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86

85. 거지남매 – 왕자의 생환

“다음!”

관문 수비병이 한 상단을 통과시키곤 외쳤다.

콘라드 왕국으로 넘어가는 관문 앞은 북새통이 되어 수십의 마차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었다. 몇몇 이들이 “오늘 나가긴 틀렸다.”라며 푸념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스틴 왕국과 벨리타 왕국 간에 전쟁이 터졌다.

수비병들은 마차를 하나하나 수색해 혹시 무기가 반출되지 않는지를 확인했고, 검사는 끝없이 길어져만 갔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불만스럽게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건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대체 확인은 뭣 하러 하는 겁니까? 우리 왕국에서 전쟁이 나서 무깃값이 비싸졌으니 들여오면 들여왔지 빼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까라면 까야지 뭘 어째. 넌 무슨 생각이 그리 많냐? 잔말하지 말고 다음 차례나 받아. 지금 줄 늘어선 거 안 보여? 퇴근하기 싫어?”

“에이, 젠장.”

구시렁거리며, 병사는 다음 일행에게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행이었다.

‘마게레’가 수레를 끄는 것으로 보아 농부인 듯한데, 수레를 모는 남자는 양손검을 차고 있었다.

“출국 증명서를 보이세요.”

“여기 있습니다.”

젊은 청년이 건넨 문서를 받아든 병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남자 눈 색깔이 특이하네. 황금빛? 잠깐만, 이거 어디 공문에서 봤던 것 같은데?’

고개를 갸우뚱하던 병사는 이윽고 오래전의 공문을 기억해냈다.

– 소년 같은 체구에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한때 거지였던 청년을 잡아라.

“잠시만 기다리세요. 대장님. 잠깐 귀 좀.”

“아, 왜?”

“저 남자 수배범 같지 않아요? 전에 공문에서 봤는데…”

대장이라 불린 병사가 와락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이 또 시작이다.

“야. 넌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네가 범인 같다고 해서 붙잡았던 사람이 몇 명인 줄 알아? 그중에 범인은 한 명도 없었잖아. 바쁜 사람 붙잡아서 시간만 버렸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바람에 징계까지 받았으면서 또 이래?”

“아니 그래도요. 잠깐만요. 여기 공문이… 이거요!”

“얌마! 이게 언제 적 공문이야. 작년 여름이잖아. 너도 진짜 대단하다. 거의 일 년 전 공문을 기억하고 있네.”

“여기 봐봐요.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청년을 잡으라고…”

“어. 거지였고, 소년 같은 체구라 적혀있네. 네 눈에는 저 남자가 소년으로 보이냐? 거지로 보여?”

“저 나이에 키는 좀 클 수도 있고… 돈은 벌면 되고…”

“그렇게 따지면 여기 줄 서 있는 사람들 다 잡아야겠다. 저어기 머리 벗겨진 사람 있는데, 머리야 뽑으면 되고, 살이야 찌면 되니까.”

“…”

“안 그래도 바빠죽겠는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증명서나 확인해서 보내.”

“하지만…”

그때, 문제의 당사자가 끼어들었다.

“뭔가 잘못된 게 있나요?”

“아닙니다. 이 친구가 뭘 착각한 모양입니다. 이거 내놨! 어디보자… 음? 이건 출국 증명서가 아닌데… 어이쿠, 임시 기사님이셨군요.”

멍청한 후임에게 서류를 빼앗아 읽은 대장은 큼지막하게 찍힌 제2 기사단의 직인을 알아보고는 가볍게 경례를 올렸다.

후임에게 힐끔, 이것 보라는 눈치를 날리면서.

“동생분을 데려다주러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는데, 뒤에 타신 분이 동생인가요?”

“네.”

“그럼 다른 한 분은? 아, 여기 신분증이 있군요. 자유시민이시고… 저기 죄송한데 동생분 얼굴을 한번 볼 수 있을까요? 후드를 눌러쓰고 계셔서 확인이 어렵… 허어업!”

수레에 탄 소녀가 후드를 벗자, 대장과 의심 많은 병사가 숨을 들이켰다.

사랑스럽게 동그란 이마 아래, 휴양을 나온 듯 나른함이 맺힌 턱선 위로, 살살 보듬고 싶은 앳된 얼굴이 햇살처럼 빛났다.

병사들은 황혼 같은 금빛이 쏟아지는 눈동자에 홀려 말을 잊었다.

청년이 재촉했다.

“통과해도 될까요?”

“허어어… 네, 넵. 통과하십쇼.”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두 수비병은 멀어져가는 수레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뒤에서 한 상인이 “저기요? 저기요! 일 안 하세요?”라며 불평했으나 들리지도 않았다.

먼저 정신을 되찾은 대장이 후임을 팔꿈치로 쿡 찍으며 비아냥거렸다.

“야. 너 저거 붙잡았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 어? 기사님 건드렸다가 아주 박살 날뻔한 거 내가 막아준 거다.”

“진짜 예쁘다…”

“이 자식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네. 하긴, 예쁘긴 했다. 살다 살다 저렇게 예쁜…”

“저기요! 검문 안 하시냐고요! 일정이 촉박한데 이러시면…!”

그때, 상인이 참지 못하고 달려와서 두 병사의 여운을 망쳐버렸다.

짜증이 난 병사들.

상인은 집요한 검문을 받아 마차 불법 개조 및 적재용량 초과라는 명목으로 벌금을 냈다.

레나와 레오, 카시아는 콘라드 왕국과 오른 왕국 사이의 국경을 따라 남쪽을 향했다.

‘첫 국외여행’ 업적 덕분에 수레를 끄는 마게레는 말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속도를 내며 바르트 경에게 한 발 한 발 가까워졌다.

콘라드 왕국은 괴상하리만치 산이 없는 왕국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거대한 손으로 두들겨 다진듯한 부드러운 경사의 언덕과 광활한 평야만이 번갈아 펼쳐진 곳이어서 그들의 수레에 멈춤이란 없었다.

한데 콘라드 왕국으로 넘어온 지 두 달, 수레는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바다가 레오 일행을 멈춰 세웠다.

“우와! 물이다! 오빠, 물이 엄청 많아!”

바다를 처음 본 레나는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참방참방 발을 굴렀다. 카시아와 동생이 인적이 없는 해변을 거니는 동안, 레오는 드넓은 수평선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추적술}은 여전히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르트 경이 오른 왕국을 넘나들며, 국경 부근에 숨어서 추격을 뿌리치고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배를 타고 도망쳤구나.’

콘라드 왕국에 들어와 여행하면서 바르트 경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바르트 경과 그가 이끄는 기사들에겐 수배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들은 테르탄 공작가의 영지를 해마다 두어 번씩 습격하고, 작년에는 공작의 손자인 팔라스 테르탄마저 살해한 괴한으로 몰려 추격당하는 중이었다.

라퍼트 테르탄 공작은 귀족들의 기사뿐만 아니라 왕실 제3 기사단까지 동원해 그를 참살하려 했다고 들었다.

그를 쫓은 기사의 수가 무려 삼백에 달했다고 하니,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추격전이었을 것이다.

‘고작 일곱 명이서 열댓의 기사를 일방적으로 상대했으니 그 정도는 필요했겠지…’

단순하게 계산하면 그렇지만, 사실 팔라스 테르탄을 호위하던 기사들이 죄다 평기사였던 게 컸다.

쫓기는 일곱 명은 모두 카트리나 수준의 기사들이었다. 특히 바르트 경은 그보다 훨씬 뛰어난 기사였기에 평기사 열다섯 명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강한 기사가 왜 여태껏 공작령을 습격하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지?’

레오는 목에 걸린 목걸이를 꺼내 들어 올렸다.

목걸이에는 세 개의 푸른 물방울이 양각으로 새겨지고, 각 물방울 위로 알 수 없는 문자가 음각으로 파여 있었다.

바르트 경의 검에도 이것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추측건대 그는 왕자, 공주였던 남매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근위기사였을 것이다.

아무래도 레나, 레오를 쫓아내는 데 도움을 준 라퍼트 테르탄 공작에게 복수하려는 것 같은데…

“레나! 카시아 누나! 이제 출발해요!”

레오는 의문을 접었다.

바르트 경을 만나 물어보면 알게 될 일이다.

바다를 오른쪽에 둔 수레는 ‘첫 국외여행’ 업적 효과를 잃고 느릿느릿, 동쪽을 향했다.

* * *

안개 낀 이른 새벽, 어선 한 척이 노야르 항구에 접안했다.

항구에는 묶인 배들이 삐꺽이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아직 이른 새벽이기도 했으나, 시계가 좋지 않은 날이라 출항이 힘들어 항구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닻이 없어 투묘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소형 선박이 그렇듯, 도착한 어선은 부두에 다가가 팔뚝만큼 굵은 계류용 밧줄을 계선주(繫船柱, 항구 내에 배를 매어두기 위해 박아 놓은 말뚝)에 매었다.

배에서 내린 것은 갓 잡아 싱싱한 어류들도, 만선의 기쁨을 안은 어부들도 아니었다.

말 없는 다섯 명의 사내들.

그들은 모두 복수심에 끓어오르는 눈빛으로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앞서 내린 사내들이 뒤를 돌아보자 가장 마지막에 내린, 비쩍 마른 사내가 턱짓했다.

그들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고, 턱짓한 사내는 동료들을 뒤따르며 이를 빠드득 깨물었다.

‘빌어먹을 공작 놈.’

광대뼈가 튀어나온 초췌한 인상의 그 사내는 ‘바르트’, 한때 예리엘 왕가의 근위기사였다.

‘손자를 죽이지 말고 수도로 가서 놈을 쳐 죽였어야 했어.’

바르트는 팔라스 테르탄을 죽이면 라퍼트 테르탄 공작이 수도에서 뛰쳐나오리라 기대했었다. 영지를 습격해도 그 무거운 엉덩이를 떼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서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공작은 이번에도 수도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손자를 끔찍이 아낀다는 건 헛소문이었다.

그의 후계를 끊은 것은 후련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동료 두 명을 잃었다. 오래도록 복수만을 바라고 살아온 동료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갔다.

‘미안하다.’

사실 지금 실력이면 바로 공작의 저택으로 달려가 놈을 쳐 죽여도 됐을 것이었다. 우리도 결코 살아남지 못할 테지만, 우리는 오직 그것만을 바라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한데 공작의 손자가 ‘하리에 가이단’이라는 영애를 만나기 위해 오른 왕국까지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그를 먼저 죽일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정말 운 좋게 얻은 정보에 눈이 돌아갔다. 공작을 끌어내 더 손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모두 잘못된 생각이었다.

공작을 쉽게 죽이고 살아남아서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그런 선택을 했을까!

바르트는 두꺼운 안갯속에서 고개를 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손자를 죽이고 추격당하느라 조금 늦어졌지만, 드디어 십 년의 방랑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이제 수도로 달려가 공작을 죽여 돌아가신 왕자님과 공주님, 먼저 간 동료들의 넋을 달래고 헛된 망령의 삶을 끝내리라.

– 턱.

오랜 영욕의 세월을 떠올리던 바르트는 앞서가는 동료에게 부딪치며 상념에서 벗어났다.

“…뭐야? 왜 멈췄어?”

“…”

눈을 떠보니 동료들이 모두 멈춰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바르트는 동료들의 기묘한 반응에 놀라면서도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도 똑같이 몸을 떨었다.

– 왕자님!

뿌연 안개 위로 왕자님의 형상이 떠올라 있었다.

변함없는 금빛 눈동자, 예리엘 왕가의 적통다운 청색이 섞인 금발 머리와 짙은 눈썹, 왕을 똑 닮아 높이 솟은 콧대와 갸름한 턱선…

예닐곱 살이나 됐을 무렵에 잃어버린, 지켜드리지 못했던 그분이 장성했다면 딱 저런 모습일까.

기사들 몇몇은 눈물을 글썽이며 왕자님의 유령을 향해 무릎을 꿇으려 했고, 몇몇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비볐다.

바르트도 가슴이 벅차올라 주체하기 힘들었으나 눈물이 맺히려는 걸 꾸욱 내리눌렀다.

왕자님께서 무슨 말씀이라도 남기시려 찾아오셨을까?

테르탄 공작을 죽이려 하는 지금,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여 용기를 북돋아 주려 하심일까?

그런데… 눈앞의 왕자님이 어쩐지 살아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바르트는 인기척에 놀라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으나, 그 평정심은 다시 깨져버렸다.

“바르트 경.”

“와, 왕자님?”

기사들이 헉, 숨을 들이켰다.

유령이 아니다.

꿈에서나 그리던 왕자님께서 뚜벅뚜벅 안개를 헤치며 다가오셨다.

“그래. 나요. 레오 드 예리엘이오.”

당황한 기사들이 무의식중에 무릎을 반쯤 접고서 바르트를 돌아보았다.

바르트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즈, 증거가 있습니까? 당신이 왕자님이라는 증거가 필요합니다.”

사실 증거 따위는 필요 없었다. 이 사람은 왕자님이 맞다.

하지만 복수에 미쳐 살아와 이성을 잃고 잘못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왕자님에 대한 그리움이 지나쳐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또,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왕자님께서 이렇게 나타나실 수가 있단 말인가?

살아계신 것도 믿기 힘든데, 공작의 추격도 뿌리친 우리를 어떻게 찾아오셨단 말인가?

어쩌면 이건 악마의 달콤한 속임수일지도 몰랐다. 짙은 안개가 요상한 마법을 부리는 것이다.

허나 바르트는 왕자가 무언가를 꺼내기가 무섭게 무릎을 꿇고 외쳤다.

“왕자님을 뵙습니다!”

“왕자님을 뵙습니다!”

동료들도 그를 따라 무릎을 꿇고 외쳤다.

왕자가 꺼내 든 백색의 작은 목걸이. 그건 왕자님께서 어릴 적에 차고 계시던 것이었다.

잊고 있었던, 십 년의 세월을 뚫고 나타난 명백한 증거에 기사들은 오열했다.

주군께서 살아계셨다.

바르트를 포함한 기사들이 부복해 주군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죽여달라 청하며 펑펑 눈물 흘렸다.

[ 업적 : 주종 관계 – ‘5’, 충성심이 흔들리지 않는 한, 충성을 맹세한 자들은 레오를 믿고 따릅니다. ]

돌아온 왕자가 기사들을 달래었지만, 중년의 사내들이 쏟아내는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레오도 코끝이 시큰거렸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