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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3

72. 약혼관계 – 압오안돈

성으로 돌아온 레오는 땀과 먼지로 더러워진 몸을 씻어낸 뒤, 집사에게 물어 아가타 남작을 다시 찾았다.

베르게르 아가타 남작은 부인과 담화실(테라스를 낀 생활공간)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레오가 자리하자 남작이 물었다.

“일찍 오셨군요. 대련은 어떠셨나요?”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특히 브라이언이라는 분은 정말 대단한 기사님이시더군요.”

그의 말에 아가타 남작이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한 기사님이시죠. 다른 곳에 가시면 더 나은 대접을 받으실 분인데…”

어쩐지 브라이언과 남작 사이에 얽힌 사연이 있는 것 같았으나, 레오의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었다.

레오는 대화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떡밥을 던졌다.

“대단한 기사님과 맞붙을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불쑥 찾아온 저희를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송구할 따름입니다.”

“폐를 끼치다니요. 손님의 기쁨이 곧 저희의 기쁨입니다.”

“맞아요.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휑한 성에 활력이 생겨 좋은걸요.”

남작과 남작 부인이 마음을 놓으시라 말했다.

하지만 레오는 물어볼 것이 있었다. 그는 은혜를 입어 송구한 빈객을 연기했다.

“감사합니다. 이 호의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사소하게나마 도와드릴 일이 정 없을까요?”

“허허… 이것 참. 이런 궁벽한 산성에 뭐 할만한 일이 있겠습니까. 손님께 잡일을 도와달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저희의 입장도 고려해주시지요.”

됐다. 레오는 본론을 꺼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아, 그럼 혹시 이 부근에 마수가 있지는 않습니까?”

“마수요?”

아버지의 권유로 수행을 나오기는 했으나, 레오는 기사들과 검을 섞어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빠르게 루테티아로 가고 싶다.

하지만 레나와 함께하고 있어서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출 필요가 있으니, 이곳에서 2~3주일은 머물러야 할 것이었다. 그 시간을 아주 버리고 싶지는 않다.

아가타 남작이 자신의 주름진 목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글쎄요… 근처에 하나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접근하지만 않으면 위험한 녀석은 아니라 해서 내버려 둔 마수가 있긴 합니다.”

“어떤 마수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사냥꾼에게 듣기로는… 이런, 어떤 동물을 닮았다고 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네요. 그… 뭐라고 했더라? 허허허, 죄송합니다.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군요. 어떤 잡식동물이라 했습니다.”

“혹시 어떻게 생겼다는 이야기는 못 들으셨나요?”

“아, 그건 기억이 나네요. 돼지의 몸에 오리의 머리가 달렸다고 들었습니다.”

‘미가스다!’

레오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미가스는 숲에서 무리를 지어 다니는 잡식동물의 일종으로,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아버지께 인정을 받아 돈을 얻어내기 위해 자주 사냥했던 동물이었다.

‘이건 잡기 쉽겠다.’

미가스는 공격적인 동물이 아니었다. 사람을 보면 도망치고, 부리로 땅을 훑어 이끼나 버섯, 자잘한 열매들을 찾아다니는 양동이만 한 크기의 작은 동물이었다.

물론, 마수가 되면서 덩치가 훌쩍 커졌겠지만, 태생이 ‘미가스’인 이상 ‘여우’였던 노구화호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레오가 자신감을 내비쳤다.

“미가스로군요. 그거라면 제가 충분히 잡을 수 있겠습니다. 제게 보은할 기회를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런, 잡아달라고 말씀드린 것이 아니었는데요. 마수를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들었습니다. 손님께 그런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네요.”

남작이 망설이자 레오는 그에게 미가스에 대해 설명하며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리고 자신이 노구화호라는 마수도 사냥해본 경험이 있음을 피력했다.

“어머나. 이제 보니 훌륭한 전사셨군요. 아스틴 왕국에서는 마수를 잡는 것을 큰 명예로 여긴다고 들었어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남작 부인은 레오의 경험담이 인상 깊었는지 무척 감탄하며 말했다.

“여보. 손님께 명예를 드높일 기회를 드리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일 거예요.”

아가타 남작은 허허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다가 결국 승낙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혹시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지원해드리겠습니다.”

레오는 냉큼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두 명의 기사와 길잡이를 해줄 사냥꾼을 빌려달라 요청했고, 남작은 흔쾌히 허락했다.

아가타 남작 부인이 남편의 빈 찻잔에 따뜻한 물을 부으며 물었다.

“부디 몸 성히 명예를 쟁취하시길 빌겠어요. 그러면 다섯 분이서 사냥하러 가시는 건가요?”

“네? 아니요. 네 명이서 갈 생각입니다.”

기다란 푸니타 잎을 찻잔에 걸치듯 담가서 차를 우려내려던 남작 부인의 고개가 갸우뚱, 곱게 기울어졌다.

“약혼녀 되시는 기사님은 데려가지 않으시나요?”

“…알고 계셨군요. 네, 저만 다녀오려 합니다. 출발할 때까지만이라도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레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요.”

“저런, 약혼녀분께서 섭섭해하실까 걱정이네요. 하지만 위험한 일이라니 기사님의 마음도 이해가 가요. 사랑스러운 숙녀를 데려가고 싶지 않으시겠죠. 호호.”

“……”

마수를 하나 더 잡을 수 있겠다. ─ 라며 들떴던 마음이 싹 가라앉았다.

레오는 남작에게 몇 가지를 더 부탁한 뒤,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씁쓸하다.

복도를 걷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연병장이 내려다보이는 창가로 다가가 레나를 찾았다.

레나는 아직 연병장에 있었다.

다른 기사들은 모두 돌아간 모양인데, 그녀는 무슨 연습을 하는지 검을 들어 올리고, 휘둘러보고, 다시 들어 올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멀리 쬐끄매져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이 귀여웠지만, 연병장에 홀로 서 있는 그녀는 외로워 보였다.

괜한 짓을 했다.

왜 내가 연병장을 봤을까.

심경이 더 산만해진 레오는 창가를 떠나 안으로 사라졌다.

* * *

[ 업적 : 마수 사냥 – ‘2’,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며칠 뒤, 새벽에 일어난 레오는 레나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레오와 두 기사, 사냥꾼은 함께 사냥을 떠났고, 일주일 만에 성으로 복귀했다. 네 사람은 예정했던 것보다 나흘 더 늦게 돌아왔다.

죽을 뻔했다.

마수가 된 미가스, ‘압오안돈’은 예상했던 것보다 덩치가 훨씬 컸다.

미가스가 여우보다 작은 동물이어서 압오안돈이 노구화호보다 작으리라 예상했던 것이 실책이었다.

숲으로 들어가 마주한 압오안돈은 노구화호보다 두 배는 더 큰 마수였는데, 문짝만큼 커다란 회색 부리가 달린 오리 머리는 짙은 잿빛이었고, 급격히 두꺼워지는 목은 돼지 몸통에 달려 있었다.

계곡을 넉넉한 욕조처럼 사용하는 덩치. 부리를 담가 물을 벌컥 마실 때마다 계곡물이 쑤욱 줄어드는 걸 본 레오는 기존에 세웠던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네 사람은 사냥꾼의 산장에 머무르며 올무(고리 모양의 덫)를 만들었다.

쉬이 끊어지지 않는 두툼한 올무를 만들려니 산장에 있는 노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기사들이 팔자에도 없던 노동을 하는 동안 사냥꾼이 성으로 돌아가 밧줄을 사 왔다.

레오가 원했던 커다란 올무 세 개는 나흘 만에 완성되었다. 레오는 그 올무들을 나무에 걸쳐 설치하고, 올무에 통나무를 매달았다.

보통 올무는 나무에 묶어 고정하지만, 레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무에 고정된 올무는 압오안돈이 힘으로 끊어버릴 것이다.

반면 이렇게 통나무를 매달아두면 질질 끌고 다닐지언정 밧줄이 끊어질 일은 없었다.

덫이 다 놓이자, 사냥이 시작됐다.

압오안돈은 평범한 미가스들과 달리 인간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았다. 놈은 접근하는 인간들에게 꽥꽥 소리를 질렀다.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다.

그 경고는 단 한 번으로 끝났다. 건방진 유인원들이 얼른 자리를 비우지 않자, 놈은 거대한 부리를 좌우로 넓게 휘두르며 돌진해왔다.

부리에 부닥친 나무는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져버렸고, 압오안돈의 쿵쾅거리는 발걸음이 대지를 울렸다.

레오는 미끼를 자처했다.

투창을 던져 시선을 끌고 비탈길을 올라 달아났다.

압오안돈은 옳다구나 하고 그를 쫓았다. 뒷다리에 비해 앞다리가 짧은 미가스는 달아날 때 가급적 높은 곳을 향하는 버릇이 있었다.

갖은 고생 끝에 레오는 놈을 덫으로 유인할 수 있었다.

– 꽥꽥꽥!!

두 나무 사이로 넓게 걸쳐둔 올무가 압오안돈의 목에 걸렸다. 올무에 이어진 통나무들이 놈의 몸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압오안돈이 부리를 땅에 쾅쾅 찍으며 성질을 부렸다.

레오의 작전이 먹혀들었다.

사족 보행하는 돼지의 몸에는 팔이 없었고, 머리에 달린 부리는 무언가를 물어뜯는 용도가 아니었다.

목과 어깨에 걸린 고리를 털어내거나 끊을 방법이 없는 압오안돈, 그 마수는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원숭이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물론, 놈의 움직임을 제약했다고 해서 마냥 편해진 것은 아니었다.

압오안돈의 두툼한 살집은 칼이 박혀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놈도 거대한 부리를 휘두르기를 쉬지 않았다.

그건 결코 아름답다 하지 못할 싸움이었다.

반나절 내내 처절하게 이어진 그 싸움은 고요한 숲을 시끄러운 도살장으로 변모시켰다.

사람들은 땀을 비 오듯 흘렸고, 온몸에 생채기가 생긴 마수는 피를 줄줄 뿜었다.

– 꽥! 꽥! 꽥꽥! 꽥!

압오안돈이 다급히 울부짖으며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을 때, 그때는 정말 위험했다.

눈이 새파랗게 불타오르더니 놈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필사적으로 뒹굴었다.

압오안돈의 최후의 무기는 부리가 아니었다. 자신의 육중한 덩치, 그것이 놈이 가진 최고의 무기였다.

기사들과 사냥꾼, 그리고 레오는 집채만 한 뒹구르기를 피하려고 이쪽저쪽으로 몸을 던졌다.

다행히 압오안돈의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힘이 빠졌는지 탈진해 헐떡거렸고, 레오가 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턱밑에 구멍을 뚫었다.

[ 업적 : 마수 사냥 – ‘2’, 몸에 미약하게 마나가 깃듭니다. ]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레오가 숨통을 끊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냥에 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인지, 업적 카운트가 올랐다.

산장으로 돌아온 네 사람은 축배를 들었다.

사체 처리를 사냥꾼에게 맡긴 레오는 기사들과 함께 성으로 돌아왔다.

사냥하고 돌아와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세 사람은 당당하게 남작과 남작 부인 앞에 섰다.

“와! 이게 마수의 깃털인가요? 세상에… 엄청나게 크네요. 대단해요!”

아그네스 아가타 남작 부인은 레오가 가져온 전리품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

전리품은 압오안돈의 머리깃 하나를 뽑아온 것이었다.

보통은 이빨 같은 것을 가져가지만, 압오안돈에게는 부리가 있을 뿐 이빨이 없었고, 부리는 가져오기에는 너무 컸다.

“저희는 이 전리품을 비도리닌 성의 고귀한 부인께 바치고자 합니다.”

레오와 두 기사가 경례를 올리며 함께 입을 맞추어 말했다.

남작 부인이 유쾌하게 웃었다.

“제 남은 평생에 이런 일이 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여보, 제가 이 선물을 받아도 될까요?”

“물론이오. 우리 기사님들과 손님의 마음을 받아주시구려.”

아가타 남작이 환하게 웃으며 부인의 등을 떠밀었다. 남작 부인은 우아하게 인사하며 깃털을 받아들었다.

“영예로운 기사님들의 용기를 잊지 않겠어요. 그대들의 검이 앞으로도 영광되게 쓰이기를… 호호호호, 너무 오랜만이라 어색하네요.”

남작 부인은 젊어진 것 같아 행복하다며 몇 번이나 더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찌나 기뻤는지 저녁 만찬을 성대하게 준비했다.

근사한 음식들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나오고, 값비싼 술을 아끼지 않은 그 만찬에 초대된 이들은 모두 웃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레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술을 꾸욱 아물고 우울한 표정을 숨기려 애쓰고 있었다.

억지로 웃고, 많이 먹은 척을 하며, 눈에 띄지 않게 술을 많이 마셨다.

길었던 만찬이 끝나자 그녀는 말없이 레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은 레나는 잠시 문가에 섰다. 혹시 레오가 자신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을까… 기다렸다.

레오가 몸에 걸친 장구류를 벗어 정리한다.

레오가 주섬주섬 짐을 뒤적인다.

레오가 걸친 옷가지를 벗어 편한 복장을 갖춘다.

레오가…… 침대에 눕는다.

그는 끝내 눈길 한번을 주지 않았고, 레나는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그녀는 옷을 벗었다. 잠을 자기 위해 복장을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고 있던 옷가지를 모두 벗어버렸다.

속곳만 남아 반라가 된 레나.

그녀는 결코 자신의 몸을 함부로 하는 여자가 아니었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술기운을 빌어 옷을 모두 벗어버린 레나는 침대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레오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의 감긴 눈은 쉬이 뜨이지 않았다.

레나가 울먹이며 속삭였다.

“레오… 레오… 레오… 제발…”

날 사랑해줘.

잠자리를 청하는 레나의 흉부 왼편이 깊이 들어가 있었다. 노구화호에게 맞아 부러진 갈비뼈들은 제 자리를 찾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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