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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5

84화. 

청담동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 

고준형은 선아와 함께 미리 예약된 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기다리자 황규상이 들어왔다. 

“많이 기다렸어?” 

“저희도 방금 왔어요.” 

그의 옆에는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선아는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미 학교와 사교모임 등에서 여러 차례 만났기 때문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거예요?” 

고준형의 물음에 황규상은 웃으며 말했다. 

“여자친구 소개시켜주려고. 이쪽은 정소희. 최근 데뷔한 신인연기자야.” 

정소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얼마 전, 소속사의 소개로 황규상을 만났고 마음에 들어 사귀게 되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그가 국무총리인 황주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황규상을 만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촬영장에서의 대접이 달라졌다. 소속사에서는 전속 매니저와 차량을 마련해주었고, 감독은 단역으로 출연하는 드라마에서 그녀의 분량을 최대한 늘려주었다. 그것 때문

에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고쳐서 썼을 정도였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와인이 먼저 나왔다. 네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황규상은 고준형에게 말했다.  

“아! OTK컴퍼니에 대한 얘기는 들었지?” 

OTK컴퍼니 CEO가 체포된 사실은 어느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정계와 재계에는 파다하게 소문이 퍼져 있었다.  

“진짜 대박이지 않냐? 그런 오타쿠 같은 놈이 CEO라니. 애초에 OTK컴퍼니도 오택규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라네.” 

“그러게요. 그런 놈 말 한마디에 미국 정계까지 들썩 거리다니.” 

“그나저나 강진후가 오택규 밑에서 일하고 있을 줄이야. 걔도 참 웃기는 놈이야.” 

고준형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던 만큼 놀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선아는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고준형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정리해서 말해주었다. 

“강진후가 개강파티 때 500만 달러를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도, 경제사정이 나아진 것도 전부 친구 덕분이었던 거지.” 

황규상이 말을 덧붙였다. 

“오택규한테 한 10억 정도 받은 모양이야. 아예 차도 해줬더만. 카드 일시불로 7시리즈 뽑아주고, 법인리스로 포르쉐 파나메라 뽑아주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10억이면 경악할 만한 액수다. 이제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신인 연예인에게는 더더욱. 

정소희는 부럽다는 듯 말했다. 

“좋겠네요. 친구 잘 둔 덕분에 10억이라니.” 

“그런데 어차피 오택규와 오현주 남매가 해먹는 거면, 조만간 쳐내지 않겠어? 박상엽이야 투자능력이 입증되었지만, 강진후는 별로 쓸모가 없을 테니까.” 고준형은 웃음을 지었다. 

“계속 밑에 두고 부려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뭐, 시다바리가 필요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오택규는 어떻게 될까요?” 

“조만간 풀려날 거야. 이번에 함부로 나대지 말라는 신호 한 번 준거지.” 

정부가 가진 힘은 의외로 막강하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이상 누구도 정권과 맞서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권 역시 돈을 쥐고 있는 재벌들과 척을 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차피 정계와 재계는 하나다. 

지금이야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정선에서 타협하게 될 것이다. OTK컴퍼니 쪽에서 죽자고 달려들지 않는 이상 말이다. 

“OTK컴퍼니도 조용하던데. 오택규가 풀려날 때까지는 가만히 있을 모양이야.” 

선아는 여전히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택규가 OTK컴퍼니 CEO라고?’ 

강진후와 1년 가까이 사귀며, 친구인 오택규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녀가 아는 오택규는 그런 엄청난 일을 주도할 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진후라면 모를까······.’ 

선아는 개강파티 때 강진후가 한 말을 떠올렸다. 

‘내 친구가 돈이 많아. 난 더 많고.’ 

그녀가 느끼기에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선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황규상과 고준형은 대화를 멈추고 그녀를 보았다.  

“아니라니? 뭐가?” 

만약 둘이 같이 일을 했다면, 강진후가 주도하고 오택규가 보조하지 않았을까?  

설마 그 반대일 리가······. 

* * * 

난 현주 누나와 엘리와 함께 차를 타고 동탄으로 향했다. 

길을 잘 아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얘기를 들으시면, 충격 받으시겠죠?” 

현주 누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기절하실 수도 있어.” 

“······ 

역시 그렇겠지? 

택규에게 들었는데, TV를 보다가 현주 누나가 골든게이트 한국지사장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택규네 어머니는 쓰러지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기 전, 미리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이다. 얼굴 뵌 지 오래되기도 했고. 

나한테 듣고 기절하나, 방송을 보고 기절하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직접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지. 

조수석에 앉은 엘리는 졸린지 연신 하품하며 눈물을 닦았다. 잠도 몇 시간 못 자며 일만 했으니, 졸린 게 당연하겠지.  

“누나랑 둘만 가도 되는데.” 

원래는 둘이서 가려고 했는데, 어머니를 뵈러 간다는 얘기를 들은 엘리가 자기도 따라가겠다며 합류했다.  내 말에 엘리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동안 일만 하느라 답답했어요. 예전부터 동탄에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했고요.” 

“정말요? 동탄에 대해 알아요?” 

엘리는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이죠. 미군기지가 있던 곳이잖아요. 뉴스에서 몇 번 봤어요.” 

뒷자리에 있는 현주 누나가 말했다. 

“그건 동두천 아니야?” 

“······.” 

엘리는 당황하며 화제를 돌렸다. 

“진후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세요?” 

“원래는 평범한 주부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회사가 망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장이 된 어머니는 악착같이 일하셨다. 

내 얘기를 들은 엘리는 감탄하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존경스러워요.” 

난 웃음을 지었다. 

“맞아요. 모든 부모님들은 존경스럽죠.” 

약 한 시간을 달려 동탄 외곽에 있는 주택단지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집 앞까지 마중 나와 계셨다. 

“어서와.” 

나를 보며 반가워하시던 어머니는 뒤따라 내린 현주 누나와 엘리를 보고 놀랐다. 

“이 분들은······?” 

난 먼저 현주 누나부터 소개했다. 

“이쪽은 택규의 누나인 오현주예요. 알고 계시죠?” 

어머니는 현주 누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진후 엄마예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예전부터 우리 진후를 잘 챙겨줬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아닙니다, 어머니. 오히려 제가 진후에게 신세지고 있습니다.” 

“그 골든 어디 사장님이 되셨다고 들었는데, 축하드려요. 뉴스에서 봤어요.” 

“골든게이트 한국지사장이요.” 

난 정정해준 다음 이어서 엘리를 소개했다. 

“이쪽은 현주 누나와 같은 골든게이트에서 일하는 변호사 엘리예요.” 

어머니는 엘리에게 인사했다. 

“헤, 헬로우. 아이엠 진후의 맘. 하우아유? 음, 앤듀?” 

“······.” 

영어발음이 너무 정직하시다. 

엘리는 당황하지 않고 한국어로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엘리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엘리는 한국말 잘해요.” 

“그러면 진작 말했어야지.” 

어머니는 나에게 핀잔을 준 다음 말했다. 

“아무튼 다들 오느라 고생했어요. 어서 들어와요.” 우리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오는 건 엄청 오랜만이구나. 

그동안은 주로 어머니가 강남으로 오셨지. 

“잠시만 앉아계세요. 커피 드릴게요.” 

어머니는 꽃무늬 찻잔에 믹스커피를 타서 우리에게 내주었다. 현주 누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엘리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미국에서 언제 돌아온 거야? 왔으면 얘기를 해야지.” 

“일이 좀 있었어요.” 

“택규랑 하는 사업은 어때? 잘 되고 있어?” 

“예.” 

너무 잘 돼서 문제다. 

적당히 잘 됐으면 아무 문제없었을 턴데.  

“그것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좀 있어요.” 

난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OTK컴퍼니와 K컴퍼니라는 회사 들어보셨어요?” 

내 물음에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둘 다 유명한 회사잖아.” 

“지금부터 하는 얘기에 놀라시면 안 돼요.” 

“뭔데?” 

차마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어머니는 내가 택규랑 한 30억 정도로 적당히 주식이나 펀드를 하는 걸로 알고 계신다. 설마 수십조를 굴리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시겠지. 

“혹시 집에 청심환 같은 거 없어요?”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됐는지, 어머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호, 혹시 빚이라도 진 거니? 사채를 썼다던지.” 

“그렇진 않은데요······.” 

그것보다 더 충격적입니다. 

“일단 심호흡부터 하세요.” 

어머니는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말했다. 

“들을 준비 됐으니까, 어서 말해 봐.” 

“제가 OTK컴퍼니를 운영하고 있어요.” 

내 말에 어머니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현주 누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대신해 어머니께 설명했다. 

택규가 반트코인을 판 돈으로 외국에 OTK컴퍼니를 차렸고, 같이 투자를 하며 액수를 불렸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육하원칙에 따른 간략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이었다. 

“자, 잠깐만요. 그러니까 OTK컴퍼니가 우리 진후 거라는 거예요? 지금 미국 자동차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그 회사가요?” 

“예. 정확히는 80퍼센트를 진후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 그게 얼마쯤 되나요?” 

“약 40조 원입니다.” 

“아······.” 

어머니는 이마를 붙잡으며 쓰러졌고, 엘리가 재빨리 부축해주었다.  

“괘, 괜찮으세요?” 

“이게 사실이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군대를 전역할 때까지만 해도 빈털터리였던 아들이 2년도 안 되어서 수십 조짜리 회사의 CEO가 됐다고 하니, 믿기가 힘들겠지. 

만약 내가 말했다면, 반신반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택규의 누나(골든게이트 한국지사장)가 나서서 말하니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난 이곳에 온 목적을 꺼냈다. 

“조만간 언론에 알릴 생각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처음부터 언젠가는 정체가 드러날 거라 생각했다. 이 경우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어머니의 신변 문제다. 

마음 같아서는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 싶지만, 지금 집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진작 K컴퍼니 명의로 옆집을 포함해 주변 주택 세 채를 매입했고, 경호업체와도 계약을 맺었다. 

“집주변에 경호원들을 배치할 거예요. 앞으로는 어디 가실 때마다 여자 경호원들이 따라다닐 거예요.”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구.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미리 말씀 안 드려서 죄송해요.” 

사실 한 가지는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것이다. 

그것까지 아시면 진짜 기절하시겠지. 

이야기가 끝난 뒤, 우리는 집을 나섰다  

“밥이라도 먹고 가지.” 

“다음에요.” 

“무슨 일 있으면 꼬박꼬박 연락하고.” 

“알았어요.” 

어머니는 현주 누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진후 좀 잘 부탁할게요.” 

“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엘리에게도 말했다. 

“나중에 오면 식사 같이 해요.” 

“예. 꼭 다시 올게요.” 

우리는 차에 올라탔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서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현주 누나가 물었다. 

“또 만나야할 사람 있어?” 

“글쎄요.” 

순간, 누군가가 떠올랐다. 

말 안 해주면 서운해 하겠지? 

* * * 

난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잠시 후, 캐주얼한 차림에 금발을 양 갈래로 묶고, 빵모자를 쓴 여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따라 귀엽고 예뻐 보인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여기야.” 

“선배!” 

나를 본 유리는 반가워하며 말했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왔어요?” 

“얼마 안 됐어.” 

“핸드폰은 왜 계속 꺼져있고, 번호는 왜 바뀐 거예요?” 

“망가졌어.” 

통화내역이 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마음 놓고 쓸 수가 없다. 혹시 도청이나 위치추적을 당할 수도 있는지라,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아예 꺼놓고 골든게이트 법인 폰만 사용했다. 

우리는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유리는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세 달이나 미국에 있을 거면, 미리 좀 얘기해주지. 방학 때 혼자서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요?” 

“나도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난 바로 본론을 꺼냈다. 

“고백할 게 있어.” 

“고, 고백이요?” 

“어차피 알게 되겠지만, 내 입으로 먼저 말하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 

내일이면 전국민이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얘한테는 왠지 먼저 말해 줘야할 것 같다. 그동안 신세지기도 했고, 속인 게 미안하기도 하고. 

유리는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가, 갑자기 왜 그래요? 만나자마자 어색하게.” 

“그게······.” 

난 말을 하려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제 와서 솔직하게 말하기가 쉽지가 않네.” 

내가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유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선배. 용기내서 솔직하게 말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놀랄 수도 있으니,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해.” 

유리는 잠시 눈을 감으며 호흡했다. 그러고는 결심한 듯 눈을 떴다. 

“준비 됐어요. 이제 말해요.” 

난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얘기를 들은 유리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An Investor Who Sees The Future

미래를 보는 투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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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re may be great entrepreneurs, but there are no great investors. That’s the reality of this 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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