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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2

72화 새로운 생도

새벽 아침, 평소라면 트랙터가 오가는 이른 시간. 거침없이 지면을 내달리는 네발짐승들이 있다.

-다그닥다그닥!

준마들의 푸르륵 거친 숨소리와 우렁찬 말발굽 소리에 농부 최영감이 반기었다.

“어이구, 폐하. 아침부터 기운차십니다.”

모자를 벗고 스윽 허리를 굽히는 최영감을 보곤 멈춰서는 레온.

“최 노인인가. 이른 아침부터 수고가 많군.”

“벌레 좀 잡으러 왔지요. 생도분들과 아침 마실이라도 나가십니까?”

“승마 훈련이다.”

“그렇군요.”

생명과 풍요의 여신 데메라의 사제인 최 영감은 최근 나날이 커져가는 만신전이 기껍다.

허리 하나 굽히지 못하며 썩어가는 제 땅을 볼 때면 막막했던 심정이 요즘에는 이토록 해맑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게 저분이 이곳에 오신 뒤로부터 생긴 일. 최 영감은 다시 내달리기 시작하는 레온을 향해 감사한 마음으로 허리를 숙였다.

뒤에 매달아 놓은 허수아비가 같이 허리를 숙이는 것 같았다.

* * * *

이른 아침부터 44명이 넘는 생도들과 말을 타고 내달린 레온은 근처의 공터에서 생도들에게 교습을 시작했다.

“승마의 기술은 여럿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말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전장에서 너희들이 의지할 존재는 옆자리의 전우요, 말이야말로 가장 가까운 전우이니.”

레온의 말에 김재혁이 번쩍 손을 들었다.

“폐하, 말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지. 제국의 학자들은 짐승의 주인이지, 친구가 될 수 없다 하였다.”

레온은 스탈리온에게 속보로 걷게 하며 자신을 말똥말똥 응시하는 생도들과 말들을 둘러보게 했다.

“말들은 너희들 생각보다 훨씬 똑똑한 동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겁이 많은 동물이기도 하지.”

속보로 걷던 스탈리온은 김재혁의 말 앞에서 멈췄다. 그러자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는 김재혁의 말.

“어, 어어?”

푸르덕 거리며 거친 숨소리를 내던 김재혁의 말이 슬며시 목을 숙였다. 그도 모자라 네다리를 굽히더니 레온과 스탈리온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처럼 숙이는 것이 아닌가.

“이, 이 녀석이 왜 이래?”

레온은 당황하는 김재혁 앞에서 모두를 향해 말했다.

“스탈리온은 실로 말들의 왕이라 불릴 존재지. 김재혁 생도의 말은 스탈리온의 권위에 복종하며 스스로를 낮추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스탈리온은 신수, 그 존재는 말 무리 사이에서 군계일학이나 다름 없다.

생도들의 말은 그 누구도 스탈리온의 권위 앞에 복종할 것이다.

“허나, 너희들은 이 상하관계를 뒤집을 정도로 말과 친해져야 한다. 제 등에 태운 기수를 위해 기꺼이 창칼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하지.”

레온이 손짓을 하자 스탈리온이 푸드덕 소리를 냈다. 그제야 김재혁의 말이 꼿꼿하게 다리를 폈다.

“말들은 겁이 많으나 기수와 함께라면 맹수에게도 기꺼이 돌진한다. 이것이 무엇 때문인 것 같으냐?”

천소연이 손을 들었다.

“기수를 신뢰하기 때문인가요?”

“바로 그렇다. 맹수가 됐든, 창칼로 밀집한 보병이 됐든 말은 제 등 위의 기수가 그것을 능히 해결해줄 것을 믿고 몸을 내던지는 것이지.”

그러한 신뢰관계를 쌓아라, 전장에서 목숨을 맡길 수 있는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매일 2시간씩 말을 타며 말과 함께 지내도록 해라. 승마와 동시에 마상창을 겨누는 법도 익혀야 할 것이야.”

“폐하, 그럼 매일 있는 훈련의 두 시간씩 빼주시는 겁니까?”

김재혁의 질문이었다. 레온이 뭔 헛소리를 하냐는 듯 내리쳤다.

“어리석은 것! 잠자는 시간을 두 시간 줄이면 될 것을 어찌 훈련을 줄인단 말이냐. 짐이 기사였을 적에는 하루에 두 시간도 자지 않았다!”

또 나왔다. 나 때는~.

다른 사람이 했다면 네네, 그러시겠죠~ 하고 우스갯소리로 넘겼을 말이지만, 레온이 하는 말이니 인정할 수밖에.

한 달을 부대꼈지만, 레온이 거짓을 말하는 건 단 한 번도 본 바가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생도가 추가될 것이다.”

“네?”

“이 타이밍에?”

레온의 말에 생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아카데미에서 올만한 이들은 다 왔다. 이들은 길드의 드래프트 오퍼도 포기하고 온 이들이다.

다시 말해, 이곳에 오지 않은 생도들은 모두 다른 길드에 이미 연봉협상을 마친 상태.

지금 와서 계약서를 찢고 만신전에 오려면 거액의 위약금을 내야 할 텐데?

“이자가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 훈련을 받으며 차후 기사의 작위에 도전할 것이다.”

터벅터벅, 능선 너머에서 한 기수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말은 제멋대로 지면을 밟고, 기수는 휘청거리며 어떻게든 말을 진정시키려 애쓴다.

젊은 혈기로 금방 익숙해지며 몸을 놀리던 생도들과 달리 그는 세월이 느껴지는 안쓰러운 표정이다.

그렇게 한참을 겨우 다닥다닥 걸어오고서야 신입 생도는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였다.

“맨앳암즈 1기생… 구대성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남자의 표정은 영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 * * *

맨앳암즈 1기생 구대성은 어느덧 수료식이 다가오는 2기생들을 보며 감회가 돋았다.

자신들도 한 달 전에는 저랬었지. 만년 D급일 줄 알았던 등급은 C급으로 오르고 성장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는 힘.

무엇보다 공략 불가로 여겼던 주황색 게이트를 기사를 보조하며 클리어하던 그 순간은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다.

물론, 구대성과 1기생들이 클리어한 게이트는 평범한 게이트가 아닌 변동 게이트에 데몬 게이트였지만.

구대성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았다.

그는 고졸에 자격증 하나 없는 현대인이다. 20대일 적에는 스펙 쌓기가 당연한 또래가 많았지만, 그에게는 각성자라는 명함이 있었다.

각성자. 헌터. 이 시대의 초인들.

하지만 구대성은 재능이 없었다. 만년 D급이라는 칭호는 헌터들 사이에서도 모멸적인 것이다.

그의 나이쯤 되는 헌터들은 다들 C급 정도는 승급한다. 고유스킬은 없더라도 그럭저럭 주황색 게이트에서도 출장 나갈 정도는 되는 것이다.

반면 구대성은 짐꾼으로조차 주황색 게이트에 접근도 못 해봤다.

구대성은 번 돈을 장비에 투자하고, 싸구려 영약 한 알이라도 먹어보려 적금을 들 때부터 자신이 하류인생을 전전하다 끝이 날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목표가 있었다. 월세방을 전전하면서도 되고 싶은 목표가.

S급 헌터들. 그 찬란하고 멋들어진 삶을 사는 영웅들.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게이트를 클리어 해내는 진짜 영웅들.

만년 D급 헌터 구대성에겐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면 나도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구대성의 인생은 최근 더할 나위 없이 잘 풀리고 있다.

우연히 만난 이계의 생존자. 그 덕에 등급도 오르고 그 귀하다는 오크 대전사의 심장 영약도 취할 수 있었다.

10년 넘게 게이트에서 생사를 넘나들던 비루한 D급이 이젠 C급 중에서도 나름 어깨를 필 만한 수준이 됐으니.

레온을 만난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음을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돈도 이곳에 있으면 부족함 없이 벌 수 있었고.

하지만 이 상황이 만족스럽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오크 대전사의 심장과 축복받은 작물을 섭취하면서 그는 확실히 강해졌다. 하지만 그뿐이다.

성장은 정체된 채로 늘어나지 않고, 대전사의 심장 같은 기연이 또다시 오리라 장담할 수 없다.

만년 D급이 C급이 됐다 하여 버라이어티하게 강해지진 않는다. 그것을 아카데미 생도들을 보고 느꼈다.

레온이 기사 종자들이라며 데려온 생도들은 눈부신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레온은 불만족스럽더라도 구대성에겐 하늘 같은 재능이나 마찬가지다. 그 나이에 B급이라니…….

고유스킬을 가지고 톤 단위의 쇳덩이도 손쉽게 들어 올리며, 오크들과도 일대일 대결이 가능한, 지금의 구대성은 불가한 일들을 능히 해내는.

그런 눈부신, 판타지스러운 재능.

사는 세상이 너무 다르다. 비루한 등급 한 번 올려보겠다고 입대를 결정한 구대성과 달리 처음부터 기사를 염두에 둔 그들은 성장속도도 구대성과는 비교가 안 됐다.

부럽다.

구대성은 그들처럼 기사를 목표로 하고 싶었다.

레온이 말한 것처럼,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병사와 달리 뭐든 해내는 만능의 초인이.

‘아리아나시여. 페토스시여. 오늘도 감사합니다.’

먼저 두 신에게 감사를 올린 구대성은 문득 농부들이 섬기는 생명과 풍요의 여신이 떠올랐다.

마소로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축복받은 작물로 신도들을 건강히 배 불리시는 분. 신들 사이에 우열은 없다지만, 현시점의 세상에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분이 계시는가?

농부들이 그토록 데메라께 감사하며 제단에 십구조를 바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불경한 생각인가?’

다른 분들보다 데메라 여신을 더 감사히 여기는 것은.

구대성은 따로 데메라 여신에게 감사기도를 올리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상서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훈련장을 지나치던 중 문득 그 안의 든 물건이 떠올랐다.

“망치가 있었지?”

성배기사의 망치라던가. 그 자체로 성물이어서 엄청난 힘을 가진 에픽 아이템이라 들었다.

수많은 도전자들과 만신전 내부에서도 여러 도전이 나왔지만, 구대성은 한번도 망치를 들어볼 생각도 못했다.

그는 제 주제를 알았던 탓이다.

꿈은 높은 주제에, 제 주제를 비관했기에 어차피 들리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없나?”

괜히 개쪽을 당하는 게 싫어 쳐다도 보지 않은 망치였다. 구대성은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슬그머니 망치를 향해 다가섰다.

“와아…….”

망치의 용태는 정말이지 상서롭고 고귀했다.

보는 것만으로 노폐물이 씻겨져 나가는 것 같은, 고고하게 지면에 달라붙은 망치.

망치의 추는 물론이고 자루마저 세세하게 음각된 문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한 번 도전해보는 것이라면…….”

구대성은 망치자루에 손을 대었다. 그가 처음부터 있는 힘껏 망치를 들어 올렸으나──

끼익!

하고, 망치가 움찔거렸다. 아주 약간의 허공이 느껴질 정도로만.

“끄아…!”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들어 올렸음에도 이 정도. 구대성은 파랗게 질려버린 손을 놓았고 망치가 지면에 충돌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허윽…! 여, 역시 안 되는 건가?”

하긴 제 주제에… 구대성이 실망감에 돌아서려던 그 순간이었다.

“이거 참… 의외로구나.”

레온의 목소리가 구대성을 멈춰 세웠다.

* * * *

2002년 대격변 이후, 지구에는 수많은 게이트들이 출몰했다.

저마다의 컨셉과 랭크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선 토벌대상이 존재한다.

가장 우선시되는 건 고랭크 게이트.

랭크가 높아질수록 던전 브레이크의 리스크가 커지니 대전제라 할 수 있다.

둘째는 곡창지대에 열린 게이트.

대격변 이후로 인류는 인구수만큼이나 수많은 곡창지대를 잃었다.

마소로 오염된 땅에서는 어떤 작물도 자랄 수 없으며 사람도 살 수 없으니 오염 자체를 막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모든 위협 중에서 관측과 동시에 국가총력을 다해 최우선 클리어 대상이 되는 예외가 존재한다.

이 경우, 정부가 주도해서 ‘징집령’을 내려 헌터들을 강제동원할 정도다.

“협회장님… 동해함대, 미7함대, 해자대 측에서도 교차 확인 완료했습니다.”

오강혁 협회장은 연이은 보고와 동일한 관측정보에 침음성을 흘렸다. 관측기기의 미스라고 보기엔 주변국들의 교차검증이 너무나 확실하다.

“용궁… 사실상 확정이라 봐야겠군.”

바다 게이트. 일명 용궁.

게이트의 등장은 대개 지상에서 관측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지상에서만 게이트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고 대격변 초기 게이트를 관측하는 위성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는 바다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25년 전, 도쿄만에서 출현한 세계최초의 바다 게이트.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때까지 방치된 도쿄만 게이트는 도쿄만을 궤멸시켰을 뿐 아니라 근해 전체를 오염시키고 바다생물들을 몬스터로 변모시켰다.

그것은 역사에 남는 최악의 게이트 재해가 되었고, 일본은 이 재해를 종식시키는데, 15년이라는 세월을 낭비해야 했다.

그렇기에 용궁 게이트는 자국 우선주의인 국제정세에도 주변국이 일제히 협력하여 공략하는 게 우선.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공략대를 파견하겠다는 통보가 왔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하필 이때…….”

오강혁 협회장은 뉴스를 틀었다. 공영방송에서 긴급속보로 전해지는 기후정보.

[네, 저는 지금 울릉도 앞바다에 도착해 있습니다. 태평양으로 진행 예정 중이었던 태풍 나비가 돌연 진로를 변경해 울릉도 방향으로 서행하고 있습니다.]

[금년 최대의 태풍으로 예상되는 나비는 초속 64.5m로 2003년 매미의 기록을 웃돌고 있어 울릉도 주민들의 심각한 피해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매년마다 있는 폭풍 예보. 올해는 특히나 강력한 것 같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용궁 게이트와 태풍의 진로방향이 겹치고 있다.

“헌터들을 소집하게. 시급히! 그리고…….”

오강혁은 추가로 덧붙였다.

“만신전 길드의 레온 폐하에게 최우선으로 연락을 넣게.”

레온. 신비한 이적을 행하며 신들의 사랑을 받는 이계의 사자심왕.

오강혁은 본능적으로 그가 유일한 해결책이라 직감했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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