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81

80. 거지남매 – 다른 두 여자

카시아의 말에 레오는 뭔가 ‘욱!’하고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난 남자에게 돈을 벌어다 주겠다며 애원하는 여자… 그녀는 진심으로 간절하게 사정하고 있었다.

어떻게 돈을 벌어다 주겠다는 건지도 뻔했다.

‘이 여자를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거지남매 시나리오는 돈이 많이 필요했다.

먹고 자고 입는 문제도 있지만, 레나의 교육비가 절실하고, 당장은 콘라드 왕국으로 갈 여비가 급했다.

그러니 고맙다, 잘 부탁하겠다, 감사하다, 등 뭐가 됐건 상관없었다. 그냥 긍정을 표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카시아는 많은 돈을 벌어와 아무런 대가 없이 넘겨줄 거다. 기쁘게 몸을 팔아 꼬박꼬박 돈을 가져올 것이다.

나는 애액으로 점철된 그 돈을 손쉽게 집어가기만 하면 된다…

마침 적절한 업적도 있었다. 이런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그에겐 ‘포주 업적’이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레오는 고개를 흔들어 가슴께까지 들어찬 욕심을 버렸다.

그럴 순 없다. 아무리 돈이 절실해도 목숨까지 바쳤던 카시아를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포주 업적, 이딴 것이 쓰이는 일은 없을 거다.

절대로.

레오는 단호하게 카시아의 부탁을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돈을 벌어다 주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돈을 받을 이유도 없고요.”

“하, 하지만…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제가 할 줄 아는 거라곤…”

카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레오를 힐끔거리더니 또 얼굴을 붉혔다. 침대보를 초조하게 움켜쥐었다.

“뭐든지 할게요. 꼭 도와드리고 싶어요. 저는… 다, 당신이 조…”

“잠깐! 잠시만요. 생각 좀 할게요.”

레오는 급히 카시아의 입을 막았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허나 카시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정리하지 못한 상태로 그 고백을 듣고 싶지 않았다.

사실 아직도 화가 난다.

어여쁜 동생이 금화가 가득 담긴 상자를 내밀었던 순간을 떠올리면, 레나의 고운 입에서 튀어나온 육두문자를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렇지만…

레오는 갈팡질팡, 결론을 쉬이 내리지 못했으나 다행히 변명이 되어줄 만한 것이 떠올랐다.

[ 퀘스트 : 카시아의 삶 – 카시아를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

그의 행동방침을 알려주는 것이 있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이 게임은 퀘스트를 부여해줬다.

그녀를 도우라고.

거의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던 이 게임에서 처음으로 뚜렷한 방향이 제시된 것이었다.

‘그래. 퀘스트를 따르자.’

레오는 카시아에 대한 감정적인 결론을 미루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진 그는 잠시 머리를 굴리고 말했다.

“그러면… 신발을 만들어주시겠어요?”

레오가 자신과 동생이 신은 짝짝이 신발을 가리키자 카시아가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되물었다.

“…신발이요?”

“네, 여긴 신발가게잖아요. 저랑 레나 발에 맞는 건 없어 보이니까… 두어 켤레만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곧 여행을 떠나야 해서 여벌의 신발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지난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 오베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 “맨날 동태눈깔만 들고 다니던 애가 요즘 정상이야. 신발을 만들어보려는지 가죽을 조금씩 사 가더라고. 잘 됐지 뭐야. 평생 그렇게 밥 벌어먹고 살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카시아는 그에게 밀쳐진 이후로 신발을 만들기 시작했음이 틀림없었다.

해서 레오는 그녀가 스스로 선택했던 일을 제안했다.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게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창녀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보단 신발을 만들며 사는 편이 낫다.

그런데 카시아는 우물쭈물, 금방 답하지 못했다.

무엇을 시켜도 다 할 것처럼 굴었으나 그녀는 신발만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만드는 과정이야 알지마는… ‘아버지’가 하던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병든 아버지의 약을 구하려고 몸을 팔았다. 어떻게든 그를 살려내겠다고 당시로써는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택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으나, 무의미한 노력이었다.

아버지는 끝내 날 버리고 자살했다. 내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는 듯이 떠나버렸다.

무책임하고 나약한 아버지.

그녀는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카시아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레오에게 “신발을 사다 드리면 안 될까요?”라고 물어보려고.

그런데,

“네. 만들어 드릴게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준비했던 답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반대로 뱉어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창녀가 되어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도 이 남자 앞에선 보잘것없이 작았다.

“고맙습니다.”

그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망설임조차 깨끗이 사라졌다. 이 남자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뭐든지.

그녀의 머릿속에는 ‘신발을 어떻게 만들더라? 가죽이랑 천이랑…’과 같은 것만 남아있었다.

카시아는 갑자기 부산해져서 연장을 살피고, 재료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뒤적이기 시작했다.

십 년이 넘게 방치돼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먼지를 털고 밖으로 나왔다. 죽어 없어진 아버지의 손길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들이었다.

한숨을 돌린 레오, 그는 묘한 눈빛으로 ‘라스트’를 매만지는 카시아를 뒤로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올바른 결단을 내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레나야, 오빠 잠깐 나갔다 올게.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 신발 만드는 거 구경하고 싶은데…”

“…알았어. 대신 절대로 가게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알겠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오거든 방으로 숨어야 해?”

“응!”

원래라면 “안 돼. 방에 있어.”라고 했을 것이었다.

레나의 외모는 위험하니까.

그리고 전에는 카시아와 대화도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녀와 친해지면 위험했으니까.

그렇지만…

– 레나를 잘 부탁해.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이것저것 구경하는 게 더 좋을 거다. 카시아도 이젠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으니까.

가게 안에만 있으면 괜찮겠지. 이런 후미진 골목길로 누가 오겠는가.

레오는 카시아에게 동생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해달라고 당부하고, 밖으로 나왔다. 옷가게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동생에게 옷을 가져다준 다음 {추적술}을 사용했다.

다시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뒤로, 레나가 조심조심 카시아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친구가 없던 레나는 처음으로 오빠를 제외한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했다.

* * *

우렁찬 기합 소리가 끊이지 않는 넓은 연무장.

“수고하셨습니다!”

“응. 수고했어.”

카트리나는 턱으로 뚝뚝 떨어지는 땀을 훔치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 내가 오늘 짚어준 거 내일까지 못 고치면 또 맞을 줄 알아.”

“아, 아니 선배님. 그걸 어떻게 내일까지 고쳐요.”

“그건 네 사정이고.”

그녀는 데로스라는 신입이 당황하는 꼴을 뒤로하고 연무장을 떠났다. 이번에 그녀에게 맡겨진 신입은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었다.

겁이 많고, 과감함이 부족하다.

“아이고- 내가 신참 뒷바라지나 하려고 기사단에 들어온 건 아닌데…”

일과를 마친 카트리나는 옷을 갈아입으며 작게 투덜거렸다.

그런데 사실 그녀의 불평에는 어폐가 있었다.

카트리나는 꼴랑 데로스 한 명을 조금 가르쳤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훈련에 썼다.

다만, 그 시간조차 아까웠을 따름이다.

벨리타 왕국 제2 기사단의 기사인 카트리나는 기사단에 입단할 때만 해도 나름의 바람이 있었다.

제1 기사단에 입단해 소드마스터인 헤르만 포르테 백작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었다. 그녀는 검술에 푹 빠져있어서 지고한 경지를 견식하고, 그걸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들어온 기사단이다.

하지만 그녀는 제2 기사단에 배정되었고, 소드마스터에게서 검술을 사사하는 것은 머나먼 일이 되어버렸다.

제1 기사단 단장인 헤르만 포르테 백작이 제2 기사단의 단원들에게까지 검술을 가르치는 일은 없었다. 그건 제2 기사단장을 무시하는, 지나치게 무례한 행위였다.

“쳇… 별수 있나. 그리고 솔직히 소드마스터한테 배운다고 해서 뭐 특별할 것이 있겠어? 거기서 거기지 뭘…”

카트리나는 못 먹은 고기는 탄 고기라는 격언을 따르며 미련을 내려놓았다.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언젠간 뚫리겠지. 난 아직 젊으니까.

언제부턴가 크나큰 벽에 가로막혀 검술에 진전이 없었으나 괜찮았다.

이래 봬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왕실의 기사가 된 몸이다. 내가 바로 나무작대기를 휘두르다가 검술을 깨달으신 몸이다. 이거야. ─ 라며 카트리나는 스스로를 북돋웠다.

더 열심히 하자.

왕성 남쪽으로 이어지듯 세워진, 제2 기사단이 머무는 아성(亞城, 보조적인 성)에서 나온 그녀는 시장을 향했다.

다리가 불편한 엘런을 대신해 장을 보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뭘 이것저것 사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한데 시장에 거의 도착한 카트리나는 누군가가 그녀를 뒤따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시시한 염탐꾼이었으면 쓴맛을 보여줄 생각으로 검집에 손을 대었는데… 과민반응이었다.

따라오는 녀석은 소년티를 벗을까 말까 한 청년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생긴.

저렇게 생긴 놈이 염탐꾼일 리가 없었다. 염탐꾼을 하기에는 너무 눈에 띌뿐더러, 너무 대놓고 따라왔다.

카트리나가 돌아서며 말했다.

“넌 누군데 날 따라오냐? 죽을… 아니, 혼날래?“

[ 업적 : 카트리나가 목숨 바쳐 지킨 남자 – 카트리나에게 큰 호감을 얻음. ]

그녀는 어쩐지 요 쬐끄만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정정한 카트리나는 청년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오우야, 얘 잘생긴 것 좀 봐. 비쩍 말랐는데도 이 정도면, 나중에는 여자깨나 울리게 생겼네.’

오늘 눈 호강 제대로 했다.

“저기… 기사님이시죠? 죄송한데 제 검술을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얼씨구리? 당돌한 녀석일세.

가끔가다 이런 녀석이 있다고는 들었다. 입단 시험에서 번번이 떨어지면서도 자기 검술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기사를 찾아오는 반푼이들이다.

“응, 안돼. 난 바빠. 입단 시험은 얼마 전에 끝났어. 미련이 남거든 근위기사 시험이나 쳐보든가. 그건 아직 시작 안 했을걸? 그리고 이렇게 기사를 뒤쫓았다간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어요. 봐줄 테니까 앞으론 이런 짓 하지 마.”

그녀는 왠지 마음에 드는 청년에게 ‘최대한 자상’하게 설명해주고는 갈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뒤에서 검이 스르릉 뽑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역시 봐주면 안 돼.’

잘생겨서 그랬을까?

조금 마음에 들길래 봐줬더니… 넌 오늘 뒈졌다.

혼꾸녕을 내줄 생각으로 카트리나가 번쩍, 검집째로 뒤를 후려쳤다.

– 퉁!

한데 휘둘러진 검집은 가볍게 막혔다.

“어쭈? 막아?”

카트리나는 쓴맛을 보여주겠노라 작심하며 검을 뽑아 들었고, 그녀를 뒤쫓아온 청년도 검을 바로 했다.

그는 레오였다.

‘역시 사람마다 호감이 다르게 적용되는 게 맞아. 똑같이 큰 호감인데 이 여자는…’

카시아가 특이한 여자라는 게 확실해졌다.

세상천지에 누가 처음 보는 사람한테 간, 쓸개까지 다 내어줄 것처럼 군단 말인가.

지금 카트리나가 보이는 반응이 정상적이다.

“어디 이것도 막아봐라!”

카트리나의 검이 횡으로, 강력하게 휘둘러졌다.

레오는 검을 세워 막았으나… 허초다. 그녀의 검에는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카트리나는 속임수가 난무하는 단기 결전형 검술을 구사했다.

그녀는 검으로 레오의 시선을 분산시킨 뒤, 골반을 비틀어 밀어차기를 날렸다.

처음에는 그냥 강격을 때려 넣어서 박살을 내주려 했지만, 마음이 약해졌다. 이상하게 호감이 가는 이 청년에게 너무 모질게 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조금 혼내주는 정도로만, 다치지 않게 발을 쓴 것이었는데… 이어진 그의 대응이 놀라웠다.

청년은 예상했다는 듯이 발차기를 피했다. 동시에 그의 검이 핑그르르, 역수로 돌아가며 올려쳐졌다.

절묘한 한 수다.

“이 자식! 제법이잖아!”

한 번 방어에 사용된, 공격하기에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검을 즉시 사용하기 위해 검신을 아래로 돌리고, 아래에서 위로 그어왔다.

그것만으로도 검술의 이해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또 그립(grip)을 뒤집는데 일가견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실전에서 쓰긴 어려웠다. 이놈은 마르고 닳도록 검을 만져본 녀석임이 틀림없다.

‘어린놈이 대단한데! 데로스보다 훨씬 낫잖아?’ ─ 라고 생각하며, 카트리나는 올려쳐지는 검을 막았다.

– 창!

그리고 잠깐 힘 싸움이 이어지나 했는데… 어라?

청년이 맥없이 밀렸다.

‘속임수인가?’

속임수를 많이 쓰는 사람은 의심이 많은 법이었다. 그녀는 만약을 대비하며 살짝 발을 걸어보았다.

힘에서 밀리다가 발이 걸린 녀석은 넘어지지 않으려고 펄쩍, 백덤블링을 시도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하고 콰당, 등으로 땅에 떨어졌다.

“뭐야 이건?”

카트리나는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얌마. 장난하냐? 뭐 하는 짓이야?”

뒤로 눕듯이 넘어진 레오는 얼굴을 붉혔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