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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7

77화 표류

“잠깐…!”

레이날드를 제지하는 목소리. 그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불새길드의 양대 S급 헌터와 공략대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용완 씨, 하유리 씨. 무사하셨군요.”

석상을 향해 뻗던 손을 멈추는 레이날드.

“그게 뭔 줄 알고 건드는 겁니까?

레이날드는 반대편에서 몰려왔을 이용완의 불새 길드를 보며 혀를 찼다.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판단이 빠르군요.’

[그놈이 아닌 것만 해도 어디냣. 근데 그 새끼 어디 있냣?]

지혜의 보옥의 레온 경계심은 거의 강박증 수준이었다.

한편 레오날드는 태연하게 석상에 대해 말했다.

“두 한국 헌터님들에게도 퀘스트가 떴을 텐데요? 이 석상, 깨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섬을 탐색해 ‘위대한 라크샤르 석상’을 파괴하십시오. 0/3]

-파괴된 라크샤르 석상 : 0

이 게이트에 입장하고 나서 받은 퀘스트. 당연히 곧장 확인했다.

“…….”

하지만 최근 이용완은 게이트와 시스템이 주는 ‘퀘스트’란 것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일전에 있었던 제주도 게이트. 그 적색 게이트에서의 퀘스트 목적은 분명 ‘학살을 막고 장엄한 게오브릭을 쓰러뜨려라’였다.

하지만 막상 뒤집고 보니 게오브릭은 쓰러뜨릴 대상이 아니었다.

‘이 정보… 아직 별다른 공유를 하고 있지 않지만…….’

게이트가 주는 퀘스트에는 무언가 속셈이 있다. 적어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 게 아닌 것이다.

“일단 차치해두시죠. 이게 라크샤르의 석상이라는 물건일지는 확실하지 않잖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죠?”

레이날드의 시선이 좁아졌다. 대마법사라 불리는 그의 시선을 마주친 이용완은 꺼림칙했지만, 그 레온이나 게오브릭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다.

“만약 이게 퀘스트에서 나오는 석상이 아니라면 파괴할 경우 어떤 함정이 도사릴지도 모릅니다. 먼저 ‘라크샤르’가 무엇인지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레이날드는 말문이 막힌 채 침묵을 유지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닙니다.’

[잠깐 물러나랏. 너 홀로는 이 녀석들 모두를 상대하기 힘들꺼닷.]

지혜의 보옥과 합의를 마친 레이날드가 비즈니스 스마일을 보인다.

“그럼 일단 해변가로 합류하시지요. 그곳에 매버릭 길드분들이 계십니다.”

당분간은 기회를 노려봐야 할 성 싶었다.

* * * *

“후아…! 겨우 다 처리했다!”

“누나, 고생했어.”

하리와 만신전 생도들은 자신들을 습격해온 겟과 몬스터들을 격퇴하고 해변에 모였다.

“수호야. 다들 다친 사람은 없니?”

“괜찮아, 누나.”

하리는 몸을 추스르는 아카데미 후배들을 토닥인 뒤, 김도한과 병사들에게도 다가갔다. 그곳에는 구대성도 그들과 몸을 추스리고 있었고.

“박대식 헌터님! 구대성 헌터님! 부상자가 있으신가요?”

“괜찮습니다, 한 대리님.”

맨앳암즈 1기생 박대식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반면 구대성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구대성 헌터님?”

“……끊겼습니다.”

“예? 뭐가요?”

“폐하의 오라가 끊겼습니다.”

“앗…….”

레온에게는 사자심장의 오라나 워 나이트의 가호 등 온갖 패시브 버프가 휘하 병단에게 주어졌다.

그 버프들은 적게는 1단계, 많게는 2단계까지 전력을 상승시킨다.

D급에 불과한 헌터들이 오크와 어느 정도 맞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말이다.

“크, 큰일이네요. 폐하의 버프 덕도 상당히 많이 봤는데…….”

길드원들은 자연스럽게 저 멀리에 흐릿하게 보이는 섬들을 보았다.

“저 중 하나에 폐하께서 계실까요?”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보이는데…….

그 말에 구대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예전에 폐하께 건의해 실험해본 적이 있습니다. 폐하의 오라가 어디까지 닿는지를요.”

어지간한 거리에서는 군단원들에게 버프가 통용됐다. 하지만 그 거리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가장 넓은 범위였던 악마 혐오 버프가 최대 30km. 그런데 현재 저희 중 누구도 해당 버프를 받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그렇다는 건?”

“폐하께서… 저 섬들 중에도 없을 확률이 있습니다.”

저 섬 중에도 없다니? 이 주변에는 더이상 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설마 폐하께선…….”

조심스럽게 꺼낸 말. 하지만 다들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설마…….”

레온이 어디 이런데서 변을 당할 인물이던가. 자연스럽게 부정하는 분위기 속, 하리만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하리, 사자심왕과의 연결이 끊겼다.]

“…….”

하리는 입을 꾹 닫고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불안함이 다른 이들에게 전염될 것을 우려해서다.

“일단… 다들 모여서 이야기해보죠. 누가 모였는지도 확인해봐야 하니까요.”

그렇게 일단 한자리에 모인 생도들과 훈련병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호명하며 인원수를 따졌다.

“김도한 아재가 안 보이는데.”

“재혁이가 안 보여요.”

생도와 병사 양쪽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안녕, 코리아 여러분. 마이클이야.

-오우~ 선수상에 매달려 있던 여자애.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거야?

연합 공략대로 파견된 미국 매버릭 길드의 헌터들. 그들의 숫자가 대충 열 명.

“아, 맞다. 미국 분들이시네.”

하리는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외모로 그들을 구분했다.

대격변 이후로 각성자들과 시스템창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건 각성자들 간의 언어의 장벽도 뒤집은 것이다.

비슷하게 생존자들 또한 세계를 넘어오면 지구인들과 언어가 통했고.

그렇기에 매버릭 길드원들과의 의사소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안녕하신가, 매버릭 길드 콜사인 미스트랄이라고 해. 거기 이쁜 아가씨는 이름이 뭐야?”

“어, 어음… 한하리예요. 미스트… 그 미스트랄?!”

하리는 눈앞의 남자의 콜사인을 듣고 눈이 커다래졌다. 무려 매버릭 길드의 서열 6위 S급 헌터로 유명인사였던 탓이다.

“정말로 미스트랄이에요? 그 알렌 테일러!?”

“본명으로 불러버리면 콜사인을 따지는 게 의미 없지 않나?”

“헙!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하리. 그리고 세계적인 유명 S급 헌터의 등장에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생도들.

“공략대에 계신 줄 몰랐어요.”

“정보공유가 없었나? 하긴 제대로 브리핑할 시간도 없이 다급하게 출발하긴 했지. 근데 그쪽 길드 마스터는 안 계시는 건가?”

“저희 폐하께서는 부재중이라…….”

“뭐, 별다른 일 없지 않겠어. 파도에 휩쓸린 사람은 몇몇 있겠지만.”

“그건 아닐 거예요.”

“응?”

하리의 단언에 알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바다의 신께서 가호해주셨다고 했거든요. 파도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자신한다는 듯 하리의 어깨 위 거북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폐하께서 만약 저희를 찾길 원하셨다면 진작 찾으셨겠죠.”

“맞아, 누나. 폐하께는 페가수스가 있으니까.”

“그럼 우리는 대충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진 걸까? 원체 강하게 키우시는 분이긴 하지만…….”

“???”

알렌은 자신의 길드장에게 하리와 만신전 길드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바다의 신? 날개 달린 전설의 신수? 조크치곤 너무 허무맹랑한 말이다.

“어쨌든, 이 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해.”

알렌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헌터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시스템창.

게이트에 진입과 동시에 게이트의 목적을 알리는 이 시스템창은 그들이 수행해야 할 퀘스트를 일렀다.

[섬을 탐색해 ‘위대한 라크샤르 석상’을 파괴하십시오. 0/3]

-파괴된 라크샤르 석상 : 0

요컨대 세 개의 석상을 파괴하면 던전이 클로징된다는 것인가.

하지만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하리와 만신전 생도들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 섬을 탐색부터 할게요. 석상은 수색하되 파괴하는 건 조금 미뤄두죠.”

“그래, 무작정 파괴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거 같아. 게이트를 확실하게 파악하자.”

“동감입니다.”

“으음?”

알렌은 만신전 길드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헌터는 던전 게이트의 클로징 조건만 지키면 된다. 그 안에서 얻을만한 자원만 다 얻으면 냉큼 클로징 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만신전 길드의 반응은 평범한 길드와는 달랐다.

“뭐… 석상을 찾는 겸 겸사겸사 하면 되는 거긴 하지만.”

하지만 바로 그때──

[첫 번째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어?”

“웨이브?”

경고를 알리는 시스템 창. 그 의미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크라켄? 바다괴물이다!”

파도를 타고 모래사변에 도착한 거대괴물. 그리고 그 뒤로 수많은 몬스터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시작부터 A급 필드보스인가. 빡센데.”

만신전과 매버릭 길드. 그들은 거대한 촉수를 휘두르며 전진하는 크라켄의 무리를 향해 무기를 들었다.

* * * *

끝없는 바다의 심연 속. 태양빛조차 닿지 못하는 깊은 바다. 그곳의 바닥에 찬연한 빛을 뿜어내는 발광체가 있다.

거대한 심해의 압력조차 밀어내며 공간을 형성하고 공기를 생성한다.

바다속 한가운데에 생긴 육지생물의 안전지대. 있을 수 없는 기적을 일으킨 존재가 눈을 떴다.

“곤란하게 됐군.”

눈을 뜬 레온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심해어들을 응시했다.

강렬한 빛에 이끌려 사냥감을 찾으러 온 초롱아귀 같은 것이 관심을 보이는가 하면 직경 100m에 이르는 거대한 뱀 같은 심해어가 수백 개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본디 야생의 세계에서는 포식자와 피식자들이 이토록 태평하게 한 곳만 바라보지 않을진대, 이 모든 심해어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이 심해는 단순히 바다의 밑바닥이 아니었다.

거대한 심해의 압력 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하며 세워진 건물의 골조들. 문명의 흔적…… 이곳은 멸망한 세계의 증거였다.

“흠…….”

보트가 뒤집힐 당시 일시적이지만 포마의 권능이 끊겼다.

정확히는 자신의 영역이 아닌 바다에서 힘이 감소했다고 봐야겠지.

그 누가 신의 권능을 일시적으로나마 차단하고 자신을 빼내 깊은 심해 속에 처박는단 말인가?

그런 짓이 가능한 존재는 같은 신격을 지닌 존재거나 전혀 다른 성질의 극마(極魔).

“모습을 드러내라, 사악한 것아.”

-쿠구구구궁!!

레온의 일갈에 바다가 움직인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심연의 바닥이 갈라지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거대한 존재감. 움직이는 것만으로 온 바다가 울리며 기지개처럼 가벼운 행동이 지역을 부수고 가르며… 파괴한다.

흉악한 이빨을 가진 아귀도, 수백 미터에 이르는 길이를 자랑하는 심해어도, 세상 그 무엇보다 거대할 것 같은 고래조차도 그것의 움직임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면서 꼼짝도 못한다.

레온이 서 있는 땅 그 자체가 그것의 손바닥이었으니 이처럼 거대한 존재를 어찌 생물이라 부를 수 있을까.

[라이온하트… 사자심장을 가진 신들의 맹견. 용살자의 후손. 가장 많은 악마를 죽인 자.]

웅혼한 목소리가 수중을 통해 퍼진다. 드러난 것은 고작 수백 갈래의 촉수 중 하나일 뿐. 하지만 그 촉수 하나조차도 이 바다에서 가장 커다란 생물보다도 거대했다.

[기사 중의 기사. 왕 중의 왕. 한때 찬란한 영광을 지피던 왕국의 수호자가 제 군대를 잃고, 힘마저 쇠퇴한 채 내 앞에 나타났구나.]

“짐을 알더냐?”

[악마 중에 그 누가 사자심왕을 모를까. 너는 우리 사이에서도 명성 높은 영웅이지.]

서서히 접근하는 촉수들. 너무나 크다. 크다는 건 그 자체로 거대한 폭력. 눈앞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합리한 폭력이다.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이곳을 찾았으나 그중에 거악을 쓰러뜨릴 영웅은 없었다. 너는 좀 다르더냐?]

촉수는 하나하나에 눈이라도 달린 것 마냥 레온을 똑바로 바라봤다.

“더러운 악종이 짐에게 불가해를 논하더냐.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너희들이 정녕 모르더냐.”

당장이라도 레온을 짓이겨버릴 것 같은 거대한 촉수가 고래를 붙잡더니 그대로 쥐어짰다.

파드득! 하고 내장을 토해내는 고래가 처참하게 죽어 바닥에 떨어진다. 그 충격이 레온에게도 닿을 만큼 묵직했다.

[라이온하트. 드라고니아. 그래, 너의 존재 자체가 마(魔)의 수치다!]

촉수가 바닥을 때렸다. 고래의 시신이 떨어졌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울림, 지축이 흔들리며 거대한 파도가 온 사방으로 퍼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허나, 네겐 감사하고 있다. 라이온하트.]

“뭣이?”

[네가 말루스를 쓰러뜨려 준 덕에 내게도 기회가 왔거든.]

“말루스…….”

혼돈의 악마군주 말루스. 그 악종과 관련된 자란 말인가?

[지난 오백 년 동안 이곳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 이 기나긴 잠을 끝낼 때가 왔다.]

수십 개의 촉수들이 웅대함을 드러내며 사방으로 뻗는다. 도망칠 생각조차 못하는 거대한 심해어들이 그 촉수에 붙잡혀 찢기고 삼켜졌다.

그 거대한 촉수가 사냥한 대어들을 가져댄 그곳에서 파동을 일으키는 목소리가 레온을 향했다.

[오백 년 동안 물고기만 먹었더니 지루했던 참이다. 신들의 기사는 어떤 맛일지 궁금하군.]

대악마… 아니, 그 이상의 존재.

레온은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보는 거악과 마주쳤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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