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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9

89화 성물 호송단(4)

습격자는 다섯. 그중에 하나는 제레아가 목을 잘라냈고, 두 마리는 하리가 쏟아낸 성법의 와류에 타격을 입었다.

타오르는 신성한 불꽃, 그것은 제 적을 반드시 태운다. 닿기만 해도 백린처럼 달라붙어 모두 태울 때까지 멈추지 않건만──

-기에에에에에에──

불 붙은 괴물들은 흠뻑 젖은 채 흐느적거릴 뿐, 비척비척 호송단을 노렸다.

“불에 타고 있는데도 어떻게…….”

마치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정신차리게. 방패를 들고, 놈의 공격을 주시해. 특히 저 촉수를 조심하게, 독이 있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으려던 하리는 제레아의 목덜미를 보며 흠칫 거렸다.

조그마한 자상을 중심으로 제레아의 목덜미에는 검푸른 멍이 퍼져 있었으니까.

“제, 제레아 경…!”

“적에 집중하시게. 지금은 그것이 우선이니.”

이곳에서 최고참 베테랑 기사답게 제레아는 개의치 않으며 검을 집었다. 이에 네 마리의 괴물들과 성물 호송단의 전투가 재개된다.

-키에에에엑─!

-기아아아아─!

괴물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달랐으나 행동양식은 같은 종인 것처럼 동일했다.

촉수로 독침을 놓을 기회를 노리면서 곰처럼 거대한 발톱을 크게 휘두른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어지간한 생채기는 가볍게 무시하며 밀고 들어왔다.

‘강해…! 거의 A급 몬스터 수준이야!’

주황색 게이트에서도 중간보스로 나올 법한 까다로운 공략법과 순수한 신체능력. 거기에 고통까지 무시하는 터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하리는 신의 신녀다. 선택받은 성법 사용자였고, 힘의 크기만 따지면 이 괴물들하고 비교될 대상이 아니었다.

-콰아아아…!

불길에 닿는 것 정도로는 밀려나지 않는다면 아예 전소시킬 만큼 커다란 불길로.

하리의 불꽃이 독침을 찌르는 촉수를 전소시키며 괴물을 통째로 태워버렸다.

-기이이이…….

성대조차 순식간에 타버린 건지 목소리조차 죽어가는 괴물. 그러는 사이 제레아와 기사들도 착실하게 괴물들을 쓰러뜨려 갔다.

“기수들 방패를 쥐고 버티게. 2초면 충분하네.”

“명 받잡겠습니다!”

평민 기수들은 방패 하나만 믿고 괴물들의 돌격을 저지했다. 경기병에 평민이었으나 그 방패술은 충분히 숙련된 경지. 그들은 부족한 완력과 중량을 서로에게 의지하며 보탰다.

-궤에에에에엑!

자신들의 돌격이 막히자 괴성을 지르는 괴물들. 하지만 집단전에서 중요한 건 개인의 강함이 아닌 통솔된 전투력.

“촉수만 조심하면 된다.”

제레아와 기사들은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촉수를 회피하며 모든 생물의 급소인 머리를 찔렀다.

한 번으로 두개골을 관통하지 못했다면 그 즉시 물러나 다음 기사의 검에 맡겼고, 몇 번이고 찌르고서야 괴물들이 축 늘어진다.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을 때였다.

-구워어어어어어…!

방패벽에 저지되었던 괴물이 무언가를 목격하고는 미친듯이 달리기 질주하기 시작했다.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질주의 끝에는 혼잡한 전투 중에 방치된 ‘성물함’이 있었고.

“어, 어어?!”

하필이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구대성이 무심코 그 앞을 가로막았다.

“구, 구대성 헌터님!”

하리가 외쳤지만, 이미 괴물은 구대성의 코앞까지 닥쳐오고 있었다. 촉수를 휘두르며 돌진하는 괴물에게 반사적으로 검을 찔러 넣는 구대성.

-콰악!

운이 좋았던 걸까? 구대성이 찌른 검은 괴물의 가속력과 더해져 두개골을 관통당했고, 그것으로 절명했다.

“쓰, 쓰러뜨렸…!?”

하지만 무너져 내리면서 그대로 구대성을 덮치는 괴물의 신형.

달리는 속도까지 있었기에 거의 충돌과 가까운 충격력이 그대로 전해진다.

“크윽! 내 팔…!”

깔린 위치가 잘못되었을까, 그는 격통이 느껴지는 팔을 애써 빼내려 했지만, 어째선지 팔이 말을 듣질 않는다.

“끌어내게!”

괴물에 깔린 구대성을 구조하는 기사와 기수들. 하리도 조막만 한 손으로 힘껏 괴물의 시체를 밀었고, 구대성은 겨우 자신을 압박하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대성 헌터님! 다치지… 앗.”

곧장 그를 챙기던 하리는 구대성의 부러진 팔을 확인하다 안색이 새파래졌다.

촉수에 휘둘려 찢어진 옷 사이로… 검푸른 반점이 보인 탓이었다.

“중독됐군.”

구대성 뿐만이 아니다. 처음 습격에서 하리와 대성을 구했던 제레아도, 몇몇 기사와 기수들도 괴물을 상대하다 촉수에 찔렸다.

“크으윽…….”

“독이…….”

전투의 순간에는 과다분비된 아드레날린으로 미처 신경 쓰지 못했지만, 속속 쓰러지는 기수들. 기사들은 어찌 버티는 모양새였으나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해독제를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인데, 어찌?”

“오크 주술사들이나 사교도들이 무언가 기이한 저주라도 걸은 괴물일까요?”

왕국기사로서 십수 년을 복무한 스텔라는 이런 혐오스러운 생물은 처음 보았다. 그건 제레아도 마찬가지.

처음 보는 생물인만큼, 해독제를 찾는 것도 불가해 보인다. 하지만…….

“이 독, 내가 아는 독인 것 같군.”

“예? 제레아 경이요?”

그 말에 집중되는 시선. 가장 먼저 독에 당했던 그는 제 몸에 반점을 살피며 독에 대해 추론한다.

“바다산호의 신경독일세. 즉효성의 독이고 오래 방치하면 죽음에 이르겠지.”

“바다산호 말입니까? 어째서 바다 생물의 독이 육지의 괴물에게…….”

“그뿐만이 아니야. 앞발을 아울베어의 것과 같고 피부는 갑피 멧돼지의 것과 비슷하군. 여러가지가 섞였어.”

“…….”

그 말에 기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금기였던 탓이다.

생명을 합성하고 창조하는 건 신들의 영역. 결코 인간에게 허락되어선 안 되는 금기.

“키메라 합성수로군. 흑마법사들의 짓거리야.”

* * * *

제레아는 금방 해독제를 만들어냈다. 키메라를 해체하더니 바다산호의 촉수에서 해독제가 될 재료를 만들어낸 것이다.

“먼저 기수들부터. 그들이 급하네.”

제레아는 저항력이 낮은 기수들부터 해독제를 먹였다.

“크으… 감사, 합니다.”

“제레아 경께서… 먼저 해독하셔야…….”

“나는 신경 쓰지 말게. 그대가 왕국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충성하듯이, 기사된 자, 평민을 수호하기 위해 맹세를 했네.”

귀족과 기사의 의무. 그들이 먼저 희생한다. 이 마땅한 의무를 기사들 중 그 누구도 저버리지 않았다.

문제는 기사들에게 해독제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 개분이… 부족합니다.”

기사 중에 중독된 건 셋이었다.

수행기사 제레아와 왕국기사 스텔라, 편력기사로 여겨지는 구대성.

“스텔라 경부터 해독제를.”

제레아는 반쯤 강압적으로 붉은머리 여기사에게 해독제를 넘겼다. 이 자리에서 명령권자인 그녀가 우선 해독되어야 함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제레아 경…….”

스텔라는 해독제를 들고 망설이다 못내 그것을 삼켰다. 그녀의 지휘관으로서의 의무 탓이다.

“으으… 죄송해요. 제가 괴물 한 마리를 태워버리는 바람에…….”

하리의 자책에 제레아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전투 중엔 어떤 일이 있어도 모르는 법일세. 스스로를 탓하지 말게.”

그러곤 구대성에게 다가가 해독제를 권하는 제레아.

“제가….”

구대성은 해독제를 받으면서도 망설였다. 그는 이 호송단에서 최약체다. 그런 그와 분신체라곤 하나 수행기사인 제레아.

과연, 둘의 가치를 비교할 껀덕지나 있을까?

어째서 이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해독제를 건넨단 말인가.

“어서 받으시게. 이 늙은이의 팔이 무겁구먼.”

구대성은 한 치의 망설임 없는 그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며 해독제를 받아들었고, 그것을 삼켰다.

가루로 된 해독제과 텁텁하게 입안을 맴돌았으나 하리가 건넨 물을 마시면서 씻어내렸다.

“입구를 보다 은밀하게 숨겼네. 놈들의 코가 좋더라도 이 동굴에 한해서는 쉽게 추적하지 못할 것이야.”

제레아는 마지막 성력을 짜내 호송단의 안전을 도모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잠시나마 쉴 것을 권유했고.

“크음…!”

“제레아 경!”

그리고 그의 한계는 결국 찾아오고야 말았다.

모닥불을 지핀 채 그의 주변을 조금이라도 편하도록 모포를 까는 기사와 기수들. 분신체라곤 하나 그는 명예롭게 죽어가고 있었다.

“제레아 경…….”

기사들… 그리고 그의 양보로 목숨을 구한 대성. 그들의 슬픈 시선에 노쇠한 기사는 말했다.

“안심하게. 이 몸이 죽더라도 다시 과거의 내가 자네들과 함께할 것이니.”

성배기사가 재현해낸 자신의 과거는 그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가 수행해낸 숱한 과정들, 그 인생의 전성기들은 ‘플르의 과업’을 수행해낸 일곱 번만큼 허락되었다.

다시 말해 제레아는 앞으로 여섯 번의 재소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한 분뿐이지 않습니까.”

구대성의 말이 맹점을 찔렀다. 비록 재현된 과거라고 해도 죽음은 죽음이다. 그 자신의 죽음을 어찌 이리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의 본신은… 죽음의 여인께 가호를 받았네. 그분께서는 본신과 이어진 내게도 은혜를 베푸시지. 그러니… 슬퍼할 것 없네. 나의 죽음은, 안온할 것이니.”

정작 본인은 담담한데, 그를 지켜보는 이들이 더 슬퍼하는 죽음이었다. 제레아는 구대성을 향해 말했다.

“젊은 기사여, 그대는 자격이 있어. 그대 덕에 성유물이 삿된 손에 더럽혀지지 않았네.”

구대성은 자신도 얼떨결에 해낸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애초에 하리라면 모를까 자신은 편력기사 축에도 끼지 못하는 반푼이다.

그저 운 좋게 망치를 조금 들었을 뿐인 자신은 이 착각이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제레아의 시선이 모두에게 향했다.

“스텔라 경.”

“듣고 있습니다, 제레아 경.”

“이 임무는… 함정임이 명백해졌네. 문제는 그 배후겠지…….”

오크와 야만족들의 드문 연합과 습격이야 성물 탐색의 과정에서 생긴 해프닝으로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끈질긴 추적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의 습격… 그리고 괴물들이 목숨을 도외시하며 우선시했던 성물함의 탈취까지.

“누군가가 성물을 노리고 있어……. 결코… 결단코 성물이 넘어가선 아니되네.”

“물론입니다, 제레아 경.”

“그대는… 나를 황혼의 제레아와 동일시하고 있네만… 나는 그저 우둔한 제레아일 뿐. 부활할 나의 과거 또한 그리 대하시게. 이 성물을 사자심왕께 전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소모해야 할 것이야.”

“…….”

제레아는 말을 잇지 못하는 스텔라를 바라보다 찾아오는 죽음에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흐릿해져가는 시선이 천장을 응시했다.

“라이온하트에… 영광 있으라…….”

그는 마지막까지 기사였으며, 죽음의 가호는 기꺼이 그의 최후를 안온하도록 감쌌다.

* * * *

-궤에에에에엑…!

-가아아아아악…!

협곡에 울려 퍼지는 괴성. 이에 주변에 있던 오크 전사들과 짐승들이 뒷걸음질 쳤다.

“으음…….”

짐승신들의 권수들은 물론 오크들까지 꺼림직하게 하는 키메라 괴물들. 추적대의 대장은 침을 뱉으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저런 괴물 새끼들과 함께 추적하라니.”

“그러게 말이다. 아무리 ‘대족장’의 명령이라지만…….”

본래라면 마주치는 순간 도끼부터 찍었을 야만족 사교도들과 손을 잡은 데에 이어 이 모든 사태를 주도한 놈들과도 결코 충돌하지 말라는 명령을 단단히 받았다.

본래 오크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족장의 명령이라도 쌩까버리는 이들이었으나 그들에게 명령을 내린 게 하필이면 대족장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힘과 도끼 앞에서는 아무리 강력한 오크 대전사라 할지라도 두려움에 무릎을 꿇어버릴 테니까.

“그래도 편리한 건 있다. 이 괴물 놈들이 인간 냄새 하나는 잘 맡거든.”

오크의 주변에는 찢겨 죽은 말들과 기사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성배기사 제레아가 다섯 갈래로 찢은 호송대 중 하나.

“젠장! 그 물건은 안 보이는군! 벌써 두 번째 꽝이다!”

이번에도 허탕이란 것에 분통을 터뜨리는 오크. 오크 사냥신 스쿠닉을 섬기는 추적의 달인들이 두 번째 허탕이라니.

“남은 호송대는 몇이지?”

“셋이다.”

“이 키메라들… 귀환하지 않은 놈들도 있나?”

“셋 전부다.”

다시 말해 셋 모두 당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 키메라들의 힘을 아는 오크들은 남은 세 호송대가 만만찮은 존재임을 직감했다.

“일단 모두 추적한다. 아직 협곡을 빠져나가려면 멀었으니까.”

“그리곤?”

“가장 약한 놈들부터 쳐야겠지.”

오크 추적대는 합리적인 추론으로 정답을 찾았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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