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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4

74화 검은 백합 (2)

74화 검은 백합 (2)

우리가 그림자 늑대와 싸우는 시간은 5분 내외다. 그 이상을 상대한다면 정말로 죽겠지.

어쩌면 먼지가 5분 정도로는 검은 백합을 확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다음 기회를 노릴 생각이었다.

별의 샘물과 달리, 검은 백합은 해가 떨어진 밤이면 언제든 손에 넣을 기회가 있다.

크르르르······!

예상대로 그림자 늑대는 정원의 작은 침입자 먼지를 두고 보지 않았다.

녀석이 먼지를 향해 달렸다.

“지금이야! 루나!”

“얍!”

루나의 몸이 빛으로 감싸이더니,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그간 예행연습을 하느라 자주 보긴 했다. 그러나 실전을 통해 경험하는 루나의 은월송환은 정말 대단했다.

은월송환에 가격당한 그림자 늑대의 몸이 주르르, 뒤로 밀려났다. 강한 제약이 따르긴 하지만, 역시 은월송환은 사기적인 기술이었다.

【혼돈을 발현합니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나는 후드득, 고개를 흔드는 그림자 늑대를 향해 세계수의 혼돈을 발현했다. 내 손에서 뻗친 새하얀 가지들이 녀석의 몸을 휘감았다.

아우우! 그림자 늑대가 포효했다.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서둘러 늪지의 혼돈을 발현했다.

콰르르르르르······!

세계수의 혼돈과 마찬가지로, 늪지의 혼돈 역시 그리 강한 위력을 내지는 못했다. 소용돌이의 범위도 좁다. 그러나 연속해서 공격이 들어간 것이 중요했다.

위력이 약하고 범위가 좁았기에 오히려 좋은 점도 있었다.

“야아압!”

루나가 은월무를 발현했다. 소용돌이의 범위가 넓었다면 시도하지 못했을 공격이다. 루나도 영향을 받을 테니까.

나는 그림자 늑대와의 거리를 좁히며 혼돈의 제어에 전념했다. 주르륵, 코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저 정도의 혼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

그림자 늑대가 앞발을 휘둘렀다. 그것을 내가 세계수의 가지로 잡아끌었다. 그러나 약간의 속도를 늦췄을 뿐이었고, 공격을 방어한 루나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루나!”

나는 세 번째 혼돈을 발현했다. 라바다의 정신을 침식시켰던 혼돈. 실험 끝에 나는 이것이 상대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림자 늑대가 휙휙, 머리를 흔들었다. 귓속에 벌레라도 들어간 것처럼. 정신 침식의 혼돈은 녀석에게 어느 정도 통하는 듯했다.

“괜찮아! 데미안!”

그사이 심기일전한 루나가 그림자 늑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몸에서 보다 강력한 은월무가 펼쳐졌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루나는 방금 레벨업했다.

세 가지 혼돈을 동시에 제어하자 머리가 터질 것처럼 뜨거워졌다. 눈앞이 부옇게 변하며 욕지기가 치밀었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조금만 더 견디는 거다. 머지않아 해가 떠오른다.

몸 안에 남은 혼돈을 계산한 나는 혼돈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중했다. 시간은 걸리지만 필요한 일이다. 이 상태에서는 시스템의 힘을 사용할 수 없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루나.’

지금이 가장 위험한 타이밍이다. 내가 혼돈 상태에서 벗어나, 루나와 합류하기까지의 공백.

다행히 루나는 잘 버텨 주었다. 나는 혼돈 상태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루나와 동기화했다.

[은월송환(Lv.2)을 발현합니다.]

내 몸이 빛줄기처럼 그림자 늑대에게 쇄도했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원래 은월무를 발현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하나, 먼지의 의지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먼지는 검은 백합의 채집에 성공했다.

“뛰어! 루나!”

저만치 밀려난 그림자 늑대를 등지며 우리는 달렸다. 정원의 언덕 너머로 태양의 머리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자 늑대의 성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먼지를 향해 남은 혼돈을 발현했다. 내 몸이 재차 혼돈 상태로 진입하며 내면을 뒤흔들었다.

은빛 늑대로 변신한 먼지가 나와 루나를 등에 태웠다. 먼지의 발은 빨랐다. 그러나 그림자 늑대가 더욱 빨랐다.

“먼지!”

나의 의지에 따라 먼지는 태양이 떠오르는 언덕을 향해 달렸다.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부터는 운의 영역이다.

먼지가 흑기사를 상대할 때처럼 강했다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먼지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따라잡힐 것 같아!”

루나가 소리쳤다.

머지않아 지척에서 그림자 늑대의 포효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놈의 앞발이 우리의 코앞으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루나를 끌어안으며 몸을 돌렸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아났다. 이제 내 몸은 저 날카로운 발톱에 갈가리 찢겨 날아가겠지.

그런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루나를 품에 안은 채 데굴데굴 정원을 구르고 있었다. 저만치에서 혼돈의 힘이 다한 먼지도 자그만 모습으로 바닥을 굴렀다.

스치는 시야가 알록달록 빛났다. 정원은 더 이상 검은색이 아니었다. 비스듬히 들이치는 아침의 태양이 수많은 꽃에 색을 입혔다. 다양한 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정원에는 더 이상 그림자 늑대가 보이지 않았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루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루나는 내 팔을 베고 누운 채, 푸르게 변해가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나도 웃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우리는 한동안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내가 웃음을 멈추고 일어선 것은 그로부터 수 분이 지난 후, 먼지가 무언가를 입에 물고 나타났을 때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저것을 여기서 발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먼지가 그것을 내 앞에 내려놓았다.

헥. 헥. 헥.

‘해의 엘릭서’를 만들기 위한 재료.

황금 백합.

***

전쟁이 시작된 지도 벌써 넉 달이 넘었다.

계절은 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세실은 족제비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세실. 어때?”

오늘, 족제비가 붉은 털 멧돼지를 사냥해 왔다. 그러고는 모닥불을 피운 뒤 능숙하게 고기를 구웠다.

예전에 쿠훌린에게 투척술을 배울 때가 떠올랐다. 그때 세실은 쿠훌린과, 친구들과 함께 붉은 털 멧돼지를 사냥했었다.

“세실. 맛이 어때? 괜찮아?”

아까부터 족제비는 고기를 먹는 세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응. 맛있어.”

“정말? 쿠가 구운 것보다?”

“맞고. 싶어?”

“히익!”

세실이 손날을 세우자 족제비가 기겁하며 두 팔로 이마를 가렸다.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손날을 세워 드는 것은.

그러고 보니 묘했다. 이렇게 손날을 세우는 습관은 왜 생긴 걸까. 이상하게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금. 짜.”

“정말? 소금을 많이 넣지는 않았는데. 이상하다. 쿠에게 배운 대로 했는데······.”

족제비가 구운 이 고기는 솔직히 많이 맛있었다. 쿠가 구운 고기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세실은 괜히 심술이 났다. 예전에는 족제비의 이마가 손날로 가격하기 좋은 위치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족제비는 세실보다 키가 커졌다.

“족제비. 건방져.”

“뭐, 뭐가?”

그저 심술이었기에, 세실은 족제비의 물음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족제비. 참전.”

“아, 왜 푸른 매의 단에 합류했냐고?”

그 물음은 아니었다.

세실은 족제비가 전쟁에 참여한 이유를 물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족제비는 겁쟁이니까.

“원래는 덩치랑 디펜더스의 임시 부대원으로 들어가려 했거든? 아, 디펜더스는 페르디나의 도시 수비대인데, 무려 용장 루카스가 직접 지휘하는······!”

족제비가 신이 나 떠들었다. 한동안 주절주절 떠들던 족제비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세실, 네가 왔잖아. 네가 푸른 매의 임시 단원으로 참전하겠다는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세실은 물끄러미 족제비를 바라봤다.

“그, 그리고 나 활 솜씨도 많이 좋아졌어! 사실 덩치와 나는 벨레트 단장의 도움으로 꾸준히 용병 교육을 받았거든. 테오도 한동안은 함께했었는데, 역시 잡화점 일이 바빠서 길게 교육받지는 못했어. 테오가 없으면 잡화점이 안 돌아가니까. 벨레트 단장도 아쉬워했어. 테오에게 지휘관의 재능이 있다고 했었거든. 벨레트 단장 기억해? 그때 어둠굴에서 세르지오의 입회인으로 나왔던. 맞다. 우리에게 검도 선물해 줬었잖아! 잡화점으로 찾아와서!”

족제비가 얼굴을 붉히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 그리고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페르디나에서 조금 유명해졌어. 벨레트 단장 말로는 내가 활쏘기에 엄청난 재능이 있대. 여, 역시 데미안의 말은 맞았어! 나 정말 열심히 연습했거든! 이제 제대로 너를 도울 수 있어! 덩치도!”

“족제비.”

“응?”

“말. 많아.”

족제비가 울상이 됐다.

“그치만.”

세실은 몇 번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말했다.

“고마워.”

세실은 이어 말하려 했다. 데미안과 자신을 기다려 주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자신을 위해 푸른 매의 단에 합류해 주어서 고맙다고.

그런데.

“덩치! 덩치! 세실이 나한테 고맙다고 했어!”

족제비가 호들갑을 떨며 덩치를 찾아 달려갔다. 바보 족제비. 덩치는 아까 카인, 마르셀과 함께 로슈포르 후작군의 지휘관을 만나러 갔는데.

족제비는 손날 공격을 맞고서야 조용해졌다.

“······근데 세실.”

“응.”

“네 임무 말이야. 너무 위험한 거 아니야? 혼자서 적 지휘관을 암살하러 다니다니.”

족제비가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카인 그 녀석 진짜 너무한 거 같아. 테오와 데미안이 없다고 너를 함부로 대하잖아. 그 둘이 있었으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았을걸? 카인 그 못된 녀석은 나와 덩치의 말은 들은 체도 안 한다니까?”

“족제비.”

“응?”

세실은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카인. 나쁘게. 말하지. 마.”

“그치만 세실······!”

“내. 친구야.”

족제비는 흔들리는 눈으로 멍하니 세실을 바라봤다.

잠시 후,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카인 일행이 돌아왔다.

“좋은 냄새가 나는군.”

카인을 보자마자 단원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카인을 향한 그들의 눈에는 짙은 경외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벼운 손동작으로 그들을 앉힌 카인이 마르셀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이후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카인이 세실과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잘 쉬고 있었어? 세실.”

카인이 세실의 옆에 앉았다.

“맛있어 보이네.”

“카. 카인. 아. 단장.”

“그냥 카인이라고 불러. 괜찮아.”

“으. 응.”

카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늘 위험한 임무를 맡겨서 미안해. 세실.”

“아. 아니.”

세실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족제비가 못마땅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그렇게 미안하면 그만 맡기는 건 어때?”

카인의 표정이 변했다.

세실은 두근, 심장이 뛰었다.

세실이 두려워하는 그 표정.

“조아킴.”

카인이 족제비에게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고, 족제비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파르르 입술을 떨면서도 족제비는 말을 이어갔다.

“그, 그게 그렇잖아. 적진 한가운데로 혼자 들어가서 지휘관을 암살하고 오는 게 말이 되냐고. 그, 그러다가 세실이 잡히기라도 하면 어떡할 건데. 네가 구하러 가기라도 할 거야?”

“구하러 간다.”

“······뭐?”

카인이 표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숨을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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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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