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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4

84화 새로운 이동 수단 (2)

84화 새로운 이동 수단 (2)

물론 기계차 한 대의 가치는 마법석 50개보다 높다.

그러나 지금 드워프들에게는 마법석의 확보가 시급하다. 마운틴포지 터널이 붕괴하며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손실은 기계차 한 대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을 테니까.

“너, 너! 마법석이 있지도 않으면서 거짓말하는······!”

나는 아공간에서 마법석 50개를 꺼내 바닥에 늘어놨다. 기계차를 타게 될 상황을 대비해 테오에게 마법석을 잔뜩 받아뒀는데, 대략 70여 개 된다.

즉, 마법석 50개를 주고 기계차를 사도 내게는 20여 개의 마법석이 남는다.

“뭐, 뭐야! 진짜 있잖아! 어디서 꺼낸 거야!”

“어떻게 하실래요?”

“아, 아무리 그래도 50개는······! 저, 적어도 5개는 더······!”

나는 마법석 다섯 개를 날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5개 빼고, 45개?”

“뭐, 뭐야! 그런 게 어딨어! 이리 내놔! 50개에 넘기겠다 이 말이야!”

“정말이죠?”

“드워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이 말이야!”

맞는 말이다.

드워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과장된 말을 할 뿐.

나는 하나의 마법석을 남기고, 나머지는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뭐, 뭐야! 왜 도로 넣어!”

“기계차가 잘 작동하는지 확인은 해봐야죠.”

본래 무한회귀 세계관의 마법석은 종류가 많다. 광산의 숲에서 요긴하게 쓰였던 라이프 스톤 외에도 파이어 스톤, 아이스 스톤, 아쿠아 스톤 등 열 가지가 넘는 마법석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계차의 연료로써 사용되는 마법석은 종류가 중요하지 않다. 마력의 성질보다는 마법석에서 발하는 에너지 자체를 연료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연료통 뚜껑을 열고 파이어 스톤을 넣었다. 마법석의 마력을 감지한 기계차의 동력기관이 작동을 시작했다.

“거봐! 잘 되잖아! 얼른 마법석 내놓으라 이 말이야!”

“시운전도 해봐야죠. 어떤 결함이 있을지 모르는데.”

“결함이라니! 내가 결함이 있는 물건을 팔 것 같냐 이 말이야!”

“그러니까 확인해 볼게요.”

“안 돼! 너 기계차 운전할 줄 모르잖아!”

“알아요.”

운전석에 올라탄 내가 말했다.

“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던 동료들이 서로 앞자리에 타겠다고 다툼을 벌였다. 당연히 족제비가 가장 먼저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었고 세실, 카인, 루나는 서로를 견제하며 눈싸움을 벌였다.

나는 세실이나 루나가 승리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승자는 카인이었다. 세실은 카인의 사나운 눈빛에 물러났고, 루나는 카인의 미소에 녹아버렸다. 카인이 승리자의 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너 그냥 뒤에 앉으면 안 되냐?”

“뭐라고?”

카인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를 듣고 싶군.”

“됐어. 그냥 타.”

뒷자리에 앉은 루나가 불쑥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데미안. 정말 이거 조종할 수 있니?”

“당연하지.”

“오. 오오오.”

루나가 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기계차는 지구의 자동차와 구동 방식이 동일하다. 다른 점은 소음과 진동이 심하다는 것과 마법석을 연료로 쓰는데도 매연이 나온다는 것, 그리고 속도가 느리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루나. 멀미할 것 같지 않아?”

“응? 괜찮은데? 왜?”

“멀미하면 내리라고 하려 했지.”

뭐라곳! 앙칼지게 외치는 루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부르릉! 거친 소음을 내며 기계차가 앞으로 움직였다.

“대단해! 이런 고철 덩어리가 움직이다니!”

“고철 덩어리라니! 은색 머리 너 말 다 했냐 이 말이야!”

“아하하하하!”

차고는 넓었기에 나는 신나게 몇 바퀴를 돌았다. 동료들이 즐겁게 소리쳤고, 드워프는 역정을 내며 우리 뒤를 쫓았다. 물론 그의 달리기 속도로 기계차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지만.

잠시 후, 기계차에서 내린 나는 보증서를 써달라고 했다. 드워프의 보증서는 루네카 왕국과 살림바르 왕국에서 잘 먹힌다. 이게 있어야 국경을 마찰 없이 넘을 수 있다.

‘브로닉 마운틴포지?’

놀랍게도 보증서에 서명된 이름은 ‘브로닉 마운틴포지’.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에서 기계차를 만드는 장인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자였다.

“그런데 이거, 모래 위에서도 잘 달릴 수 있어요? 살림바르 왕국의 사하룬 사막 같은 곳이요.”

“사막? 사막을 잘 달리려면 모래 여과 장치를 달아야 해! 그러지 않으면 기계 안으로 모래가 들어가 고장이 난다 이 말이야! 바퀴의 재질과 패턴도 바꿔야지! 사막의 열기에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래와의 마찰 역시 최소화해야 한다 이 말이야!”

“작업 좀 해주세요.”

“뭐야! 그거 할 시간이 어디 있어!”

“안 살래요 그럼. 사막도 못 달리는 기계차를 어디에 써요.”

나는 브로닉에게 도로 보증서를 내밀었다.

브로닉이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에잇! 내일 아침에 다시 와! 안 오면 가만두지 않겠다 이 말이야!”

.

.

.

우리는 근처의 여관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운전석 옆자리에 앉는 사람은 운전자에 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해.”

내 말에 루나가 동그랗게 눈을 떴다.

“무슨 능력?”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기계차를 운전하는 자에게 찾아드는 후유증이 있거든.”

“무슨 후유증인데?”

“졸음과 몸 쑤심의 후유증.”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운전석 옆자리에 앉는 사람은 운전자를 보조해 줘야 해. 운전자가 졸음이 오지 않게 도와야 하고, 또 양손과 두 발을 모두 써야 하는 운전자의 손과 발이 되어줘야 하지. 필요시 운전자 대신 주위 상황을 살펴야 하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데미안.”

“카인. 너는 내 옆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야.”

“뭐라고?”

루나와 세실이 번쩍 손을 들었다.

“나! 나 보조 잘해! 내가 잘할 수 있어!”

“나. 나도.”

족제비는 포기한 듯 울상을 지었고, 카인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어찌 됐든 다행이었다. 나는 내 옆자리에 루나 아니면 세실을 태우고 싶었다.

“내 생각도 같아. 내 옆자리에는 루나나 세실이 앉아야 해.”

루나와 세실이 나를 보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민했다. 쉽지 않은 선택지다.

내 안에서 꿈틀대는 수컷의 본능은 루나를 택하라고 외치고 있지만, 세실과의 의리 또한 고려해야 한다.

“내일 아침까지 생각할 시간을 줘.”

그때, 세실이 재빠르게 과일을 깎아 내 접시에 올렸다.

“앗! 세실!”

루나도 질세라 빵에 잼을 발라 내 입에 넣어줬다.

“제법 머리를 굴릴 줄 아는군. 데미안.”

식사를 마친 나는 생각할 거리가 있다고 말하며 여관을 벗어났다. 세실이 따라오려 했지만 루나가 막았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벌여야 한다나 뭐라나.

어둠에 물들어 가는 거리를 걸으며 나는 생각의 시간을 가졌다. 아리아나스의 몸속에서 포식한 혼돈에 관해.

그동안 나는 틈틈이 혼돈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해답을 얻었다. 아리아나스에 생긴 검은 얼룩. 마치 그을음처럼 보였던 그것은 라바다의 정신을 침식했던 혼돈과는 달랐다.

‘아마도 이 혼돈은.’

그러나 시험해 보지는 않을 생각이다.

포식한 혼돈은 처음 발현할 때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니까.

***

이튿날 아침, 우리는 다시 브로닉의 차고지로 갔다.

위풍당당한 브로닉의 얼굴을 뒤로 하며, 나는 꼼꼼히 기계차를 살펴봤다.

바퀴가 어제의 것과 다르다. 더욱 크고, 패턴도 복잡해졌다.

“흠잡을 데 없이 작업해 놨어! 그러니까 얼른 마법석 내놓으라 이 말이야!”

“모래 여과 장치 작업도 끝난 거죠?”

“당연하지!”

“사하룬 사막에서 문제없이 탈 수 있는 거 맞죠?”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 말이야!”

나는 기계차의 추가 작업 때문에 하루 늦게 출발하게 됐으니 비상용 바퀴 하나를 덤으로 달라고 했다.

“도둑놈이 따로 없군!”

브로닉은 툴툴대면서도 비상용 바퀴를 기계차의 엉덩이에 달아줬다.

그제야 나는 마법석을 지불했다.

추가로 다섯 개의 마법석을 얹어주자 브로닉은 종이 뒤집듯 태도를 바꿨다.

“도둑놈이 아니라 사나이 중의 사나이였군!”

자연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탓에 드워프와 엘프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러나 두 종족에게도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은원(恩怨)을 잊지 않는다는 것.

‘마법석 다섯 개로 브로닉 마운틴포지의 환심을 살 수 있으면 싼 거지.’

브로닉은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의 족장이자 대장장이인 ‘토르그림 마운틴포지’의 친우다.

브로닉과 친분을 쌓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내 이름을 물은 브로닉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계차가 고장 나면 언제든지 찾아오게 데미안! 한 번 정도는 무료로 고쳐주지! 누음앗핫핫핫하!”

브로닉은 우리에게 나름의 신원 보증서도 써줬다. 남쪽 국경을 지키는 경비대장과 친분이 있는데, 이것을 보여주면 귀찮게 하는 일 없이 국경을 통과시켜 줄 거라고 한다.

나는 물끄러미 동료들을 돌아봤다. 루나와 세실 중 누구를 옆에 태울지 정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루나가 카인, 족제비와 함께 뒷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아. 카인이 함께 앉자고 해서.”

카인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 또 무슨 꿍꿍이냐.

내 옆에 앉은 세실은 행복해 보였다.

***

필드포지 마을을 벗어난 우리는 남쪽으로 달렸다.

마을을 들르는 일은 피했다. 공연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싶지 않았다. 노숙할 때는 제피르나 엘프족에게 받은 ‘숲속잠’이 큰 도움이 됐다.

◎ 숲속잠

[자연의 기운이 가득한 특별한 물약.

한 모금 마시고 자면 수면의 질이 높아진다.

체온 조절 효과가 있다.]

“데미안. 태양의 풀을 구하고 나면 어떻게 돌아갈지 정했니?”

모닥불 앞에서 루나가 물어왔다.

우리는 드디어 내일, 살림바르 왕국의 국경을 넘는다.

“원래는 마운틴포지 터널을 통해 슬로바 왕국으로 가려고 했어. 슬로바 왕국에서 오를리안 왕국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그때의 상황을 보려 했고. 그런데 만약 마운틴포지 터널의 복구 작업이 늦어지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아.”

“다른 방법이라면 어떤······?”

“뱃길을 이용해야지.”

루나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걸했다.

“제발······ 데미안······.”

“나도 가급적 그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터널이 막히면 선택할 방법은 배를 타는 것밖에 없어.”

“세르펜타인 산맥을 넘으면······.”

“그건 안 된다고 했잖아. 우리는 엘프의 도움 없이 산맥을 넘을 수 없어.”

“힝······.”

루나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 그래도 우리가 돌아갈 때쯤이면 터널 복구 작업도 끝나지 않았을까? 데미안, 네가 마법석도 55개나 줬잖아.”

“족제비. 너 마운틴포지 터널이 얼마나 긴지 알기는 하냐.”

“모, 모르는데······.”

“터널이 무너진 구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상황에 따라 일 년은 꼬박 복구 작업을 해야 할 수도 있어.”

“히익! 일 년이나!”

“방법은 있다.”

카인의 말에 루나가 반색하며 물었다.

“어떤 방법?”

카인은 루나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내 눈에는 재수 없어 보였는데 루나가 얼굴을 붉혔다. 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안 돼.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선 카인이 커다란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바위에 손을 얹은 카인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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