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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5

75화 바다와 파도의 신녀 한하리

동해 게이트 확인 후 32시간.

출항이 결정되었다.

한국 제1함대의 기함 광개토대왕함과 미7함대에서 파견된 이지스 구축함 알레이 버크급이 함께 출항하기 위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흠… 제법 큰 배로군.”

레온은 먼저 광개토대왕함의 선미에서 곧 출항할 동해안을 응시했다.

태풍이 접근하고 있다는 것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맑고 깨끗한 풍경. 폭풍 전의 고요라는 거겠지.

그렇게 바다구경을 하며 마음을 정양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약간의 소음이 발생했다.

“부대식량까지 다 싣고! 예비무기들 최대한 실어요! 미국 쪽 헌터들은 뭐라고 하나요?”

“그쪽은 알아서 한댑니다. 무전기라도 공유채널로 돌리자 할까요?”

“어차피 게이트 들어가면 다 무쓸모인데, 뭐하러요.”

이용완과 불새 길드 헌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과연, 그들의 행동은 절도가 있었다.

만신전 길드는 그 대부분이 하급 헌터와 이제 졸업을 앞둔 아카데미 생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저들은 게이트 공략의 프로. 국내의 10대 길드를 자처하는 자들이다. 레온이나 야피 같은 규격 외의 성배기사들이 없다면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겠지.

“나는 박 과장한테 연락할 테니까 나머진 알아서들 하세요.”

이용완은 지시를 마무리하고 선미로 나왔다. 그러다 레온을 마주치곤 겍, 하고 멈춰 선다.

“꽤나 능숙하게 진두지휘를 하더구나.”

“……뭐, 이 바닥에서 구른 지도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아직 젊어 보이는데, 10년의 경력인가. 레온은 이자가 보여줬던 첫인상을 떠올렸다.

“그 추잡한 수작질은 이제 그만 뒀느냐?”

“추잡하다뇨… 엄연히 사업활동이라는 겁니다. 중세의 국왕전하께서는 이해하기 힘든 겁니다.”

그래, 모른다.

레온은 평범하게 죽어 전생했다.

대공가의 자제로 태어난 나라는 명예로운 나라였고, 정의로웠으며, 신들이 보살피는 나라였다.

그곳에서 레온은 올바를 수 있었다. 정의를 수행하고, 소신을 지키며 살았다.

때론 엉망인 이웃나라를 타이르기도, 때로는 더러운 짐승들을 소탕하기도, 때로는 야만족들을 묻어버리기도 하면서.

허나, 그 모든 행위의 전제는 오직 빛과 정의를 위해서였다.

“너희들은 돈을 추구하지. 재물과 영향력에만 신경 쓰더군.”

“힘 있는 자는 으레 그런 것 아닙니까? 폐하께서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이용완은 이 이세계의 사자심왕이 자신의 힘과 신의 기적을 이용해 영향력을 넓혀가는 걸 알고 있다.

이미 국내 식량시장에 대혁명을 가져왔고, 헌터협회를 제 딸랑이로 만들었다.

그럼 만신전과 자신들이 다를 게 뭔가. 단지 우리들이 더 세련된 방법을 쓸 뿐이다.

“아니, 다르다. 너희들과 짐은, 라이온하트는 크게 달라.”

“…….”

레온은 자신에게 향하는 눈초리를 일축했다.

“식량도, 재물도 결국은 사람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무한의 재화가 있는 들 그것을 홀로 독점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어떤 병도 낫게 하는 약이 있다한들 그것이 환자에게 베풀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무애한 세상에 금은보화를 쌓은들 부질없는 일이다.”

“…….”

이용완은 이 현자와도 같은 사내를 보면서 무심코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 이름이 곧바로 언급됐다.

“너는 게오브릭 경에게서 무엇을 보았느냐.”

“갑자기요?”

“게오브릭 경뿐만 아니라 그 휘하의 기사들. 왕국의 병사들에게서 무엇을 느꼈느냐.”

“…….”

용완은 제주도 게이트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들의 용기를 보았고, 그들의 희생으로 구해졌다.

그리고 그건 그들이 초월적인 강자여서가 아니다.

아득히 강대한 짐승신들에 맞서, 끝없는 짐승의 대군에 맞서 그들이 싸운 이유는 하나다.

“정의. 너는 오직 정의를 따를 지어다. 아리아나 여신께서 가르치시는 첫 번째 문구지.”

“유치하게 정의가 뭡니까…….”

“유치하다라. 그래,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계산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겐 그리 보이겠지.”

정의는 유치하다.

선한 일은 손해 보는 짓이다.

그러한 관념이 그의 왕국에도 있었다.

제국의 인본주의자들이 그러했고, 현명하다는 마법사들이 비웃었다.

“아해야, 비웃고 냉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의는 유치하고, 선한 일은 이익이 되지 않고, 순수로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을 것이야.”

“허나, 불의로 살아가는 자는 무엇도 구할 수 없다.”

“악하게 살아가는 자가 현명한 자일 순 있어도 용기 있는 자일 순 없는 법이야.”

“순수하지 못한 자는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다.”

레온은 이 불의로운 자에게 드물 정도로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게오브릭과 기사들이 제 말을 포기해가며 구한 목숨이다. 그들은 깨달아야 했다. 증명해야 했다.

그들의 희생이, 용맹과 정의가 가치 있음을.

“증명해라. 네놈들이 영광의 기사들과 충성스러운 병사들이 구할 가치가 있었는지를.”

그렇지 않으면 벌하겠다.

레온의 냉엄한 선언에 이용완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했다.

그리고 그도 내심은…….

-부우우우웅!!

그때였다. 갑판 위에서 수병들이 육지와 연결된 밧줄을 회수하고, 우렁찬 경적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육지와 이어진 현문 사다리가 철거되고, 한국의 국기가 내걸리며 예인선들이 군함의 방향을 조정한다.

물살을 가르며 항구를 떠날 준비를 하는 광개토대왕함. 미 해군의 알레이 버크급 이지스함도 그 뒤를 따른다.

“드디어 출발인가.”

“예정 시간에 딱 맞췄군요.”

자연스럽게 훈계시간이 끝났다. 하지만 이용완에게도 그리 불쾌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 자신도 내심 정의와 선의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무척이나 가슴에 새겨진 탓이리라.

“폐하,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전에 신세진 것에 대한 보답을──응?”

그때였다. 광개토대왕함의 갑판. 그곳에서 기이한 기합소리가 들린다.

-어잇샤! 어잇샤!

“만신전?”

생도들과 병사들이 무언가 기다란 기둥을 어깨에 멘 채 갑판을 지나 선미로 향한다. 그들이 맨 기둥에는 누군가가 매달려 있었다.

-여, 역시 이거 뭔가 잘못됐어요! 신녀라면서요? 신녀라면서! 이런 취급은 뭔가 잘못됐어요!

“한하리… 양?”

대체 저게 뭐하는 꼴이냐는 용완의 시선에 레온은 흡족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배에 여자를 태우면 부정을 타는 법이다. 하지만 반대로 여자를 태워 액땜을 하는 방법이 있지.”

그게 선수상에 사람을 매다는 거라고?

“어찌 그런 눈으로 보느냐. 저 아이, 바다와 파도의 신성께서 지목하신 신녀의 희생 덕에 다른 여인들도 탑승할 수 있었거늘.”

당당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벌인 이 남자는 제 행동에 한치의 부끄럼 한 점 없음이다.

이딴 게… 정의?

* * * *

하리는 자신이 바다와 파도의 신 포마의 신녀로 선정되었다는 말에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었다.

“뭐… 그래도 덕분에 공략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고…….”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닌가? 싶었지만…….

“한하리. 대신 네가 해줘야 할 것이 있다.”

“그게 무슨 일이옵니까?”

“본디 배에 여자를 태우면 부정을 타는 법이다. 풍랑이 일고, 비바람이 들이닥치고, 바다 괴물이 습격하지.”

그거 너무 선입견 아닌가요? 하리는 그 질문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지만 이를 액땜하는 방법이 있다. 오히려 배는 순항하고, 바다는 고요해지며,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지. 네가 할 수 있겠느냐?”

“시, 시켜만 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요!”

하리는 이때, 적어도 그 방법이 뭐인지부터 물어야 했다.

설마 사람을 선수상에 매달아 놓고 신녀랍시고 바친다는 발상을 감히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

“여, 역시 이거 뭔가 잘못됐어요! 신녀라면서요? 신녀라면서! 이런 취급은 뭔가 잘못됐어요!”

하리는 기둥에 온몸이 밧줄로 묶여 고정되는 가운데, 이 부당함을 호소했으나 하리를 옮기는 생도와 병사들은 달리 생각했다.

“선배… 고생해요. 선배만 고생하면 모두가 편해.”

“재혁 후배님? 너, 너어! 수호야! 내 동생 수호야!”

“누나… 미안해. 내 발언권은… 끗발이 안 먹혀.”

“배, 배신자! 후배님들! 헌터님들! 누군가! 누군가 이성을 가진 사람은 이걸 멈춰야 해요!”

“”어잇쌰! 어잇쌰!””

“다들 듣고 계세요?!”

그러는 사이 광개토대왕함은 순항 중이었다. 그리고… 금방 너머에서 요동치는 태풍을 목격했다.

“전방 태풍 접근 중! 나비입니다! 초속 64.5m!!”

이에 수병들도 바빠졌다. 목표로 한 동해 게이트는 태풍의 직격코스와 맞닿아있다. 응당 태풍과의 충돌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하리는 선수상에 묶인 채 방치되어 있었고.

“꺄아아아악! 사람 살려어어! 사람 살려요!!”

시커먼 구름에서는 천둥번개까지 치고 있다. 정말로 저 인외마경의 마굴을 정면에서 들어갈 셈이란 말인가? 그것도 자신을 매단 채?

“사람 살려어어어어어어!!”

“시끄럽다!”

“폐하?!”

목소리가 들린 곳에는 레온이 태연자약하게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낚시대까지 세운 채.

“조용히 하거라, 물고기가 다 달아나지 않느냐.”

“낚시? 지금 낚시하시는 거예요?!”

사람을 선수상에 매달아 놓고 태연하게 낚시? 하리는 기가 막혔다.

“바다에 나왔으면 응당 물고기를 낚아야 함이다. 쯧쯧, 네 녀석 덕에 물고기가 달아난 듯하다.”

“그, 그야 이런 큰 군함이 달리는데, 선두에 물고기가 있을 리 없잖아요!”

“다 잡는 수가 있다. 내 항구도시 랭퀄의 수호자였을 적에는 고래를 타고 낚시를 했음이야.”

개뻥 같은데 레온이라서 신빙성이 있는 소리였다. 하리는 불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저, 정말 이렇게 매달고 태풍으로 향하실 거예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하리는 닥쳐오는 태풍에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태풍 속에서 자신을 매단 선수상이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요단강 익스프레스는 기정사실이기에.

“폐하! 무언가 방법이 있는 거죠? 성법이나 뭔가 방법이 있는 것이죠?! 믿습니다, 폐하! 믿쑵니다앗!”

하리의 필사적인 성원이 닿았던 것일까? 레온의 찌에 반응이 왔다.

“흠, 제법 튼실한 놈이구나!”

레온이 낚시대를 당겼다. 이 와중에도 프로의 솜씨인가, 레온은 단숨에 물고기를 낚았고 큼직한 벵에돔이 끝에 대롱대롱 딸려왔다.

“최 중장. 준비하라.”

“예, 예에, 폐하…!”

그때, 수병들이 몰려들더니 순식간에 무언가를 차리기 시작했다.

원거리 항해를 할 때쯤에 제사상으로 제단의 역할을 하는 그것에 즉사시킨 벵에돔을 올려놓는 레온.

“그대는 은혜로운 바다의 주인일진저. 그대의 영역에 감히 발 디딘 필부들 앞에 나타나소서.”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온갖 이상기후와 파도로 흔들리던 선상이 고요해지더니 바닷물이 요동치며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거대한 상어 같은 형태를 하는 바닷물.

대자연의 신비 따위를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작위적인 현상. 모두가 직감했다.

저것이 ‘신’이라고.

[아~ 라이온하트. 친애하는 나의 등대. 나의 신전 랭퀄의 보호자.]

“포마. 바다와 파도의 신성이시여.”

한쪽 무릎을 꿇은 레온의 인사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는 포마. 그는 동해와 그 너머에서 접근하는 태풍을 보곤 한탄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참으로 경망스러운 바다로군. 품위가 없어. 플르의 말대로 이 땅에는 신성이 존재하지 않음이 느껴진다.]

상어의 모습을 한 물방울, 바다와 파도의 신은 자신이 한입에 삼킬 수 있는 군함을 내려다보았다.

[돛조차 달려있지 아니함은 무슨 영문인가! 게다가 이놈이고 저놈이고 바다의 은혜를 깨우치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로구나!]

“아직 이 세계에는 바다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어여삐 여기고 보듬어 주시오.”

[아니! 내 신도조차 아닌 자들을 보듬을 이유는 없지! 오직 두려움과 존중 속에서 은혜 또한 내려지는 것이야!]

포마의 일갈에 수병들은 두려움에 빠졌다.

그가 어째서 분노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거대한 존재의 분노는 마주하는 것만으로 발발 떨리며 온몸을 짓눌렀으니까.

저 존재의 변덕 앞에서 자신들은 파도에 집어 삼켜지는 모래알과 다를 바 없으리라.

“…….”

레온은 수많은 신들에게 총애를 받지만, 그렇다고 모든 신들이 편한 상대인 건 아니다.

포마는 그중에서도 유독 변덕이 심하고 괴팍한 성격. 그가 자신을 향해 노기를 드러낸 적은 없으나 종종 불합리한 강요를 다른 신자들에게 행한 적은 있었다.

“그나저나 포마께선 어찌 저 아이를 신녀로 삼으신 게요.”

[흐하하하하…….]

포마가 웅혼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는 선수상에 매달린 채 발발 떠는 하리를 응시했다.

[페토스 놈을 겨우 설득했다만, 역시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어. 이 아이는 태생적으로 신을 받들기 좋은 그릇을 지녔다.]

“흠?”

[물론 자네만큼은 아니지. 자네는 모든 신위를 담을 수 있는 규격 외니까.]

“팔자가 박복한 것이라 느끼긴 했으나 정말로 그럴 줄이야.”

[이는 축복이다. 어찌 불운으로 여기는가?]

“신앙심 부족한 필부에게 신들의 관심은 독이 될 수 있는 법이오.”

[그것은 나의 등대가 차차 알아서 해결하리라 믿겠다.]

그 말에 레온은 한숨을 쉬곤 낚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한하리, 나의 새로운 신녀여.]

“제, 제가요?”

[내 너를 어여삐 여겨 물의 축복과 파도를 다스릴 권능을 주겠다.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나의 강령과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거라.]

“아, 예, 예에…! 여기서 풀어만 주신다면!”

포마가 외쳤다.

[내 신녀의 희생이 있는 한, 그 어떤 파도도 그 배를 침범치 못하리라!]

“……예?”

하리가 고개를 주억거렸지만, 포마는 씨익 웃어 보이곤 어여쁜 신녀에게 시련을 내렸다.

[너의 희생이 생명의 불꽃을 피우리라.]

그 말을 끝으로 거대한 물방울이 흐트러졌다. 마치 한때의 비눗방울처럼.

“…………끝?”

하리가 망연자실할 때였다. 누군가가 외쳤다.

“전방에 태풍 접근 중! 파고 10m!!”

이에 수병들과 헌터들이 일제히 갑판 내부로 대피했다. 하리만 남겨두고.

“…………….”

진짜 내버려둘 거야? 나 이대로 두고 가는 거야?

선창 너머에서 빼꼼 얼굴만 내민 아카데미 후배들과 눈이 마주쳤다.

-힘내십쇼.

-누나, 힘내.

-선배님 화이팅!

-한국 헌터 아카데미 수석의 저력을 보여주십쇼!

무언의 응원만을 들은 하리는 금새 다가오는 파도를 맞이해야 했다.

-콰아아아아아아!!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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