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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7. 거지남매 – 외모

깨끗하게 씻긴 동생의 얼굴이 레오를 향했다.

레나는 예뻤다.

아니, 아름다웠다.

가지런히 자란 두 눈썹은 둥근 이마를 받치듯 수를 놓았고, 산딸기 같은 입술 사이로는 고른 치아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 하얗게 빛났다.

레오가 깨끗이 닦아낸 두 뺨은 바짝 말랐음에도 품위를 잃지 않았고, 사랑스럽게 작은 귀는 고운 턱선의 시작을 알리며 우아한 곡선을 담은 코와 함께 얼굴 전체의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이 눈! 다소곳이 내밀어진 속눈썹에 갇힌 우물 같은 눈 안에는 금화가 가득 찬 듯, 황금빛이 반짝이며 레나의 눈가를 환히 비췄다.

이번 레나도 분명 지난 두 레나들과 일견 비슷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외모로만 따졌을 때, 데모스 마을의 레나는 작은 마을의 어여쁜 아가씨, 에이브릴 성의 레나 아이나르는 한 미모를 뽐내는 여전사에 불과했다.

반면 이번 레나는 바싹 야위고 어렸음에도 경국지색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미모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여기에 살이 붙고, 분장하고, 몇 살의 나이를 더 먹으면, 이 레나 앞에서는 신화 속 영웅들도 신념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제야 그는 왜 레오가 동생 얼굴에 묻은 오물 덩어리들을 내버려 뒀는지 알게 되었다. 그건 일부러 묻혀놓은 것이다.

이런 곳에 집을 짓고 거지들 무리에 합류하지 않은 이유도 알았다. 레나를 숨기고 있었던 거다.

레나가 물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유도 설명됐다.

아마 밖에 놓인 조그만 컵으로 멀리서 물을 떠다 여기까지 날라왔겠지…

레오가 잠깐 넋을 놓고 레나를 보자, 그녀의 쏟아질 듯한 눈망울에 의문이 걸렸다.

“오빠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자자.”

“응.”

좁은 바닥은 자잘한 헝겊으로 덮여있었다.

그는 동생을 벽에 붙여 눕히고 자신은 바깥을 지키듯이 누워 팔베개를 해줬다. 레나는 피곤했는지 오빠의 품속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레오는 잠이 오지 않았다.

레나의 얼굴을 보자 근심이 가득해졌다.

‘어떻게든 거지만 면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번 시나리오는 시작 환경이 다소 가혹할 뿐 다른 시나리오들처럼 꽉 막힌 모순도 없고, 장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먼저 둘은 남매였다.

두 사람의 관계가 레나의 결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레나의 나이가 어렸다. 다른 레나들보다 한두 살 정도는 더 어린 것 같았는데, 이건 큰 장점이었다. 무언가를 오랫동안 준비할 시간이 주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레나가 이렇게 생겼다.

이 지나친 미모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다.

나중에 공주가 되기엔 편하겠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누군가에게 들킬 것이 무서워서 숨어다녀야 했다.

지금이야 중학생이 될까 말까 하는 소녀라 눈길이 잘 닿지 않는 것이지, 조금만 더 커서 남성들의 시선을 한 번씩 받을 나이가 되면 얼굴을 가리는 정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하얀 인장이 달린 목걸이. 게임을 많이 해봐서 한눈에 알았는데, 이건 혈통과 관련이 깊은 물건이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물건은 언제나 재앙을 몰고 왔다.

‘완전히 후반에 쏠린 시나리오네.’

이런 시나리오는 시작이 정말 힘들었다.

출생의 비밀과 수려한 외모. 눈에 띄지 않고 힘을 키우기 힘든 상황인데, 노골적으로 칼날을 들이밀 작정을 한 강력한 적이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어떻게든 그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다면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고귀한 신분과 자격이 있음에도 거리로 몰려난 남매, 레오는 이 시나리오의 끝을 예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단지…

‘내가 좀 더 강했다면.’

순간 아주 못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반복해서 시나리오를 진행하다 보니, 그리고 레오가 된 지 얼마 안 됐기에 든 생각일 거다.

부끄럽지만 고백하건대, 검술을 좀 더 익히고 ‘다음’에 다시 시작한다면 수월하게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아주 글러 먹은 생각이었다.

‘지금’의 레나를 도외시하는, 인간으로서 감히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했다.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 레나에게서 짙은 혈육의 정이 느껴졌다. 사랑스러운 동생이고 지켜줘야만 하는 아이다.

그가 시나리오를 반복할 수 있다는 시답잖은 이유는 그녀의 가치를 조금도 훼손하지 못했다.

레오는 동생의 작은 숨 바람이 그의 목덜미와 양심을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자책하다 서서히 잠이 들었다.

그나마 따뜻한 여름인 것이 그들에겐 행운이었다.

* * *

다음 날, 레나는 잠에서 일찍 깼다. 불길한 예감에 황급히 고개를 들어 오빠를 찾았는데, 다행히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내가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지?’

오빠는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 어디선가 물을 한 잔 떠놓고 나를 깨웠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아직 잠들어 있다.

‘많이 피곤한가?’

레나는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이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먹을 것도 대부분 오빠가 찾았고, 그녀는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주는 것만 받아먹을 뿐이었다.

나는 짐 덩어리다.

이대로 꼼지락거리고 있다가는 곁에 있는 오빠를 깨울까 봐, 레나는 조심조심 밖으로 기어 나왔다.

밖에 놓인 컵에는 물이 차 있었다. 생각해보니 어제 비가 와서 컵에 빗물이 고였던 것 같다. 오빠는 이미 물이 있어서 떠오지 않았나 보다.

오랜만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레나는 물을 조금 마시고 대부분 남겼다.

이건 오빠 거다.

레나는 오빠를 기다릴 겸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아침 햇볕을 쬐었다. 환한 햇살을 보니 어제 꾼 근사한 꿈이 떠올랐다.

+ + +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넓은 방.

나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 방은 너무 넓어서 숨을 곳이 지천으로 있었다. 고심 끝에 주홍색 장막 뒤에 숨어서, 이리저리 헤매며 동생이 어디 갔는지 아느냐며 묻고 다니는 오빠를 훔쳐봤다.

꺄르르 웃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웃음은 참으려 할수록 더 재미있어져서 결국 소리를 내고야 말았고, 오빠는 그제야 나를 찾았다.

“여기 있었구나! 우리 공주님!”

오빠는 나를 반쯤 들듯이 품에 안고 빙글빙글 돌려줬다. 방이 빙글빙글 돌아가면서도 내겐 오빠의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 +

“일찍 일어났네.”

“응! 오늘은 내가 먼저 일어났어.”

레오는 집을 무너뜨리지 않게 조심하며 기어 나왔다.

벽에 기대고 앉아 햇살을 받는 레나,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슬프다.

“물 마셨어?”

“응. 난 다 마셨어. 그건 오빠 꺼야.”

고작 몇 모금만 마시고 남겼는지 컵에는 물이 반 넘게 차 있었다. 반만 마시고 남은 물을 동생에게 내밀었다. 다 오빠 거라며 사양했지만, 기어이 손에 쥐여주었다.

레오는 짧고 얇은 팔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풀었다. 밤새 땅에서 올라온 습기에 몸이 절어 피로가 풀리지 않았는데 허기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이른 아침이면 시장 근처에 먹을 게 제법 있을 거다. 어제 가게를 정리하면서 남은 음식 재료를 버렸을 테니, 쓰레기통을 치우기 전에 주워야 했다.

그는 레나를 새까맣게 분장시키고 서둘러 시장을 향했다.

시장은 상인들이 물건을 실어나르느라 분주했다.

남매는 쓰레기통을 뒤졌다. 상추 같은 보관이 힘든 채소들이 제법 있어서 더러운 것은 골라내고 깨끗한 순서로 동생의 손에 들려줬다.

투정 부리지 않고 아삭아삭 먹는 모습이 착하다.

그러다 레나가 감자를 찾았다.

“이거 먹어도 돼?”

싹이 나 있다.

레오는 동생이 감자를 물기 전에 빼앗고, 싹 난 감자는 먹으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렇게 한창 먹거리를 찾는데,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몰려오는 게 레오의 눈에 띄었다. 꾀죄죄한 옷차림,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들이다.

“레나야. 가자”

저놈들이랑 마주쳐서 좋을 것이 없으니 레오는 손에 든 것만 가지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몇몇이 두 사람을 봤지만 쫓아오지는 않았다.

채소를 먹어서 목이 마르지도 않고 배도 조금 채웠다.

레오는 그 작은 여유를 이용해 주변의 지리를 익혔다. 돌아다니며 레나와 잡담을 하기도 했다.

동생은 유독 집 짓는다는 이야기를 좋아해서 “다음엔 여기에 집을 짓자, 저기도 괜찮을 것 같다.”라며 위치를 선점했다.

밝게 웃는 동생을 보자 기쁨과 함께 책임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뭘 해야 하지?’

레오는 복잡한 골목길을 익히며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는 하루하루 연명할 뿐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지는 한창 돌아다니다 보니 알게 됐다.

여긴 벨리타 왕국의 수도 오르빌이었다.

지난 시나리오에서 아스틴 왕국과 전쟁이 났던 국가로, 대륙의 중앙을 차지한 강력한 왕국이었다.

먼 옛날 수많은 이종족들이 대륙을 점령했던 시절, 인간이 세운 최초의 왕국 아카이아가 있었다. 그 왕국은 바로 이곳 대륙의 중앙에서 태동해 온 대륙을 집어삼키고 제국이 되었다.

치열한 전쟁 끝에, 대륙에 산재한 이종족들을 모두 몰아내고 ‘인간의 시대’를 천명한 제국은 현재의 7개 왕국으로 분열됐다. 그 7개 왕국 중에서 아카이아 제국의 정통성을 가장 뚜렷하게 이어받은 곳이 이 벨리타 왕국이었다.

벨리타 왕국은 바다를 끼고 있지는 않았지만, 풍요로운 토지와 대륙 중앙에 위치한 지리적 장점을 살려서 부유하고 강대한 국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벨리타 왕국은 인심이 사납기로 유명했다.

중계무역을 하는 상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차액(margin)을 떼먹는 문화가 만연했다.

이 나라에서는 대가 없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멍청하게 여기기 일쑤였고, 이렇게 번화한 수도는 그 정도가 더했다.

거지 남매가 인심 좋은 데모스 마을에 있었다면 이미 마을 차원에서 어떻게든 도움을 받았을 것이지만, 이런 곳에서는 자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레오는 지금 도움이 절실했다.

‘가장 시급한 건 레나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인데…’

레오 혼자라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겠지만 동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뭘 하는 건 어려웠다.

소년이 홀로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레오의 나이는 성년에 이르렀지만, 키가 작아서 소년처럼 보였던 탓도 있었다. 소매치기나 도둑질이 그나마 할 만한 일이었는데, 그런 못된 짓을 레나를 끌고 다니면서 할 수는 없었다.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어딘가에서 일하며 숙식을 하고 싶었지만 이런 거지꼴로는 힘들었다. 적어도 몸을 깨끗이 씻고 어디든 가서 사정해야 했는데, 그러면 레나의 외모가 노출된다.

까짓거 노출되면 뭐 어떠냐 싶겠지만, 여기는 노예제도가 공인된 세상이었다.

레나의 외모는 노예상들을 자극할 것이고, 힘없는 거지 남매를 잡아가는 건 수도의 치안이 아무리 좋더라도 손쉬운 일이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동생을 숨겨야만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아름다운 레나를 보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거주지를 구하고, 주위 사람들과 인맥을 터놓은 상태여야 했다. 그래야 보는 눈이 많아서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고, 동생을 확실하게 보호하려면 상당한 무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레오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돌아다니는데, 뒤따르는 레나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 * *

나는 오늘도 오빠를 쫄랑쫄랑 따라다녔다. 쥐여주는 것을 받아먹으면서 오빠를 빤히 쳐다봤다.

오빠를 돕고 싶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빠 말을 잘 듣고 가능한 한 투정을 부리지 않는 것뿐이었다.

오늘 오빠는 주변을 둘러볼 생각인지 거리와 골목길을 샅샅이 훑었다.

다리가 조금씩 아파 왔다.

‘오빠가 쉬자고 할 때까지만 참자.’

가끔 오빠가 나중에 여기에 집을 짓자고 하면 기분이 좋았다. 나도 여기는 어떻겠냐며 양지바른 곳을 몇 군데 지목했다.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언젠가 꼭 근사하고 따뜻한 집에서 오빠랑 평생 살고 싶다!

그렇게 한참 돌아다니는데 몸이 이상해졌다.

‘어라…? 왜 머리가 아프지?’

어쩐지 다리보다 머리가 더 아프고, 이렇게 오래 걸었는데도 덥기는커녕 추워졌다.

몸이 부르르 떨리고 경직이 와서 걷기도 힘들어졌다. 앞서가는 오빠는 주변을 살피느라 바빴다.

‘괜히 오빠를 걱정시키면 안 돼. 그런데 배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배가 고파서 그런 건가? 아닌데. 아까 좀 먹었는데?’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레나는 꾹 참으며 묵묵히 오빠를 따랐다.

심호흡하며 안정을 찾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어지러움은 계속 심해졌다.

세상이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 * *

“레나야?”

레오는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길을 익히던 중,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사라진 걸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몇 걸음 뒤에 레나가 쓰러져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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