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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5

85화 태양의 풀 (1)

85화 태양의 풀 (1)

콰짓!

바위가 박살 나며 흩어졌다. 루나와 족제비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나도 놀랐다. 방금 카인이 보인 능력은 생소했다.

카인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봤나? 데미안.”

바닥에 흩어진 바위의 파편.

저 파편을 모두 긁어모아도 처음의 바위가 지녔던 부피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로 갔지?

“놀란 토끼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보니, 확실히 본 모양이군.”

“누가 토끼 눈을 떴다는 거야.”

퉁명스럽게 내뱉는 내게 루나가 물었다.

“데미안. 카인의 저 능력이면 충분히 터널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아까도 말했지만, 마운틴포지 터널은 엄청나게 길어.”

“나는 쉽게 지치지 않는다. 데미안.”

“아무리 너라도 그 긴 터널을 뚫는 것은 무리야. 네 힘에도 한계라는 게 있을 거 아냐.”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카인에게 물었다.

“네가 지닌 소서러의 힘에 대해 말해 봐.”

“무엇을 말하라는 거지?”

“힘을 어떤 형태로 발현할 수 있는 것인지. 그걸 알아야 사하룬 사막에서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어.”

“사하룬 사막에는 무엇이 있지?”

“샌드웜(Sandworm).”

살림바르 왕국에서 태양의 풀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 이유는 초대왕인 ‘위대한 카스티안’의 전설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태양의 풀 근처에는 늘 샌드웜이 있기 때문이다.

샌드웜은 ‘사하룬의 공포’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몬스터다. 그전까지는 쿠훌린과 엘리샤의 존재 덕분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가 샌드웜을 상대하는 것에는 아주 큰 위험이 따른다.

“샌드웜이라. 그러고 보니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분명 사하룬의 공포라 불리는······.”

카인 녀석이 또 아는 척을 하려 하기에 내가 말을 잘랐다.

“샌드웜은 엄청나게 강해. 우리의 전력을 확실히 알아야 대비할 수 있어.”

물론 나는 샌드웜의 약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약점을 아는 것과, 그것을 이용해 승리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나 역시도 하고 싶은 말이군. 데미안, 네 전력을 알아야 나도 효율적으로 힘을 발현할 수 있다.”

“너 먼저 말해.”

나는 소설에서 나온 카인의 능력을 알고 있다.

카인이 지닌 가장 대표적인 능력은 중력(重力)과 반중력(反重力)이다. 물론 아직 반중력은 발현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카인은 중력의 힘으로 일루산을 공격했었다. 그때 바닥이 움푹 파이며 갈라진 이유는 그곳에 집중된 중력 때문이다. 또 카인은 바다 위에 물기둥이 솟아오르게 했고, 거대 오징어의 머리를 짓눌러 터뜨렸다. 최근에는 제피르나 엘프들의 화살을 무력화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것은 내가 흑기사의 능력을 유추한 계기가 됐다. 나는 흑기사가 엘리샤를 손짓만으로 밀어내는 것을 보며 카인의 반중력을 떠올렸다. 그래서 반대로 루나를 끌어당길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다시금 흑기사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카인과 유사한 능력을 발현하는 소드마스터 급의 강자. 누구일까. 그자는.

“좋다.”

그렇게 말한 카인이 자신의 힘에 대해 말했다. 예상대로 중력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듣고 싶은 능력은 다른 것이었다. 조금 전, 카인이 바위를 부숴 없앤 힘.

물론 카인은 중력과 반중력 외에도 다양한 능력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아리아나스의 얼룩을 도려냈던 것과 같은. 소설에서 카인은 그런 힘을 잡기술이라고 불렀었다.

그러나 조금 전처럼 물체를 이 세계에서 지워버리는 능력은 내게도 생소한 것이었다.

그에 관해 묻자 카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힘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최근에서야 깨달은 능력이니까.”

이후 카인이 나의 힘에 관해 물었다.

내가 지닌 혼돈은 모두 다섯 가지였지만, 나는 ‘늪지의 혼돈’과 ‘세계수의 혼돈’만을 공개했다.

카인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길래,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샌드웜을 상대할 방법을 설명할게.”

내 설명을 듣던 일행이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

우리는 국경을 넘었다.

과연 브로닉의 보증서는 잘 먹혔다.

우리는 별다른 마찰 없이 기계차에 탑승한 채로 살림바르의 영토에 들어섰다.

“더워······. 너무 더워······.”

뒷자리의 루나가 녹초가 된 목소리로 말했다. 불과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춥다고 몸을 떨더니.

그러나 루나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기계차를 달릴수록 날씨는 급격하게 더워졌다. 계절은 아직 봄이었지만, 살림바르는 국토의 1/3이 사막으로 덮인 나라다.

루나가 더는 못 참겠는지 훌렁훌렁 옷을 벗었다.

민소매에 짧은 바지 차림이 된 루나가 헤헤 웃으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나도 많이 놀랐지만, 루나 옆에 앉은 족제비는 지금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응? 왜? 너희들도 벗어.”

결국 나는 나무 그늘에 기계차를 세우고 겉옷을 벗었다.

카인과 족제비도 한결 편한 복장이 됐다.

“와. 카인 근육.”

루나가 카인을 보며 휘둥그렇게 눈을 떴다.

확실히 카인의 몸은 우리와 달랐다. 잘 발달된 근육에, 키도 180센티미터에 근접한 것 같다.

참고로 무한회귀 설정집에 적힌 카인의 키는 187센티미터였으니 더욱 커질 것이다. 나는 얼마나 더 크려나.

“세실. 안 더워?”

세실은 옷을 벗지 않았다.

“응. 괜찮아.”

말과 달리 세실은 비 오듯 땀을 흘렸다. 루나보다 더위를 못 견디는 듯했다.

하긴, 세실은 이런 더위를 처음 겪을 것이다. 세실이 나고 자란 그림자 성이 어디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소설에서의 표현을 봤을 때 더운 지역은 아니었다. 게다가 세실의 옷은 위아래로 검은색이라 더욱 더워 보였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야 세실. 이대로면 금세 체력이 떨어질걸? 우리는 가급적 최상의 몸 상태로 샌드웜을 상대해야 해.”

우리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전투 훈련을 받은 이는 세실이다. 그 말은 즉, 뜻밖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세실이라는 뜻이다.

“나. 나는.”

세실이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카인이 끼어들었다.

“곤란해하는데 그만두지 데미안. 위기 상황이 닥치면 내가 어떻게든 해 주겠다.”

대역죄인처럼 고개 숙인 세실을 보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던 중 떠올랐다.

“다들 이리 모여 봐.”

나는 ‘숲샘’으로 손을 씻고, 동료들의 손도 씻게 했다. 그러고는 아공간에서 커다란 접시를 꺼냈다.

“앗! 이거 뭐야?”

루나가 깜짝 놀라 외쳤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가 꺼낸 접시 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으니까. 나는 살림바르 왕국에 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혹한의 땅에 갔을 때 깨끗한 눈을 아공간에 넣어두었었다.

나는 복숭아 몇 개를 꺼내 세실에게 건넸다. 의도를 알아챈 세실이 엄청난 속도로 복숭아를 깎았다.

잠시 후, 잘게 토막 난 복숭아가 눈 위에 올려졌다. 그 위에 나는 말린 과일 조각과 견과류와 꿀을 뿌렸다. 그렇게 복숭아 빙수가 완성됐다.

“엄청나. 엄청난 맛이야 이건.”

“데, 데미안. 이거 잡화점에서 팔면 떼돈 벌 것 같은데.”

“족제비. 침.”

“과연. 훌륭한 맛이군.”

우리는 정신없이 빙수를 먹었다.

***

사하룬 사막의 한가운데, 알렉세이는 자신의 무모한 결정을 후회하고 있었다.

알렉세이의 눈앞은 모래로 가득했고, 거친 바람이 끊임없이 얼굴을 때렸다. 그는 이 모래폭풍 속에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물과 식량은 바닥난 지 오래다.

“아니야. 나는 잘못 선택하지 않았어. 위대한 카스티안은 이런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을 증명한 거야.”

위대한 카스티안.

고작 16세의 나이로 샌드웜을 사냥한 살림바르 왕국의 영웅이자, 초대왕.

위대한 카스티안은 샌드웜을 사냥했다는 증거로 태양의 풀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알렉세이, 아니 알렉세이 살림바르는 어렸을 때부터 위대한 카스티안의 전설을 듣고 자랐다. 그것이 그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16세 성년식을 치르자마자 사하룬 사막으로 달려온 것이다.

알렉세이의 눈빛이 되살아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위대한 카스티안처럼 될 것이다!

“나는 위대한 영웅이 될 사나이다! 하하하하하!”

그때, 저만치 모래 아래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알렉세이는 직감했다. 샌드웜을 불러낸다는 ‘카스티안의 돌’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드디어 나타난 건가!”

알렉세이는 힘차게 시미터를 뽑아 들었다.

검술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는 왕실의 정예 부대인 ‘맘루크(Mamluk)’와의 일대일 대전에서 승리를 따낸 적이 있다.

“와라! 샌드웜!”

말과 달리 알렉세이는 기다리지 않고 달려갔다.

지면을 뚫고 기다란 것이 솟아올랐다. 샌드웜이다.

어렸을 때 책에서 봤던 것과 똑같다. 크기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알려진 샌드웜의 크기는 과장된 것이었군. 하긴. 그렇게 커다란 괴물이 있을 리 없지.’

책에서 표현된 샌드웜의 크기는 엄청났다. 성인 남성 너덧이 팔을 벌려야 간신히 안을 수 있는 두께였고, 길이는 그것의 열 배 이상이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샌드웜은 자신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샌드웜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크기만 작은 것이 아니라 겁쟁이였다. 왜 저런 한심한 녀석에게 ‘사하룬의 공포’라는 무시무시한 이명이 지어졌다는 말인가!

“나는 위대한 알렉세이가 되겠다!”

알렉세이가 샌드웜의 몸을 베었다. 그제야 샌드웜이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뒤늦은 발악일 뿐이었다.

죽은 샌드웜이 모래 위에서 몸을 떨었다. 알렉세이는 만족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태양의 풀이 보이지 않았다. 사체 밑에 깔린 것인가 싶어 확인했지만 없었다.

그때였다.

지면 아래로부터 불길한 징조가 시작됐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거대한 울림이 지면을 뒤흔들고 있었다.

트트트트트트!

알렉세이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깊은 지하로부터 무언가가 다가왔다. 이윽고 사막이 둘로 갈라지며, 마치 지옥의 문을 열고 나타난 듯한 거대한 존재가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그제야 알렉세이는 깨달았다. 자신이 방금 죽인 샌드웜은 갓 태어난 새끼에 불과했음을. 알렉세이가 중얼거렸다. 위대한 카스티안이 정말로 저런 괴물을 사냥했다고?

그러나 알렉세이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의 가슴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공포는 나를 막을 수 없다. 나는 ‘위대한 알렉세이’가 될 사내가 아니던가!

“샌드웜! 내가 상대해 주······!”

자신에 찬 그의 외침은 갑작스럽게 끊겼다.

정신을 차려 보니 그는 데굴데굴 모래사막을 구르고 있었다.

‘크윽······! 대단한 괴력이다······!’

직접 타격당한 것은 아니다. 알렉세이는 샌드웜의 꼬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몸을 띄웠고, 바닥에 내리쳐진 꼬리의 충격파를 맞고 날아갔다.

분노한 샌드웜이 알렉세이에게 다가왔다.

열 명의 인간쯤은 한꺼번에 삼킬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입. 톱날 같은 이빨. 온몸을 빼곡하게 뒤덮은 푸른 눈동자. 그 주변에서 뻗어 나오는 촉수. 자신의 분노를 형상화하듯 뿜어지는 모래 연기.

알렉세이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과연 책에서 본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것이 더욱 크게 입을 벌린 순간.

“족제비! 쏴!”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이 샌드웜의 안구에 박혔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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