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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5

75화 흑마법사

75화 흑마법사

카인은 물끄러미 조아킴을 바라봤다.

이전에 보았을 때는 형편없는 녀석이었다. 변변한 전투 기술 하나 없이, 그저 벌벌 떠는 것밖에 할 줄 모르던 한심한 쓰레기.

그런데 어느새 단의 핵심 전력이 되어 있다. 녀석의 활 솜씨는 평범하지 않다. 카인은 지금껏 조아킴의 화살이 빗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조아킴의 옆에서 험상궂은 얼굴로 자신을 보는 휴고 또한 전투 능력에서만큼은 마르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존재였다. 게다가 이 자리에는 함께하지 않았지만 테오 역시 만만치 않은 기백과 리더십을 지녔다.

세실을 포함해,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데미안의 동료라는 것.

“세실은 내 친구다. 나는 친구를 버리지 않아.”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카인, 본인도 몰랐다.

다만 이렇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세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데미안을 갖기 위해.

“임무가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 세실.”

그 말에 세실은 예상 그대로의 반응을 보였다.

얼굴이 붉어지고.

안절부절못하고.

이제 곧, 힘들지 않다고 말하겠지.

“히. 힘들지. 않아.”

카인은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알기 쉬운 녀석. 아니, 자신과 데미안 앞에서만 저런 모습을 보인다. 그 외의 사람들은 세실의 감정을 알기 어려워한다.

세실은 강하다. 데미안은 물론이고, 루나보다도 더욱.

카인은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이 세실과 정면 승부를 벌인다면 어떻게 될까.

“단장!”

마르셀의 목소리가 카인의 상념을 깨웠다.

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지시한 사항이 있었는데 왜 돌아온 것인가.

그러나 카인의 불만은 이어진 마르셀의 말을 듣자마자 휘발됐다.

“데미안이 찾아왔어!”

세실, 조아킴, 휴고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인은 웃었다.

세실을 데려온 것은 성공이었다.

***

푸른 매의 단은 제법 제대로 된 용병단이 되어 있었다.

‘인원이 많이 늘어난 것 같은데.’

이전에 페르디나에서 봤을 때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대부분의 단원은 미성년으로 보였다. 하긴, 단장인 카인도 아직 성인이 되지 못했으니.

“와······, 이 많은 용병이 전부 카인의 부하라고?”

루나는 아까부터 계속 후드에 손을 넣어 머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데미안. 나 얼굴에 뭐 묻은 거 없어?”

“응. 없어.”

루나가 웃었다. 그러자 우리를 흘끔거리던 푸른 매의 단원들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신음했다.

나는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자식들. 너희들이 언제 이런 미소녀를 봤겠냐.

“데미안!”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세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비슷한 표정의 덩치와 족제비가 보였다. 뭐야. 저 녀석들이 왜 여기에 있지?

나를 와락 끌어안을 기세로 달려온 세실은 내 앞에 서자 갑자기 쭈뼛거렸다. 뒤이어 달려온 덩치와 족제비가 내 손을 잡았다.

“우우우!”

“데미안! 왜 이제 온 거야 데미안······!”

족제비는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할 말이 아주 많은 표정이기에, 내가 선수를 쳤다.

“너희들이 왜 여기 있는 거야? 테오는?”

“테오는 잡화점에 있어. 사실 나랑 덩치는 디펜더스에 들어가려 했는데. 아, 디펜더스가 뭐냐면 용장 루카스가 직접 지휘하는······.”

나는 족제비의 말을 적당히 한 귀로 흘렸다.

족제비가 제법 키가 자랐다.

“와, 덩치. 진짜로 덩치가 어마어마해졌네.”

덩치가 씩 웃으며 근육 자랑을 했다. 여전히 과묵한 녀석이었다. 저러다가 쿠훌린보다도 커지는 거 아냐? 아까 보니 마르셀도 엄청 커졌던데.

나는 친구들에게 루나를 소개해 줬다. 혹시 모르니 성씨는 숨기고.

“내 이름은 휴고야. 휴고 랑베르. 데미안과는 아주 친한 사이지. 데미안과 나는 잡화점도 운영하고 있어. 테오라는 녀석과 함께. 우리가 잡화점을 갖게 된 것은 모두 데미안 덕분······.”

과묵하다고 생각했던 것 취소다.

루나를 보자마자 덩치는 수다쟁이가 됐다. 말투도 느끼해졌다.

반면 족제비는 루나에게 제대로 말도 붙이지 못했다.

“아, 안녕. 나, 나는 조, 조······.”

“아앗! 네가 조조구나! 조조아킴! 족제비! 이야기 많이 들었어! 친구들이랑 아저씨한테!”

“아, 아저씨?”

나는 루나가 쿠훌린의 딸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족제비와 덩치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쩍 벌렸다.

“그, 그런 짐승 같은 사내에게서 이런 딸이 나왔다고······?”

“우우우!”

잠시 후 카인이 도착했다.

녀석의 여유 가득한 얼굴과 걸음걸이를 보니 괜히 심술이 난다.

“왔군. 데미안.”

“그래.”

루나가 ‘카인! 나 왔어!’ 하며 달려갔다.

카인과 즐겁게 대화하는 루나를 보며, 족제비가 내게 속삭였다.

“······네 여자친구 아니었어?”

“아니야. 족제비.”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닌 세실이었다.

세실은 조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아차. 그러고 보니 지금껏 세실과는 대화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가장 걱정한 건 세실이었는데도.

“오랜만이야, 세실.”

세실은 그 한마디에 화가 풀렸다.

평소의 세실은 고양이 같은데, 이렇게 미소 지으며 나를 올려다볼 때는 영락없는 강아지 같다.

“카인이 괴롭히지 않았어?”

“응. 안. 그랬어.”

세실은 괴롭힘 당하고 있어도 아니라고 말하겠지.

“데미안. 내 말 좀 들어 봐. 카인 녀석이 자꾸 세실한테 위······ 아악!”

족제비가 끼어들자, 세실이 손날로 녀석의 이마를 때렸다. 저 모습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라 나는 웃었다.

푸른 매의 단원들이 계속 루나를 흘끔거렸다. 계속 여기 서서 이야기할 수도 없었기에 우리는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마르셀이 우리를 커다란 천막으로 안내했다.

자리에는 나와 루나, 세실, 족제비, 덩치, 카인, 그리고 마르셀만이 남았다.

“쿠훌린과 엘리샤는?”

카인의 물음에 루나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내가 말했다.

“쿠훌린은 전투 중에 다쳤어. 엘리샤도 몸 상태가 좋지 않고.”

“다쳤다고? 쿠훌린이?”

카인은 믿기 어렵다는 얼굴이었다.

세실, 족제비, 덩치도 한순간에 표정이 변했다.

“누구에게 당했지?”

“흑기사.”

“흑기사?”

역시 카인도 모르는 모양이다.

“흰 새 여관에서 너도 들었었지? 대륙의 이상 현상에 대해.”

엘리샤가 말하기를, 흑기사는 대륙의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곳에서 주로 목격되었다고 한다.

카인에게 굳이 ‘루시엔’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물어봐야 모를 것이 뻔했고, 또 브란델의 반응을 봤을 때 함부로 말하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자가 쿠훌린을 쓰러뜨렸다고?”

카인은 여전히 믿기 어려워했다.

당연한 일이다. 나도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믿지 않았을 테니까.

“······월식 때문이야.”

루나의 말대로다. 월식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쿠훌린은 이겼을 거다. 적어도 패배하지는 않았겠지.

월식이 일며 쿠훌린은 약해졌고, 반대로 흑기사는 강해졌다. 게다가 쿠훌린은 흑기사의 얼굴을 본 후 평정을 잃어버렸다. 그런 것들을 감안한다면 두 사람의 본래 실력은 호각이지 않을까.

나는 화제를 돌렸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 카인.”

“뭐지? 데미안.”

“나를 도와줘.”

눈썹을 들어 올린 카인이 곧 거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한 대 때려주고 싶게.

“네가 나에게 도움을 구하다니. 재미있군.”

“나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어.”

“어디를 말이지?”

“살림바르 왕국.”

살림바르 왕국의 ‘사하룬 사막’. 그곳에 두 엘릭서의 마지막 재료인 ‘태양의 풀’이 있다.

태양의 풀 근처에는 위험한 몬스터들이 많다.

나와 루나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그건 곤란하군.”

카인의 말에 루나가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카인이 후우, 한숨을 뱉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살림바르 왕국으로 가려면 육로나 해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전쟁 탓에 양측 모두 막힌 상황이다. 게다가 푸른 매의 단은 전쟁 중이다. 단장으로서 사적인 일로 자리를 비울 수는 없어.”

“네 사정은 알겠는데, 그래도 너는 내 요청을 수락해야 해.”

“뭐라고?”

“나와의 내기에서 졌던 거, 잊었어?”

카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카인은 은월의 입단 시험 때 나와의 내기에서 졌다. 그래서 카인은 나의 부탁 하나를 들어줘야 한다.

“당장 떠나자는 것은 아니야. 어차피 해로는 무리일 것 같으니 육로를 개척할 생각이야. 나와 루나가 먼저 협력하겠어. 함께 전선을 지금보다 북쪽으로 밀어내자. 이후는 라이칸이 도와주겠다고 했어.”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라이칸을 만났고, 쿠훌린과 엘리샤의 소식을 전했다. 그때 나는 라이칸의 놀란 표정을 처음으로 봤다.

사실 라이칸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태양의 풀을 얻는 데 필요한 동료는 전사보다는 마법사였다. 게다가 몸을 뺄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라이칸이 먼저 제안했겠지. 루나에게 듣기로 벨락과 라이칸은 쿠훌린과는 친형제 같은 사이라고 한다.

“남부 전선에는 아직 티롤의 소드마스터가 참전하지 않았다고 들었어. 그렇다면 우리 힘으로 전선을 밀어낼 수 있을 거야.”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데미안.”

카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 말대로 이곳, 남부 전선에는 티롤의 소드마스터가 없다. 그러나 최근 귀찮은 일이 벌어졌지.”

“귀찮은 일?”

“흑마법사가 나타났다.”

흑마법사?

“마침 그 일로 회의를 다녀온 참이다. 로슈포르 후작이 꽤나 난감해진 것 같더군.”

현재 북부 전선은 오비니 백작군이, 중부와 남부 전선은 브리앙스 백작군과 로슈포르 후작군이 맡고 있다.

이중 소드마스터를 보유한 곳은 오비니 백작군뿐이다.

나머지 두 소드마스터를 하나씩 보유한 왕국군과 발마랑 백작군은 후방에서 대기 중이다.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는?”

“자세한 것은 모른다. 다만 그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의 군대를 이끌고 있다고 하더군. 흑마법사의 등장으로 브리앙스 백작군과 오비니 백작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 아마도 다음 차례는 이쪽, 로슈포르 후작군이겠지.”

카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에 관한 나의 추측이 있다.”

“추측?”

“페르디나로 오는 길에 나는 습격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말에 세실이 흠칫 몸을 떨었다.

“나는 그때 커다란 검은 구체에 갇혀 난생처음 보는 장소로 이동됐었다. 그곳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났지.”

카인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자의 몸을 검으로 베었지만, 치솟는 검은 피가 까마귀로 변하며 감쪽같이 되살아난 것.

여자가 주문 영창 없이 마법을 발현한 것.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잘 아는 듯했다는 것.

“세실은 나와 함께 이동하지 않았다. 그 여자의 말로는 ‘위험한 남자’와 함께 있다고 하더군.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간 나는 기절한 세실을 발견했다. 이후 세실에게 누구와 함께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더군.”

카인이 세실을 돌아봤다.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세실이 어깨를 움츠렸다. 저 자식. 저런 식으로 세실을 괴롭히는구나.

나는 모든 상황을 알 것 같았다. 세실이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그날 만난 대상이 암영이었다는 거다. 그런데 그자는 세실을 기절시킬 정도의 실력자이면서도 세실을 죽이지 않았다. 그런 인물은 하나밖에 없다. 네몬 블레오파드.

아울러 나는 카인이 만난 여자의 정체도 짐작했다.

“모르가나.”

내 말에 카인의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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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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