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76

76화 출항 (1)

76화 출항 (1)

소설에서 모르가나가 등장하는 시점은 후반부다.

그래서 모르가나에 대해 밝혀진 것은 많지 않았다. 머지않아 소설이 연중됐으니까.

내가 아는 것은 모르가나가 한때 ‘성녀’로 불리는 존재였다는 것과, 네몬과는 나름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 그리고 카인에게 아주 짙은 흥미를 보였다는 것이다.

‘여자 네몬이라고 부르는 독자들도 있었지.’

그럴 만도 한 것이, 모르가나는 네몬처럼 비밀이 많고 흥미도 많았다. 대부분의 상대에게 존대한다는 점도 비슷했다. 유독 진한 색의 입술을 가졌다는 것도.

그러나 모르가나와 네몬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는데, 단독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네몬과 달리 모르가나는 자신의 무리를 끌고 다녔다.

그 무리가 바로 카인이 말한 ‘어둠의 군대’다. 모르가나는 자신의 은밀한 거처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다. 예를 들어 여러 짐승과 몬스터의 정신을 지배하고, 개조하는. 대부분의 실험체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개체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다.

심지어 모르가나는 인간을 실험대에 올리기도 했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지?”

카인의 반응으로 미루어, 나는 그 여자가 모르가나라는 것을 확신했다.

“설마 데미안. 너도 습격당했던 건가.”

나는 대답을 미루고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이른 시점에 모르가나가 나타나다니. 쉬이 믿기지 않는 일이다.

‘소설보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있어. 오를리안 왕국의 영지전도, 카인의 각성도, 모르가나의 등장까지도.’

소설에서 모르가나의 행동 원리는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네몬과 종종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독자들은 둘의 목적이 비슷할 수 있다는 추측을 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추측이기도 했다.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네몬의 목적을 알지 못했으니까.

그 둘은 정말로 ‘흥미’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것일까. 만약 두 사람이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을 조종하는 배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흑기사.’

문득 흑기사가 떠올랐다.

흑기사와 모르가나는 비슷한 시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모르가나는 카인을 습격했고, 흑기사는 쿠훌린을 습격했다. 어쩌면 흑기사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죽이는 것이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흑기사와 모르가나에게서 무언가 연관성을 찾을 수는 없을까.

“모르가나는 위험한 자야. 대비책을 세워두는 편이 좋겠어.”

모르가나는 강하다. 소서러로 각성한 카인도 모르가나에게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 남부 전선에는 소드마스터가 없다. 엘리샤 정도의 마법사나 소드마스터가 아니라면 모르가나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페르디나로 가야겠어.”

***

“데미안!”

테오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성년이 된 테오는 더 듬직해졌다. 얼굴에서는 자신감과 여유가 넘쳤고, 키도 많이 자랐다. 와, 180센티미터도 넘을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보는 리즈는 왜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전신거울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런 리즈 옆에서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테오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여자친구냐?”

“아니.”

“그럼 누군데?”

“쿠의 딸.”

“뭐라고!”

경악해 뒷걸음질 치던 테오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이 리즈와 너무 닮아서 나는 웃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 나는 루나야.”

루나가 테오와 리즈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얼굴이 빨개진 테오가 루나와 악수했고, 리즈는 이유 모를 눈물을 흘리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리즈를 1층에 두고 우리는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와 덩치는 푸른 매의 단 소속으로 참전했어. 원래는 도시 수비대에서 너희를 기다린다고 했었는데, 세실과 카인이 와서.”

“족제비와 덩치는 이미 만났어. 세실과 카인도. 그건 그렇고 테오.”

“응?”

“배를 구할 수 있을까?”

테오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현재 페르디나의 상선은 모두 평의회 소속이 되었거든.”

예상대로다.

지금 같은 전시에 페르디나 평의회는 모든 상선을 군에 소속시켜 군사 목적으로 이용한다.

“작은 배는?”

“작은 배? 개인이 소유한 낚싯배 같은 걸 말하는 거야?”

“뭐든 좋아. 세르펜타인 해협을 건널 수만 있다면.”

“낚싯배로 해협을? 목적지가 어딘데.”

“살림바르 왕국.”

테오가 멍한 표정을 했다.

“농담이지? 데미안.”

“농담 아니야.”

“여기서 살림바르 왕국까지는 범선으로 움직여도 최소 한 달은 걸려. 그것도 아주 유능한 항해사가 있다는 전제하에. 게다가 지금 세르펜타인 해협에는 티롤의 함대가 버티고 있어. 낚싯배로는 무리야.”

루나가 끼어들었다.

“데미안. 은월호를 타고 가면 어때? 브란델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브란델과 함께 은월섬으로 가서 벨락에게 도움을 구한다. 그리고 대륙을 크게 반시계 방향으로 선회해 살림바르 왕국으로 간다.

그러나 그 방법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항해의 대부분을 제국의 영해를 지나야 한다. 제국의 함대는 대륙의 모든 왕국의 군함을 합한 것보다 막강하다. 붙잡히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바다에 수장될 거다.

어쩌면 흰 새의 도움으로 제국의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에 쿠훌린은 바다에 결계가 있다고 말했었다.

‘결계에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휘몰아치는 폭풍에 바닷속으로 수장되고 말아. 저 새는 우리에게 결계의 틈새를 안내해 주는 거야. 틈새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흰 새의 도움 없이는 우리도 이쪽 바다를 항해할 수 없어.’

그렇다면 그 결계에는 제국의 함대도 접근할 수 없겠지. 그러나 이 방법은 바다를 더욱 크게 돌아가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치유제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리아논과 디네베보다도 위급한 건 쿠훌린이다.

그것을 설명하자, 루나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살림바르 왕국까지 배로 움직일 생각은 없어. 그곳은 어디까지나 최종 목적지니까. 우리는 슬로바 왕국으로 갈 거야.”

슬로바 왕국은 티롤 왕국 동쪽에 있다. 그리고 티롤은 북남으로 길쭉한 형태의 영토를 지닌 왕국이다. 따라서 세르펜타인 해협을 무사히 지날 수만 있다면 슬로바 왕국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팔짱을 낀 테오가 후우,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조금 현실적인 목표가 된 것 같은데, 그래도 쉽지 않을 거다. 티롤은 해상 무역이 발달한 왕국이니까. 당연히 군함의 전투력도 상당하겠지.”

테오의 말이 맞다.

제국을 제외한 아스트레아 대륙의 여러 왕국 중, 해군의 힘이 막강한 삼왕국으로 살림바르, 루네카, 그리고 티롤을 꼽는다. 그래서 나는 원래 육로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육로에는 모르가나가 있다. 네몬도 있을지 모른다. 티롤의 함대가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그 둘을 만나는 것보다는 낫다.

“아무튼 배는 수소문해 볼게. 자금은 걱정하지 마. 네 말대로 돈을 아주 쓸어 담고 있었으니까.”

테오가 엄치를 추켜 올리며 씩 웃었다. 루나가 손뼉을 치며 환호했고, 그러자 테오가 붉어진 얼굴로 뒤통수를 긁었다.

슬슬 해가 저무는 시각이었는데도 테오는 만사를 제쳐두고 배를 알아보러 나갔다. 긴 여행에 지쳐있던 우리는 침대에 누웠고, 순식간에 잠들었다.

.

.

.

눈을 뜨자 퀭한 눈의 테오가 나를 보고 있었다.

“잘 잤냐?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울 수가 없었다.”

창밖을 보니 오후인 듯했다.

루나는 아직 자고 있었다.

흘끔 루나를 본 테오가 작게 속삭였다.

“저렇게 예쁜 여자아이는 진짜 처음 본다. 고백해 보지 그래?”

“고백은 무슨.”

“뭐야. 얼굴이 빨개지는 걸 보니 마음이 없지는 않은 거 같은데?”

정말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 같아서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알아본 건 어떻게 됐어? 쓸만한 배가 있어?”

테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쉽지 않겠어. 연이은 해상전으로 이미 많은 배가 부서진 상태야. 남은 배는 크건 작건 모조리 평의회 소속으로 전환됐어. 작은 배도 해상전에서는 요긴하게 쓰일 곳이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렇겠지.

탈출용 배로 활용할 수도 있고, 밤중에는 몰래 적진에 잠입할 용도로 쓸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역시 평의회 사람을 만나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그래서 벨레트 단장을 만나기로 했어. 전시다 보니 그것도 쉽지 않더라. 쿠의 이름을 팔아서 간신히 면담 허가를 받아냈어.”

벨레트 단장은 사실상 페르디나의 이인자인 데다가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의미.

그리고 나는 어차피 벨레트 단장을 만날 생각이었다.

“테오. 너는 이제 좀 쉬어. 한숨도 못 잤지? 벨레트 단장은 나와 루나가 만날게.”

“아니야. 나도 함께 가겠어. 네가 없는 사이에 벨레트 단장과 조금 친해졌거든.”

테오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실은 벨레트 단장이 나를 지휘관으로 키워 보려 했었어. 두어 달 전까지 나도 용병 교육을 받았었거든. 아무리 잡화점을 운영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무력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안 되겠더라. 잡화점 일이 너무 바빠져서 말이야. 아니, 이제는 사실상 상단으로 전환하는 시점이지. 전쟁의 피해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번 전쟁으로 더욱 덩치를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테오는 뿌듯해 보였다.

녀석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잡화점의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랑베르 잡화점은 3호점까지 확장했다.

“고마워. 테오.”

“고맙긴. 네 덕분이지.”

테오가 씩 웃었다. 그 얼굴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테오도, 덩치도, 족제비도,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슬슬 준비해 둬. 곧 면담 시간이니까.”

테오가 방을 나갔다.

나는 옆 침대에 잠든 루나를 흔들어 깨웠다.

“루나. 일어나.”

아우웅······, 동물 같은 소리를 내며 루나가 눈을 떴다.

.

.

.

“배를 달라고?”

벨레트는 눈 밑이 시커먼 것이, 아주 피곤해 보였다.

“네. 벨레트 단장.”

“미안하지만 불가능하다. 지금은 전시다. 아무리 너희들이 쿠가 아끼는 아이들이라 해도 군의 물건을 내줄 수는 없어.”

“그냥 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대가를 지불하겠어요.”

“안 된다 데미안. 면담은 여기까지만 하지.”

벨레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테오가 다시 한번 간청했지만 벨레트는 거절했다.

“티롤 왕국의 흑마법사에 대해 들으셨죠?”

문을 열고 나가려던 벨레트가 내 말에 뒤를 돌아봤다.

“그 흑마법사가 브리앙스 백작군과 오비니 백작군에게 큰 피해를 줬다는 것도 알고 계시죠? 아마도 다음 차례는 남부 전선이라는 것도.”

벨레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흑마법사는 어둠의 군대를 이끌고 있어요. 놈들은 인간과 달리 두려움이 없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죠. 게다가 물리 공격은 잘 통하지도 않아요. 브리앙스 백작군과 오비니 백작군이 당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지금까지 오를리안 왕국군은 그런 존재와 싸워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페르니다의 노련한 용병들도 마찬가지예요.”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데미안.”

“저는 어둠의 군대를 상대할 방법을 알고 있어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