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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77

76화. 

일순간 유세장 안이 조용해졌다.   

그만큼 로날드가 던진 말은 충격적이었다.  

과거 제조업의 영광을 상징하던 디트로이트는 이제 버려진 도시가 되었다. 인구의 20퍼센트 이상이 빠져나갔으며, 수천만 달러를 들여 지은 고층건물은 비어진 채 방치되었다.  

가로등 불빛은 꺼졌고, 도로 곳곳이 패었다. 상하수도와 치안 같은 기초적인 서비스조차 기대하기 힘들었다. 

침체된 도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주지사는 주 정부가 돈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데 이곳에 2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그 순간, 외침이 울려 퍼졌다. 

“거짓말쟁이!” 

그렇게 소리친 사람은 다이앤을 지지하는 중년여성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마이크가 들려있었다. 

“당선되고 나면 말을 바꿀 거잖아! 그 말을 어떻게 믿어? 투자에 대한 확답을 받았다고? 그 약속이 지켜진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데?” 

당연히 부인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로날드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항상 선거철이 되면 각종 공약들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당선된 뒤에는 무엇 하나 지키지 않지요. 저 역시 그동안 정치인들의 입 발린 말에 수 없이 속아왔습니다. 그녀 역시 유세를 할 때

마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투자는 약속대로 이뤄질 겁니다!” 

다이앤의 지지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유를 퍼부었다. 

“우우우!” 

“거짓말! 거짓말!” 

야유가 거세질수록 로날드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거짓말이라구요? 제 말을 못 믿겠다구요? 그래서 이 자리에 제 말을 증명해줄 분이 나와 계십니다!” 

한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그의 이름은 허블 버틀러. 

다름 아닌 디트로이트가 속해있는 미시건주의 주지사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 소속이고, 다이앤의 선거를 돕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공화당 후보 유세장에 나타난 거지? 

그에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며칠 전, 단 둘이 만난 자리에서 로날드는 그를 윽박질렀다. 

자신을 돕지 않겠다면, 미시건주가 아니라 위스콘신주나 오하이오주와 협상하겠다고.  

아닌 게 아니라 러스트 벨트에 투자를 원하는 주들은 널려있었다. 

만약 200억 달러의 투자제안을 걷어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거센 비난을 받게 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재선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제안도 아니었다.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재선은 문제없다.  

때문에 그는 기꺼이 로날드의 유세에 참석했고, 마이크를 받아들었다.  

허블 주지사는 유세장을 둘러보며 자신 있게 말했다. 

“로날드 후보님의 말은 전부 사실입니다! 현재 주정부는 OTK컴퍼니와 협상 중이며, 투자는 즉시 이행될 겁니다. 저는 로날드 후보님을 도와 디트로이트를 되살리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이 일로 당의 징계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문제가 생기면 당적을 바꾸면 그만이다. 

그를 주지사로 만들어주는 건 민주당이 아닌 이 자리에 모인 미시건주의 시민들이니까. 

반대당의 주지사까지 나서 인정하자, 더 이상 누구도 그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로날드는 모두가 보란 듯이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지금 이 순간부터 미국에는 단 하나의 원칙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America First!” 

미국이 우선이다! 

미국 노동자들에게 이 이상 중요한 원칙이 어디 있겠는가? 

캐빈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공장의 문이 열리고, 다시 일할 수 있다. 월급을 받아 빚을 갚고, 자식들을 뒷바라지 할 수 있다. 

쓸모없는 실직자에서 다시 훌륭한 가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역시 로날드를 지지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 

그는 같이 온 친구들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이앤을 지지하던 친구들은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미국이 우선이다!” 

“와아아아!” 

유세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로날드는 과장한 손짓과 표정을 하며 계속 소리쳤다. 

“거짓말쟁이 여자와 헛소리하는 언론은 이제 지긋지긋합니다. 그녀가 백악관과 의회에서 미국을 망치는 동안 난 이 자리에서 미국의 현실을 바꿨습니다! 이제 말해보십시오.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녀입니까, 나입니까? CNN입니까, 나입니까?” 

답은 정해져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로날드! 로날드!” 

다이앤을 지지하던 이들의 손이 내려갔다. 다이앤과 민주당을 상징하던 피켓과 현수막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췄다. 

“와아아아!” 

로날드는 단상 한 가운데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연신 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로날드 스탬퍼!” 

“로날드 스탬퍼!” 

로날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외쳤다. 

“Make America Great Again!” 

그것은 그의 선거 구호이자, 미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맹세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에서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유세장에 모여 있는 유권자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쳤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유세장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마치 록스타의 공연을 보는 듯했다. 

그 장면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고,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 * * 

[공화당 후보 로날드 직접 OTK컴퍼니를 설득해 투자유치!] 

[OTK컴퍼니 미국 자동차산업에 200억 달러를 투자!] 

[로날드의 미국 우선주의!] 

[로날드 스탬퍼, 러스트 벨트를 살리다!] 

[로날드의 일격! 다이앤의 대응은?] 

언론 기사가 쏟아졌다. 로날드의 디트로이트 유세 동영상은 하루 만에 유튜버에서 1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상을 보던 택규는 혀를 내둘렀다. 

“장난 아닌데. 무슨 아이돌 콘서트 보는 줄.” 

“괜히 공화당 후보가 된 게 아니지.” 

우리는 카드를 건네주었고, 로날드는 그것을 잘 사용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로날드가 표를 얻기 위해 말로만 제조업 부활을 떠들어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공약을 대통령이 된 후도 아닌, 선거도 하기 전에 실행으로 옮겼다.  

혜택은 주로 미시건주에 집중되었지만, 러스트 벨트 전체가 열광했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유권자들이 로날드의 말을 진지하게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계속 하락세이던 지지율이 단번에 3퍼센트나 반등했다. 아마 실제 지지율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여전히 다이앤과 10퍼센트 격차가 나긴 하지만, 반전의 계기가 만들어진 셈이다. 

“사실 미국에 공장을 세운다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야.” 

택규가 물었다. 

“어째서?” 

“인건비도 비싸고, 법인세도 비싸니까.” 

그래서 그동안 미국회사들마저 미국 내의 공장을 폐쇄하고 신흥국에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공업지역들은 급속도로 황폐화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2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원화로는 무려 22조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로날드는 세금인하와 함께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이 약속이 지켜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왠지 엄청 욕먹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 한 배를 탄 셈이니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다이앤 쪽은 어떻게 반응하려나?” 

택규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마 지금쯤 니 욕을 실컷 하고 있을 걸.” 

“······.” 

* * * 

민주당 선거캠프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후보인 다이앤을 포함해 선거 핵심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들었다. 그들은 머릿속에 OTK컴퍼니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이 개자식들이······.’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는 선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놈들이 로날드와 손을 잡더니 여론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다이앤은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그쪽이 무슨 카드를 들고 있는지 정도는 확인했어야 했는데.’ 

일개 투자회사 따위가 변수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완벽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만남조차 거부했다. 

‘내가 만나주지 않아서 로날드를 찾아간 건가?’ 

만약 그녀가 OTK컴퍼니와 손을 잡았다면, 노동자 계층을 끌어안으며 판세를 완전히 굳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다행히 아직 여론이 완전히 뒤집히지는 않았다.  

설사 러스트 벨트 몇 개 주가 넘어간다고 해도 대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300명이 넘는 선거인단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 지역만 잘 지켜도 무리 없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이앤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플로리다 유세 일정을 잡아주세요.” 

그것이 그녀의 실책이었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더라도 당장 러스트 벨트로 달려갔어야 했다. 그래서 백인 노동자들의 민심을 달래야 했다. 

그랬다면 러스트 벨트야 어쩔 수 없더라도 다른 지역 노동자 계층은 끌어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불확실한 지역의 승리에 기대느니, 확실한 지역의 민심을 다독이고자 했다.  

그리고 조엘을 포함한 전략가들 역시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다이앤이 플로리다로 움직이자, 로날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러스트 벨트를 완전히 버렸다’ 라고 SNS에 올려서 비판했다. 

그러는 사이 바닥 민심은 다른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 * *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카로스 본사. 

우리는 회의실에서 데릴과 인원들을 만났다.  

난 그들을 향해 말했다. 

“OTK컴퍼니가 200억 달러를 미국 자동차산업에 투자한다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계실 겁니다. 현재 미시건 주정부와 협상 중입니다.” 

협상은 당연히 현주 누나의 몫이다. 한국지사 때문에 가뜩이나 바쁜데 우리 때문에 잠도 못 자게 생겼다. 

“연구소는 이곳에 두고, 카로스의 본사를 디트로이트로 옮길 생각입니다.” 

내 말에 데릴은 당황했다.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카로스는 앞으로 자동차산업의 주축이 될 겁니다. 그러려면 아예 공장이 있는 곳으로 본사를 옮기는 게 낫겠지요.” 

라이언이 반대를 제시했다. 

“OTK컴퍼니가 인수할 자동차회사와 협업이 문제라면······?” 

난 고개를 저었다. 

“협업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협업을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자동차회사는 OTK컴퍼니가 아닌 카로스가 인수하게 될 테니까요.” 

“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회사를 따로 운영하면, 의견충돌이 생길 경우 조율이 힘들다. 그래서 차라리 카로스를 지주회사로 두고, 그 밑에 자동차회사를 자회사로 만들 생각이었다. 

난 데릴을 보았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방금 내가 한 말대로라면 그는 200억 달러가 넘는 회사를 운영하는 CEO가 되는 것이다. 물론 지분 대부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만. 

혼자 결정한 건 아니고, 택규와 현주 누나와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데릴은 완벽한 자율주행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카로스를 이끌었다. 그리고 은성차에 인수되었을 당시 외부의 압력에 불구하고 개발의지를 꺾지 않았고, 자신의 길을 갔다.  

그라면 분명 앞으로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세르게이가 말했다. 

“이런 중요한 일을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위치입니까? OTK컴퍼니 쪽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제 말이 곧 OTK컴퍼니의 말입니다.” 

“어째서······?” 

난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제가 바로 OTK컴퍼니의 CEO니까요.” 

“······.” 

모두가 침묵했다. 원래 너무 놀라면 잠시 할 말을 잃게 되는 법이다. 

잠시 후, 세르게이는 경악했다. 

“마, 말도 안 돼!” 

“이제 와서 밝히게 되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속일 생각은 없었어요.” 

난 카로스의 임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없을 겁니다. 원하는 차를 만들어 보세요. 카로스가 만들어낸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잠시 후, 데릴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겠습니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One day, something started to appear before my eyes.
What could I possibly do with this ability?

From now on, I will reshape the global financial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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