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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8

⊹ 88화 ⊹

카르치는 순간 발끈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대의 혀를 잡아 늘릴 때도 그렇게 놀릴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훗훗훗―]

기분 나쁜 웃음소리만 남기고 카르치는 그대로 후두둑 재가 되어 사라졌다.

도아는 어이가 없어서 재를 바라보다가 헉 하고 고개를 들었다.

“로베른!”

그녀가 후다닥 달려가 그에게 고형 포션 한 알을 내놓았다.

로베른이 포션을 삼키고 한숨을 내쉬었다.

“늦었어.”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도아는 순순히 사과했다. 로베른은 혀를 찼다.

“잠깐만, 쿠낙도……. 아, 저기 있다!”

쿠낙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도아는 그쪽으로 절뚝이며 걸어가려다가 로베른에게 붙잡혔다.

그가 그녀의 양 옆구리를 잡아 번쩍 들더니 감옥 한쪽에 놓인 돌의자에 앉혔다.

“그 멍청한 머리를 굴려. 포션이 가장 필요한 건 B급 같군.”

“아, 어. 아픈 줄도 몰랐네…….”

싸움 때문에 긴장했었나 보다, 하고 도아는 몸에서 힘을 쭉 뺐다.

이제 보니 여기저기 팔다리에 상처가 나 있었다.

‘이런 데는 포션 스프레이가 최고지.’

도아가 포션 스프레이를 만드는 사이 로베른이 쿠낙을 끌고 도아 곁으로 돌아왔다.

“쿠낙은 왜 안 깨어나지? 시술자가 죽었는데…….”

“한심하게 쳐 자고 있는 것뿐이지. 이제 평범한 꿈으로 돌아갔으니 곧 깰 거다.”

로베른의 설명에 도아는 안도했다.

“다행이다.”

로베른은 그 말에 도아를 바라보다가 비딱하게 서서 팔짱을 꼈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슬렁슬렁 온 건가?”

“설마. 쿠낙도 정신계 마법을 막아 주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했어. 그러는 폐하도 마법에 당한 거잖아.”

“짐은 일부러 당해준 거다.”

“일부러 당한 사람은 혀가 잘릴 정도로 깨물지 않아요.”

그녀가 눈을 찡그리고 물었다.

“혀는 괜찮아? 다른 데는 다친 데 없고?”

“B급이나 얼른 뿌리게.”

“아.”

정신 차린 도아가 상처에 포션 스프레이를 뿌리며 물었다.

“근데 어떻게 정신계 마법을 깼어?”

“깨는 방법은 아나?”

“응, 첫 번째는 내가 마법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지 하는 것― 인데. 강력한 마법일수록 그걸 깨닫기가 어렵다고 했지.”

게다가 행복한 꿈이라고 했다.

대부분 사람은 지금 행복하고 즐거우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어도 적당히 얼버무리며 덮고 넘어가려고 하니까.

“짐은 애초에 그게 꿈이라는 걸 인지했지. 그뿐이야.”

“어떻게?”

도아가 갸웃하고 물었다. 로베른이 싱긋 웃었다.

“짐의 희망은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거든.”

도아가 그 말에 “으음…….” 하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지만, 그 부분을 속이는 게 정신계 마법이잖아.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라는 부분이 적당히 넘어가지던데.”

“B급은 걸려본 적 있나?”

“있어.”

엘리바스가 훈련의 일환으로 걸어 준 적이 있었다.

“깨고 나면 엄청나게 부끄러워…….”

내가 원하는 게 이런 거였나, 하고 제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고 나면 부끄러웠다.

그녀의 경우는 공주님 옷을 입고 엄마와 화려한 성에서 사는 꿈이었다.

중얼거리는 도아를 보고 로베른은 픽 웃었다.

“짐은 과거를 부정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아. 이룰 수 없는 꿈을 한탄한 적도 없지.”

“우와.”

도아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런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지. 조세핀도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엘리바스의 정신계 마법이 조세핀에게는 별다른 타격도, 소용도 없었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살아난 걸 봐도 태연하게 다시 죽이는 사람.

“폐하, 멘탈 쩌네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찬사라면 받아주지.”

“찬사입니다.”

“B급도 드디어 눈이 트였군. 아까 마법 공간인 걸 알아챈 것도 훌륭했네.”

“아, 그거. 주문도 없이 마법 쓰는 것도 이상하고. 애초에 폐하도 알고 있었잖아? 그러니까 공간을 부수려고 그렇게 마나를 퍼부어 댄 거 아냐? 근데 진짜…….”

도아가 눈을 찡그렸다. 고통을 통해서 환각에서 빠져나오는 건 클래식한 방법이지만, 제 혀를 실수로 씹어 본 사람은 알 거다.

그게 얼마나 아픈지.

스스로 아주 살짝만 깨물어 봐도 정말 아프다.

근데 그걸 살점이 잘려 나갈 정도로 깨물다니.

“독해…….”

도아의 말에 로베른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B급이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 않나.”

“내가 뭘…… 어…… 어…… 으음…….”

불에 팔을 넣은 사람이 저예요.

통각 오프 기능이 있기는 한데, 그걸 말할 수 없으니까.

도아는 시선을 슬그머니 돌렸다.

“그나저나 폐하는 왜 이런 데에 갇혀 있어?”

도아가 끙끙거리며 팔 뒤쪽에 포션 스프레이를 뿌리려 하자 로베른이 스프레이를 가로채어 대신 뿌려주며 말했다.

“성안에 있는 전원이 조종당하고 있는 거 같더군. 겸사겸사 내부를 살피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긴 거지.”

“덫에 걸렸구나.”

“애초에 덫인 건 알고 있었으니 문제가 생긴 거지.”

“그럼 그런 걸로 해 둘까.”

도아의 상처가 깔끔하게 아무는 걸 확인한 로베른이 그녀에게 스프레이 통을 던졌다.

도아가 슬쩍 스프레이를 쿠낙의 얼굴에도 뿌렸다.

수분이 뿌려지자 쿠낙이 눈을 번쩍 떴고, 도아는 후다닥 스프레이를 등 뒤로 숨겼다.

“읏……. 도아 양……?”

쿠낙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서렸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이마를 감쌌다.

아직도 멍한 표정이었다.

도아가 큼큼하고 물었다.

“괜찮아요? 정신계 마법이 덫으로 깔려 있었어요.”

“마법…….”

“네, 전부 꿈이었답니다. 짜잔―.”

도아의 말에 쿠낙은 순간 놀라, 멍한 표정으로 도아를 바라보다가 얼굴을 확 붉히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괜찮아. 저도 처음 당했을 때는 진짜 부끄러웠거든요. 근데 또 좋은 점도 있어요. 이게 내 욕망이구나, 하고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할까요.”

“…… 제, 욕망이요…….”

“그렇지요.”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도아를 로베른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보며 말했다.

“그래도 욕망은 욕망일 뿐이라는 걸 잊으면 안 되지.”

“그렇기는 하지.”

도아도 픽 웃었다.

쿠낙은 얼굴을 문지르고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뺨이 뜨거웠다.

도아가 말했다.

“뺨은 괜찮아요? 아까 내가 쿠낙을 깨우려고 살짝 때렸는데…….”

“네? 아아,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도아가 스프레이를 슬쩍 뒤춤에 찔러넣으며 하하 웃었다.

양심이 콕콕 찔려왔다.

도아가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여기가 비밀감옥인 거 같은데……. 폐하 혹시 여기 다른 사람 없었어?”

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저기 살폈다.

공간 자체는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아까 넓다고 느꼈던 건 마법으로 만들어진 공간 안이었기 때문인 듯싶었다.

쇠창살이 달린 감옥은 딱 두 칸이었고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짐도 기억이 애매해서 말이지.”

“그렇군……. 그럼 역시 나가서 당나귀산으로 가 보는 게 확실하겠네.”

“이제 적은 우리가 온 걸 알았을 텐데. 성에서 나갈 건가?”

로베른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시작점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일단 로베른에게도 이야기하자면―”

도아가 돌프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그에게도 해 주었다.

로베른은 턱을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인간을 먹는 인간형 마수라……. 만약 B급 말대로 리치라면, 영혼함을 부수는 게 확실하긴 하지. 그게 그 산에 있을까?”

“거기서부터 아들이 달라진 거니까. 시작점을 찾아보는 건 늘 의미가 있는 법이지.”

로베른은 망설였다.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나간다면,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계 마법이 까다롭단 말이지.’

인간이라면 그 정도 수준의 정신계 마법을 다루는 자는 열 손가락으로 세어도 남을 정도로 적을 터였다.

여기에 자리 잡은 마수―리치이든 뭐든―는 거기에 필적할 만한 마법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유령계통이 정신계 마법에 특수하게 탁월하기는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었다.

“B급 말대로 나가서 재정비를 하는 게 낫겠군. 하지만 정문으로 순순히 우리를 내보내 주지는 않을 텐데?”

“음……. 아까 또 비밀통로가 있다고 그랬는데…….”

도아가 끙끙거리며 머리를 쥐자 쿠낙이 말했다.

“돌의자 쪽을 살펴보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아, 맞아! 내가 앉아 있는 이건가? 옆으로 밀어 볼까?”

도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밀었는데, 밀리지 않았다.

로베른이 다가와 보더니 돌의자 한쪽 모서리를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그그그극

무거운 기계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의자가 위로 올라갔다.

“공간상 옆으로 밀지는 못할 거 같아서.”

“맞네…….”

좁은 감옥이라 옆으로 밀거나 돌릴 수는 없어 보였다.

이 돌의자를 들어 올리겠다는 생각을 할 사람은 없을 테니, 이 아래 통로가 있다는 걸 알기 어려우리라.

“…….”

어둠 속을 내려다보던 도아가 고개를 돌렸다.

“일단 우리 재정비하고 가지 않을래요? 이대로 나가다가 또 정신계 함정에 걸리면 곤란할 거 같아서요.”

도아가 오두막 키링을 꺼냈다.

“여기서 열면 어떻게 되나 한 번 보죠.”

“커진 집에 깔려 죽기는 싫은데. 짐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죽음 순위권에 들고 싶지 않거든.”

“괜찮아, 괜찮아.”

도아가 그렇게 말하며 오두막을 한쪽 구석에 내려놓고 속삭였다.

“오픈.”

오두막집이 쑤욱 자라나더니 전화 부스 정도의 크기가 되어 멈췄다.

‘이건 설마.’

도아가 오두막집 문을 열자 안쪽에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역시 타디스!’

‘닥터’라 불리는 외계인이 나오는 영국 드라마를 떠올리며 도아가 히죽 웃었다.

<주인님,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슈릉슈릉

빛 가루를 뿌리며 로라가 춤추듯 회전했다.

<아니, 옷이 왜 이래요! 구멍 났잖아요! 피 냄새 나요오, 다치셨어요? 세상에, 댄버스 부인!! 댄버스 부인!! 읍읍!>

마지막은 댄버스 부인이 촐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로라를 손으로 꽉 쥐었기 때문에 흘러나온 말이었다.

“안녕, 댄버스 부인…….”

시작부터 기가 빠져 도아가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댄버스 부인이 죄송하다는 듯 치맛자락을 한 손으로 잡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냐. 나 옷 수선을 부탁해도 될까? 그리고, 로라. 공예가 특기라고 했었지? 혹시 정신계 마법을 막는 호부 같은 거 만들 수 있어?”

<읍읍!>

댄버스 부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로라를 놓아주자 로라가 살그머니 도아 앞으로 날아왔다.

<가능하지만 아직 제 레벨이 낮아서 좋은 물건을 만들 수는 없어요.>

“그래? 곤란하네…….”

정신계 마법에 대한 대책 없이 들어갔다가 또 당하면 큰일이다.

<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요.>

“뭔데?”

<주인님이 직접 만드시면 어떠세요?>

“내가?”

<네!>

로라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고, 댄버스 부인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도아의 찢어진 블라우스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도아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옷 갈아입고 올게. 두 사람은 옷 수선할 데 없어요?”

“괜찮습니다.”

쿠낙이 정중히 답했고, 로베른은 고개를 저었다.

도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로라는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쿠낙과 로베른은 혼잣말하는 도아를 보고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 저 작은 요정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의 실을 아주르 나자크가 땋으면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는 거지?”

<네! 요정의 실은 만들기 까다롭지만, 다행히도 저에게 재고가 있으니까요. 주인님께서 땋기만 하시면 되어요.>

“재고가 있어서 다행이네…….”

로라가 요정의 실을 어디에 판매하고 남았나? 라는 생각이 들어 픽 웃음이 나왔다.

로라가 아주 작은 실 꾸러미를 내놓았는데 도아의 손이 닿자 반짝반짝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

도아는 감탄하며 살살 꾸러미를 풀어서 땋아 내리기 시작했다.

“이거 크기가 팔찌를 만들긴 힘들 거 같고, 반지 정도나 겨우 될 거 같은데…….”

<괜찮아요! 어느 정도 신축성이 있거든요.>

“그럼 다행이네.”

땋아 내리는데 아주르 나자크의 힘이 사용되는지 점점 안구가 따끈따끈해지기 시작했다.

도아는 빠르게 매듭을 지어서 실반지 두 개를 만들었다.

“자!”

두 사람에게 하나씩 반지를 밀어내고 도아는 눈가를 꾹꾹 눌렀다.

열 때문에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댄버스 부인이 시원한 물수건을 가져다주어 도아가 눈을 누르며 말했다.

“어지간한 마법은 막아 준다는데, 그걸로도 막을 수 없으면 반지가 확 타오른대. 그럼 도망치는 게 좋을 거 같네.”

“감사합니다.”

“눈은 괜찮은가?”

“응, 이 정도는 괜찮아.”

도아가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후 도아가 물수건을 내린 후, 댄버스 부인에게 돌려주고 말했다.

“그럼 가자.”

❖ ❖ ❖

도아는 비밀통로를 따라 내려가며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복잡한 비밀통로를 만들었을까? 돈도 많이 들 텐데.”

“돈보다는 목숨이 소중하니까요.”

“그거야, 뭐……. 아.”

도아가 마지막 문을 열고 위를 바라보았다. 동그란 구멍이 보인다. 아무래도 마른 우물로 나온 듯싶었다. 신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바깥으로 나왔다!”

“성주가 감옥에 갇혔을 때를 대비한 탈출구였나 봅니다.”

“다행이다.”

도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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