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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3

83화 새로운 이동 수단 (1)

83화 새로운 이동 수단 (1)

“데미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니?”

“응?”

“몰라서 묻니? 님피엘과 한 행동 말이야.”

루나가 아랫입술을 내밀며 나를 째려봤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억울했다.

우리는 야니카의 안내를 받아 무사히 세르펜타인 산맥을 넘었다. 추가로 혼돈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아리아나스를 괴롭히던 그 혼돈이 소설에서 카인이 손에 넣었던 조각인지도 모른다.

“나도 님피엘이 그런 행동을 할 줄은 몰랐어.”

루나가 고개 돌리며 흥!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세실을 돌아봤지만, 나를 보는 세실의 시선도 묘하게 차가웠다.

루나가 내게 화를 내는 이유는 이랬다. 바람숲을 떠나기 전, 님피엘이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빤히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췄는데, 님피엘이 기습적으로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시니야오코네. 그대의 앞길에 축복이 있기를.’

나도 놀랐지만 자리에 있던 엘프들은 그야말로 경악한 신음을 뱉었다. 당황한 나는 빠르게 몸을 일으켰고, 님피엘은 아이 같지 않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흘겨봤다. 저런 모습까지 디네베를 닮았다니.

당시 루나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워낙 경황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산맥을 지나는 동안에는 아무런 말도 없더니, 루네카 왕국에 들어서고 야니카 일행이 떠나자 저러는 것이다.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는데.”

“어머. 누가 화를 냈다고 그러니?”

말과 달리 루나의 얼굴에는 심통이 가득했다. 그런데 루나는 그렇다 치고, 세실은 왜 저렇게 차가운 표정인 거지.

답답해진 나는 족제비에게 물어보았다.

“루나가 왜 화가 났느냐고? 바, 방금 화 안 났다고 하지 않았어?”

확 그냥 활 뺏어버릴까 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족제비가 바람속삭임을 너무 애지중지했다. 족제비는 걷는 동안에도 틈틈이 바람속삭임을 닦았고,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카인이 재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나를 봤다.

“역시 이런 쪽으로는 둔하군. 데미안.”

“뭐가.”

“원한다면 루나의 심리를 가르쳐줄 수도 있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이, 이상한 소리하지 마 카인!”

얼굴을 붉게 물들인 루나가 나와 카인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루나는 이전처럼 헤헤 웃으며 우리와 대화하고 있었다. 하긴, 소설 속의 루나도 불만을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은 아니었다.

“근데 이 구름걸음 장화 정말 대단해. 역시 엘프들은 대륙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였어!”

나도 루나의 말에 동의했다. 구름걸음 장화는 확실히 효과가 좋았다.

게다가 적절히 ‘바람숨결 허브’를 씹으며 걸으니 쉬이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물론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 밤이 되면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들겠지.

휴식할 때마다 족제비는 화살 없이 활시위를 당기는 연습을 했다. 아마도 ‘자연의 화살’을 발현하려는 것 같은데, 39레벨에 불과한 족제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데미안. 살림바르 왕국에서 태양의 풀을 얻은 다음에 돌아갈 길은 정했어?”

루나가 묻길래, 나는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님피엘 관련해서 괜히 내게 화를 낸 것에 대한 작은 복수였다.

역시나 얼굴이 노래진 루나가 내게 달려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재고를 부탁했다. 나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고, 이후 루나는 눈에 띄게 친절해졌다.

“다시 세르펜타인 산맥을 넘어서 가면 안 돼?”

족제비가 넌지시 물어왔다.

나는 족제비의 마음을 이해했다. 레소빅을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거겠지. 레소빅은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야니카의 도움 없이 산맥을 넘는 것은 무리야. 우리가 산맥에서 몬스터를 조우하지 않은 것은 모두 야니카 덕분이니까. 세르펜타인 산맥의 몬스터는 강해. 지금의 우리로서는 큰 위험이 따를 거야.”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나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세르펜타인 산맥에 들어가고 싶었다. 혼돈의 조각을 찾으러.

“마을이 보이는군.”

카인이 말했다. 저 멀리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루네카 왕국의 아주 특별한 마을, 필드포지.

생각보다 금세 도착했구나.

.

.

.

“와······. 이게 다 뭐야?”

마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루나의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필드포지 마을의 풍경은 이 세계의 다른 마을과는 많이 달랐다.

거리 곳곳에서 철과 증기가 어우러진 기계들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작동했다. 굵직한 연기가 굴뚝에서 솟구쳐 올라가고 망치질 소리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철의 울림이 거리 전체를 진동시키는 듯했다.

“와아······. 이런 마을이 있었다고······?”

루나가 입을 헤벌리며 마을을 둘러봤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사는 제피르나 엘프와 달리, 이들은 발달된 기계 문명을 갖고 있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현대의 지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으니까.

어쨌든 이곳이 이런 독특한 문명을 갖게 된 이유는 이 마을을 건설한 이들이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루네카 왕국과 슬로바 왕국은 세르펜타인 산맥으로 완전히 단절돼 있었는데,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이 길고 긴 터널을 뚫어 두 왕국을 연결했다. 그 터널은 ‘마운틴포지 터널’이라 불리며, 태양의 풀을 손에 넣은 뒤 우리가 지나야 할 길이기도 하다.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이 세운 마을이라고 하더군. 북쪽의 마운틴포지 터널도 그들이 건설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덕분에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은 터널을 지나는 통행료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

빌어먹을 카인 녀석이 내가 하려던 말을 가로챘다. 이런 설명을 들을 때의 루나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와. 카인 똑똑하다.”

루나가 눈을 반짝이며 카인을 올려다봤다.

카인이 별거 아니라는 듯 설명을 계속했고, 루나의 시선은 카인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이제 보니 세실과 족제비도 카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이 필드포지 마을을 건설한 이유는 루네카 왕국과의 교류를 위해서다. 보다시피 이 마을은 인간과 드워프가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지. 세르펜타인 산맥 어딘가에 있다는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의 지하도시를 제외한다면, 대륙에서 드워프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필드포지 마을일 거다.”

“우와······!”

얄미운 녀석. 부유한 백작가의 후계자였던 거 티 내는 거냐.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머리에서 털어내고, 이 마을에 온 목적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동 수단의 확보다.

그런데.

“말이 없다고요?”

“그래! 천금을 준다 해도 지금 필드포지에서 말을 구할 수는 없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이 말이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는 이는 배꼽까지 내려오는 거친 수염을 가진 드워프 사내였다.

“말이 왜 없어요? 전쟁이라도 일어난 거예요?”

“전쟁보다 지독한 일이 벌어졌지! 뭐야! 모르는 건가? 너희들은 무슨 세르펜타인 산맥을 넘어서 오기라도 한 거냐! 마운틴포지 터널이 와르르 무너졌다 이 말이야!”

뭐? 마운틴포지 터널이 무너져?

“터널을 다시 뚫으려면 기계차(機械車)들이 필요해! 그리고 기계차를 움직이려면 마법석이 필요하지! 그런데 대부분의 마법석이 마운틴포지 광산에 있다 이 말이야! 마운틴포지 광산으로 가려면 마운틴포지 터널을 통과해야 하고! 그래서 마법석을 구하러 모두 말을 타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말이야!”

족제비가 물었다.

“그, 그러면 말을 구할 수 있는 다른 마을은 어디에 있어요?”

“내 말을 콧구멍으로 들은 거냐! 당연히 주변 마을의 말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지! 마운틴포지 터널이 막히면 슬로바 왕국과의 교역에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는 건가! 더구나 지금 티롤 왕국과 오를리안 왕국이 전쟁 중이라 뱃길도 안전하지 않다 이 말이야!”

“힉! 죄, 죄송해요!”

루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어떡하지 데미안? 걸어서 가면 많이 멀겠지?”

고개를 끄덕인 내가 드워프에게 물었다.

“그러면 여기 기계차는 있어요?”

“당연히 있지! 마법석이 없으니 죄다 병든 돼지 새끼처럼 차고에 처박혀 있다 이 말이야! 물론 절반 정도는 지금 있는 마법석으로 터널 복구 작업에 들어갔지만 말이야! 하지만 큰일이야! 마법석이 추가로 조달되지 않으면 복구가 크게 늦어질 거라 이 말이야!”

“우리 다섯 명이 탈 수 있는 기계차가 있어요? 최대한 속도가 빠른 것으로요.”

“말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그에 준하는 녀석은 있지! 4인용 기계차이지만 너희는 아직 어리니 충분히 탈 수 있다 이 말이야! 하지만 기계차는 왜 찾나! 어차피 마법석이 없어서 움직일 수가 없다 이 말이야!”

준하는 녀석이라는 것을 보니, 말보다는 훨씬 느린 모양이다. 드워프의 말에는 기본적으로 과장이 깔려 있으니까.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니지.

“그 기계차를 볼 수 있어요?”

“기계차는 왜! 에잇! 따라오라 이 말이야!”

우리는 드워프를 따라 마을의 구불구불한 거리를 걸어갔다. 강철과 구리, 숯불에서 나는 탄내가 공기를 떠돌았다.

루나가 슬쩍 물었다.

“데미안. 근데 저 드워프 아저씨는 왜 저렇게 화가 난 거야?”

“드워프들은 원래 목소리가 커. 마운틴포지 터널이 막혀서 답답한 마음도 있겠지.”

“아.”

차고지에 도착하니 투박한 형태의 기계차가 다섯 대 있었다. 그중 하나를 드워프가 탕탕, 손으로 내려쳤다.

“이 녀석이다! 보면 알겠지만 아이 다섯은 충분히 탈 수 있다 이 말이야!”

나는 기계차를 살펴봤다. 기계차의 외관은 불규칙하게 맞춰진 강철판들로 이뤄져 있었고, 거친 용접 자국이 그 위를 가로질렀다. 그러나 내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곳은 외부가 아닌 내부였다.

다행히 소설에서의 표현처럼 운전석 아래에는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 클러치로 보이는 장치가 있었다. 운전대는 네모나게 각진 모양이었지만 적응하면 될 일이었고, 드워프의 말대로 우리 다섯이 충분히 탈 수 있는 크기였다.

“이거 살 수 있어요?”

“무슨 소리야! 기계차는 남에게 파는 물건이 아니야! 대륙 전체를 통틀어 서른 대도 되지 않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이 말이야!”

“마법석을 드릴게요.”

“천금을 준대도 기계차는 못 팔······ 뭐라고! 마법석을 준다고! 거짓말하면 나한테 혼이 난다 이 말이야!”

“거짓말 아닌데요? 마법석을 얼마나 드리면 파시겠어요?”

드워프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 기계차는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

“제가 마법석을 드리면 남는 네 대의 기계차로 터널 복구작업을 할 수 있잖아요. 현장의 기계차들도 계속 움직일 수 있고요. 하루라도 빨리 터널을 복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너, 너! 기계차를 움직이려면 마법석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나는 히죽 웃으며 아공간에서 마법석 하나를 꺼냈다.

“뭐, 뭐야! 뭐가 그렇게 커!”

“이 정도 크기의 마법석이면 일주일은 기계차를 움직일 수 있잖아요.”

“그, 그렇기는 하지만······!”

“50개 드릴게요.”

“뭐라고!”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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