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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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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차의 첫날

번쩍!

나는 또 다시 느껴지는 감각에 눈을 떴다.

새로운 회차.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격통!

“끄으으으윽!”

지난 삶을 제대로 돌아볼 틈도 없이, 머리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우선 수결을 맺어 의식파동으로 사용하는 수면술을 써 주변 사람들을 다시 잠재워 버렸다.

“끄그그극!”

‘젠장, 위험하다.’

나는 은식술을 써 의식의 크기를 누르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격통은 더 심해질 뿐이었다.

의식을 없애는 비술이 아닌, 지닌 바 의식을 ‘상단전 안으로 압축’해서 숨기는 비술이기에 도리어 상단전이 더 큰 무리를 받는다.

연기기 14성.

그것도 네 개의 공법을 대성해서 연기기 극성에 도달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분명히 지난 삶보다는 조금 의식의 크기가 커졌고, 그 조금으로 인해 당장이라도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았다.

‘빠, 빨리 영약이 있는 곳으로..’

입에서 거품이 나온다.

나는 전신을 파르르 떨며, 머리를 부여잡고 거의 기어가다시피 황주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뚝, 뚝뚝…

입과 코, 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상단전이, 부푼다.

‘어, 어떻게든 해야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전신의 곳곳을 점혈했다.

의술 공부를 할 때에 배웠던, 인체의 기를 증폭시키는 혈도.

쿠구구!

체내의 기가 순간 폭증했다.

나는 폭증한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내며, 기운에 의식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웅!

의식이 쪼개지며 강환(罡丸)이 만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정신에 가해지는 부하가 조금 줄어들었다.

‘체내의 기를 증폭해서 강환을 만들었다고 해도, 너무 기운이 적어서 금세 해체될 거다. 의식은 다시 돌아올 테니, 그 사이에 어서 영약을 찾아야해!’

나는 지끈대는 머리를 억누르며 황급히 황주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흙을 그대로 파헤쳐서 그대로 입에 집어넣는다.

와드득, 와득..

영약이 흙째로 입에 들어온다.

하지만 나는 빨리 삼을 씹어먹었고, 영약의 기운을 다스리며 단전으로 인도했다.

쿠구구구!

전신혈도를 기운이 일주천했다.

나는 기운을 인도하며 바로 환골탈태를 시도했다.

쿠구구구!

우득, 우드득, 우드드득!

전신이 오기조원에 알맞게 진화하며, 완벽한 조화력(調和力)이 상중하단전을 조화시켰다.

부풀어오르던 상단전이 중하단전과 조화를 맞추며 그 부담을 없애버렸다.

“후우우…”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뱉으며 안도하였다.

‘바로 머리가 터져 죽을 뻔했다.’

나는 미리 만들어둔 강환을 체내로 흡수해서 다시 내단을 만들었다.

내단이 자리를 잡으며 전신의 기의 흐름을 같이 통제해준다.

전신이 완전히 편안해졌다.

나는 주변에서 영약을 더 찾아 먹어서 내단을 완전히 꽉 채워버리고, 기운을 억지로 증폭시켜서 상한 정기를 안정시켰다.

‘그나저나… 이젠 정말 이 의식을 어떻게 할 방법도 찾아야겠어.’

연기기 수준의 의식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축기기에 오르면 말 그대로 매 회차가 시작하자마자 머리가 뻥뻥 터져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말 그대로 끝없는 폭발의 굴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해.’

의식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경각심을 가지며, 나는 그제야 지난 삶에서 얻은 것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지막에, 등봉조극의 극의를 깨달았다.’

우웅!

장심으로 강환이 빠져나온다.

“하나에서 삼재가.”

강환이 셋으로 쪼개진다.

“삼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순환하니, 그 순환에 집중한다면…”

세상 만물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각각의 강환에 서로를 투영시킨다.

파아앗!

세 개의 강환이 다시 세 개로 쪼개진다.

‘아…’

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아홉 개 중 일곱개는 안정적이었지만, 새로 얻은 두 개는 아직 조금 불안정했다.

하지만 안정화는 익숙함의 문제이니 몇 년 정도만 다루다보면 해결될 문제였다.

그 말은 즉, 나는 정말로 등봉조극의 극한에 도달했다는 의미였다.

파아앗!

눈을 감았다 뜨며 의념의 세계에 진입하자, 내 주변으로 아홉 명의 내가 서 있었다.

“들어와라.”

파아앗!

아홉 명의 내가, 순간 내게 다시 겹쳐졌다.

사고의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폭증하는 것이 느껴졌다.

“10배 가속.”

순간, 세상이 느려졌다.

파앙!

나는 허공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오기조원 때처럼 공기의 흐름과 영기의 흐름 같은 걸 감지해서, 최적화 된 곳을 밟을 필요조차 없다.

어디를 밟아도 느릿느릿하니 전부 껑충껑충 뛰어다닐 수가 있어졌다.

마치 정말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좋군.’

나는 느려진 세계를 부유하며, 하늘 높이 떠올라 생각을 정리했다.

김영훈이 남긴 월도입천무.

그 구결들 역시 뭔가 갈피가 잡힐 것 같았다.

‘등봉조극 너머의 경지는, 강환을 의식과 일체화시켜 의식을 실체화시키는 것이 주이다.’

하지만 ‘어떻게’ 일체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월도입천무를 떠올려보아도 조금 아리송했다.

천재냐 둔재냐, 경험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김영훈에게만’ 적용되는 사례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김영훈의 주관성이 짙었다.

‘이건 추후에 김영훈을 등봉조극으로 끌어올린 후에 물어봐야하는가…’

어차피 이번 삶에는 오행공법을 전부 대성해야 하기도 하니, 그가 등봉조극까지 오르는 시간은 기다려줄 수 있었다.

‘흠, 좋아 그러면 월도입천무에 대해서는 너무 티가 나지 않는 선에서 김영훈의 느낌을 빼고 다시 그에게 전승시켜주면 될 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잠시 허공을 부유할 때였다.

찌릿!

“음?”

의념의 세상.

한 줄기 붉은 의념의 선이 내게 와닿았다.

적의(敵意)!

의념의 선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저 아래 숲 속.

백색의 거체(巨體)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오싹!

‘여우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호신강기로 전신을 뒤덮었고, 다음 순간.

여우가 내 앞에 나타나 허공에서 회전하며 꼬리를 내리쳤다.

꾸광!

파공성이 울리며, 나는 극속으로 땅 아래에 처박혔다.

[이 놈. 왠 놈이길래 감히 내 영역에 침입했느냐. 내가 이 숲의 주인임을 모르느냐? 내 허락 없이 감히 이 숲에 들어왔느냐?]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서란에게 배운 요족어로 여우에게 대답했고, 여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족어를 하는 걸 보니, 역시 요괴놈이 맞군. 같은 요족으로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내 영역에 들어오다니, 죽을 준비는 한 것이겠지!”

‘이런 젠장.’

“숲의 주인이여, 전부 오해입니다. 저는 등선향의 공간균열에 휘말려서 이곳에 떨어졌을 뿐입니다!”

“오호, 좋은 변명이군. 하지만 이걸 어쩌나, 등선향의 중심부 말고 이 인근은 공간이 안정적인데? 내 흔적을 맡고도 내 영역에 허락없이 감히 들어왔다고 변명을 하는 게냐?”

‘날 같은 요괴로 인식하는 건가?’

아무래도 언제든지 잡아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 인간이 그의 영역에 들어온 것과.

같은 요괴가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것은 다른 문제인 듯 싶었다.

“일단 제가 요족으로서 견문이 짧아 숲의 주인의 흔적을 잘 몰랐습니다. 그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축기경 극한에 인접한 영성(靈性)을 요단에 품어놓고 그따위 거짓말로 나를 농락하려 드느냐?”

여우가 허공을 밟으며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죽어라, 침입자 놈!”

파아앗!

완전히 새하얀 빛이 된 요호(妖狐)가 내게 떨어져 내렸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나는 이를 악물며 요호의 공격을 피하고, 우선 동료들이 있는 곳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괜히 나와 요호의 싸움에 말려들면, 아직까진 범인에 불과한 동료들은 말 그대로 갈려나갈 터였다.

우우웅!

여우가 의식영역을 퍼뜨렸다.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도 거대한 의식영역이 느껴졌다.

여우가,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파아앗!

동시에 여우의 의식영역이 압축되며 여우와 같은 형태를 취한다. 의식영역이 여우와 겹쳐지며, 여우가 다시 한번 새하얗게 백열한다.

번쩍!

마치 하얀 빛 그자체로 변한 듯 하다.

여우는 10배로 가속한 내 앞으로 순식간에 다가오며 앞발을 내리쳤다.

‘빠르다!’

나는 황급히 여우의 앞발을 피하며 저 멀리 있는 작은 구릉을 넘어섰다.

그러나 다음 순간.

번쩍!

꾸구구구!

백색의 빛이 폭발하며 작은 구릉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 너머로, 여우 형태의 백색 광망들이 내게 날아왔다.

작은 산을 통째로 없애버리고도 상대를 노리는 힘!

‘결단경 여우 녀석이다.. 정면으로 붙으면 죽는다.’

나는 여우의 공격을 피하고, 계속해서 도망쳤다.

파아앗!

여우가 또 다시 백색의 빛살처럼 변해 나를 쫓아온다.

‘한 순간, 틈을 노린다!’

파공성이 터지며 여우가 내 앞에 당도한다.

녀석의 입이 벌어진다.

나는 자세를 잡고 장심에서 강환을 하나 뿜어낸다.

가속률이 떨어졌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환에 강기를 연결한 다음 휘둘렀다.

월악!

꽈과광!

빛이 폭발하며, 여우가 잠시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약간의 흔적만이 남았을 뿐.

여우는 크게 타격을 받지 않았다.

강환은 분명 기습을 한다면 아무 대비도 하지 않는 인족 결단기 수도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건 가능했으나.

열이 잔뜩 받은 채 기운을 한껏 끌어올린 결단경 요족에게는 안 되는 것이었다.

오히려 여우는 내 강환을 한대 맞고 더욱 짜증이 났는지, 기운을 더 크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네 이놈. 죽여버릴테다!”

파아앗!

백광이 비춰지며, 여우의 주변으로 여우와 닮은 수 개의 분신들이 늘어선다.

집채만한 여우의 분신들이 일제히 백열하며 한줄기 빛살이 되었다.

꽈광, 꽈과과광!

등선향의 강과 작은 호수가 증발한다.

구릉 두어개가 무너지고, 폭음이 사방을 울렸다.

나는 미친 듯이 여우의 공격을 피하며 등선향의 끝자락으로 달렸다.

‘젠장, 인족보다 육체의 강도도 단단하고, 대비도 하고 있어서 강환조차 안 먹힌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나마 가속을 하면 연기기 극성을 넘어선 수준의 의식을 가진 나는, 김영훈보다도 훨씬 가속의 효율이 좋았기에, 결단경 여우의 속도를 따라서 공격을 피할 수는 있었다.

‘속도 말고는 아무것도 안 통한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도 최대한 도망치는 게 상책.

심지어 그마저도 여우가 괴상한 요술을 쓰면 가끔 따라잡힐 뻔하기도 한다.

“등선향 바깥으로 떨어뜨려주마, 침입자 놈!”

“이런 제길, 오해라고 말했..”

꾸과과광!

여우가 입을 벌리자 백색의 빛이 튀어나오며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망할 여우 놈 같으니…’

어쨌든 슬슬 동료들한테서는 충분할 만큼 떨어졌다.

여우가 나를 찾겠다고 광분하며 날뛰어도 동료들이 죽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여우를 보며, 허공을 향해 수도를 그었다.

“월수궁무록.”

슈칵!

인지가 베여나가며, 나는 여우의 의식의 사각에 진입했다.

여우의 입장에서는 내가 갑자기 허깨비처럼 사라진 모양이니, 당환한 듯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월수궁무록은 의식을 잘라내어 숨고 도망치는 방법.

조수월무록은 자신의 의식을 잘라내어 어검에 입력하는 법.

월수월무록은 어검에 의식을 입력해서 의념의 화신으로 이루는 방법 등에 대해 기술되어 있었다.

월도월무록이야 월수월무록에 시행착오가 추가된 것이었고.

월수궁무록과 기타 무학서들은 경지에 상관없이 언제나 요긴하게 써 먹을 수 있었다.

‘아니, 김 형이 만든 무학은 대부분 경지에 상관없이 요긴하게 쓸 수 있지.’

그 점은 언제 생각해도 대단한 듯 했다.

“이 침입자 놈! 당장 나오지 못하겠느냐!”

여우의 음성이 영기를 타고 진동한다.

여우는 그의 사각을 파고들어가 숨어있는 나를 찾으며 날뛰었다.

‘너무 깊게만 파고들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터.’

지금의 내 실력이라면 여우의 목전에 걸어들어가지 않는 이상 월수궁무록으로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

‘젠장, 이번 삶을 시작하자마자 여우 놈한테 도망치는 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만…’

너무 경솔했다.

등봉조극의 극한에 도달한 상태에서 너무 흥분했다.

‘내단만 만들고 얌전히 박혀있었어야 했는데… 나머지 동료들은.. 사흘 정도는 그래도 잘 버티겠지..? 아니면 월수궁무록으로 몸을 숨기고 돌아가면..’

그 때였다.

“어디 주변을 초토화시키고도 안 나오나 보자!”

여우가 다시 요술을 쓰기 시작했다.

여우의 몸이 백열하더니, 여우의 주변으로 날카로운 백색의 가시 같은 것이 수천 개가 떠올랐다.

하나하나가 강환과 맞먹는 공격.

그 무수한 가시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주변 일대를 뒤덮었다.

푸드드드득!

촤아아악!

끼룩끼룩끼룩!

연기기급의 기운을 가진 요수들, 새들, 벌레들이 음양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을 감지한 것인지.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새들과 벌레떼들이 날아오르며 범위 바깥으로 도망친다.

‘망할 여우 놈..!’

지난 삶의 귀혼이 그랬던 것처럼, 전부 내게 날아오는 것이라면 쳐낼 수라도 있겠지만, 저건 그냥 무작위로 한 번이라도 걸리라는 식으로 지상에 내려꽂는 요술이 분명했다.

백색의 가시들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파아앗!

쿠구구구구궁!

새하얀 비가 쏟아져내렸다.

나는 사고를 가속한 상태에서 미친 듯이 산군월악비를 밟으며 가시들을 피했다.

인근의 숲이 삽시간에 초토화된다.

‘동료들한테서 떨어져서 다행이군…’

나는 식은땀을 훔치며 미친 듯이 나를 찾아 발광하는 여우의 앞에 다시 나타났다.

동료들과 떨어져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더 떨어뜨려 놓아야 할 것 같았다.

* * *

사흘이 지났다.

나는 여우에게서 사흘동안 쉬지않고 도망다녔다.

누가 결단경 괴물이 아니랄까봐, 여우는 사흘동안 나를 찾으려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음에도 하나도 지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제 슬슬 지쳤을 텐데, 썩 나오지 못하겠느냐?”

나는 월수궁무록으로 몸을 숨긴 채 숨을 골랐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도망다니느라, 내단이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빌어먹을 괴물딱지..’

나는 눈쌀을 찌푸리며 속으로 여우를 욕했다.

여우의 의념은 황금빛이 돌고 있었다.

처음에는 침입자인 나에 대한 경계심과 분노가 가득했지만, 며칠 사이에 슬슬 월수궁무록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다.

이제 여우는 나를 잡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마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제대로 된 일격을 꽂아서 끝장을 낼 터였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숨을 골랐다.

‘이제 슬슬 시간이 됐다.’

“당장 나오너라, 정체모를 요족 녀석아. 지금 나오면 사지를 뜯는 것으로 내 영역을 멋대로 침범한 무례는 봐 줄 것이다.”

나는 씨익 웃으며 월수궁무록을 해제하고 여우의 앞에 섰다.

“오호, 드디어 포기한 거냐?”

“아니, 음양의 흐름을 잘 봐라. 주변의 영기가 흔들리고 있지 않으냐?”

“이 놈이 무슨..”

나를 보며 으르렁거리려던 여우가, 멈칫하며 눈을 부릅떴다.

천지영기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너무 약했을 때는 몰랐지만, 오히려 강해지니 더욱 더 잘 와닿는다.

천지영기와 음양의 흐름이 떨리며 비틀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기세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것만으로 산천초목이 몸을 떤다.

“아, 아아아…”

여우가 침을 질질 흘리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천인(天人)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히, 히익…!”

여우는 공포에 떨며 달아나려고 했으나, 흑색의 마의를 입은 이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크아아악!”

여우의 혼백(魂魄)이 그대로 마의인의 소매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쿠르릉!

하늘에서 한 줄기 금빛의 번개가 내리치며, 여우의 육신을 불살랐다.

여우의 뼈와, 요단으로 보이는 영롱한 구슬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금색 장포를 입은 이가 손짓을 하자 여우의 요단이 그의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런, 한 발 늦었군. 그럼 이건 내가 챙기지.”

우웅!

청갑을 입은 거한이 허리춤의 저물법기를 열자, 여우의 뼈가 저물법기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나저나… 이건 뭐지? 아까 멀리서 볼 때 여우한테서 도망치고 있던데.”

“흠, 법력이 안 느껴지는데… 또 의식은 축기기 초반 급이고, 뭔가 특수한 공법을 익힌 놈인가?”

“흠흠, 그런데 그 요단 나 주면 안되나?”

금벽호와 백골귀마, 창호자였다.

금벽호와 백골귀마는 나를 보며 두런거렸고, 창호자는 금벽호에게 요단을 요청했다.

“시끄럽네, 청문선우. 그나저나 저 놈 단전에 요단 같은 게 느껴지는데, 인간인가 요괴인가?”

“혼혈이라면 요괴의 특징도 일부 드러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원영기 수준이라서 완전히 인간으로 둔갑할 수 있는 요괴라기엔 결단경 잡것한테 쫓기고 있었는데… 정말 이건 뭐지?”

“이보게 금 도우. 정말 이러긴가? 그 요단이 내 제자 중 하나에게 잘 맞는 기운을 가지고 있단 말이네.”

창호자는 나를 신경쓰지 않고 끊임없이 금벽호에게 매달렸으며, 참다 못한 금벽호가 고함을 질렀다.

“시끄럽다고 했지 않나! 창호자라는 명성에 맞게 좀 행동하게!”

콰르릉!

그가 분노한 것만으로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며 창호자를 지졌다.

“이 녀석이, 갑자기 또 난리로군..!”

쿠과광!

창호자 역시 참지 않는 성격인지 주먹을 뻗어 금벽호를 후려쳤고, 백골귀마는 둘을 말리려는 듯 하다가 갑자기 싸움에 휘말려 셋이 싸우게 됐다.

쿠구구구!

천지영기가 마구 어그러지며, 주변으로 폭풍이 불어닥치는 듯 했다.

‘이런 젠장..!’

내가 싸움의 폭풍에 휘말려 날아갈 때였다.

“아, 잠시만. 저 놈이 있었지.”

창호자가 나를 떠올렸다는 듯 허공으로 날아가던 내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주변의 천지영기가 움직이며 나를 자연스레 그의 앞으로 데리고 갔다.

“자자, 싸움은 그만하지. 새파란 후배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인가?”

창호자는 태연한 얼굴로 내 뒷덜미를 잡고 껄껄 웃었고, 얼마 후 백골귀마와 금벽호 역시 짜증이 난 기색으로 싸움을 멈췄다.

“네 놈이 먼저 시작해 놓고서는…!”

“무슨 소리, 자네가 갑자기 정신이 나가서 나를 벼락으로 때렸지 않나?”

셋은 서로 싸우면서도 진심으로 적의는 드러내지 않는 듯 했다.

‘원래 막역한 사이였나.’

[그나저나, 너는 그래서 정체가 뭐냐? 인족이냐, 요족이냐. 어떻게, 왜 등선향에 왔지?]

창호자가 의식을 통해 내게 물어왔고, 나는 벽라국어를 써서 대답해 주었다.

“저는 조금 특이한 체질을 지닌 인족이고, 특이한 체질일 뿐 혼혈은 아닙니다. 동료들과 어디를 가던 중 공간 균열에 휘말려서 등선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호, 벽라국어를 할 줄 아는군. 그래, 특이한 체질이라. 확실히 자세히 관찰해 보니 요단하고는 기운이 미묘하게 다르긴 하군. 거기에 축기경급 요수의 영성이 서렸을 뿐 진짜 축기경급 기운의 농도는 아니야.”

“예 그렇습니다.”

“혼혈이 아닌데 요단을 가진 인간이라, 도대체 이건 무슨 체질…”

창호자가 나를 살펴볼 때였다.

흠칫!

창호자, 금벽호, 백골귀마 세 천인이 한쪽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이, 이 기운은!”

“잘못 느낀 게 아니겠지!?”

“일단 너와는 나중에 말하지. 가 보자!”

파아앗!

세 천인기 수도자들이 나를 데리고 한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였다.

순간 빛이 번쩍 하는 듯 하더니, 나는 내가 처음 눈을 뜬 곳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머리가 두 개인 뱀에게 피를 빨아먹히며 죽어가고 있는 직장 동료들이 있었다.

[허, 헛..!]

머리가 두 개인 붉은 뱀이 몸을 흠칫 떨며 위를 올려다 보았고, 그 순간 벼락이 떨어지며 붉은 뱀을 세상에서 지워버렸다.

“흠, 이 녀석들이군. 이 녀석들에게서 그 기운이 느껴졌어..!”

창호자가 내 뒷덜미를 잡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의 기운이 뿜어지며, 동료들에게로 스며들었다.

그러자 뱀에게 피를 빨린 채 죽어가던 동료들은 모든 상처가 사라지며 완전히 살아나 버렸다.

그리고 예의 선별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전명훈 과장, 강민희 대리, 오현석 차장이 각각 금벽호, 백골귀마, 창호자에게 잡혔다.

그리고, 나는 그 틈을 타서 그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괴군도, 서휼도 못 믿는다.’

물론 이들이라고 다를 것은 없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금신천뢰문의 기록을 읽었을 때, 그들은 자기 제자는 소중히 여긴다고 나왔고. 흑색귀골곡의 섭명함에 남아있던 그 천인기 분혼 역시 자기 종문에 관련한 것을 지키려 하다가 고혼이 된 것이다. 그리고 창호자는 그냥 인품이 좋고…’

서휼과 괴군이 남은 이들을 차지하게 둘 수 없었다.

“선배님들, 부디 후배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평소부터 금신천뢰문을 흠모해 왔고…”

나는 성제국어로 금벽호를 쳐다보며 말했고.

“청색귀골곡 역시 그 명성을 들어 존경해 왔습니다.”

흑풍해의 섬들에서 쓰이는 언어로 백골귀마를 쳐다보며 말했다.

천인기 분혼이 흑색귀골곡을 청색귀골곡이라 칭했던 것을 기억하며 청색귀골곡이라 칭하였다.

“또한 창호자 님의 후예인 청문세가는 그야말로 투도를 숭앙하는 위대한 가문 중 하나로 알고 있지요.

세 천인들께서 저를 보셨고, 천상금뢰지체와 귀도음화선근, 일문성체 등의 특이한 체질을 가진 셋을 보셨습니다.

이들은 본래 헤어진 제 동료들이고, 여기 있는 나머지 역시 상당히 좋은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자질이 부족한 바, 선배님들께 뽑힐 것은 기대하지 않으나, 부디 자비를 베풀어 여기 나머지 둘의 자질도 보아 주십시오!”

내 말에, 세 천인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각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흠, 예의를 아는 놈이니 함부로 내 앞에서 입을 놀린 건 용서하마. 하지만 자질이고 뭐고, 네놈의 나머지 동료라는 놈들은 아예 영질이 없다만?”

금벽호가 콧웃음을 치며 말했다.

“차라리 저것들의 자질을 검사할 바에야 결단경 여우한테서 도망치던 네놈의 자질을 검사하는 게 낫겠지.”

화악!

천지영기가 움직이며, 나를 금벽호의 앞으로 끌고갔다.

얼마 후 금벽호의 의지에 따라 천지영기가 내 몸 곳곳을 헤집었고, 금벽호는 혀를 찼다.

“뭐야, 오행영질이잖아? 특수한 능력은 쓸만해 보이지만 수련 속도가 너무 느리겠군… 안타깝지만 네놈은 필요 없다.”

오행영질이라는 말에, 내게 관심을 보였던 백골귀마와 창호자 역시 약간 흥이 식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결단경 여우한테서 도망치던 것은 인상깊었으니, 청문세가에 언제든 들어갈 수 있는 추천권을 주마. 네 실력이라면 남아있는 내 방계 가문에서 장로직은 받을 수 있을 거다.”

백골귀마는 내게서 관심을 껐고, 창호자는 푸른 낙인을 내 손등에 그려주며 이전과 같은 제안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한번 그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안 돼, 절대로 남은 동료들을 서휼과 괴군, 두 작자한테 보낼 순 없다.’

“존귀하신 세 천인께, 제 동료들이 지닌 바 자질을 설명해드리려 합니다.”

“자꾸 헛소리하지 말아라. 네 동료들은 자질이고 뭐고 영질이 없다 하지 않았느냐?”

금벽호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절박한 목소리로 세 천인 앞에서 김연 주임과 오혜서 대리의 자질을 설명했다.

내 설명을 다 들은 세 천인의 눈빛이 다시 변했다.

“허어, 그게 정말이냐? 허황된 거짓말이 아니라?”

“네 이놈. 그 무슨 소설 같은…”

“너무 허황된 말이다만… 뭐 좋다.”

창호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뱃속에 요단을 품은 순혈 인간도 만나고, 말도 안되는 신화속 자질의 인물을 셋이나 만났는데, 어디 한 번 속는 셈 치고 믿어보지. 이보게 허곽.”

창호자가 백골귀마를 보며 오혜서와 김연을 가리켰다.

“우리 중 의식공법에 제일 정통한 사람은 자네니 자네가 한번 저 여자부터 검사해 보게나.”

“흥, 말도 안되는. 천지를 뒤덮을 의식? 그런 게 있었다면 저 범인은 진즉 머리가 폭발했을 것이거늘.”

백골귀마는 불신이 어린 눈빛으로 김 주임에게 다가갔고, 김연 주임은 뒷걸음질을 칠려 했으나,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거뭇거뭇한 그림자들이 그녀를 잡고 고정하였다.

김 주임은 검은 그림자들이 보이지 않는지, 그냥 몸이 안 움직인다고만 생각하여 마구 비명을 질렀고, 백골귀마가 김 주임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순간 백골귀마의 손 끝에서 귀기(鬼氣)가 일더니 그녀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저 흐름은..’

진씨세가의 비술과 큰 틀이 비슷했다.

아무래도 진씨세가의 비술은 흑색귀골곡에서 영향을 받은 듯 했다.

다음 순간.

“아아아아악!”

김 주임의 눈, 코, 입에서 피가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파아아앗!

퍼엉!

그녀의 상단전에서 미약한 영기가 터져나오더니, 천지사방(天地四方)으로 실선 같은 의식이 뻗쳐나갔다.

그 의식의 크기는 천인기 수도자들의 의식의 범위를 벗어났고, 말 그대로 온누리를 다 메우는 듯 했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백골귀마, 금벽호, 창호자는 갑자기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마구 그녀를 흔들었다.

[본 금신천뢰문에 들어오면 내 직전제자 자리를 주마!]

[본곡 역시 마찬가지다! 내 제자가 되면 배분은 현 장문인과 같은 배분이 된다!]

[다 필요 없다! 영근이 생기는 영약은 얼마든지 먹여줄테니 창천개벽문에 들어와라! 장문인 자리도 넘겨주마!]

파아앗!

백골귀마가 귀기를 조작하자, 부풀어 오르며 터질 것 같던 그녀의 상단전이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걸로 된 거야.’

이제 김 주임의 자질을 확인했으니, 오 대리의 자질도 무조건 확인하려 들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최소한 서휼과 괴군의 손에 떨어지진 않으리라.

‘금신천뢰문도, 흑색귀골곡도, 창천개벽문도…’

최소한 자기 사람은 챙기는 종문이었다.

서휼처럼 계교를 부리진 않고, 괴군처럼 미치광이도 아니었다.

‘서휼과 괴군은 내일 나타나니까, 이들이 데려간다면..’

그리고, 그 때였다.

휙, 휙, 휙!

김 주임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던 세 천인이, 승천문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서, 작은 점 같은 것이 날아오고 있었다.

“뭣…”

나는 그 점의 정체를 확인하고 평정심을 잃었다.

‘내일 나타나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괴군(怪君!)]

금벽호가 비명을 지르듯이 그를 불렀다.

쿠우웅!

그리고, 삽시간에 이곳으로 거대한 괴뢰가 도착했다. 그 위에 올라 앉아 있는 곱사등이 노인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 상계의 선사가 강림한 줄 알았건만. 작은 범인이었을 줄이야. 말도 안되는 재능이군. 내 제자로 삼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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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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