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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0

70화 전자전의 신

대륙에는 거대한 대국이 있었다. 아니, 대륙 그 자체가 대국이라 봐야 할 것이다.

과장과 허세가 좀 있지만, 스스로를 일만 년 역사라 과시하는 대국.

좀 여러 번 삐끗하긴 했지만, 그래도 압도적인 덩치와 인구수로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던 잠자던 사자.

그러나 사자는 잠에서 깨지 못하고 도륙됐다.

대격변.

21세기의 아침을 알린 인류 최악의 재앙은 평등하게 대국을 덮쳤다.

사방팔방에서 우후죽순으로 솟아오르는 게이트. 당시에는 게이트에 대적할 헌터들도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시기.

대다수의 국가들은 게이트에 대처하지 못했고 수많은 토지를 마소로 오염당했으며 던전 브레이크로 뛰쳐나온 몬스터들에게 도시가 부서졌다.

여기까지라면.

아직 체급빨로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었을 것이다.

대국은 사람이 많았고, 땅도 넓었다.

사람 좀 죽어나면 어떤가, 땅 좀 오염되면 어떤가.

10억을 자랑하던 인구가 1년 만에 5억이 됐지만, 멸사봉공의 수십만 태공전사들이 있었다.

당시의 공산당 지도층은 무능하지 않았다.

의외로 이 천재지변 속에서 자국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대국은 너무 컸고, 너무 넓었으며, 너무 거대했으니.

온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게이트와 독재국가 특유의 경직된 대처. 여기에 갑작스레 힘을 얻고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끼치는 태공전사들에 대한 견제와 지방 군벌들의 전력차출 거부.

10년에 걸친 대국의 병폐와 부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인구는 계속해서 줄고, 토지는 오염되고, 식량은 부족해지는 가운데.

2012년 가을.

상하이 게이트.

두 번째 흑색 게이트의 출현과 대악마 스카쟈카리어와 에픽 아이템 방랑의 마검 등장.

상하이 1,500만 인구가 증발한 최악의 대사건.

대국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때의 끔찍한 피해를 시작으로 약화된 중앙정부에 반발해 각지의 군벌들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대국의 역사가 으레 그러했듯 야심 넘치는 군벌들은 스스로 왕을 참칭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늘날 2,034년.

대국은 50개가 넘는 소국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 * * *

여기 동아시아 최북부.

53개로 찢어진 전 대륙국 출신의 두 국가가 있다.

러시아와 인접하고 세계 최대의 곡창지대가 즐비어 선 곳이지만, 그 절반 이상이 던전 브레이크로 오염된 비운의 땅 헤이룽 인민국.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며 지속적으로 군인들과 태공전사, 즉 헌터들이 죽어나간 끝에 오크 이민자를 잔뜩 받은 길림 공화국.

두 국가 모두 한 때는 거대한 대국이었으나 상하이 흑색 게이트로 촉발된 지방군벌 독립으로 생겨난 신생국이다.

불지옥이 된 상하이 연방이나 아크리치 사회주의 공화국, 십만대산의 천마신교에 비하면 찢어진 50개국 중 그냥저냥 존재감 없는 대륙국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제까지의 일. 두 나라는 전세계 해외토픽에 연이어 언급되며 세계에서 가장 ‘핫’한 나라가 되었다.

“크아아암~”

길림 공화국군 오크 상등병 뤼오는 전형적인 오크 이민자다.

정확히는 이민 16세대지만, 두 살이면 성년이 되고 번식을 시작하는 오크 특성상 세대 구분은 의미가 없다.

“보스, 적은 다 어디 있나?”

뤼오 상등병에게 다가오는 오크 인민군들. 그들은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듯 하다.

“옆동네 놈들은 시시하다! 우리가 싸우자고 왔더니 꼬랑지 내밀고 다 도망치다니!”

“인간놈들은 나약해. 전사의 명예 같은 것도 모르는 놈들이야.”

옆동네, 즉 엊그제까지만 해도 같이 남쪽 경계를 서던 헤이룽 인민군이었지만, 오크들은 그런 오래된 과거는 기억 못한다.

그들이 아는 건 오크들의 전설 중의 전설 린샹 오크 대빵이 길림의 대족장이 됐다는 것.

그리고 밥을 많이 먹고 싶으면 저쪽 능선 인간들을 싹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되는 전쟁과 게이트 공략으로 전력이 부족해진 길림 공화국이 자신들이 받아들인 오크 이민자들로 인해 멸망한다는 아이러니는 오크들에게는 알바 아니다.

길림 공화국을 전복시킨 오크들은 파죽지세로 헤이룽 인민국으로 전진했다.

이 모든 게 단순히 옆 동네에 식량이 많다더라, 라는 이유라니 그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평범한 문명사회인이라면 협상과 무역을 했겠지만, 오크들은 지극히 오크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뿐이다.

“옆 동네 아새끼들이 식량을 많이 가지고 있단다!”

“다 죽여버리고 식량을 빼앗자!”

죽이고 뺏으면 되는데, 왜 답답하게 거래 따윌 하겠는가? 사고방식부터가 다른 종족이었으니 상식을 논할 이유가 없다.

“오랜만에 인간 스튜를 해먹을 수 있겠어.”

“빨리 인간들이 나타났으면 좋겠군!”

오크들의 군단은 거침없이 헤이룽 인민국을 향해 전진했다. 그들의 막강한 전투력 앞에 질려버린 헤이룽 군인들과 시민들은 도망친지 오래.

그들은 비어버린 도시라도 약탈할 심산으로 도시에 진입하려 했고, 바로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구오오오오오오오…!

마하 25로 낙하하던 10m짜리 텅스텐 막대였다.

* * * *

“신의 지팡이가 해킹당했다고?”

미합중국 국방부 장관 줄리어스 장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당연했다.

자국의 비밀병기인 위성병기 ‘신의 지팡이’가 갑자기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신의 지팡이.

우주궤도의 인공위성에서 초중량의 탄자를 떨어뜨려 핵병기급 파괴력을 일으키자는 냉전 시기의 물건이다.

본래라면 진작 폐기된 계획이지만, 대격변 이후로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대악마급’ 개체를 저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연히 해당 위성도, 탄자도 본래의 계획보다 훨씬 강화된 그야말로 21세기 미국의 돈지랄이 만들어낸 히든웨폰.

그런 무기가 갑자기 가동됐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G-1 위성의 가동허가를 누가 낸 거야!”

미국에서 신의 지팡이를 가동할 수 있는 ‘비밀번호키’를 보유하고 있는 건 단 세 명뿐이다.

한 명은 미 대통령. 핵가방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상징 같은 느낌이다.

나머지 두 명은 국방부 장관과 미 특수헌터 사령부 사령관뿐.

그리고 그중 한 명 줄리어스 국방부 장관은 결코 이 가동을 승인한 적이 없다. 당연히 대통령도, 헌터 사령부 사령관도 마찬가지.

“해킹…당한 건가?”

줄리어스 장관의 의문에 사령부 군인들이 손사래를 쳤다.

“암호키는 1분마다 바뀝니다. 조합패턴만 1억가지가 넘는다고요. 세계 최고의 슈퍼 컴퓨터를 가져와도 연산에 13년은 걸립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신의 지팡이를 가동했단 말인가?

“젠장, 어떻게든 막아야 하네! 가동 단계에서 막을 방법은 없나?”

“부, 불가합니다! 암호패턴이 더 강화됐어요! 추정 패턴만 100억가지를 넘습니다!”

“그게 무슨 판타지 같은 소리야?!”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는 사이 신의 지팡이는 착착 가동을 준비하며 발사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G-1 목표 특정! 길림 공화국…? 입니다! 길림 공화국?!”

“뭐, 뭔 개소리야? 거길 왜 노려?!”

최근 미국이 골치를 썩히고 있는 지역이다.

오크 군인들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나 갑작스레 시작된 옆나라 헤이룽 인민국과의 전쟁.

평범하게 생각하면 유엔군이든 미군이든 파견하여 사태를 종식시켜야겠지만, 느닷없이 러시아가 개입해 이를 막았다.

헤이룽 인민국이 먼저 길림 공화국을 공격했다는 명분이었다.

당연히 개소리였고, 그 심사가 뻔했다.

오크군이 헤이룽 인민국을 점령하면 그 다음에 헤이룽의 해방자를 자처하며 헤이룽의 곡창지대를 차지하겠다는 거겠지.

미국은 미국대로 이미 찢겨질 대로 찢겨진 대국의 잔재를 보호하기 위해 끼어들 생각이 없다.

유엔도 적당한 비판 성명만 낼 뿐, 이 전쟁을 적극적으로 막을 의지는 없었다.

애초에 한반도 북부부터는 먹어도 먹은 게 아닌 마굴 그 자체였으니.

굳이 러시아가 옹호하는 길림을 치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망할! 이대로 신의 지팡이가 길림에 적중하면 루스키 놈들이 방방 뛸 텐데!’

러시아가 징징거리는 거야 조금 피곤한 문제라 쳐도 미국이 선전포고도 없이 타국을 핵병기급 병기로 공격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줄리어스 장관이 결단을 내렸다.

“G-1에 탄도 미사일 발사해.”

“…….”

누구도 자국의 100억 달러짜리 군사자산을 파괴하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관제실의 군인들은 말없이 가장 가까운 탄도미사일 발사기지에 발사명령을 지시했고──

“장관님… 기지가 답신을 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였다. 어째선지 펜타곤과 연결된 미국 각지의 미사일 기지, 해군 함대 그 어디에서도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설마, 통신이 막혔다?’

대체 어떻게?

의문과는 별개로 시간은 간다.

“통신실에 모스부호로라도 명령 하달하라고 해! 아날로그든 뭐든 동원하라고!”

“통신실에서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전화, 인터넷 전부 먹통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마치 이걸 예상한 것처럼? 아니다. 그렇다기엔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이다. 마치 옆에서 자신의 명령을 듣고 실시간으로 대처한 것처럼.

‘있을 수 없어! 그런 건 불가능하다고!’

가능할 리가 없다. 전세계의 해커들이 일치단결해서 펜타곤을 해킹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줄리어스 장관의 당혹 속에서 관제실의 누군가가 외쳤다.

“5M65 NATO 코드명 그리즐리 가동 확인됐습니다!”

“……왜?”

방금 관제사가 외친 코드명은 러시아의 던전 브레이크 최종기동 프로토콜에나 발동하는 마정석 광출력 레이저 위성병기다.

18년 전, 시베리아 설원에서 서리여왕의 군세를 저격한 러시아 군사기술의 집합체였다.

한번 가동하는데만 천문학적인 마정식이 사용되어 18년 동안 단 세 번만 기동한 병기인데, 어째서 저게 지금 가동했단 말인가.

“그리즐리 렌즈 이동 중! 좌표특정… 길림 공화국 국경지대… 대체 여기에 뭐가 있기에──헤이룽으로 진군 중인 오크 군단?”

그제야 줄리어스 장관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깨달았다.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가 길림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싶어한다. 그것도 오크들을 향해서.

“발사 카운트 다운 시작합니다! 그리즐리와 동시 가동 준비 중!”

“미친…….”

대체 누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5! 4! 3! 2! 1──발사되었습니다!”

파멸의 장치가 기동한다.

그것이 가동과 동시에 길림 공화국의 오크 군대를 향해 직격했다.

신의 지팡이와 코드명 그리즐리는 그렇게 길림 공화국의 모든 오크 군단을 차례차례 저격했다. 놀랍게도 두 위성병기의 성능을 넘어서는, 오히려 업그레이드 된 것 같은 정확도를 선보이며 집요할 정도로 오크 군단만 저격했다.

주변에 민간인이나 오크 외 휴머노이드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아예 포격 시도 자체를 안 할 정도로 철저했다.

이 모든 사태가 거의 끝나갈 무렵, 인터넷에는 백악관과 크렘린의 긴급 발표영상이 공개됐다.

[우리 미합중국은 평화를 깨뜨리는 길림 공화국군의 행위를 용납지 않으며, 헤이룽 인민국의 수호를 위해 신의 지팡이 열두 발을 발사했습니다.]

한쪽에는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러시아는 불량한 주변국의 도발 행위를 용납지 않습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협력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과 협력해 좌표를 특정하고 오직 쿠데타군에게만──]

다른 한쪽에서는 러시아 대통령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통신이 회복되고 이 영상들을 확인한 줄리어스 장관은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딥페이크…….”

완벽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딥페이크 영상은 삭제조차 가로막혔다.

현재 SNS와 언론매체에서는 길림 공화국 쿠데타군을 응징한 미러 연합공격과 식량주의 회복을 발표하는 경제뉴스로 도배됐다.

완벽하게 당했다.

줄리어스 장관은 이 21세기에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망을 농락할 수 있는 희대의 해커 앞에 두려움을 느꼈다.

무엇보다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모든 것이 전자장치로 돌아가는 현대에서 전능에 가까운 전자전 능력을 가진 전자전의 신을 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데우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그것은 신의 이름을 자칭할 만한 기계장치의 신이었다.

* * * *

“왜… 이렇게 된 거지?”

길림 공화국 총통실. 전 총통의 목을 따고 그 자리에 앉은 오크 상장 린샹 카자크는 눈 깜짝할 사이에 궤멸한 쿠데타군을 보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크 이민 3세대의 백전노장, 막강한 전투력으로 게이트를 공략해내며 길림 공화국의 실세로 자리 잡은 그가 자신에게 명령하는 약골을 쳐죽이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렇게 대빵 자리를 손에 넣었으니 남은 건 오크 대빵으로서 끝없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뿐이었는데…….

통신은 막혔고, 약골 인간들을 이용해 운영하던 전자 시스템은 모조리 다운됐다.

그나마 아날로그로 소식을 전하던 각 부대의 암호통신조차 부대의 궤멸만을 알려왔다.

“보스, 어떡하지?”

“좆된 거 아니냐?”

부하 오크 장교들이 불안한 기색으로 대답을 원했지만, 린샹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남은 녀석들 추스르고 돈 챙겨서 튀자. 초원 쪽으로 가서 애들 좀 늘리고 다시 시작하는 거다.”

오크의 번식력은 무시무시하다. 어디에서든 애를 슴펑슴펑 싸재끼듯 낳을 수 있는 게 오크였다.

5년만 ‘쫀버’하면 금방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것이고 이만한 전력이면 어디에서든 게이트 공략대로 환영받을 것이다.

그만큼 대륙의 상황은 파멸적이었고, 오크의 손조차 빌려야 하는 판국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모든 걸 지켜보는 기계기사는 이를 용납지 않았다.

-콰앙!

집무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무언가. 오크들은 침입자를 목격하곤 동공이 커졌다.

“뭐, 뭐냐, 저건!”

그것은 사람의 형태를 한 강철의 갑주였다.

중세시대의 투박한 기사갑옷을 미래형으로 개조하면 이런 미래지향적이면서도 구닥다리 디자인이 나오는 걸까.

어디선가 급하게 대충 끼워 맞추고 납땜한 흔적이 돋보이는 미도색 ‘아다만타이트’ 외골격 갑주.

<특수외골격 통합 무장플랫폼 Mk.1>

외형만큼은 특이한 기사갑주처럼 생긴 주제에 전신에 달린 무기는 흉악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오크 장교들을 보며 기계음을 흘렸다.

[목표 타겟 확인. 비인간종-오크종 확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하늘에서 내려온 기계 성배기사의 무장 플랫폼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을 향해 무장을 겨눴다.

[내 펀드 돌려내.]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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