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Chapter 86

86화 성물 호송단(1)

레온의 치세 96년 째의 일이었다.

「폐하, 짐승신을 섬기는 야만의 땅에서 성물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성물.

성배기사나 신관장급의 최고위 사제에게만 허락되는 신의 힘이 담긴 물건.

라이온하트 왕국의 출현 이래 숱한 성물들이 있어왔지만, 그것들 모두가 라이온하트 왕국에 온전한 건 아니었다.

모든 지성체들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라이온하트 왕국은 온 세계의 악들과 싸워왔고, 더러는 승리하고, 더러는 패배했다.

발견된 성물은 900년 전, 12대 사자심왕이 북부의 야만족 전쟁에서 전사하며 잃어버린 성물.

그 성물이 잃어버린 성물들을 찾아내는 성물 탐색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레온은 그 즉시 성물 호송단을 조직해 야만족들의 땅으로 파견하려 했다.

하지만 여기엔 큰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야만족들의 땅으로 향하기 위해선 제국의 국경선을 넘어야 했다.

오랜 기간 강력한 동맹국이었던 제국도 레온 대에서는 불편한 이웃이 되었는데, 바로 ‘대악마 소환 사건’ 때문이다.

35세의 가장 젊은 성배기사이자 워나이트로 활약하던 레온이 대악마를 격살하고 14대 사자심왕 아르헨 마제스티 라이온하트가 서거한 사건.

그것은 제국 변방에서 벌어진 일로 제국의 13선제후 중 한 명이 후원하던 흑마법사들이 벌인 일로 대악마는 쓰러뜨렸지만, 제국과는 큰 앙금이 남았다.

악마 소환이 감지되자마자 라이온하트 왕국이 국경선을 무단침범한 것도 있지만, 이 모든 사태의 주범인 선제후를 화형에 처해버린 탓이다.

제국은 크게 분노하며 황제까지 나서 규탄했지만, 라이온하트 왕국은 이를 무시했다.

「악마와 관련해서는 그 어떤 관용도 있을 수 없소!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지!」

이후로 제국과의 관계는 껄끄러운 이웃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국경선에는 제국군이 깔렸을 정도였다.

이 결과, 제국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앙금이 남아 대규모 성물 호송단을 거부했고 결국 호송단의 규모의 500명 안팍의 소수정예로 파견했고 결국 탐색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2천 마리의 오크와 일곱 개 야만부족을 태워죽였지만, 어쨌든 성물 탐색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제레아 경은 귀환하지 못했다.’

그 정확한 과정은 알지 못했다. 성물을 호송하던 그 누구도 살아남아 귀환하지 못한 탓이다.

레온이 끝내 악마들과의 결전을 벌이며 신들이 사자심장을 피난처로 삼았을 때, 낙원에서 제레아 경과 만난 적이 있지만, 그 역시 별다른 증언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강력한 오크에게 당했다고 말할 뿐, 죽음 이후의 일은 모르는 눈치였고.

결국 2년 뒤, 제국 황제가 300만 제국 시민들을 제물 삼아 혼돈의 악마군주를 소환하기까지 성물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이곳에 올 줄 알았다면 낙원으로 들어가 당시 참전했던 병사들의 증언이라도 모아올 걸 그랬군.’

아니,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 하리오.

생자인 레온이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제레아 경은 오다가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었어도 병사들까지 일일이 만나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보다 다른 이들은 어디에 있는 거지?’

레온이 눈을 떴을 때, 주변에는 병사들과 기사들뿐이었다. 함께 온 이들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진입 당시에 뿔뿔이 흩어진 모양.

‘게이트도 완전히 다루지는 못한다는 건가.’

이 또한 경험과 데이터를 통해 조정이 가능하겠지.

레온은 아직 소란스러운 전방으로 향했다.

“맞서 싸워라!”

“오크 놈들을 이 뒤로 넘겨선 안 된다!”

발타릭 병단.

통칭 발타릭 오크 분쇄자들.

그들은 오크들의 뼈를 갈아 만든 장신구를 만들 정도로 오크 사냥의 대표주자들이다.

“”WHAAAAAAAAA──!!”

건장한 장정들로만 이루어진 오크 분쇄자들의 족히 두 배는 될 법한 녹색짐승들이 도끼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를 가볍게 막아내는 오크 분쇄자들. 그들은 오크들의 공격을 방패로 막음과 동시에 침착하게 오크들을 찔러 죽였다.

불과 백여 명의 오크 분쇄자들이었으나 그들은 홀로 오크 네 마리를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호하는 힘은 따로 있었으니.

-솨아아아…!

오크 분쇄자들을 중심으로 발산되는 검은 연기. 그것을 들이킨 오크들이 픽! 하고 쓰러진다.

“제레아 경의 환몽지대가 형성되었다! 뒤로 물러나라!”

“이십 보 후퇴 후 재정비한다!”

검은 연기가 넘실거리는 장소에서 일사분란하게 후퇴하는 오크 분쇄자들. 그 앞에는 멋들어진 수염으로 오크의 머리통을 꼬챙이처럼 꿰고 있는 세검의 기사가 있었다.

“흐음… 오크 놈들의 기세가 심상찮군.”

“제레아 경!”

“베벌릭 중대장.”

척 하고 한쪽 무릎을 꿇는 베벌릭 중대장.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폐하께서 왕림하셨습니다!”

“뭐라고? 그럴 리가. 그분이 어째서…….”

제레아는 베벌릭의 등 뒤로 익숙한 금발의 사자심왕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제레아는 기꺼이 무릎을 꿇으며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신성의 대리인! 아리아나의 첫 번째 기사를 뵙습니다!”

레온은 제 앞에 고개 숙인 노쇠한 성배기사를 내려다보았다.

성배기사들은 성배의 성수를 마시고 각성하는 그 순간, 자신의 전성기의 육신으로 재구성된다.

레온의 경우에는 워낙 젊은 나이에 성배기사가 된 이례적인 케이스였지만, 눈앞의 성배기사는 반대의 의미로 이례적인 케이스다.

만년 수행기사 제레아. 우둔한 제레아.

가장 늙은 수행기사이자 최고령 성배기사.

그는 성수를 마신 순간에도 육신이 재구성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 늙고 노쇠한 육신이 그의 전성기라는 것이다.

“여전하군… 그대는.”

“……?”

멋들어진 콧수염과 세련된 스타일의 기사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고개를 들지 않고 군신의 예의를 지켰다.

“일어나라.”

내려오는 음성이 어색하게 일어서는 제레아.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있는 건 틀림없이 사자심왕.

최연소 워 나이트이자 가장 젊은 나이에 성배기사가 되었으며 악마들의 군세를 뚫고 대악마를 쓰러뜨린 전설적인 존재.

왕성에 있어야 할 그가 어찌 이곳에 있는가. 여러 의문이 있었지만, 제레아는 눈앞의 신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설명은 차차 하겠다. 제레아 경, 상황을 설명해주겠나.”

레온은 먼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성물 호송단이 처한 상황을 비교하고자 했다.

“예, 폐하. 저희들은 예정대로 성물을 회수해 제국 국경선으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야만족들의 땅에서 성물을 회수한 성물 호송단은 곧장 제국 국경으로 향했다. 비록 껄끄러운 관계로 전락하긴 했어도 제국과 왕국은 오랜 동맹을 이어온 이웃국가.

그들의 국경선을 넘어 왕국 국경선까지는 말을 타고 사흘이 채 걸리지 않는다.

따라서 제국 국경선까지만 도착하면 성물 호송 임무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오크들이 짐승신의 사교도들과 함께 습격했습니다. 아마도 북동부 출신의 오크들로 추정됩니다.”

오크들은 수시로 전쟁을 일으키며 국토를 횡단한다. 따라서 이곳까지 오는 것도 그리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들의 행동이다.

“오크가 사교도라곤 하나 인간과 손을 잡았다. 흔치 않은 일이지.”

레온은 오크 짐승들과 사교도들을 구분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대로 서로를 배척하고 구분한다.

애초에 오크는 제 식민종족인 고블린이나 트롤들이 아니라면 뭐든지 다 때려 부수고 봤다.

그런데 사교도들과 오크들이 손을 잡았다?

이례적인 일이었고 경악한 일이었지만…….

‘최후의 전쟁 때는 흔한 일이었지.’

레온은 자신의 치세 98년 째에 이르렀을 때부터 시작된 제국의 타락과 이종족의 준동을 기억했다.

오크들은 악마, 사교도들과 전쟁을 즐기기도 했지만, 때론 협력하기도 했다. 그 멍청한 짐승뇌들이 협력이란 단어를 안다는 게 참으로 신기했으나──

‘일어날 일은 일어난 일이지.’

레온은 그것이 98년 이전부터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겼다. 고작 2년 뒤에 제국의 황제가 혼돈의 군주를 소환하니까.

“제레아 경. 그렇다면 성물은 어떻게 하였지?”

“예, 보병과 소수의 기사만을 남겨 이곳에서 오크들을 막고 성물은 다섯 갈래로 찢어 호송했습니다. 흑수리 신의 사교도들이 공중으로 추적하는지라 최대한 찢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성물’이 담긴 호송대는 어디에 있나?”

이에 제레아는 망설임 없이 고했다.

“남서쪽 5번 호송대. 제 ‘과거’가 이끌고 있는 호송대입니다.”

* * * *

“으음…….”

베아트리체는 평소의 나긋하고 요염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게 침음을 흘렸다.

게이트 진입과 동시에 눈을 뜨니 눈앞에는 황량한 협곡만이 눈에 들어올 뿐, 일행들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은 탓이다.

“계산을… 잘못 한 모양이군요.”

게이트 마술은 그녀로서도 처음 사용해보는 종류의 마술.

좌표를 특정하고 입구를 연 것까지는 좋았으나 도착하는 좌표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계산 미스? 그렇다기엔 조금 기이하군요.’

아무리 처음 시전하는 마술이라지만, 스페로 왕국의 마술사 여왕이라 불린 자신이 이런 실수를?

그에 앞서 베아트리체는 이 넓은 협곡에서 무엇을 해야할지부터 막막했다. 그녀로서는 처음 보는 장소, 그저 레온과 관계된 무언가 말곤 없었던 탓이다.

먼저 끌고 온 말을 탄 채 무작정 가볼까 했던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렸다.

-끼이에에엑!

-계속 달려라! 놈들에게 따라잡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추격하는 짐승들과 추격당하는 기병대였다.

기사로 추정되는 몇 기의 기사들과 그에 비해 중갑이 아닌 경갑으로 무장한 가벼운 병사들은 평민 기병대로 보인다.

그들의 정체는 몰라도 그들을 추격하는 이들은 알았다.

“짐승신들의 권속들.”

기병대가 아군인지는 몰라도 적은 명확하다. 베아트리체는 미려한 손가락을 뻗어 마술을 행사했다.

-콰앙! 콰콰쾅!

광선이 하늘을 가르고, 천둥번개가 요동쳤다.

멧돼지들이 벼락에 맞아 바싹 구워지고, 흑수리들이 광선에 관통됐다.

마술사 여왕이 쏟아내는 무진장의 마술들은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폭력이 되어 짐승들을 휩쓴다.

절대적인 죽음의 여왕.

지금의 그녀는 짐승들에게 그리 보였으리라.

그리고 그건 기병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누, 누구시오!”

“제국의 마법사인가!”

기사들이 앞장 서 여왕의 앞에 섰다. 그들은 면사포를 쓴 채 얼굴을 가린 그녀를 경계하는 듯했지만, 구원을 받은 자의 호의는 숨기지 않았다.

“누구시라고 묻는다면… 이걸로 증명이 될까요?”

베아트리체는 제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기사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성력을 끌어올렸다.

꿈과 죽음의 여신 플르가 가진 성력은 어두운 자주빛을 띄었다.

“제레아 경과 같은…! 플르의 신녀십니까?!”

“아니, 저만큼 선명한 성력은 신관장급이 아니고서야…….”

기사들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 베아트리체는 싱긋 웃으며 물었다.

“그보다 기사님들? 잠시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먼저 정보 수집이 우선이다.

* * * *

“으윽….”

골이 아프다. 구대성은 자신이 무언가 둔기 같은 것에 얻어맞았다는 걸 인지했다.

설마 게이트에 입장하자마자 얻어맞을 줄이야. 다른 분들은 괜찮으실까?

“이보게! 이보게!”

연신 뺨을 두드리는 목소리. 구대성이 눈을 떴을 때는 눈앞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노인이 앞에 있었다.

“허허, 이 친구 눈을 떴구만. 어찌나 마음이 급했으면 철웅 앞에 몸을 던지나?”

“으음…….”

철웅? 자신을 후려친 건 곰이었던가? 구대성은 자신의 앞에 강철처럼 뻣뻣한 털가죽의 큼직한 곰 시체를 보고 기겁했다.

“우왓…!”

그는 뒷걸음질치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주변은 한창 짐승들에게 습격당한 건지 시체로 가득했고, 저편에서 한 익숙한 소녀가 기병과 함께 제 말을 끌고 있었다.

“아, 구대성 헌터님…! 깨어나셨군요?”

붉은 댕기머리의 소녀는 걱정했다는 듯 손뼉을 치며 구대성의 상태를 살폈다.

“한… 대리 님? 저분은?”

말을 끌고 있는 기병이 시선을 느끼곤 대답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정찰 기병대 소속 비온이라고 합니다. 기사님, 말씀 낮추십시오.”

어째서 자신을 기사라고 부르는 걸까? 그 의문은 제레아 경이라 불린 노인이 해소해 주었다.

“그나저나 편력기사들이 어찌 이 땅까지 왔단 말인가? 나 말고도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군.”

편력기사? 아무래도 이들은 자신을 편력기사로 착각한 모양이다.

구대성이 그 오류를 고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그의 눈앞을 아른거렸다.

[황혼의 제레아 경을 도와 성물을 라이온하트 국경선까지 호송하십시오.]

“성물을… 호송?”

“그렇네. 지금 우리들은 야만의 땅에서 성물을 회수해 호송하고 있다네.”

“그, 그렇습니까?”

“자네 소식이 좀 늦구만? 하긴, 이런 벽지에서까지 명예를 찾으러 떠난 편력기사니 그럴 법도 하지.”

“죄송합니다, 황혼의… 제레아 경?”

시스템 메시지에 뜬 대로 그를 호칭하자 제레아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미래의 내가 쟁취한 명예라네. 지금의 난 단순히 수행길을 떠난 수행기사(퀘스팅 나이트)일 뿐이야.”

“예?”

구대성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