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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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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命)(4) -여기까지 무료-

‘아아…’

아름답다.

너무나도 눈부시다.

나는 말없이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빛난다.

김영훈은 너무나도 빛나고 있었다.

“…대단, 하시군요.”

평소대로라면, 나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줄 터였다.

아니면 존경의 뜻을 담아 절이라도 올리거나.

그러나, 나는 그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만 그의 업적에 찬탄할 뿐이었다.

그는 마치 빛과 같았다.

그러나, 지난 번의 심마가 가시지 않은 탓일까.

그에 비하여, 나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한 것 같아 보였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는 나를 보며 옅게 웃었다.

그리고, 김영훈은 그대로 쓰러졌다.

풀썩-

“아…”

그랬다.

그는 몇 달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정신 나간 듯이 도만 휘두른 끝에 경지에 도달한 상태였다.

나는 황급히 김영훈을 데려다가 눕히고 그를 치료했다.

나는 잠든 그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감정은 질투인가.

아니, 아니었다.

나 자신의 재능에 대한 박탈감, 그리고 약간의 허망함, 그리고 초라함이었다.

그는 볼수록 새로운 재능을 개화하며 앞으로 나아가건만, 나는 그와 같은 거리를 가려면 말 그대로 수 배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빛을 보자, 내 마음속의 그림자가 더욱 더 드리운 것인지.

나는 오히려 더 희망이 사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남은 시간 안에, 축기기에는 들 수 있을까.’

솔직히 그조차도 잘 모르겠다.

균형은 갈수록 완벽해지고, 호흡도 짧아졌으나,

나는 아직도 축기기에 들지 못했다.

거기다가 축기기에 계속 도전하며 오월입도경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 역시, 점차 그 미묘한 비율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이 어려워졌다.

‘…수도공법도, 무공도.’

마치 하늘이 억지로 거부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만약 운명에 인력이란 것이 있다면, 내 운명에는 도대체 무슨 인력이 있기에 나를 이리도 다음 경지로 갈 수 없도록 묶어놓는 것일까.

‘다음 경지의 벽을, 정말로 이 생 안에 넘을 수 있을까…’

나는 착잡한 마음을 다스리며 며칠동안 김영훈의 원기를 되살려 주었다.

며칠 후, 김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형,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그는 일어나자, 얼마간 나를 바라보았다.

“김 형?”

내가 되묻자, 김영훈은 그제야 나를 보며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한 곳은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말을 하기 힘든 겁니까?”

그는 다시 고개를 젓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뭐지..?’

김영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를 잡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는 하늘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짓더니, 근처의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앉고, 한 손으로 턱을 괴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나를 관찰하는 듯 했다.

나는 김영훈의 의념을 읽어보았다.

그의 의념은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기대감… 설마.’

그의 직감으로는 내가 자신과 비슷하게 경지에 이르리라고 느꼈다 한다.

그는 어쩌면, 내가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것을 기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김 형. 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재능이 없습니다.”

그러나 김영훈은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관찰할 뿐이었다.

“……”

나는 잠시 김영훈을 보다가 한숨을 쉬고, 들어가서 따로 수도공법을 조정하고, 무공을 수련했다.

그 날부터, 김영훈의 기행은 계속 이어졌다.

월도입천의 경지에 도달하고 다시 깨어난 날로부터, 김영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실어증에 걸린 것은 아니었다.

가끔 생필품을 사러갈 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입을 열어 말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그럴 때도 나와는 직접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는 나와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으며, 항상 호기심과 기대감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으면, 한참 멀리 떨어진 봉우리로 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멀리 떨어져도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담스럽군.’

마치, 언제쯤 내가 다음 경지에 이를지 궁금해하는 듯 했다.

아니, 그런 듯이 아니라 그런 기색이 맞았다.

가끔 그에게 무공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러 가거나, 월도입천의 무예를 견식하고자 찾아가도 그는 나와 대화하는 걸 피했고, 더 이상 내게 가르침을 주지도 않았다.

내게, 어떠한 의도를 내비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으나, 어쩔 수 없이 그의 위치를 수긍하고 나 스스로 무공을 수련하고 오월입도경을 조정해갔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러도, 김영훈은 인내심 있게 내 근처를 맴돌며, 기묘한 관조자로서의 자세를 유지했다.

‘미쳐버릴 것 같군.’

무슨 의사를 내비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머리가 이상해진 것도 아니며 실어증에 걸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내게 아무런 가르침도, 조언도, 말동무조차도 해 주지 않는다.

그저 투명한 눈으로 바라볼 뿐.

내가 언젠가 반드시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르리라는 것을 확신한다는 듯이, 상당한 기대감을 품으며.

* * *

몇 년째였지.

그리고, 몇 번째였지.

‘또 실패했다.’

실패의 실패를 거듭하며 오행의 변화를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그 결과 약 7할 이상의 변화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축기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마 나머지 3할의 변화도 파악할 수 있다면, 축기기에 오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이젠 정말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한 달, 두, 세 달 남았던가.’

내 수명이 끝을 고하고 있었다.

나는 퀭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무공도 수도공법도, 너머로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먼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김영훈은 먼지와도 같은 이 나를 여전히 저 멀리서 기대감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중이었다.

저벅, 저벅..

나는 김영훈의 앞으로 가, 그에게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제가 말했지요. 저는 이제 슬슬 수명이 다 되어 갑니다. 수도자이기도 하여 제 수명은 제가 잘 알 수 있으니까요.”

“……”

“월도입천에 드신 후, 도대체 왜 제게 입을 열지 않는지는,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이쯤 됐으면 제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뭔가 알려주실 수라도 있지 않습니까?”

그는 옅게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됐습니다. 저는 곧 죽습니다. 도와주시지도, 충고해주시지도 않겠지요. 그저… 작별인사를 하러 왔을 뿐입니다.”

이번에 축기기에 들지 못하면, 나는 정말로 죽는다.

“김 형이 도대체 왜, 무슨 묵언수행을 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당신이 월도입천에 이른 후 갑자기 입을 닫은 이유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고, 답답해 미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분명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대종사입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을 존경하겠습니다. 새로운 광경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는 김영훈에게 절을 하고, 천천히 쇄천봉의 한 곳으로 향했다.

* * *

서은현의 작별인사를 받은 김영훈은, 저 멀리 멀어지는 서은현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모르는거냐. 은현아.”

어쩌면, 시야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김영훈의 눈에는 보였다.

“이미 너는 완성되었다. 무기를 완성한 수준을 넘어서, 이미 무기를 뽑아서 손에 들고 있는 수준이다.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데… 왜 휘두르지 않는 것이야..”

서은현은 김영훈이 입을 닫고 있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김영훈은 지금껏 누구보다도 시끄럽게 서은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월도입천의 경지에서 서은현의 무의식을 끊임없이 자극시키고 옆에서 도야시키고 있었다.

육성으로 말을 전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육성으로 말을 전해보았자 괜히 깨달음의 본질이 흐리게 전달될 뿐이었다.

무의식의 영역에서 서은현을 자극시키고 점차 각성시키는 중이었으나, 서은현은 도무지 반응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죽을 날이 다가왔다고 했던가.’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월도입천에 달하고, 기절한 후 다시 일어나 서은현을 보았을 때.

김영훈은 너무도 놀라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다.

월도입천의 경지에서 ‘그런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으나.

서은현의 ‘그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그것도 김영훈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드높고, 단단하게.

당장 서은현이 휘두르기만 하면 될 정도.

김영훈은 그것을 본 이후, 끊임없이 서은현의 무의식에 있는 그것에 말을 걸며 그것을 자극시키고 도야시켰다.

육성으로 주는 가르침도, 무기를 부딪혀 주는 가르침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그런 가르침은 본질을 흐릴 것을 걱정해서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제 죽을 날이 다가와버렸다.

‘지금이라도, 말을 해 주어야 하는가.’

너는 완성되어 있다고.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고.

직접적으로 말을 하면, 지금이라도 깨우칠 수 있는가.

김영훈은 저 멀리서 수도공법을 수련하는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문득, 서은현의 ‘그것’에 김영훈 자신의 모습이 비춰보였다.

“…됐다.”

김영훈은 자신의 직감을 믿기로 했다.

그냥, 하던 대로 옆에서 끊임없이 무의식을 자극시켜 주기로 하였다.

“녀석을 믿어보지.”

아니, 믿지 않을 수 없다.

누구라도, 저런 것을 본다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 힘들어하면, 한 번 정도만 보여주면 되겠지.”

김영훈은 자신의 감을, 그리고 자신이 본 서은현의 내면을 믿기로 하였다.

* * *

아무리 거름을 주어도 싹을 볼 수 없는 기분을 아는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실패라는 거름을 주며 대지를 보듬어 왔지만, 도무지 싹은 날 생각을 않는다.

쿠웅, 쿠웅, 쿠웅!

축기에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별들이 깨지고, 오행이 조정되고, 그리고 다시 실패한다.

후우우…

스무 호흡의 회복력이었던 것이, 이제는 다섯 호흡의 회복력으로 줄어 있었다.

한없이 완벽에 가깝다.

그러나, 마치 무리수의 끝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끝없이 미세하게 조정해야 할 부분이 눈에 띈다.

아무리 조정해도 끝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냐…’

아무리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꾸구궁!

다시 한번 영기의 별이 폭발한다.

‘왜 매번 폭발하는 것인가…’

솔직히 오월입도경을 대성하고, 여기까지 극한으로 비율을 조정했으면 됐지 않은가.

도대체 여기서 뭘 더 바란단 말인가..!

‘도대체 뭘…!’

심마가 절로 치솟아 오르며, 울혈이 터져나올 듯 했다.

“뭘 더 하란 말이냐..”

그리고, 그 때였다.

“…음?”

나는 눈가를 꿈틀거리며 저 먼 곳을 보았다.

“…저건.”

김영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그랬다.

검무(劍舞)였다.

그것은 단악검법이었다.

1초부터 24초까지의 초식이 허공을 휩쓸었고, 김영훈은 모든 초식이 끝난 후 다시 도를 칼집에 넣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내게, 뭔가를 말하려 한 것인가?’

뭘 말한단 말인가?

심지어 지금은 무공에 대한 고민도 아니고, 수도공법에 대한 고민을 하던 것인데.

하지만, 나는 어쩐지 김영훈이 보여주었던 단악검법의 그 짧은 춤사위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왜 단악검법을 보여줬지?’

내게 깨달음을 줄 것이라면 월도입천의 경지에 이른, 그 능광도를 보여주어 상단전을 자극이라도 시켜주는 게 낫지 않은가?

‘아니, 하수가 고수의 뜻을 이해하려 해봤자지… 그렇다면, 뭔가 그가 내게 단악검법을 보여주려 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인데…’

기이하게도 김영훈의 검법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그가 펼친 것은 단순한 단악검법이 아니었다.

‘내’ 단악검법이었다.

내가 평소에 쓰던 자세, 몸짓, 습관, 의념의 향방, 기의 완급 등을 모조리 똑같이 흉내낸, ‘내’ 단악검법.

그랬기에 나는 김영훈을 통해서 나의 검세를 보고 그것을 인상깊게 여겼던 것이리라.

‘왜 내 단악검법을 보여준 거지?’

나는 내 검법에 있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 김영훈이 보여준 검법을 떠올려 보았다.

“문제가… 없는데?”

썩어도 나는 등봉조극의 극한에 이른 고수였다.

그가 보여준 내 단악검법에는 정말로, 농담이 아니라 어떤 빈틈도 없었고 모든 흐름이 완벽하고 안정적이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잠재되어 있는 건가?’

그럴지도 몰랐다.

천재의 눈으로 보는, 월도입천에 도달한 김영훈의 시야라면 나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잘 생각해보자.

분명 그가 내게 저것을 보여준 이유는…

“…없다.”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고민 속에서 김영훈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내게, 문제가 없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나를, 격려하기 위해?

“…내가 완벽하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는 나보다 윗 단계의 고수였고, 비교할 수 없는 재능의 무공천재였다.

내 빈틈이 안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보다 윗 단계인 김영훈이 보기에 문제가 없다면, 정말로 문제가 없는 게 아닌가?’

어쩌면, 내 무(武)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게 아닐까?

지잉-

완성.

어쩐지 그 생각이 들자, 가슴 한켠에서 뭔가가 울리는 것만 같았다.

이 느낌은 일전, 김영훈에게서 사람의 삶에 따라 월도입천의 경지가 나뉜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와 같았다.

무언가, 가슴이 울린다.

지잉-

뭔가가, 내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이 느낌의 정체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던 와중, 난 이 간질간질한 느낌을 기억해내었다.

제자들의 의념의 색을 보며 그들의 삶을 관찰했을 때.

스승님과 함께 수학하며, 그분의 마음을 확인했을 때.

김영훈이 월도입천에 이르던 것을 두 눈으로 보았을 때.

‘이 느낌은…’

삶(生)을 가까이에서 느꼈을 때에 느낀 것이었다.

“아아!”

그랬다.

가슴 속에서 뭔가를 두드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아아…!”

나는 문득,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완성이라는 말에, 삶이라는 말에 마음이 반응했던 이유.

그것은 어쩌면, 지난 내 삶들은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가슴의 떨림으로 느껴지던 어떤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김영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침묵하고 있지 않았다.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아아…”

화가 난다.

억울하다.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단 말인가.

각국의 언어를, 요족의 언어를, 새로운 감각을 여러 개 익혔으면 뭘 하는가.

사람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데!

김영훈은 끊임없이 내게 말하고, 내 무의식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나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고.

휘두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나는 재능이 없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눈물을 흘렸다.

* * *

“재능?”

김영훈은 쇄천봉의 봉우리 위에 앉아, 반대편 봉우리에서 눈물을 쏟는 서은현을 바라보았다.

피식-

“여기까지 왔는데, 재능이 무슨 상관이냐.

설령 내가 하늘이 내린 재능이고, 네가 하늘이 버린 재능일지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재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은 자와, 찾으려 하는 자이지. 나는 의미를 찾았다. 네 의미는 뭐지? 너는 내게 없는 것이 있다. 너는 분명 네 삶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월도입천의 공능에 의해 김영훈의 의지에 따라 그의 말이 전해졌다.

* * *

두쿵!

김영훈의 의지가 전달되어 왔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정신이 번뜩 드는 것을 느꼈다.

저건, 분명 내가 일전에 그를 보며 했던 생각이었다.

수도자들에게 절망하는 과거의 김영훈이 내 앞을 스치고 지났다.

하늘이 내렸든, 버렸든. 우리는 운명의 아래에서 절규하는 이들이었기에 닮아보였었다.

운명 아래에 있는 이상 닮았다면.

운명에 저항하는 의지를 가진다면 그 역시 닮지 아니하는가.

나는 김영훈의 마음을 전해들으며, 내가 지금껏 외면하던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절망했었나.”

오월입도경의 비율 같은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딴 건, 어느 정도만 조정한 후부터는 언제든지 해결할 수 있었다.

축기기에 도전할 자격은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오월입도경의 비율을 핑계로 도전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내 재능이 부진하여, 수명이 늘어나더라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음을 두려워했음이라.

운명의 인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비단 힘뿐이 아닌, 의지의 문제이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내 운명의 인력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고맙습니다. 영훈 형님.”

나는 그의 마음을 받으며 망설임을 떨쳐냈다.

‘그렇군.’

지난번 심마가 찾아왔을 때, 무가 내 삶의 일부이니 소중히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며 심마를 쫓아냈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풀리지 않았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중히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계속 소중히 해 왔다.

최선을 다할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모든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 왔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나는 노력해왔고, 그 모든 노력을 소중히 여겨왔다.

이번 삶에서 그동안 알게모르게 쌓여온 우울증이 터져나와 심마가 되어 재능에 대해 신경쓰게 만들었다.

‘둔재든 천재든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것은 삶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삶을 믿어주는지가 아닐지.

쿠구구구구!

가슴 속의 모든 그림자가 빠르게 씻겨내려갔다.

모든 망설임을 씻어내고,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며 다시금 축기기에 도전했다.

그동안 비율을 맞춘다느니 하는 핑계로 멍청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비율 같은 소리.”

내가 공법에 맞출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공법이 내게 맞춰야 할 것이다.

단전 내에서 소용돌이 치는 다섯 개의 영운.

그 중에서 미묘하게 튀어나온 부분들.

나는 그 부분들을 망설이지 않고 내단에서 검강을 뿜어 잘라내어 버렸다.

후우우…

그리고 체외로 배출하여 흩어버린다.

법력이 줄어들었지만, 다섯 속성이 상부상조하며 검강에 잘려 강제로 비율이 맞춰진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된다.

오행의 비율이 완전히 똑같아진다.

동시에, 나는 기묘한 감각과 함께 오월입도경이 완전히 통합(通合)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쿠구구구!

꾸웅!

축기기에 도전한다.

완전히 통합된 오색의 영기가 영기의 별을 만든다.

얼마 안 있어 부숴졌지만, 반 호흡도 채 지나지 않아 영운들이 다시 응결되며 영기의 별을 만든다.

꾸웅, 꾸웅, 꾸웅!

밤낮이 바뀌는 것을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또 집중하였다.

그리고, 나는 문득 심장이 아픈 것을 느꼈다.

“…하, 또요?”

수명이 다 되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으면 축기기가 코앞이건만…

“…죽여 보시오.”

그러나,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읇조렸다.

“내가 축기기에 이르는 게 먼저인지, 당신이 천겁을 내리는 게 먼저인지, 확인해 보시오!”

완전히 통합된 다섯 영기가 회전하며, 그 안에서 무수한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그 변화는 영기의 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에 대응하며 영기의 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강제로 제압하고 있었다.

축기기가 코앞이다.

두근, 두근…!

강기로 심장을 강제로 주무르며, 나는 더욱 더 의식을 집중했다.

나는, 먼지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가?

우주의 별들은 먼지구름 속에서 만들어진다.

먼지들이 모이고, 또 모여 별의 요람인 성운(星雲)이 되는 것이다.

다섯 갈래의 영운이 빛나며, 구름 속에서 몇 번이고 부숴졌던 별이 고개를 다시 드러낸다.

‘간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 탓일까.

어느새 별하늘이 지고 새벽녘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어느새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천뢰가 내리치느냐, 내가 축기기에 도달하느냐!

일촉측발의 상황!

우릉, 우르릉..

먹구름 사이로 푸른 빛이 번뜩이며, 하늘에 뇌력(雷力)이 충천한다.

두근, 두근, 두근…

“하늘이여…”

두근, 두근!

“운명에서, 반드시 벗어날 것이오!”

파아아앗!

하늘이 파랗게 물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저 멀리서 내게 마음을 보내는 김영훈의 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치, 그가 내 바로 앞에서 얘기하는 것 같았다.

“은현아, 휘둘러라. 이미 네 손에 있다.”

‘아.’

나는 수명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김영훈은 가족에게 빛살과도 같이 돌아가고 싶어하여, 빛조차 공간조차 뛰어넘는 능광도에 도달하였다.

그것이 김영훈의 삶의 의미.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운명의 틀을 벗어나고 싶었다.’

몇 번이나 비참하게 운명의 아래에 깔려 발버둥쳤는가.

하늘을 새처럼 날아오르는 김영훈처럼,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가 운명을 벗어나 자유를 찾고 싶었다.

김영훈은 귀환을 위한 마음이 무에 녹아, 그는 속도를 무공에 접목시켰다.

나는 운명에서의 탈출을 위한 마음이 무에 녹아,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기교를 무공에 접목시켰었다.

찰나.

나는 내 의식의 최적화된 형태를 찾을 수 있었다.

검(劍).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 검은, 점차 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며, 완전히 무형(無形)이 되어 검의 형상을 잃고 투명하게 의식으로 흩어졌다.

슈아아악!

어느새 내 몸에서 빠져나간 강환들이 의식과 합쳐지며 의식을 실체화시킨다.

콰르릉!

한 줄기 청뢰(靑雷)가 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고, 나는 예뢰안으로 번개가 떨어질 지점을 정확히 찾아내었다.

그리고, 눈 앞의 무색(無色)의 허공을 쥔 채 그대로 하늘을 향해 휘둘렀다.

“월도입천(越道入天).”

무형(無形)의 검(劍)이 천뢰(天雷)를 사르며 나아가 그 너머의 두꺼운 구름을 그대로 쪼개 버렸다.

“무형검(無形劍)!”

하늘이 세로로 갈라지며, 그 틈새로 새벽빛이 밀려온다.

쿠궁, 꾸궁, 꾸구구궁!

단전(丹田)은 마음의 밭이라고들 하였다.

모든 망설임을 떨쳐낸 내 마음의 밭에서, 수많은 거름을 주고 심었던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길었다.

하지만 드디어,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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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A Regressor’s Tale of Cultivation

回歸修仙傳, 회귀수선전
Score 9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On the way to a company workshop, we fell into a world of immortal cultivators while still in the car. Those with spiritual roots and unique abilities were all called to join cultivation sects, living prosperously. But I, having neither spiritual roots nor special abilities, lived as an ordinary mortal for 50 years, complying with fate until my death. That’s what I thought. Until I regres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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