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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0

79. 거지남매 – 큰 호감

쏟아지던 비가 점차 잦아들었다.

건물 한쪽에 기대어 비를 피하던 레나는 허기를 참지 못하고 칭얼거렸다.

“오빠, 나 배고…”

“레나!”

오빠가 난데없이 날 끌어안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금만 참자. 응? 비가 그치면 먹을 걸 찾을 수 있을 거야.”라면서도 걱정이 가득하던 오빠였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으으응, 오빠 왜 이래. 나 힘없어.”

“레나! 레나!”

레나가 이것 놓으라는 듯이 꼼지락거렸으나, 레오는 동생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동생이다.

매번 비극적인 결말만을 맞이했던 아이다.

[ 업적 : ‘12’번째 레오 – 플레이어가 레오에게 동화되는 속도가 미약하게 빨라집니다. ]

동생의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오물이 뺨에 옮겨붙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 12/20 ]이라는 숫자가 망막에 새겨졌으나 레나를 제외하면 어떤 것도 중요치 않았다.

내 사랑스러운 동생.

하나뿐인 내 동생!

그에게 섞여 있는 민서의 정신도 레오의 격한 감정을 방관했다.

지난 약혼관계 시나리오의 레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죄책감 때문에 폭발하는 레오의 감정을 내버려 두었다.

레나는 “이이익! 이것 놔아!”라며 투정을 부리는 것도 잠시, 포기했다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예쁜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오빠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아침에 물을 못 떠 와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어라?”

레나는 오빠한테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의아해하며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오빠. 그거 뭐야?”

“레나…”

“아이참! 오빠아! 이거 뭐냐고.”

“응?”

레오는 동생이 톡톡 건드리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허리춤에는… 검이 매달려 있었다.

[ 업적 : 귀속 아이템 0/3 ]

[ 검 – 파괴되지 않음. ]

“이게 뭐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어어? 이, 이건… 아! 아침에 주운 거야. 봐봐… 짜잔!”

“우와아!”

레오는 변명하며 검을 뽑아 보여주었다.

“이건 검이라는 건데, 여기는 위험하니까 만지면 안 돼. 눈으로 보기만 해야 해? 알겠지?”

“응! 응!”

그는 동생이 검집과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검신을 만져보고 싶다고 졸라서, 검날을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레나는 검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보고는 “히잉… 멋있긴 한데 무서워.”라면서 관심을 끊었다.

레오는 동생이 검을 구경하는 사이에 벅차올랐던 감정을 추슬렀다.

네 번째 거지남매 시나리오가 시작되었다.

“레나야. 우리 밥 먹으러 가자.”

귀속 아이템인 검뿐만 아니라 {초기 자금}도 그의 주머니에서 짤랑이고 있었다. 일단 레나한테 밥부터 먹이자.

레나는 검을 보고 신기해하던 것도 잠시, 기갈이 되돌아왔는지 지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들어? 업어줄까?”

“…아니. 오빠 오늘 진짜 왜 그래? 나 자고 있을 때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미안해. 그냥…”

레오는 매번 들르던 닭고기 집으로 동생을 이끌었다.

어김없이 닭고기 집 주인이 방망이를 들고 두 사람을 가로막았다.

“야. 좋게 말할 때 저리… 아이쿠, 손님이었구나. 닭고기 포장해줄…? 먹고 간다고? 먹고 가는 건 좀 더 비싼… 왜 이렇게 말을 끊어? 뭐, 지금은 손님도 없으니까. 들어와라.”

상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듯이 말을 턱턱 끊어버리는 남매를 안으로 들였다.

손님이니까 참는다.

그는 행여라도 지저분한 옷 때문에 가게가 더러워지지 않을까 힐끔거리며 물었다.

“뭐로 줄까?”

“양념 된 닭고기랑 구운 닭고기를 반반씩 섞어주세요.”

“야. 그렇게 하면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 줄… 뭐? 돈 내겠다고? 너 그만한 돈은 있…? …알았다.”

진짜 돈 있으니까 참는다.

주인은 레오가 내민 은화를 보고 군말 없이 돌아갔다.

레나가 눈이 똥그래져서 물었다.

“오빠, 그거 어디서 난 거야?”

“주웠지.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거야.”

“그게 돈이라는 거야? 전에 오빠가 뭐든지 살 수 있는 거라고 했던 거 맞지?”

“응.”

자리에 앉아 닭고기를 기다리는 동안, 레나는 이전에도 했던 질문을 똑같이 던졌다.

“그걸로 집도 가질 수 있어?”

“집은 이런 게 정말정말 많이 필요해서 아직은 무리야. 그런데 레나야. 넌 절대 돈 걱정하면 안 된다. 절대로. 돈은 오빠가 어떻게든 벌어다 줄게. 알겠지?”

“돈을 번다는 게 무슨 뜻이야? 줍는다는 거야?”

“…”

시나리오 시작 직후의 레나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레오는 돈을 번다는 게 어떤 뜻인지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땀 흘려’ 일하거나, 무언가를 ‘만든’ 대가로 얻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아무튼, 돈을 벌고 싶거든 오빠한테 미리 말해줘야 해. 알겠지? 꼭이야?”

“응. 알았어.”

말을 잘 듣는 레나는 이렇게 말해두면 절대 몰래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거다.

이윽고, 양념 된 닭고기와 구운 닭고기가 함께 나왔다.

“오빠는 운이 좋네. 칼도 줍고, 돈도 줍고… 난 그런 거 한 번도 못 봤는데…”라며 의아함을 내비치던 레나는 금세 의문을 잊어버렸다. 근사한 음식에 눈이 돌아가 허겁지겁 닭고기를 집어삼켰다.

“천천히 먹어.”

“…얌냠, 오물오물…”

들리지도 않나 보다.

레오는 동생에게 닭고기 살을 발라주며 고민에 빠졌다.

‘콘라드 왕국으로 가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이 아니었다.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다른 시나리오들과 달리 뚜렷한 길이 제시되어 있었다.

{혈통} 이벤트.

다른 시나리오들은 평민인 레나를 어떻게 공주로 만들지 고민해야 했지만, 여기는 그렇지 않았다.

거지남매의 레나와 레오의 본명은 ‘레나 드 예리엘’과 ‘레오 드 예리엘’로서 콘라드 왕국, 예리엘 왕가의 적통이었다.

‘에릭 드 예리엘’이라는 현재 콘라드 왕국의 왕자에게 내쫓겼을 따름이니, 놈을 쫓아내고 신분을 되찾으면 된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놈은 왕국의 유일한 왕위 계승권자로 인정받은 상태였고, 외할아버지인 라퍼트 테르탄 공작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라퍼트 테르탄 공작.

이 인간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공작은 왕이 십 년이 넘도록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콘라드 왕국의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래서 ‘송곳 찌를 틈도 없다.’라고까지 생각하며 {혈통} 이벤트를 포기했었다.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그 기사’를 만나기 전까지는.

‘돈이 문제야. 돈이…’

레오는 행복하게 닭고기를 뜯어 먹는 동생을 보면서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거지남매 시나리오는 항상 돈이 문제가 됐다.

{초기 자금}을 제외하면 단 한 푼도 없다.

게다가 여긴 소꿉친구 시나리오처럼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여긴 도시다.

물가도 비싸고, 손재주도 없는데, 동생을 먹이고 입히는 생활비 모두를 레오가 부담해야만 했다.

그 와중에 타국으로의 여행이라…

‘…카시아한테 가볼까?’

카시아를 떠올리자 심경이 복잡해졌다. 아직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고마움과 원망이 뒤섞인 여자다.

높낮이가 없는 말투를 가진, 함부로 손을 뻗어 사람을 만지려 들고, 생머리가 매력적이고, 동생을… 창관에 넘겼었고, 초점이 없는 눈으로 멍하니 벽을 바라보기 일쑤인 여자.

그녀는 마지막에 자신을 밀어낸 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잘린 목에서 뿜어지던 보랏빛 피분수가 아직도 생생했다.

착잡하다.

‘일단 가자. 가서 보고 생각하자.’

이렇게 찾아가는 건 그녀를 또 이용하려 드는 짓일까?

저번에는 분명 카시아를 이용하기 위해 접근했었다. 그녀와 친분이 있는 오베르에게 접근해 라우노 패밀리에 들어가려고.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번엔 아니야. 이번엔 정말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갈 뿐이야. 다른 의도는 없어.’

당장 레나를 숨기고 쉴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카시아의 도움을 또 받는다니… 염치도 없다.

‘카트리나에게 가서 도움을 청해볼까?’ ─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포기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레오는 카시아를 만나고 싶었다. 이 감정은 무시하고 지나치기엔 너무 컸다.

레오는 양념투성이가 된 동생의 입가를 깨끗이 닦아주고 가죽거리를 향했다.

카시아의 신발가게가 있는 골목길을 앞에 두고 또 한참을 망설였으나, 레나를 계속 세워둔 채 고민할 수는 없었다.

‘그래. 가자. 보답을 하든 어쩌든…’

각오하며 골목길로 발을 들였다.

카시아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가게를 지키고 있었는데…

[ 업적 : 카시아가 목숨 바쳐 지킨 남자 – 카시아에게 큰 호감을 얻음. ]

레오를 본 순간 벼락 맞은 듯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벌떡 일어난 카시아는 입을 헤- 벌리고, 팔짱을 꼈다 풀기를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레오는 가게로 들어갔다.

“아으… 아… 아, 안녕… 하, 세요?”

오베르를 제외하면 거의 반말밖에 하지 않던 그녀가 존대했다. 목소리가 떨리고, 음이 뒤죽박죽 이탈했다.

카시아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날이었다. 자고 일어나 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웬 청년이 불쑥 나타났다.

숨이 막힌다.

몸이 배배 꼬이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이 남자는…

그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소년 같은 남자의 말이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장 벗으라면 벗고, 누우라면 눕겠다. ‘내가 왜 이러지?’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카시아는 두방망이치는 가슴을 움켜쥐고, 화끈 달아오른 양 뺨을 식히려 했으나 허사였다.

레오는 레오대로 안절부절못하는 카시아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반응이 달라지리라 예상했다.

작은 호감에도 목숨을 던졌던 여자다.

그게 큰 호감으로 바뀌었으니…

그는 카시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떠나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적 따위가 뭐라고, 사람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휘둘러도 되는 건가.

‘나도 다를 바 없는 짓을 했지…’

그는 잠시 레나 아이나르를 떠올리며 지난 시나리오를 반성했다.

“으… 저기… 여, 여기 앉으실래요? 벗겨드릴… 아니아니, 죄, 죄송해요. 말실수를…”

카시아는 몹시 공손한 태도로 일어나 앉아있던 의자를 양보하려 했다.

되려 당황하며, 레오는 매번 카시아를 찾아올 때마다 하던 요청을 전했다.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죄송한데 저희가 머물 곳이 없어서요. 여기서 며칠 신세를 져도 될까요? 돈이라면 있어요.”

“무, 물론이에요. 당연하죠. 안, 안에 방이 있어요.”

카시아는 허둥지둥, 방문을 열어 보였다.

매번 은화 한 닢을 받아가던 그녀는 레오가 내민 돈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레나는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레오와 카시아를 번갈아 보며 오빠의 옷을 잡아당겼다.

레오는 어깨를 으쓱, 나도 모른다는 제스쳐를 보이곤 방으로 레나를 들였다.

“좀 쉬고 있어.”

“뭐야? 저 언니 왜 저래? 이게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일단 저분이랑 이야기 좀 할 테니까 쉬고 있어.”

“이잉. 나도 듣고 싶어.”

“…알았어.”

세 사람은 가게에 다시 모여 앉았다. 레나와 레오는 의자에 앉고, 카시아는 본인의 간이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하지 못했다.

“저기.”

“네! 네, 네. 말씀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 저는 카시아라고 해요. 마, 마음에 안 드시면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돼요.”

아니. 대체 이 여자는… 큰 호감이란 게 그렇게나 강력한 건가?

카시아가 진정을 되찾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를 마시고, 레나의 얼굴을 보여주고, 사소한 대화도 나누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쯤에야 그녀의 더듬거리는 말투가 사라졌다.

“그러니까… 콘라드 왕국으로 가신다고요?”

부끄럽다는 듯이 눈을 피하는 행동과 존칭은 사라지지 않았다.

“네. 저희 친척이 콘라드 왕국에 있어서요.”

“어? 오빠. 진짜야?”

“으, 응.”

거짓말은 아니다. 예리엘 왕가가 거기에 있으니까.

“여행경비를 모을 때까지만 신세를 지고 싶어요.”

“…언제까지라도 계셔도 상관없는데…”

카시아는 그가 떠난다는 말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으나,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을 이었다.

그녀는 양손을 꼭 모으며 되려 부탁했다.

“돈이라도 제가 벌어다 드릴까요? 지금 가진 돈이 없긴 하지만 금방 벌 수 있어요. 이 주일, 아니, 일주일만 시간을 주시면…”

창관의 지배인, 브레틴 자우어에게 돈이 급히 필요하다 말하면 해결책을 알려줄 것이었다.

그녀가 결코 하지 않았던 ‘온갖 짓’을 하게 될지도 몰랐으나 상관없었다.

뭐라도 해주고 싶다.

설령 이 남자가 떠나버리는 시간을 앞당길지라도.

[ 업적 : 포주 – 창녀들이 벌어오는 수입이 증가합니다. ]

레나에게서 금화 상자를 건네받으며 얻었던 레오의 업적, 그것은 자신이 사용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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