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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8

88화 성물 호송단(3)

본크러셔에 탑승한 채 레온을 내려다보는 오크를 레온은 심히 거슬려 했다.

마주치는 것만으로 엎드려 빌게 만드는 권위가 깃들어 있지만, 오크는 오만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다볼 뿐이다.

“땅을 기다 벌레처럼 뒈져야 할 짐승이… 감히 본왕을 내려다 보느냐.”

왕의 분노는 왕의 손에 의해 풀어지지 않는 법. 레온은 먼저 영광을 쟁취할 기사를 찾았다.

“성배기사 제레아! 저 발칙한 짐승의 수급을 가져와라!”

“기꺼이 놈의 수급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노쇠한 듯 보이는 기사가 도움닫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무릎을 숙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초월적인 각력이 그의 몸을 하늘로 뛰어오르게 하며 협곡의 꼭대기로 그를 인도한다.

그 모습을 바라본 김재혁과 한수호는 기겁했고, 병사들은 환호했다

가장 노쇠한 성배기사.

그러나 가장 도전적인 성자.

“제레아…!”

“제레아…!”

“황혼의 제레아!”

“천둥벼락에 도전한 자!”

“가장 천한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올라온 영광의 기사!”

병사들의 갈채를 받으며 어둠의 기사가 비상한다.

막대한 위용을 떨치며 비상하는 성배기사를 보아하면 왜 성배기사가 신들이 총애하는 성자들인지, 인류 최강의 초력병기인지 알법했다.

* * * *

오크 주술사 크라칸은 다음 공격을 위해 창에 주술을 장전했다.

고크록의 주술사들은 오크답지 않게 교활하고 파괴적인 주술로 상대를 압살하기로 유명하다.

크라칸은 놈들의 공격이 닿지 않는 공중에서 안전하게 인간들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지상에서 무언가가 솟구치기 전까지만 해도…….

-쾅!

그 점 같은 것이 사람이라는 걸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으헉…!”

아무리 주술사라고 해도 오크는 오크였다. 크라칸이 본능적으로 고삐를 당기자 비행야수의 몸통이 틀어졌다.

-솨악!

소름 끼치는 예기가 스쳐 지나간 가운데, 크라칸은 목격했다.

방금까지 자신이 있던 자리를 초고속으로 통과한 사람의 형태를.

“땅을 기어야 할 짐승 따위가 왕이 노니는 하늘에 침범하느냐.”

공격이 빗나갔음에도 손을 뻗는 초로의 기사. 그 손이 뻗은 것은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본크러셔였다.

-그르럭…!

그러자 방금까지 사납게 푸래 질을 하던 본크러셔의 눈꺼풀이 무겁게 닫혔다. 당연히 날갯짓을 멈추고 추락할 수밖에 없었고.

“이, 이놈이…!”

추락하는 오크 주술사. 그것이 협곡 입구의 오크들 쪽으로 떨어지고 있음에도 제레아는 왕께 약속한 수급을 위해 기꺼이 추격했다.

-콰앙!

상공에서 추락한 본크러셔가 잠든 채 머리가 터져 죽기와 동시. 제레아는 바닥을 구르며 끄윽끄윽, 기어가는 크라칸을 좇았다.

“끄으윽…!”

힘겹게 바닥을 기며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도망치는 크라칸.

그는 다급해졌다.

“해치워! 놈을 죽여버리란 말이다!”

크라칸이 엉기적엉기적 몸을 돌리며 제레아를 가리켰다.

호송단을 습격하기 위해 모여든 수만의 오크와 야만족 군대. 그들의 게걸스러운 시선 하나하나가 크라칸이 동원할 수 있는 원군.

“혼자 온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내게는 군대가 있다!”

부상당한 볼썽사나운 몰골임에도 크라칸은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수천 오크들이 앞으로 나섰고 야만족들이 짐승화를 이룬 것이다.

고작 한 명 상대로는 과한 군대. 이조차도 전부가 아니니.

지상을 메운 오크와 짐승들. 하늘을 수놓는 검은 수리들. 이 어마어마한 군세가 퍼붓는 적의를 앞에 두고 눈살을 찌푸리는 제레아.

“이만한 숫자의 짐승들을 동원하다니. 확실히 이변이군.”

오크와 야만족 사교도들은 라이온하트 공통의 적이나 그렇다고 그들의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애초에 오크는 싸움만 할 수 있다면 족할 뿐인 무식한 짐승들. 그런 그들이 야만족을 공격한다면 모를까 협력을 한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크흐흐… 아무리 인간 대빵이라 해도 이만한 수를 혼자서는──?!!”

크라칸은 문득 자신의 눈앞이 너무 어둡다는 걸 인지했다.

아직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어둠에 잠긴 것처럼 컴컴하다. 대량의 흑수리들이 태양빛을 가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다! 이건 달라…!’

온몸의 털이 곤두세워진다. 저것에 닿기만 해도 죽을 것이라는 게 살갗으로 느껴진다.

“많군, 많아.”

제레아의 낮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깔린다. 하늘을 덮은 자줏빛 안개를 미처 피하지 못한 흑수리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키에에에에에에…!

단말마를 지르며 추락하는 수리들. 하늘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걸 용서받지 못한 대죄인들은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꿈과 죽음의 신성이시여. 죽음의 여인이시여. 당신의 과업을 완수한 기사가 바라나이다.”

자줏빛 안개가 마치 바람에 휩쓸린 것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것에 닿는 것만으로 죽음을 깨달은 짐승들이 도주했으나 바람보다 빠를 순 없었다.

“믿지 않는 자에게 죽음을, 깨어지지 않는 악몽을──”

전투조차 성립하지 않는 무자비한 학살. 크라칸이 다급하게 외쳤다.

“고, 골렘이다! 골렘으로 대응하는 거다!”

과연, 주술사 나부랭이. 저 안개가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안개임을 알아챈 것인가.

크라칸의 발악 같은 목소리와 달리 주술사들이 삽시간에 구축한 바위 골렘들은 둔탁한 발걸음으로 안갯속을 헤쳐나왔다.

그야말로 골렘만으로 이루어진 군대.

크라칸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으나 그것은 이내 불안감으로 치환했다. 왜? 어째서 저 늙은이는 이만한 골렘의 군대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시선을 보내는가?

“성배기사가 왜 지상 최강의 생명체로 불리는 줄 아는가?”

그가 느릿하게 다가오는 골렘을 향해 뛰어들었다. 거대한 바윗덩어리를 향해 검을 내리쳤다.

“그건 우리가 홀로 군단을 능가하기 때문이라네.”

수톤의 바윗덩어리가 두부처럼 잘려나갔다.

* * * *

까악, 까악… 밤의 협곡에 울리는 스산한 새소리. 무심코 고개를 든 구대성을 붙잡으며 부드럽게 짓누르는 손아귀 힘.

“조심하게. 이곳의 야행성 짐승들은 대부분이 마수들이니.”

“죄, 죄송합니다.”

미노년의 사내 수행기사 제레아는 구대성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를 수도 있네.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그들은 수풀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말들까지 엎드려 숨을 죽이고 있다. 대성과 하리의 말은 강제적으로 수면상태였고.

“근처에 수풀이 있어 다행이었네요.”

사람의 허리까지 올라오는 수풀 속에 숨어있는데, 웬 멧돼지를 탄 오크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오크가 몇 발자국만 접근하면 곧장 위장이 탄로나는 아슬아슬한 거리. 바로 그때, 제레아가 펼친 자줏빛 안개가 오크를 감쌌다.

“으, 으음…! 어, 여기는…….”

부릅 뜬 눈으로 수색하던 오크와 멧돼지가 어쩐지 취한 것처럼 초점 없는 눈동자로 몸을 흐느적거린다.

“없구우운…….”

오크는 멧돼지의 머리를 돌리더니 다른 쪽으로 향했다. 이에 숨을 참고 있던 하리가 셰에엑, 하고 숨을 내쉬었다.

“다, 다행이네요.”

이로써 몇 번째인지, 모두가 안도하며 제레아를 응시했다.

절그럭 거리는 소리를 줄이기 위해 갑옷도 벗어 말에 묶어둔 제레아는 느긋한 목소리로 일행들을 이끌었다.

“근처에 봐둔 동굴이 있네. 그쪽으로 가서 숨으세.”

그러더니 잠들어 있는 하리와 대성의 말로 향하는 제레아. 다른 말들은 입마개만으로 소리를 줄일 수 있었으나 두 사람의 말은 그런 훈련을 받지 못한 탓에 제레아의 성법으로 재운 상태다.

그 중 한 마리의 말을 집어 들어 어깨에 메는 제레아.

“제레아 경. 저희가 해도 됩니다. 어찌 귀하신 몸이…….”

제레아가 솔선수범하자 난처한 표정으로 만류하는 여기사. 그녀는 성배기사인 그가 잡일을 해내는 것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괜찮네, 스텔라 경. 지금의 나는 성배기사가 아닌 일개 수행기사일 뿐. 편하게 대하시게.”

전시 상황에서 수행기사는 전쟁기사나 왕국기사의 명령을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명령권자는 스텔라라며 못 박는 제레아.

결국 제레아는 동굴에 다다르기까지 말을 짊어졌다.

“지금부터 동굴을 막겠네. 물러서시게.”

동굴 안에 말을 내려놓은 제레아는 땅에 한쪽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를 올렸다. 대지와 풍요의 여신 데메라를 향한 기도였다.

-구우우…!

기사의 기도에 응답해 동굴을 가리는 식물들. 이 땅의 토착 식물인 만큼 동굴의 입구가 발각되거나 어색하게 보일 일도 없을 것이다.

“대단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하리와 대성은 같은 감상을 흘렸다.

여러 신성의 성법을 적재적소에서 활용하는 제레아. 그가 아니었다면 추격대는 진작 붙잡혔을지도 모른다.

“껄껄, 노구의 잡기일 뿐이네.”

제레아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면서 동굴의 안쪽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말들을 묶어두고 야영 준비를 갖춘다.

“제레아 경. 성물의 보관을 부탁 드려도 되겠습니까?”

조금 전 제레아를 만류하던 붉은머리의 왕국기사 스텔라는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성물의 함을 건넸다.

족히 1.5m는 될 법한 길죽한 함을 제레아는 고개를 젓는다.

“스텔라 경, 자네도 알지 않은가. 전시에는 방랑하는 수행기사보다 왕국군의 왕국기사에게 명령권이 있네. 내게 월권을 강요하지 말게.”

“허나, 경. 경은 꿈과 죽음의 신성께서 택하신 성배기사십니다.”

“미래의 내가 이룩한 위업을 내게 덧씌워도 곤란할 뿐이네. 자네 앞에 있는 건 그저 도전자일 뿐. 결코 퀘스트를 완수한 자가 아니야.”

“끄응…….”

곤란해하는 스텔라에게 대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낮부터 당최 이해가 되지 않은 탓이다.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만, 미래의 제레아 경과… 과거의 제레아 경이란 대체 무슨 뜻이십니까?”

“아… 방랑길에 막 오른 기사들은 생소할 수도 있겠군. 한하리 경과… 구대성 경이라고 했나?”

스텔라와 제레아는 편력기사로 오인하고 있는 두 사람의 특이한 이름에 고개를 기웃거리긴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그들의 출신과 별개로 ‘확연한 신성’이 곧 자신들의 형제임을 알려주는 증거였으니.

“그저 여신께서 과분한 은혜를 베푸신 게지.”

꿈과 죽음의 성배기사 황혼의 제레아.

그의 끝없는 도전은 왕국은 물론 대륙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우둔한 제레아라 불명예를 노래하는 음유시인들을 개의치 않고 끝없이 도전한 자.

끝내 성배의 성수를 마시고 성배기사가 되었을 때, 플르는 그의 위대한 여정을 기리며 특별한 권능을 선물했다.

고유성법 <끝없는 꿈속에서 끝내 승리할 운명이니.>

15세의 나이로 방랑을 시작해 성배기사를 꿈꾸며 도전해온 그의 일대기를 상징하는 고유성법.

꿈과 죽음의 권능을 혼합한 그만의 고유성법으로 그 능력은 간단하다.

“플르께서는 꿈꾸던 과거를 재현하고 현실에 분신을 소환하는 것이지. 지금 나는 팔십오세라네. 이제 겨우 퀘스트를 받았을 때지.”

“그런 성법이…….”

“그럼 힘이… 분산되는 것 아닌가요?”

하리의 의문에 제레아는 웃으며 부정했다.

“이 몸은 과거를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네. 힘을 재현하되 힘이 분산되는 일도 없으이.”

“와~ 그럼 무적 아닌가요?”

“일개 수행기사인 내가 강해봤자 성배기사의 무력에 비할 바는 아니네. 너무 기대하지 마시게.”

아무래도 과거의 분신을 소환한다고 해서 힘이 배가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쿠궁!

갑작스레 요동치는 협곡. 온 협곡을 흔드는 광오한 떨림. 모두가 그 떨림에 겨우 무게중심만 잡고 있던 그때였다.

“이건? 이런…! 피하게!”

제레아가 황급히 하리와 대성을 붙잡곤 동굴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바로 그 순간, 천장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쏟아져 내린다.

-콰악!

무언가가 제레아의 검과 부딪쳤다. 흙먼지가 도사리는 가운데, 몇 번인가 공격이 서로 오갔다. 구대성은 그 소리로 인해 이것이 사고가 아닌 습격이란 걸 깨달았고.

“제레아 경! 돕겠습──큭!”

자욱한 먼지 속, 스텔라도 무언가와 충돌했다.

“무, 무슨…!”

구대성이 섣불리 앞으로 나서려던 그때였다. 하리가 검을 뽑았다. 곧이어 그녀의 불길이 치솟고 와류가 되어 동굴 입구를 향해 솟구친다.

삿된 것을 태우는 불길과 흙먼지를 씻어내는 파도. 두 힘은 그녀의 바람에 따라 아군을 조금도 해하지 않으며 동굴 안 모든 것을 휩쓸었다.

-콱!

불의 와류에 휩쓸려 벽에 처박히는 습격자들. 먼지도 삼켜버린 와류가 동굴 밖으로 쏟아지자 동굴 안에 남은 건 아군과 습격자의 형체뿐이다.

“대체 무슨?”

제레아가 습격자의 목덜미를 던지더니 목을 잘랐다. 그러자 데굴데굴 구르는 모가지. 그것을 본 하리와 대성은 숨을 삼켰다.

“괴, 괴물?”

2m가 넘는 신장에 곰을 서너 마리는 합친 것 같은 덩치는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온전한 생명이라고도 보기 어려웠다.

녹아내린 피부, 눈알을 파먹고 튀어나온 촉수, 시체 썩는 것 같은 고약한 냄새와 기괴한 형태의 관절.

그 자체로 생명을 모독하고 혐오하는 것 같은 기이한 괴물들.

-기에에에에에에──

스산한 울음소리와 같은 것이 동굴 깊이 울려 퍼져 나갔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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