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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4

83. 거지남매 – 지난과 다음

소드마스터의 아들, 길버트 포르테가 암살당하자 오르빌이 발칵 뒤집혔다.

하나뿐인 후계자를 잃은 헤르만 포르테 백작은 분노했고, 암살자를 찾기 위해 오르빌의 모든 경비병이 총출동했다.

허나 수사는 난항을 겪었다.

암살이 벌어진 장소인 ‘브리안 자우어 자작’이 운영하는 창관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그곳을 출입하는 손님들 대부분이 귀족, 또는 부호들이어서 병사들이 함부로 수색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수사는 정치적인 공방으로 번졌다.

소드마스터 파벌은 이 일을 빌미로 삼아 왕당파를 거세게 압박했고, 왕당파는 그 망나니를 죽여서 우리가 무슨 이득을 보겠냐며 맞받아쳤다.

결국, 왕당파의 수장인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진화에 나섰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암살이 벌어진 곳은 브리안 자우어 자작이 직접 운영하는 창관이었고, 자작은 왕당파의 일원이었으니까.

타티안 후작은 자우어 자작을 그의 저택으로 불러들였다.

“소드마스터파 놈들이 절 계속 압박하면, 그동안 모아온 손님들의 명단과 정보들을 공개하겠습니다!”

자우어 자작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독기를 드러내며 제 얼굴의 온 주름을 구겼다.

베나르 타티안 후작은 자작을 자리에 앉히고 차분히 달래었다. 그는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아무도 몰랐으나, 며칠 뒤, 브리안 자우어 자작은 오르빌의 모든 창관을 폐쇄하고 쓸쓸히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왕당파의 일원을 물러나게 하는 성의를 보인 베나르 타티안 후작, 그는 암살이 벌어졌던 날, 그 창관을 들른 손님들의 정보를 ‘일부’ 공개하는 것으로 더는 왕당파를 건드리지 말라는 선을 그으며 깨끗이 빠져나갔다.

정보가 공개되자 창관을 출입하던 귀족이 아닌 부호들에게 불벼락이 떨어졌다.

그들은 줄줄이 연행되어 모진 고초를 당했고 수사망이 급격히 좁혀졌다.

그날 창관에 출입했던 자 중에서 유일하게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청년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소년 같은 체구에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청년. 인상착의가 밝혀지자 수사를 진행하던 오르빌의 경비병 상당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암살자로 추정되는 용의자는 그들이 아는 사람이었다.

용의자는 매일 새벽, 북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작은 컵을 들고 호수로 물을 뜨러 나가던 거지였다.

그 거지는 행여나 물이 쏟아질까 두려워 양손으로 컵을 붙들고 돌아왔다.

거지 치고는 워낙 잘생긴 데다가 매일매일 고작 한 컵의 물을 떠 가는 행동이 특이해서 눈길이 많이 가던 녀석이었다.

한 병사가 측은지심에 빵을 건네주자 “이 은혜 잊지 않겠다.”라고 답해서 경비병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도 있었다.

그다음에 실수를 깨달았는지 고개 숙여 사과하면서 한 말이 더 가관이었다나 뭐라나…

어쨌든 용의자가 지목되자 경비병들은 그 거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놈은 몇 주일 전부터 사라지고 없어서 수사가 벽에 부닥쳤다.

오르빌을 샅샅이 뒤졌음에도 찾지 못하자 교회의 통신망에 불이 붙었다.

벨리타 왕국 전역으로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한때 거지였던 소년을 잡으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오르빌을 뒤집은 이 사건은 카트리나의 귀에도 들어갔다.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들었을 때, 단번에 암살자가 레오임을 알았으나… 그녀는 침묵했다.

길버트 포르테의 악명은 카트리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망나니한테 원한이 있었나 본데… 맞아. 예쁜 동생이 있다고 했지.’

그 녀석은 동생을 건드린 귀족에게 복수하고 달아나려고 내게 접근한 모양이었다. 다른 왕국으로 달아날 출입증을 얻으려고.

‘기사단에 들어오겠다고 했던 건 거짓말이었네.’

실망스러웠지만 그보다 급한 문제가 있었다.

‘잠깐만, 큰일 났네. 걔가 국경에서 잡히면 나한테도 불똥이 튀잖아?’

이런 젠장. 고민하던 카트리나는…

‘에라 모르겠다. 그냥 모른척하자.’ ─ 라는 결론을 내렸다.

설령 불똥이 튄다 하더라도 나도 속았다고 하면 그만이고, 레오라는 녀석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 컸다.

솔직히 그런 귀족 놈은 백번 죽어도 싸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님 아들이라고 해도 벌은 받아야지.

카트리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한편, 길버트 포르테에 관한 정보를 팔았던 라우노 패밀리도 입을 다물었다. 카트리나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 정보를 팔았다는 것이 밝혀지면 우린 다 죽는다.

귀족을 살해하는 건 엄청난 사고였다. 정보를 팔 때만 해도 방탕한 대귀족에게 접근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 하는 줄 알았지, 이렇게 죽여버릴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목숨이 두 개, 세 개가 아니고서야…

라우노 패밀리는 정보를 사고파는 창구를 재빨리 폐쇄하고 몸을 한껏 움츠렸다.

[ 업적 : 라우노 패밀리 만세 – 라우노 패밀리에 소속된 깡패들에게 미약한 호감을 얻음. 라우노 패밀리가 적대 중인 패밀리로부터 미약한 적의를 삼. ]

[ ‘라우노 패밀리 만세’ 업적이 소멸됩니다. ]

오르빌과 벨리타 왕국 전역에 야단법석이 난 사이, 사건의 당사자는 벨리타 왕국 남쪽에 있는 산에 들어와 있었다.

산 중턱에 작은 움집을 지어놓고, 앞에서 노끈을 매던 레오는 업적이 소멸했다는 메시지를 읽었다.

예상대로다.

길버트 포르테를 죽이면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레나와 카시아를 데리고 이 산속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낸 뒤에 상황이 잠잠해졌을 때, 콘라드 왕국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지난 거지남매 시나리오에서도 타티안 후작에게 쫓긴 경험이 있어서 숨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산에서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는 {사냥} 능력도 있고.

사실 길버트 포르테를 죽인 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암살 자체는 도박이 아니었다. 암살은 어렵지 않았고, 레오는 어떻게든 추격을 뿌리칠 자신이 있었다.

도박이란 앞으로의 진행과 관련된 것이었다.

몇 달 뒤면 콘라드 왕국 서부에 있는 이로타시 강에서 바르트 경이 라퍼트 테르탄 공작의 손자를 살해한다.

앞으로 일어날 미래다.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있었던 일이니 반드시 그렇게 될 거다.

그런데 카시아에게 금화를 받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돈으로 최대한 빨리 남쪽으로 내려가면 이전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비극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인, 시녀로 행렬에 끼어있는 레나, 레오를 빼내기만 하면 되니까.’

이건 카시아에게 금화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곳까지 갈 여비가 없었으니까.

가을에 아스틴 왕국의 왕자가 도착해서 모욕당하고 돌아갈 것이라는 정보를 팔아 돈을 마련했을 때는 늦어서 그들을 도울 가망이 없었다.

한데 카시아가 두 달 가까운 시간을 앞당겨주면서 새로운 길이 생겼다. 레오는 고민했으나, 아쉽게도 그 생각은 금방 기각되었다.

일단 레나와 카시아를 데리고 이동해야 해서 그렇게 빨리 내려갈 수가 없다. 말을 탈 줄 모르는 동생은 마차를 타야 하는데, 그러면 느리다.

어쩌면 정말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두 번째 고민이 있었다.

길버트 포르테를 처리해놓지 않고 떠나면, 다음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레나가 쫓겨난다.

반대로 그를 처리하면 이렇게 발목이 잡힌다.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가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를 도울 것이냐, 아니면 길버트를 죽여 ‘다음’ 소꿉친구 시나리오를 위할 것이냐의 선택이었다.

이로타시 강변에서 죽은 레나와 레오의 사진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다음’이었다.

이미 지나간 시나리오가 변경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엔딩이 변경되어도 보상이 그대로라는 사실뿐이었다.

엔딩이 변경되었음에도 {추적술} 능력이 그대로인 것처럼, 소꿉친구 시나리오를 변경해봐야 당시에 얻었던 {검술.3v : 바르트류(流)} 능력도 그대로일 것이다.

추가로 뭐가 들어올 것 같지는 않다.

클리어도 불확실했다.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의 레오는 레나를 왕자와 만나게 하려 했었고, 레나는 변해버린 레오를 의심하고 있었다.

왕자를 찾으러 가는 것을 막아도 결국 레나가 레오를 믿지 않게 되면서 지난 약혼관계 시나리오처럼 관계가 깨질 위험이 있었다.

고민 끝에,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레오는 확실한 길을 택했다.

두 사람이 죽기 전에 도착하지 못하면 일이 완전히 꼬일뿐더러, 그렇게 급히 이동하다 보면 덜컹거리는 마차에 탄 동생의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힘든 결정이었으나, 그렇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바르트 경.

그 기사는 어떻게 될까?

테르탄 가문의 후계자를 죽이면 그는 틀림없이 테르탄 공작에게 쫓기게 될 것이었다.

제아무리 대단한 기사라 할지라도 결국 인간, 숫자에 장사 없기 마련이다.

‘살아있어야 하는데…’

레오는 지난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죽기 직전에 본 문양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 기사가 {혈통}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줄 사람이라 믿고, 이렇게 오르빌을 떠나왔다.

아니다, 사실 모든 것을 걸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길버트 포르테를 죽였고, 이렇게 발이 묶였으니까.

‘놈을 죽인 건 욕심이었나?’

심란하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이젠 진력이 날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눈곱만큼의 이득까지 얻으려 했다. ‘이번’과 ‘다음’ 모두를 챙기려 들었다.

하지만… 길버트 포르테를 수도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동시에 최대한 빨리 오르빌을 떠나 바르트 경을 찾으러 갈 필요도 있었다.

그래서 그 대단했던 기사, 바르트 경이 그리 쉽게 잡히지 않으리라 기대하며 길버트를 죽였다.

레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커서 하품으로 보일 정도로.

초조하다.

“오빠, 힘들어?”

“아니. 하나도 안 힘들어. 안에는 다 정리했어?”

“응!”

레나가 움막에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몸을 웅크린 모습이 깜찍하다. 쟨 어떻게 뭘 해도 저렇게 예쁠까.

레나는 오빠가 만든 올무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물었다.

“이걸로 사냥을 하는 거야?”

“응. 이틀만 기다려. 오빠가 고기반찬 해줄게.”

순간 에우타와 에넨 남매가 떠올랐다. 에우타도 사냥을 해서 에넨에게 고기반찬을 해주겠노라고 호언장담했었다.

그런데 에넨은…

조각난 에넨의 시신이 떠올랐다.

레오의 심정이 뒤틀리려 할 때, 멀리서 카시아가 나타났다.

“레오, 저 다녀왔어요.”

“많이 무거웠죠? 카시아… 누나.”

“아니요. 하나도 안 무거웠어요. 그릇 몇 개랑 옷 몇 벌뿐인걸요.”

오르빌을 떠나 몇 주일간 여행하면서 레오와 카시아는 서로의 호칭을 정리했다. 레오는 카시아를 누나로, 카시아는 레오 ‘님’이 아닌 이름을 부르기로 했다.

카시아가 극구 사양했으나 어쨌든 그녀는 레오보다 열 살은 더 많았기에 마지못해 승낙했다. 끝까지 존대를 붙이긴 했지만, 호칭을 정리하면서 대화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레오는 레나에게 카시아가 가져온 옷이랑 그릇들도 안에 정리해 놓으라며 들여보내고 작게 물었다.

“마을 사람들은 뭐래요? 믿던가요?”

“네.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어요.”

세 사람이 자리 잡은 이곳, 산 중턱은 ‘타아문’이라는 작은 마을과 가까웠다. 산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이렇게 마을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레나를 위해서였다.

산속에서 야인처럼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의식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매일매일 대충 익힌 고기나 열매 따위만 먹고살아야 했다.

레오는 자신 혼자뿐이라면 감내할 수 있으나 동생이 그런 불편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해서 마을에서 반나절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자리 잡고, 틈틈이 물자를 사다 나를 생각이었다.

단, 마을에 들리는 것은 카시아가 전담해야 했다. 레나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레오는 쫓기는 몸이라 누구에게도 얼굴이 보여서는 안 됐다.

“아버지가 병에 걸려서 산으로 들어왔다고 알렸어요. 병이 옮을지도 모르니 멀리서 물건을 건네받고 싶다고 하니까 믿는 기색이었어요.”

카시아는 레오가 귀족을 살해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

앞으로 반년은 이곳에 숨어 살아야 했고,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레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떤 귀족을 떠나기 전에 꼭 죽여야만 했다고. 도와달라고.

카시아는 웃었다. 되려 도움을 청해줘서 기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리고 이 산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에게 적당한 변명을 지어낼 때, ‘아버지가 병에 걸려 산으로 들어왔다.’라는 거짓말을 생각해 낸 것이 카시아였다.

그녀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었으리라.

“다행이네요. 고마워요.”

“뭘요.”

이대로 이 남자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이런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떤 일이든 해주겠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와 산속의 생활이 불편하긴 했지만, 푹신한 침대 따위보다도 그의 말 한마디가 더 좋았다. 또, 이 남자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카시아는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뿌듯하고 행복했… 지만, 그녀가 도울 일은 마을에서 물건을 사다 나르는 것만이 아니었다.

레오는 사냥하고, 레나는 집을 정리하며 오빠가 가르쳐준 글자를 익히고, 카시아는 각종 집안일 하는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한 장년의 사내가 움막에 접근했다.

비릿한 미소를 띤 채.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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