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8

9화 결행 (2)

9화 결행 (2)

크헉! 감독관이 낮은 비명을 질렀다.

내가 그의 발목에 단검을 그었기 때문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다른 감독관이 나를 발견하기 전에 추가 공격을 가했다.

퍽퍽! 퍽! 놈의 등에 세 차례 단검을 꽂았다.

단검을 다루는 손놀림이 가벼웠다. 언데드와 싸우며 습득한 단검술 덕분이다.

“이 쥐새끼가······!”

감독관이 뒤돌아 검을 휘둘렀다. 유난히 코가 못생기고 커다래서 우리가 주먹코라 부르던 녀석.

상처 입은 주먹코의 움직임은 둔했다. 나는 하센베르크 격투술을 활용해 그의 공격을 회피했다.

“너 이 새끼······!”

주먹코는 치명상을 입지 않았다. 가죽 상의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부러 숙소와 거리를 벌리며 감독관들과 대치했다.

주먹코는 다리를 절룩이고 있다.

그리고 멀쩡한 쪽은.

‘그간 네놈의 금발을 눈여겨보고 있었지. 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흐흐흐흐······.’

털북숭이 감독관.

“138번. 네놈이······!”

분노한 목소리와 별개로 털북숭이의 눈은 묘한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 눈을 나는 또렷이 기억했다. 나를 바닥에 내리누르며 숨을 헐떡이던, 구역질 나는 눈빛.

감독관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들의 레벨은 나보다 높다. 기습으로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으니 내겐 크게 불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콰드득!

주먹코의 배에서 나무창이 튀어나왔다. 그의 입에서 왈칵 피가 쏟아졌다. 그 뒤로 창자루를 움켜쥔 족제비가 보였다. 족제비는 혼자가 아니었다.

녀석을 포함한 여러 소년이 함께 창자루를 쥐고 있었다.

“크허억······!”

배가 뚫린 주먹코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털북숭이가 뒤를 돌아봤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을 향해 달렸다. 상대는 나보다 훨씬 컸지만 몸을 띄워 팔을 뻗으면 목에 닿을 수 있다.

콰직!

내 단검이 털북숭이의 목에 박혔다.

나는 왼팔로 놈의 어깨에 매달리며 단검을 뽑았다. 이어 그의 왼쪽 턱에서 오른쪽 턱으로 단검을 그었다.

그르륵······! 바람 빠지는 듯한 비명이 놈의 입에서 토해졌다. 갈라진 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놈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해서 단검을 박아 넣었다.

퍽! 퍽! 퍼억!

털북숭이의 몸이 무너졌다. 부르르 사지를 떨던 그가 죽은 식물처럼 축 늘어졌다. 나는 주먹코를 돌아봤다. 그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사, 살려 줘······!”

주먹코에게 다가가 목을 그었다.

치솟는 피를 맞으며 재차 단검을 쑤셔 넣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우······.”

죄책감 같은 것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마저 든다.

나는 피에 젖은 얼굴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그런 나를 조원들이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수고했어 족제비.”

내가 손을 내밀자 족제비가 화들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감독관들의 소지품을 챙겼다.

검, 단검, 부싯돌, 가죽 채찍.

‘이 채찍은 꽤 쓸모가 있겠어.’

주먹코의 가죽옷을 벗겼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족제비가 나를 도왔다. 심지어 다른 조원들에게 털북숭이의 옷도 벗기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소지품을 챙기고 뒤를 돌아보니 테오가 멍하니 서 있었다.

“이거 입어. 하나는 덩치에게 주고.”

가죽옷 두 벌을 테오에게 넘겼다.

어차피 나와 족제비의 몸에는 맞지 않는다.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가자.”

감독관의 시체를 숙소에 처박은 뒤 서둘러 벽에 올랐다.

모든 인원이 벽을 넘은 후 사다리는 숲 안쪽으로 치웠다.

“대형을 갖춰.”

테오의 명령에 조원들이 준비한 대형을 갖췄다.

고작 몇 시간 연습한 것에 불과했지만 제법 조직적이었다. 테오의 리더십은 이럴 때 빛을 발한다.

‘카인도 오늘 밤 탈출하겠지.’

나는 가급적 카인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카인은 우리를 적당히 쓰다 버리는 패로 이용하려 들 테고,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이쪽도 힘이 있어야 하니까.

‘카인 생각은 접어두자. 지금은 탈출하는 것에 전념해야 해.’

나는 미니맵과 전방을 동시에 주시했다.

내가 가운데, 왼쪽은 테오, 오른쪽은 족제비, 이렇게 셋이 선두에 섰다. 후미는 덩치가 맡았다.

“어이 데미안. 그 언데드라는 녀석은 언제쯤 나타날까.”

“그, 근데 그게 말이 돼 테오? 주,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다니······.”

족제비가 내 눈치를 보며 말을 더듬었다.

아까 감독관을 처치한 뒤로 녀석의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나는 데미안의 말을 믿어. 언데드는 분명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조. 우리는 놈들과 마주하는 상황을 대비해야 해.”

“아니 내가 금발 약······ 아니 데미······안의 말을 못 믿는다는 건 아니고······.”

언데드가 익숙지 않은 건 나보다는 조원들이다.

나야 여러 매체를 통해 언데드를 접해봤지만 이들은 그런 간접 경험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119번과 싸우며 알게 된 것들을 테오에게 알려두었고, 테오는 그 내용을 종합해 조원들에게 전했다.

“119번이 괴물이 되어 되살아나다니. 데미안의 말이 아니었으면 나도 믿기 어려웠을 거다.”

나는 어둠에 감싸인 숲을 탐색했다.

원래도 어두웠지만 달이 구름 뒤에 숨을 때면 칠흑처럼 새까매졌다.

자연 감응으로 시야를 밝혀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닌 이상 아끼는 편이 낫다.

“······저, 저기, 조금만 쉬었다 가면 안 돼?”

“더는 못 걷겠어 테오······.”

“장비가 너무 무겁단 말이야······.”

매일같이 광산에서 육체노동을 했어도 기본적으로 영양실조를 달고 살던 녀석들이다.

무장을 한 채 울퉁불퉁한 숲길을, 그것도 언제 등장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하며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데미안.”

“아직은 안 돼, 테오.”

나는 테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벽에서 충분히 멀어지지 못했어. 섣불리 이런 곳에서 쉬다가 몬스터를 만나면 벽 안으로 소음이 전해질 거야.”

고개를 끄덕인 테오가 조원들에게 조금만 더 힘내자고 독려했다.

소년들은 별다른 저항 없이 테오를 따랐다.

내가 섣불리 테오에게서 지휘권을 가져오지 않는 이유다.

◎ 특성: [책임감], [통솔자], [인내력]

테오의 특성이다. 아울러 지금의 내겐 없는 특성이기도 하다.

누가 뭐래도 F조의 리더는 테오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의 목소리에는 묵직한 신뢰감이 있다.

부르르.

주머니 속의 먼지가 몸을 떨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위험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다. 미니맵에 고블린의 표식이 나타났다. 다가오고 있다.

“9시 방향에서 고블린 무리가 오고 있어. 10마리 이상. 속도를 더 내야 해.”

전투는 가급적 회피해야 한다.

게다가 고블린 십여 마리를 피해 없이 쓰러뜨리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겐 불가능하다.

조금 더 이동하면 전투에 용이한 지역이 나온다. 싸우게 되더라도 거기까지는 가야 한다.

“뭐, 뭐야. 왜 갑자기.”

“설마 몬스터라도 따라오는 거야?”

“히익······!”

우리는 거의 달리다시피 움직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조원은 레벨이 낮아 선두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후미에서 조원들을 챙기는 덩치가 없었다면 낙오자가 생겼을 거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등 뒤를 울렸다. 오르막을 달리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고블린과의 거리가 좁혀졌다. 이제 육안으로도 보인다. 화살이 닿을 수도 있는 거리. 하지만 멈출 수 없다. 오르막의 끝에 도달하기 전에는.

“테오.”

원하는 장소에 도착한 나는 테오에게 눈짓했다. 그 즉시 테오가 후미로 달려갔다.

“F조! 뒤돌아 방패벽!”

테오의 목소리에 반응한 조원들이 일제히 뒤로 돌았다. 이어 간격을 좁히며 방패를 들었다.

퉁! 투투퉁!

고대 그리스 전사들이 애용하던 팔랑크스(Phalanx) 방진을 흉내 낸 것이었는데, 당연히 훈련된 병사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났다.

방패의 크기와 모양도 제각각이고, 오와 열도 안 맞는다. 창의 방향까지 제멋대로다. 하지만 대책 없는 개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다.

“방패 똑바로 들어! 창끝은 정면으로!”

역시 테오였다.

테오는 한눈에 방진의 문제점을 알아채고 조원들을 다그쳤다.

사나워진 테오의 눈빛을 본 조원들은 부들부들 팔을 떨면서도 창과 방패를 고쳐 들었다.

그사이 나는 감독관에게서 빼앗은 가죽 채찍을 방진 앞의 나무에 묶었다. 이 채찍은 몇 갈래로 나뉘어 있었는데, 나는 이것을 하나의 긴 가죽끈으로 만들어뒀다.

“우우우!”

덩치가 고릴라처럼 포효했다. 저런 미친놈이. 평소에는 말도 없던 녀석이 왜 갑자기 소리를 질러.

벽과의 거리는 제법 멀어졌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아니지.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소음 발생은 필연적이다.

지금은 이기는 것에 집중할 때다.

텅! 터텅!

고블린들이 쏜 화살이 방패에 맞고 떨어졌다.

화살촉이 없는 고블린의 화살은 방패를 뚫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살과 근육은 충분히 파괴할 수 있다.

나는 반대편 나무로 달려가 가죽끈을 묶었다.

“방패 내리지 마! 창 들어! 더 밀착해!”

방진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렸다. 나도 재빨리 그 안으로 들어갔다. 덥다. 사방에서 뜨거운 숨결이 토해진다.

키잇! 키에에엣!

손도끼를 든 고블린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머릿수는 이쪽이 많다. 그러나 레벨을 감안하면 우리가 한참 불리하다. 우리 중 10레벨을 넘긴 인원은 나와 테오, 그리고 덩치뿐이다.

그에 반해 고블린들은 대부분 10레벨 이상이다. 15레벨에 도달한 녀석도 있다.

“심호흡을 해. 최대한 체력을 회복해야 해. 놈들은 오르막을 달리며 숨이 차게 될 거다.”

테오의 속삭임이 방진 안을 울렸다. 조원들이 일제히 심호흡했다. 더운 공기가 급격히 밀려들었다. 멀미가 날 것 같다.

나는 방패의 틈새로 고블린들을 봤다. 역시 최하급 몬스터답게 놈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정면으로 밀고 들어왔다. 내가 테오에게 이 방진의 훈련을 권한 이유이기도 하다.

파앙!

날아든 손도끼 하나가 방패에 꽂혔다. 상당한 위력이었지만 다행히도 방패의 주인은 덩치였다. 나는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끈과, 그곳으로 돌진하는 고블린들을 봤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테오도 보고 있을 것이다.

“F조! 전진!”

테오는 완벽한 타이밍에 전진 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선두를 달리던 고블린들이 가죽끈에 걸려 넘어졌다.

“찔러!”

테오의 외침과 함께 나무창이 쏘아졌다.

넘어진 고블린들의 등과 어깨로 창끝이 박혔다. 상처 입은 고블린들이 비명을 질렀다. 가죽끈은 머지않아 함정의 역할을 다했지만 그사이 우리는 네 마리의 고블린을 죽였다.

“방심하지 마! 지금부터 시작이다!”

테오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덩치가 방패에 꽂힌 손도끼를 뽑아 들더니 적진을 향해 던졌다. 그것이 고블린의 이마에 명중했다.

“우우우우!”

덩치가 또다시 포효했다.

덩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족제비의 손도끼를 빼앗아 던졌다. 이번에는 빗나갔다.

“우우우······!”

덩치가 풀 죽은 소리를 냈다.

하지만 덩치 덕에 고블린 하나를 추가로 처치했다. 남은 것은 일곱 마리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우리 중에서 놈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 인원은 8레벨의 족제비를 포함하더라도 4명이 전부다.

쿠쿠쿵!

고블린들이 방패벽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 와중에 두 마리가 나무창에 꿰였기에 온전히 접근에 성공한 것은 다섯이었다. 놈들은 레벨이 높았다. 몸집이 테오보다도 컸다.

퍼억! 퍽!

놈들이 휘두른 손도끼가 방패를 깨부쉈다. 억지로 밀치며 들어오는 힘이 대단했다.

“버텨! 물러서지 마! 밀리면 끝장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