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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5

74. 약혼관계 – 도흑포마

레오는 왜 저택에 아가타 남작 부인의 흔적이 없는지를 구태여 파헤치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큰일 났다…’

이곳 사이먼 백작가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흘러 무더운 여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기사들이 많아 수련하기에 좋은 백작가를 레나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녀는 레오의 재촉에도 “일주일만 더.”라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었다.

그런데,

“웬일이야? 네가 이 시간까지 연무장에 다 남아있고?”

“…!”

어느 날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는 언제부턴가 연무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백작가의 기사들이 매일같이 대련을 청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있긴 했지만, 레나를 지켜보는 시간이 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레오는 위기를 느꼈다.

민서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 아니, 레오에게 동화되어 ‘진짜 레오’가 드러나려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각 시나리오의 레오들은 각자 성격이 달랐다.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레오는 주장이 강하지 않고, 과묵했다.

그는 말없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성실한 청년이었다.

거지남매 시나리오의 레오는 온화했다. 그는 레나의 외모를 이용하는 실수를 범한 민서에게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전언을 남길 정도로 배려심이 있는 남자였다.

이 두 명의 레오는 민서를 적대하지 않았다. 되려 그를 이해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레오 덱스터는 민서를 탐탁잖게 여겼다.

자기애가 강하고, 레나를 사랑하는 레오.

그는 여덟 번째 회차에서 민서의 정신을 ‘불순물’로 여기며 불쾌해 했다.

‘빨리 루테티아로 가야 해.’

그렇지 않아도 레나를 멀리하는 것이 힘든데, 민서의 영향력이 사라지면 ‘나’는… 지금껏 했던 행동들을 모조리 되돌려버릴 것이다.

조급해진 레오는 레나의 질문을 건너뛰었다.

“우리 이제 루테티아로 가자.”

레오의 침묵을 이젠 그러려니, 받아들이고는 다시 훈련하러 가려던 레나가 눈을 흘겼다.

“또 그 얘기야? 뭐가 그렇게 급해? 난 아직 대련할 것이 남았어.”

“루테티아에 가면 기사단의 기사들과 대련할 수 있어.”

“…그러는 편이 더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 알겠어. 하지만, 딱 일주일만 더 시간을 줘. 진짜 마지막이야. 이번에는 기사 대장님이랑도 대련 약속을 잡았단 말이야.”

일주일이라…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대신 다음 주에는 무조건 출발하는 거다?”

“알았어.”

레나는 뾰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최근 그녀는 백작가의 기사들과 어울리면서 진정을 되찾았는지, 많이 밝아져 있었다.

“너 조금만 기다려. 내가 곧…”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레오를 째려보더니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레오는 황급히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집사에게 달려가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하고, 응접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그럼 백작님께서 잘해주시리라 믿겠습니다. 저도 제 나름대로 찾아보지요.”

늙은 목소리. 저건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의 목소리가 아니었으나, 곧 레오가 아는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 ‘특수한 작물’이 찾아지는 대로 공사를 시작하지요.”

사이먼 백작이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을 배웅하는 중이었다. 그는 공손하게 노인의 뒤를 따르며 무언가를 단단히 약속했다.

열린 응접실 문으로 레오는 지나치는 두 사람을 보았다.

자글자글한 주름. 분명 고령임에도 머리칼이 조금도 세지 않은 노인이 허리를 곧게 펴고 느릿느릿, 하지만 당당히 걸음을 옮겨 지나갔다.

백작의 손님인 모양인데… 레오와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기에, 그는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이윽고 백작이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자 레오는 다른 응접실로 불려가 백작을 만났다.

그 응접실은 조금 전의 손님과 백작이 담화를 나누었던 곳인지 탁자에 간단한 다과와 찻잔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웬 맹물이…?

값비싼 찻잔에는 차가 아닌 물이 담겨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조금 지친 듯, 응접실의 긴 안락의자에 주저앉은 사이먼 백작이 용건을 물었다.

레오는 찻잔에서 눈을 떼고, 우리가 곧 떠나려 하는데, 왕실 기사단에 소개장을 써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루테티아에 가서 {추적술}로 왕자를 찾아낼 생각이지만, 기왕 사이먼 백작가까지 오게 된 것, 보험을 마련해둘 요량이었다.

만약 왕자가 사냥하러 종종 나온다는 정보가 단지 뜬소문에 불과하다면, 다른 대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여차하면 근위기사로 지원해 왕성에 들어갈 생각인데, 프레데릭 왕가에서 언제 근위기사를 뽑을지 알지 못했으므로 기사단의 기사를 만나 추천을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자의 소개장이 필요…

“제가 왜 기사님께 소개장을 써 드려야 하죠?”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은 팔짱을 끼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 업적 : 귀족 살해 – 모든 귀족들이 당신에게 미약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레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쩐지 흉흉한 느낌이 드는 기사 지망생.

아그네스 누이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마저도 백작이 누이를 어렵게 생각하거나, 각별한 친분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사실 ‘아그네스 아가타’는 백작과 혈연관계가 아니었다.

아그네스의 본래 이름은 ‘아그네스 아그낙’으로, 그녀는 아그낙 남작가의 여식이자 사이먼 백작가의 골칫덩어리였다.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은 누이였던 아그네스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좋은 기억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으나, 당시 젊었던 움베르토는 아그네스 ‘사이먼’을 딱하게 여겼다.

백작가에 감금된 채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던 그녀에게 다가가 종종 말동무가 되어주곤 했다.

하지만 세월이 무상하게도 그 상냥했던 움베르토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어느새 이해타산을 따지는 차가운 귀족이 되어버렸다.

움베르토 사이먼 백작이 말했다.

“저는 기사님께 충분히 베풀었다고 생각합니다.”

딱 아그네스 누이와의 추억만큼.

“소개장을 바라신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르셔야겠지요.”

“대가라면 어떤…?”

레오는 무심결에 주머니를 건드렸다. 그의 수중에는 압오안돈을 사냥해 얻은 돈이 있었다.

그 동작을 눈치챈 백작이 피식 웃으며 손을 저었다.

“사이먼 백작가에 그런 푼돈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래, 누님의 편지에는 기사님께서 마수를 사냥하셨다고 적혀있더군요. 오래전부터 골치를 썩여온 마수가 있는데 그걸 해결해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백작은 사이먼 백작가가 소유한 평원에 ‘도흑포마’라는 마수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사냥에 성공한다면 왕실 기사단에 소개장을 써주는 것은 물론, 넉넉한 보상금도 지급하겠노라 약속했다.

다만, 그는 사냥을 도와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레오 혼자 잡을 수 있으면 좋고, 못 잡아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레오는 그 제안을 승낙했다.

그는 백작의 소개장이 필요했고, 마수를 잡는 건 백작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 * *

레오는 레나에게 백작의 심부름을 다녀오겠다고 알렸다.

일주일 뒤에 떠나는 걸 재차 당부하고는, 말을 타고 평원 남쪽으로 내달려 백작이 알려준 마수를 찾아다녔다.

백작가의 소작농들에게 물어물어 어렵게 발견한 그 마수는 ‘말’이었다.

자르르한 윤기를 흩날리는 매끈한 흑마.

도흑포마는 마수인 만큼 일반 말들보다 훨씬 컸지만, 압오안돈이나 노구화호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덩치여서 사람이 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물론, 안 될 거다.

도흑포마가 어떤 마수인지 확인한 뒤에 사냥할 방법을 강구하려던 레오는 마음을 놓았다.

마수의 태생이 ‘말’이라면 사냥법은 간단하다. 말의 특성상 돌진을 피하고, 뒷다리에 걷어채는 것만 주의하면 됐기 때문이었다.

손쉬운 사냥이 되리라 예상하며 레오는 마수에게 접근했다.

– 푸르륵!

초식동물인 도흑포마는 고개를 흔들어 심기가 불편함을 여러 차례 알렸다.

하지만 레오는 접근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가까이 다가가자 놈이 발로 땅을 긁으며 성질을 드러냈다.

– 히히힝!

거친 투레질과 함께 도흑포마가 돌진해왔다.

작은 수레바퀴만 한 말발굽이 땅거죽을 뒤엎고, 뜨거운 콧김이 아지랑이가 되어 일자로 그어졌다.

레오는 몸을 굴려 도흑포마의 경로에서 벗어났다. 혹시 예상치 못한 공격이 있을까 경계했으나, 마수는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멀리 달려나가 크게 회전할 뿐이었다.

‘됐다. 이건 혼자서도 잡을 수 있어.’

레오의 예상이 맞았다. 놈의 공격 패턴은 아주 단순했다. 그는 자신 있게 검을 뽑아 들며 다음 공격을 기다렸다.

– 히히힝!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미터를 달려나간 도흑포마는 성이 난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말갈기가 흩날리기를 잠시, 놈이 다시 달려들었다.

달려오는 속도를 파악한 레오는 두 번째 돌진을 피하면서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 히히히히힝!

검이 뒷다리를 베었으나, 검날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가죽이 질긴데.’

하지만 괜찮았다. 찌르면 되니까. 한 번 돌격할 때마다 조금씩 상처입혀 발을 묶으면 끝이다.

레오는 검을 고쳐잡으며 세 번째 돌진을 기다렸다.

그런데,

– 푸르르르륵! 푸르륵!

도흑포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멈춰서서 레오를 힐끔 돌아보더니 길게 투레질하고는 남쪽으로 달아나버렸다.

“어어? 야! 야!”

놈은 쏜살같은 속도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레오는 광야에 덩그러니 남아 어처구니없어했다.

‘아니… 도망쳐버리면 어떻게 해.’

고작 한 대 맞았다고 달아나는 마수라니. 상처를 입지도 않았는데.

당혹스러워하던 레오는 그제야 왜 사이먼 백작이 저 마수를 잡아달라 제안했는지 깨달았다.

백작은 도흑포마가 이런 마수임을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엄청나게 빠르고, 쉽게 달아나는 데다가, 드넓은 평야에 살아서 잡기가 거의 불가능한 마수라는 것을.

그는 저놈을 방치하고 있던 것이다. 초식동물인 도흑포마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평원에서 풀이나 뜯을 테니까 잡으면 좋고 못 잡아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소개장을 써주기 싫어서 해결 불능의 임무를 내어주고 입을 닦으려 한 거다.

‘백작, 이 자식이…’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귀족 놈의 농간에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열이 뻗쳤다.

‘내가 저거 잡고야 만다.’

바득바득 이를 간 레오는 심기일전하며 다시 말 등에 올라 도흑포마를 뒤쫓았다. {추적술}은 마수에게 통하지 않았으나, 놈의 말발굽이 큼직하게 찍혀있어서 추적이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냥은 결국 실패했다.

다시 만나면 첫 번째 돌격 때 무슨 짓을 해서라도 놈의 다리에 칼침을 세게 박아줄 생각이었는데, 놈은 레오를 기억하는지 그를 보자마자 달아나버렸다.

야밤을 틈타 녀석이 자고 있을 때 덮치겠다는 계획도 실패했다.

달빛을 빌어 어렵게 찾아낸 도흑포마는 당혹스럽게도 ‘서서’ 잠을 잤다.

그 와중에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지, 녀석은 수상한 기척을 느끼기가 무섭게 잠결에 달려나갔다.

결국, 레오는 사냥을 포기했다.

저건 못 잡는다.

놈은 맨 처음, 딱 한 번 달려들었을 때 끝장을 보지 못하면 잡는 게 불가능한 마수였다.

낙심한 레오는 말머리를 북쪽으로 돌렸다.

소개장을 얻지 못하게 됐다.

왕자가 사냥을 나온다는 정보가 잘못된 것일 경우의 보험이 사라져버렸다.

‘…아니야. 괜찮아. 지금 내 실력에다가 이 레오 덱스터의 몸이면 기사단이든 근위기사단이든 충분히 들어갈 수 있어.’

문제는 추천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고, 레나가 입단 시험을 통과해 기사가 되어버리면 곤란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고민하며 백작가로 돌아가려는데, 평야 멀리에서 도시를 향하는 한 상단을 발견했다.

가는 방향이 같아서 동행하며 밥이라도 얻어먹을까 다가간 그 상단은 놀랍게도 ‘버섯’을 운반하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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