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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6

76화 동해 게이트

-콰르릉! 쾅쾅!

요란하게 울리는 천둥소리. 높게 들이닥치는 파도. 함께 몰아치는 비바람.

하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강심장이 아니었다.

“끼야아아아악! 어푸! 어푸푸!”

한꺼번에 몰아치는 자연재해. 비바람이 몰아치며 하리는 눈을 뜰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사람 살려어어어…!”

이대로 파도까지 몰려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벼락이 내리치면? 원래 벼락은 피뢰침부터 강타하지 않나?

불안함과 태풍 소리로 가려진 고막에 레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허, 믿음이 부족하구나 믿음이. 허나, 포마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하는 바, 다소의 불신은 용서하실 모양이시다.”

“용서 안 해도 되니까! 내, 내려주세요!”

“진정해라. 대해에 몸을 맡겨라. 그럼 끝없는 대자연이 너를 감쌀 것이니.”

“폐, 폐하! 저는…!”

지금 당장 살고 싶은데요! 내뱉으려던 말은 비바람을 삼킨 탓에 가로막혔다.

“진정하라 했다. 지금 우리는 태풍의 한가운데에 와 있으니. 헌데,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느냐. 어째서 파도 하나 너에게 닥치지 않는지.”

“엇?”

그 말에 하리는 슬그머니 감겼던 눈을 떴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눈이 번뜩 뜨였다.

“파도가…….”

저 멀리서부터 사납게 몰아치던 회오리 바람이, 거대한 파도가 그 무엇하나 배를 침범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개토대왕함의 직전까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던 파도는 충돌 직전 흐트러지도, 날카롭게 회전하던 회오리바람도 직전에 사그라 들었다.

“포마께서 선수상의 신녀를 매개 삼아 파도를 진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 정말요?”

“그분을 신앙하는 이들이 없으니 신녀라도 매개로 쓸 수밖에.”

그, 그런 깊은 뜻이. 난 또 뻐킹 레이시스트라서 그런 줄…….

“앗!”

팍! 하고 풀려버리는 밧줄. 하리가 오두방정을 떨며 발버둥친 탓에 매듭이 끊긴 것이다.

“악!”

갑판 위로 떨어진 하리는 찧은 엉덩이를 부여잡으며 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콰르릉! 쾅쾅!

-쿠와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

하리가 선수상에서 떨어지기 무섭게 오두방정을 떠는 대자연.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이 변화가 하리가 떨어진 탓임을 모를 수 없었다.

-…….

-…….

모두의 시선이 하리를 향한다. 선창 너머에서도, 마스트의 최 중장으로부터도, 바로 옆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태연한게 내려다보는 레온에게서도.

-안 가?

의무를 다하라는 듯 공통된 시선. 하리는 울상으로 일그러졌다.

“다시 묶이면 되잖아요, 묶이면…….”

결국 하리는 레온의 도움을 받아 다시 선수상에 매달렸다.

파도가 진정됐다.

* * * *

-콰아아아!

파도가 알레이 버크함을 몰아쳤다. 천둥이 내리치고 태풍이 배를 강타한다.

“크으… 위대한 존재시여. 이러다가 배가 뒤집히겠습니다!”

[닐씨가 개판이구낫!]

역시 이만한 태풍을 뚫고 게이트로 향하는 것은 무리수였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신속하게 ‘게이트 클로징’을 위해선 가장 빨리 출발할 한국 공략대와 동시에 출발해야 했으니까.

“젠장, 저놈들 배는 왜 멀쩡한 거 같지?”

“홀리쉣! 저 미친 한국놈들. 사람을 매달았어!”

미 해군 수병들은 이런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도 않으며 순항 중인 광개토대왕함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지혜의 보옥이 외쳤다.

[지금 당장 함장에게 저 배의 꽁무니만 쫓으라고 전해랏!]

“예?”

[배 뒤집히는 꼴 보기 싫으면 내 말대로 햇!]

레이날드는 지혜의 보옥이 하는 말대로 함장에게 광개토대왕함의 꽁무니를 쫓을 것을 명했다.

아무리 미 해군 이지스함의 제독이라지만, 마탑주의 조언을 거부할 순 없었고, 실제로 광개토대왕함을 바짝 쫓자 놀라울 정도로 배가 안정되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놈이 바다와 파도의 신의 권능을 사용한 것이닷! 저 신이 가호하는 배는 풍요로운 어획량을 거두고 풍랑에도 침몰하지 않지!]

“그, 그렇군요.”

이거 완전 악마 상위호환… 레이날드는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이 태풍에 이 정도로 순항한 덕에 금방 도착하겠군요.”

[그랫. 명심해랏! 네가 해야 할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닷!]

태풍을 돌파한 군함들은 목표로 했던 좌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비보를 듣게 되었다.

[여기는 알레이 버크함. 안타까운 소식이다. 사세보에서 출항했던 해자대의 무라사메급이 풍랑에 뒤집혀 구출 중이라는 모양이다.]

해자대는 태풍을 뚫지 못하고 침몰했다. 다시 말해 시작도 전부터 전력의 3분의 1이 증발했다는 소리였다.

[여기는 광개토대왕함. 작전을 속행한다. 본함은 지금부터 게이트로 진입하겠다. 공략대를 보트에 탑승시키겠다.]

두 함선은 헌터들을 고무보트에 탑승시켰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망망대해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게이트.

“지금부터 게이트에 진입한다.”

검은 보트들이 일제히 게이트를 향해 노를 저었다.

빛이 그들을 감쌌다.

* * * *

팔이 따갑다.

콰아, 콰아~ 하고 밀려드는 물이 옷을 젖게 만들었다.

“으음…….”

하리는 입가를 자꾸 찰싹거리는 물을 낼름 핥았고… 바다의 짠기가 미뢰세포를 강타한다.

“으엡! 퉵! 퉤퉵! 짜!”

헐레벌떡 일어나는 하리. 질척하게 달라붙은 모래들을 털어내고, 잠겼던 눈이 떠지며 수평선 너머의 적색 노을빛이 보인다.

‘뭐야, 반나절이 지난 거야?’

하리는 지끈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혼절하기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게이트에 입장하자마자 회오리바람이…….”

진입했던 한국과 미국의 고무보트들이 죄 뒤집히고 휩쓸렸더랬다. 하리의 안색이 새하애졌다.

“다, 다들 어디으응?”

하리는 모래사변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다른 헌터들을 보았다. 대부분이 아는 얼굴이다.

“수호야! 일어나 봐!””

“으음…….”

“누, 누나?”

하리가 흔들거리자 점차 눈을 뜨는 생도와 병사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인원이 더 많다.

‘레온 폐하는? 야피 경은? 미국 헌터들은 어디로 간 거지?!’

생도와 병사 중에서도 보이지 않는 이가 있었다. 하리가 다급히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던 그때…….

[진정하거라. 모두 안전할 것이다.]

“엄마얏!”

웬 목소리에 기겁하여 돌아보았으나 보이는 건 쓰러진 생도들뿐이다.

“귀, 귀신?”

[여기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향하는 하리. 하지만 웬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있을 뿐 공략대 외의 사람의 형태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다.]

“거, 거북이?”

무시하고 지나쳤던 거북이가 하리를 멀뚱이 쳐다보고 있다. 하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포마님이세요?”

[그렇다, 나의 신녀. 내 너희들의 구원을 위해 친히 화신체를 보냈느니라.]

“화신… 체?”

하리는 신의 화신체를 본 바가 있었다. 제주도 게이트에서 목격했던 짐승신들의 화신체.

거대한 철웅. 그 짐승신은 과연 신이라 불릴 만한 거구였으나 눈앞에 있는 바다와 파도의 신은 어딘가…….

“작네요.”

[어허, 이것이! 신성의 존체를 보았으면 마땅히 경배드리지는 못할망정!]

하리의 어깨 위에 올려도 될 정도로 작은 거북이가 역정을 내니 두려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모두 안전할 거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시는 건가요?”

[이곳에 진입한 순간, 파도의 권능으로 그들을 안전한 육지로 떠밀었다. 흩어지는 것까진 막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토록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었다. 하리는 그곳에서 누구 하나 죽지 않도록 보호한 포마의 권능에 감탄했다.

“대, 대단하세요.”

[그보다 이 몸으로는 움직이기 불편하구나. 어깨에 얹어다오.]

“어, 예에…….”

포마의 화신체를 제 어깨에 얹는 하리. 미니멀한 거북이가 하품을 하더니 고개를 등껍질 안으로 밀어 넣었다.

“포마님?”

[………….]

반응이 없다. 졸리신 건가 싶어서 하리는 굳이 포마를 깨우지 않았다. 그리고…….

-다닥다닥!

섬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묘한 발걸음 소리. 그것을 목격한 하리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외친다.

“다, 다들 일어서! 얼른 일어나! 몬스터야!”

1.6m에 이르는 큼직한 겟과 몬스터. 그것들이 거대한 집게발을 철컥거리며 몰려온 것이다.

“으, 하필 정신 사나울 때…!”

하리는 곧장 자세를 잡고 검을 들었다. 아직 난파된 사람들이 모두 깨어나질 못했다. 조금 무리해서 시간을 끌 필요가 있다.

-타닥!

하리의 검에서 불꽃이 일었다. 불의 축복이라는 고유스킬을 가진 하리가 가진 최대화력으로 몬스터들을 저지할 생각이었지만…….

“응?”

전신에서 짜내는 마력의 흐름에 무언가 불순한 것이 끼어들었다. 마치 햄버거 체인점에서 셀프 콜라를 뽑는데, 하얀 물이 섞이는 느낌?

-촤륵!

피어오르는 불길에 쏟아지는 웬 물길. 불이 꺼져버린다.

“엩?”

뭐야, 이거 왜 이래. 하리의 당혹스러운 숨결에 포마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바다와……파도의 가호를… 받고 있는 신녀가… 불이 웬 말이냐…….]

“예?”

그게 무슨 소리냐.

불속성 마검사한테, 상성으로 물의 가호를 받은 탓에 마력에 물속성이 추가된다는 의미! 다시 말해!

“부, 불을 못 쓴다고요?! 아, 안 돼요! 돌려줘요! 저 포마님 신녀 안 할래요!”

[안돼. 돌려줄 생각 없어… 돌아가.]

하리의 비명소리가 모래사변에 널리널리 울려 퍼졌다.

* * * *

게이트 진입과 동시에 발생한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건 미국 공략대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입구에다 이런 게 있다니 운이 나빴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그 괴물딱지하고 떨어졌으니 다행이닷.]

레이날드와 지혜의 보옥이 안도하는 와중 공략대를 추스른 미국 헌터들이 다가왔다.

“서른 여덟 명 확인 완료했습니다, 마법사 양반.”

미국의 초대형 길드 매버릭의 서열 8위 미니트맨. 그는 2m가 넘는 거구의 S급 헌터로 이번 일을 위해 마탑주 레이날드가 직접 고용한 인물이다.

“남은 인원은 파악하지 못했습니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뭐~ 목숨줄 질긴 놈들이니 알아서 자리 잡고 있을 거요.”

“‘원주민’들은?”

“소란이 있었으니 슬슬 접근하겠지. 오~ 저기 벌써 오네.”

-다닥다닥!

-다닥다닥!

미니트맨의 말대로 숲에서는 거대한 게 형태의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다. 매버릭 길드원들은 섬에 표류한 것 치고는 빠르게 전투태세를 갖췄고.

“일할 시간이다, 짜식들아. 얼른 쓸어버리고 ‘휴양지 건설’을 시작하자고.”

레이날드가 굳이 거들 필요도 없었다. 미니트맨의 지휘 아래 매버릭 길드원들은 킬링머신처럼 몬스터들을 학살했다.

“그럼 진지 구축하고 쉬고 계시지요. 저는 잠시 섬의 안쪽으로 가보겠습니다.”

“호위가 없어도 되겠수?”

“괜찮습니다.”

레이날드는 매버릭 길드원들을 해안가에 내버려두고 섬 안쪽으로 향했다.

그는 북미를 대표하는 강대한 마법사. 헌터의 호위가 없어도 이런 게이트에서 나자빠질 약골이 아니다.

실제로 중간중간 몇몇 게 몬스터들이 달려들었지만, 레이날드의 마법에 의해 절명했다.

“일어나라.”

레이날드가 몬스터들에게 사악한 마력을 흘렸다. 그러자 꿈틀대더니 언데드가 되어 일어서는 몬스터들.

“석상으로 안내해라.”

레이날드의 말에 게 몬스터들이 앞장 선다. 그리고 섬이 꽤 작은 탓인지 목표했던 곳으로 금방 갈 수 있었다.

“이것이…….”

[찾던 석상이 맞닷. 이런 걸 몇 개는 더 찾아야 햇!]

레이날드가 찾아낸 석상은 이형의 형태를 한 큼직한 석상이다.

마치 고대 문명을 발굴하다보면 나올 법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유물.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문명의 흔적을 감지했겠지만, 레이날드는 석상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힘을 감지했다.

“그럼──”

레이날드가 석상을 향해 손을 뻗은 그 순간──

“잠깐…!”

그를 제지하는 목소리가 섬바람을 타고 울렸다.

* * * *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야피는 바닷물이 들어온 탓에 겨우 작동할 수 있었다.

야피는 초고성능의 시가전 사양 다각전차이지만, 바다에서의 활동을 전제로 하지 않은 탓에 제염처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부품에 대한 방수성능과 시스템 다운과 동시에 자가진단 프로그램이 발동하여 오염을 제거한 덕에 금방 시스템을 정상화할 수 있었다.

-끼룩?

야크트 스피너가 부팅 후 목격한 것은 웬 겟과 몬스터들이 잔뜩 모인 장소.

-끼룩! 끼룩끼루룩!

-끼룩끼룩!

야피가 눈을 뜨자 환호하듯 다닥다닥 좌우이동을 반복하는 집게발들. 그들은 자신의 발을 높게 치켜세우며 야피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기뻐했다.

-끼룩?

당최 이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야피는 자신이 높게 쌓아 올려진 원시적인 누에실 둥지에 모셔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자신은 이 게들에 의해 구조된 모양이다.

-끼룩!

야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목소리를 내자 게들이 환호했다.

-끼룩끼룩! 끼끼룩!

-끼끼룩!!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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