로 아이템을 감정하는 감정사들은 매우 중요한 서포터 직업 중 하나였다.

감정 스킬 자체는 그 수가 적지 않으나 감정사의 수준이 떨어지면, 아이템의 능력치 하나를 빼먹거나, 특수능력을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새 길드의 감정사 강선우는 국내 최고의 감정사 중 한 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눈앞에서 벌어진 기적의 벼를 감정하는 것은 가슴 떨리면서도 결과를 알기에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마법으로 강제 생장시킨 벼는 독소가 있어 사람이 먹을 게 못 돼. 헌터들도 몇 번 먹으면 위 세척을 해야 한다고.’

자연의 섭리란 그러했다.

정당한 과정을 요구하고 그에 걸맞은 시간이 필요했다.

프린팅 푸드니 팜 농장이니 하는 것이 개발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기존의 식량체계를 완전히 대체할 순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처음에는 황금밭에 압도당하면서도 곧 나올 결과에 실망할 수밖에.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벼들을 쌓아 감정을 시작했다. 그의 눈에 마력이 돌고 벼가 품은 요소들이 속속히 드러난다.

[감정 결과]

“어?”

[축복받은 벼]

◆ 등급 : 레어

◆ 상세

생명과 풍요의 신성 데메라 여신의 신성력으로 축복받은 벼입니다.

3등급 질병이 완화됩니다. 지속적으로 섭취 시 높은 확률로 완치됩니다.

“엩?”

그는 파르르 떨며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대격변 이후 포션과 엘릭서 등이 등장하면서 회복 아이템과 질병, 부상 또한 등급이 직관적으로 정해지기 시작했다.

3등급 질병이라면 대부분의 신경계 질환 거기에 초기 암까지 포함한다.

이 벼가 암을 치료한다고? 이 많은 벼들 하나하나가 전부? 이 어마어마한 벼들이 마탑의 값비싼 질병치료제보다 낫다는 것 아닌가?

“가, 감정결과 나왔습니다!”

그는 이 경악스러운 기적의 작물을 모두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감정결과 등급은 레어!”

“응?”

“이, 이 벼들 하나하나가 전부 레어 등급입니다!”

강선우의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당최 이게 무슨 소리냐며 이해를 못 하는 이도 있었다. 지나치게 현실성 없는 소리였던 탓이다.

그러나 강선우가 이 벼는 암도 치유한다는 말을 했을 때는 모두가 뒤집어졌다.

“지, 진짜요?”

“진짭니다!”

이게 왜 진짜야? 하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레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 데메라의 신성이 깃든 볏짚 인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폐, 폐하!”

“무엄하다! 신관장인 본왕이 여신과 대면하고 있거늘!”

“서, 성은이 망극하옵! 아니아니! 죽을 죄를 지었사옵나이다!”

「괜찮단다. 이 세계의 아해가 어찌 신성을 대하는 법을 알겠니.」

자애로운 목소리였다. 마치 흑색 게이트에서 레온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힘이 났던 것처럼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자신의 안이 따뜻하게 차오르는 것 같다.

“데메라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하겠다.”

“예, 예이…….”

그녀는 납작 고개를 숙이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볏짚 인형이 축 늘어져 가고 있었다.

「이만하면 내 역할은 다한 것 같구나. 슬슬 돌아가아할 거 같아.」

“감사드립니다. 대지모신께서 주신 은혜, 언제나 달게 삼키고 되새기고 있습니다.”

「아가, 이 어미가 마지막으로 잔소리 한마디만 하마.」

급격하게 힘이 빠진 듯 신성의 목소리가 힘겨워하고 있었다. 인형에 깃든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챔피언에게 말했다.

「어디 가서 굶고 다니진 마렴.」

그것을 끝으로 볏짚 인형이 무너졌다.

레온은 눈을 감으며 대지의 어머니가 남긴 은혜를 곱씹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납작 엎드렸던 하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저… 폐하? 이것이 대체…….”

“신성이다.”

“신성… 말이옵니까?”

“이 세계에는 신이 없느냐?”

레온의 질문에 하리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물론 지구에도 종교는 존재한다. 여호와, 알라, 부처… 부처는 신이 아닌가? 아무튼.

종교는 존재한다.

하지만 신이 존재한다 말하기엔 조심스럽다.

물론 종교인들은 신이 존재하신다 말하겠지. 하지만 방금 전 목격했던 것처럼 신성이 실재함을 증명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다.

지구 종교의 신들은 그들의 교리 속에서만 실재함을 주장하지, 레온이 보여준 것처럼 기적으로 신성이 실재함을 증명하지는 못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짐이 따르는 만신전이자 신성이시다. 올바른 삶과 세계란 신성과의 조화이니. 너희 지구인들은 이것을 마땅히 따라야 할 것이다.”

한하리는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이미 지구는 기성 종교들이 꽉 잡고 있다. 그들의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알만하다.

비교적 얌전한 편인 개신교도 허구헌날 남의 사원에 들어가 땅밟기와 신사 훼손을 하는 마당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건 현실이다.

실존하는 신성이고 행동하는 기적이다.

하리는 이 시대착오적인 왕을 보며 기이한 신뢰감이 생겼다.

자신들은… 정말로 엄청난 인물을 게이트에서 데려온 건 아닐까? 이 사람은 정말 세계를 바꿔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벼를 베어라! 데메라께 감사하며 절하며 작물의 마땅한 역할을 다하게 하라!”

레온은 호남 평야 한복판에 돋아난 축복받은 벼들로 밥을 짓게 했다. 불새 길드의 호남 평야 게이트 공략권이 만료되기까지 3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 * * *

“마, 말도 안 돼.”

김진수 과장은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축복받은 벼로 지은 쌀밥]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흰쌀밥. 그것이 각성자들의 시스템창에 뜬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었지만, 감정사가 갱신해준 정보는 충격적이었다.

-분당 체력회복력 100 상승.

-분당 마력회복력 50 상승.

-지속시간 8시간.

“미친…….”

무슨 놈의 쌀밥이 버프효과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 효과가 어마어마했다.

“이 정도면 거의 지속 강화제 수준이잖아.”

가격에 비해 끔찍하리만치 성능이 안 나오는 병당 삼백 만원짜리 강화제가 딱 이 정도였다.

“가장니임!”

하리가 공기밥에 삽겹살을 입안 가득 채운 채 다가왔다.

“다 먹고 말해라.”

하리는 꿀꺽 삼키고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과장님 과장님 이거 대박…….”

“뭐냐?”

“이거… 중첩돼요.”

“뭐?!”

김진수 과장을 비롯해 협회 직원들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제가 궁금해서… 벼 말고도 논에서 자란 벌레를 먹어봤거든요?”

“버, 벌레?”

속도 좋아. 어떻게 벌레를 먹을 생각했담.

“그거 먹었더니… 중첩됐어요.”

“진짜로?!”

김진수 과장은 의아해하면서도 논두렁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논에는 벼만 자라는 게 아니다. 자라는 벼를 갉아 먹거나 그 주위에 곤충을 잡아먹는 사슴벌레 등이 즐비하다.

만약 저 축복이 땅 전체에 대한 범위면적 축복이라면… 벼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들이 축복을 받았다 해도 이상한 건 아니다.

곧 게이트 진출을 앞둔 헌터들의 눈에 탐욕이 이글거렸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게이트를 공략하는 이들이다. 정부 소속 헌터에게 최소한의 강화제가 지급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소한이었다.

월급쟁이에게 수백 만원의 강화제는 정말 최후의 보루다. 그런데 지금 지천에 널린 게 공짜 강화제들이었다.

그깟 벌레 좀 먹는 것쯤이야.

“자, 잡아! 한 마리라도 더 잡아!”

갑옷과 검으로 무장한 헌터들이 버선발로 논두렁을 뒤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세 번까지는 중첩이 되는구나…….”

공략대 출발 전, 협회 헌터들의 기세가 날아오를 듯 치솟았다.

* * * *

“길드장님… 괜찮은 겁니까?”

레온이라는 생존자의 등장에 모든 게 어그러지자 부길드장은 이용완의 눈치를 보며 질문했다.

“…….”

당연히 괜찮을 리가 없다.

일부러 던전 브레이크를 유도한 것은 불새 길드로서도 나름 출혈을 각오한 일이다.

명색이 10대 길드인 만큼, 대놓고 적대할 순 없겠지만, 다른 10대 길드에 비해 차등 대우를 할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가장 돈이 되는 주홍색 이상의 고등급 게이트에서 당분간 배제되리라.

‘젠장, 저 자식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이용완은 눈을 감은 채 명상 중인 레온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저놈 때문이다. 저 생존자 놈이 모든 걸 망쳤다. 저놈만 없었어도 크나큰 피해를 입은 정부가 결국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을 텐데.

차라리 게이트에서 뒈져버렸으면 좋겠네.

“응?”

순간, 이용완은 며칠 동안 헤매었던 게이트에 대해 떠올렸다.

“후후후… 이거 나쁘지 않은데.”

“부길드장님?”

“걱정할 건 없어. 그래도 마지막엔 클로징하려고 게이트를 공략해놨었잖아.”

“그렇죠. 중간에 좀… 컨디션이 안 좋긴 했지만… 아!”

주홍색 게이트를 함께 공략했던 부길드장은 이용완의 의도를 읽고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A급이 한하리 한명 뿐이네요?”

그렇다면 결과는 뻔했다. 저 게이트 보스는 헌터 협회의 어중이 떠중이들로는 결코 이길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저 생존자가 있다면…….”

“나조차도 애 먹은 상대다. 땅에 축복을 건 걸 보니 버퍼 계열이야. 지가 왕이라잖냐. 전투능력은 별거 없을 걸.”

어느 쪽이든 결론은 하나다.

게이트 공략은 괜히 공략이 아니다. 게이트의 컨셉과 그에 맞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저들은 결코 저 게이트의 보스를 쓰러뜨릴 수 없다.

보스를 쓰러뜨리지 못한다는 건, 게이트 클로징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비틀린 미소가 죽을 길을 찾아 떠나는 협회 공략대를 환송했다.

* * * *

레온은 게이트 공략이라는 것에 대해 얼추 들었다.

모든 게이트들은 어떤 미션을 중심으로 펼쳐지며, 그 미션을 클리어함으로서 게이트 클로징… 즉 게이트를 없애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보스 몹… 아니, 우두머리가 존재하옵사온데, 그것을 쓰러뜨리면 클로징 되는 경우가 많사옵니다.”

“흠… 우두머리와의 일기토인가. 마음에 드는군.”

“아…….”

하리는 보통 다구리 쳐서 조집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수가 한 마리를 공구리 치는 걸 어떻게 사극투로 우아하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저 잡새들이 일전에 공략을 했다고 들었다만, 의외로 몬스터란 것들이 꽤 많구나?”

레온은 선두에서 싸우고 있는 김진수와 협회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게이트 초입부터 한가득 달려든 스켈레톤들은 검과 방패로 무장한 채 협회 직원들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그것은 이 던전의 특징이옵니다.”

“특징이라?”

“예이… 대부분의 게이트들은 토벌된 몬스터의 숫자만큼 총량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스켈레톤이나 좀비… 악마 등의 특수한 경우 보스 몬스터가 건재하면 무한히 리스폰되옵니다.”

“과연, 그래서 우두머리를 토벌해야만 끝이 난다는 건가. 이해했다.”

하리는 이곳이 사령계 게이트이며 해골들을 사역하는 사령술사가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파티 리더인 김진수 과장도 그렇게 생각했고, 경험적으로 보자면 그럴 확률이 높다.

“확률이 높다는 건 낮은 확률로 다른 것들도 등장하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가령… 너무나 강대한 사념을 지닌 사령이옵니다.”

술사가 아닌 사령 그 자체인 존재. 언실리 페어리라는 존재에 대해 그녀가 설명하려던 그때였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고막을 찢는 것 같은 기괴한 귀곡성이 울린다.

“서, 설마?”

안색이 새파래지는 김진수 과장과 한하리 대리. 다른 협회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용완 개새끼! 왜 저걸 말 안 한 거야!”

[던전 브레이크가 시작됩니다.]

-죽음이 선고됩니다. 게이트 내 모든 생명체의 시한부가 시작됩니다.

-사령기사 듀라한이 사령군대를 이끌고 진군합니다.

-사령기사 듀라한을 쓰러뜨리십시오. 남은 기한 : 3시간 00분

던전 초입. 시작부터 전 군세가 공략대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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