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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8. 거지남매 – 물

“레나야!”

레오가 황급히 달려가 레나의 몸을 뒤집었다. 동생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실눈을 떴다.

“레나야! 괜찮아?”

“오빠… 나 어지러워…”

급히 손을 머리에 얹으니 화로에 손을 넣은 듯 후끈한 열기가 손을 데웠다.

온통 지저분하게 덮어놔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목 아래로 가슴까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피부가 울룩불룩 돋아나 있었다.

“자, 잠깐만. 오빠가 치료해줄게. 걱정하지 마.”

황급히 레나를 끌어 벽에 기대 앉혔다.

머리에 드는 생각이 하나도 없다.

‘병원! 병원! 아니지 여긴 병원이 없지. 약국? 진료실?’

레오는 급하게 골목을 빠져나와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았다.

“죄송한데요! 죄송합니다! 호, 혹시 병원, 아니지, 약국… 아니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 의사 선생님 어디 계신지 아세요?”

웬 거지에게 느닷없이 붙들린 남자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나도 여기가 처음이라 잘 모르겠구나.”

레오는 더 듣지도 않고 오가는 사람들을 여럿 붙잡아 질문을 던졌고, 한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약방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다시 골목으로 돌아와 의식을 잃은 동생을 안아 들고 헐레벌떡 뛰었다.

얼마 뛰지도 못했는데 그의 입에서는 단내가 풍겼고, 팔은 끊어질 듯 위태로웠다. 레나도 삐쩍 말라서 가벼웠지만, 레오도 근육이라 할 것이 없었다.

그는 안아 든 레나를 허벅지로 받쳐가며 힘겹게 걸었지만 팔이 점점 아래로 쳐졌다. 소름 끼칠 정도로 축 늘어진 동생의 다리가 허벅지를 타고 미끄러졌다.

“저, 허억, 저기. 누가 좀 도와주… 세요.”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돌아봤지만, 행인들은 거지 남매를 피했다.

그때, 땀과 오물로 범벅이 된 레나가 희미하게 실눈을 떴다.

오빠는 나를 안고 있었다.

오빠의 얼굴이 올려다보이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오빠… 나 꿈꿨는데…”

레나가 메마른 입을 달싹여 뱉은 말은 레오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동생을 끌고, 안아 들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걸렸을까. 천신만고 끝에 약방에 도착했다.

레오의 몸에서는 땀이 비처럼 흘러내렸고 팔다리는 사정없이 떨렸으나, 약방 앞을 지키는 청년은 무심하게 그를 가로막았다.

“허억. 저기요, 죄송한데요. 레나가…”

혼절한 레나는 품에서 고개가 뒤로 꺾인 채 덜렁거렸다.

청년은 싸늘하게 레오를 밀치며 말했다.

“저리 가. 돈 낼 거 아니면.”

“돈은 없는데 제가 꼭…”

“돈 없으면 안 돼. 꺼져.”

청년이 다시 그를 밀쳤다. 아예 작정하고 밀친 듯 레오는 레나를 안은 채 뒤로 넘어졌다.

그는 동생을 눕히며 다급하게 빌었다.

“그게 아니라, 레나가 지금, 제가 얘를, 그게… 만나는 게 몇 번째인데, 저기… 저, 어떻게든 할 수…”

“뭐라는 거야. 저리 썩 안 꺼져!”

레오는 무릎으로 기어가 청년의 다리에 매달렸다.

“제발 자, 잠깐이면 돼요! 지금 레나가…, 아까 쓰레기통을… 그게 전 괜찮은데 레나만, 저는 안 봐주셔도 돼요. 그냥 레나만…”

순간 레오의 눈앞이 번쩍였다. 청년이 뺨을 때린 것이다.

“뭐라고 하던 돈 없으면 안 돼.”

“저기 그! 아! 잠시만요! 제가 여기 이번에 얻은 건데 잠시만요.”

그는 목에서 목걸이를 풀러 청년에게 내밀었다. 청년은 이게 뭔가하고 받았다가 반쯤 쓰러진 레오 앞으로 도로 던졌다.

“이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빨리 안 꺼져?”

레오는 어찌할 줄 모르고 주변을 돌아봤다. 주변을 메운 인파는 쓰러진 남매를 빤히 구경할 뿐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더럽다느니 불쌍하다느니 하는 말이 웅성거렸다.

청년은 모질게 손가락을 접었다.

“셋 셀 때까지 얘 들고 안가면 맞는다. 하나.”

레오는 탈진해서 뭐라고 말할 기력도 없었다.

입을 벌리고 청년의 손가락만 쳐다봤다.

“둘”

“저기요.”

보랏빛 진한 색감의 치마를 입은 여인이 인파를 헤치고 나타났다. 그녀는 거지 남매를 가리키며 말했다.

“돈 드릴 테니까 둘 다 안으로 들여보내요.”

“…네. 알겠습니다.”

청년은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레나를 안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인이 레오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가, 감사합니다. 꺼어어…”

숨을 쉬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제야 꽉 막혔던 기도가 뚫리며 그는 들숨을 몰아쉬었고, 청년이 다시 나와서 이번엔 레오를 번쩍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이 풀린 레오는 의식을 잃었다.

* * *

레오가 눈을 뜬 곳은 신발가게였다.

어리둥절해져서 주위를 둘러봤다.

좁은 가게. 그는 작은 간이침대에 누워있었다.

바닥에는 신발이 빼곡히 쌓였고, 벽에는 갖가지 크기의 가죽과 연장이 매달렸다. 이 침대를 제외하면 모두 뽀얗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멍청하게 앉아있다가 레나에게 생각이 미치자 벌떡 일어나 외쳤다.

“레나야! 레나야!”

“…일어났어? 이리로 와.”

가게 뒤로 붙은 문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레나야!”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니, 천장이 낮은 방이 나타났다.

방에는 좁은 방을 반쯤 메우는 작은 침대가 있었는데, 거기엔 깨끗하게 씻겨진 레나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었다.

침대 옆에는 어떤 여자가 앉아있었다.

레오는 그대로 달려가 레나를 붙들었다. 머리에 손을 대보니… 아직도 불덩이다.

“진료는 받았어.”

고저가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는 보라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약방 앞에서 이 치마를 본 기억이 났다. 우릴 구해준 사람이다. 하지만 레오는 감사의 인사보다 레나의 안위를 먼저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레나는 괜찮나요?”

“의사 놈들이 뭘 알겠어. 사제들 치유에 밀려서 순 돌팔이뿐인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약도 받아왔고, 이미 먹였다는 뜻이야. 의사 놈 말로는 허약한 몸으로 아무거나 주워 먹다 보니까 이렇게 된 거라는데.”

여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 진찰은 나도 하겠다.”

어쩐지 이 여자의 말은 논점이 빗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말투에는 만사가 부질없다는 듯한 퇴폐적인 어조가 깔려 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기다려야지. 방법이 있나.”

“혹시 사제님을 찾아가면…”

“겉에 난 상처면 몰라도 이런 병 치료는 엄청나게 비싸. 미안하지만 그건 나도 감당이 안 돼. 이 가게를 팔아도 안 될걸? 그건 좀 싫네. 여긴 나한텐 꽤 소중한 곳이라서 말이야.”

“아, 아니에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멀쩡하고 매력 있게 생긴 젊은 여성인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와 대화하면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앞에 있는 레오에게도 누워있는 레나에게도 향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싸늘한 군중을 헤치고 남매를 도와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뭘, 내가 좋아서 한 일인걸. 아무튼, 나을 때까진 여기서 지내. 어차피 손님도 안 오니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바닥을 뒤집으며 말했다. 그리고선 휙 나가버리려는 그녀를 레오가 붙들었다.

“저기 잠시만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절대로 잊지 않을게요.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뭘?”

“그…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카시아라고 불러. 내 이름이야.”

힘이 풀린 듯 권태롭기까지 해 보이는 눈빛이 처음으로 레오에게 닿았다. 카시아는 잠깐 그를 응시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레오는 짧게 그녀를 배웅했고 이미 해가 진 것을 알았다. 약방 앞에서 기절해서 그대로 잠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가게 앞을 잠시 둘러보고는 방으로 돌아왔다.

쥐죽은 듯 누워있는 레나, 그녀는 앓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레오는 동생의 마른 손을 붙들고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아는 신이란 신은 다 찾아서 생전 안 하던 기도를 올렸다. 틈틈이 레나의 땀을 닦아주고 행주도 갈아줬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린 것 같아 물을 먹이고 싶었는데, 어떻게 먹여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안절부절못했다.

한밤중이 되어서 레나의 숨이 가라앉자 조금 안심이 되며 의문이 떠올랐다.

‘얘가 왜 아픈 거지? 닭고기 때문은 아닐 텐데. 레나는 나랑 똑같은 걸 먹었어.’

오히려 레나한테는 더 깨끗한 것을 먹였다. 두 사람이 거의 같은 걸 먹었으니 한 사람은 멀쩡하고 다른 한 사람만 아픈 일은 없어야 했다.

딱히 레오가 레나보다 건강한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몇 살 더 많긴 했지만, 이렇게 심각하게 아파야 할 거라면 그에게도 뭔가 신호가 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멀쩡했다.

동생을 안고 뛰느라 팔다리와 허리가 쑤신 게 전부다.

‘시나리오가 시작되면 무조건 레나가 아플 예정이었다? 아픈 것이 {이벤트}인가?’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당장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레나가 아프고, 약방 앞에서 카시아에게 도움을 받는 것까지가 이어지는 {이벤트}였을 수도 있지만, 이건 {이벤트}라고 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했다.

아무리 초반 난도가 높은 시나리오여도 이렇게 심각한 병에 걸린 상태로 시작하는 건 클리어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시간을 되돌리며 고민하니 번쩍 짚이는 부분이 있었다.

그는 이틀 동안 계속 레나와 붙어있었다.

딱 한 번만 빼고.

시나리오가 시작된 직후 닭고기 부산물을 얻을 때, 레오는 동생을 잠시 골목길에 두고 갔었다.

시나리오가 시작하자마자 목이 마르다고 했던 애였다. 그런데도 같이 닭고기를 먹고도 벽에서 흐르는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오늘도 물을 고작 몇 모금만 마시고 양보하려 했다.

그리고, 어제는 비가 왔었다.

‘아아악! 얘를 두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레나는… 내가 없는 사이에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고인 물을 마신 거다!

도시 길바닥에 고인 물은 정말 더러웠다. 이 시대엔 수도시설이 그리 발전하지 않아서 똥물을 길바닥에 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어제는 비가 내려서 쓰레기통의 오물도 씻겨 바닥에 고였을 터였다.

그런 물을 마셨으니, 되려 건강한 게 이상한 일이었다.

‘제발 레나 좀 살려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레오는 손이 발이 되도록 밤새 빌었다. 기도 말고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기도가 닿았는지 새벽녘에 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나 꿈꿨는데.”

“…레나? 괜찮아?”

이마에 손을 올려봤다.

아직도 펄펄 끓는다.

“레, 레나야. 물 마셔 물. 여기 물 있어.”

“오빠 왜 울어? 꿈에선 빙글빙글 돌려주면서 웃고 있었는…”

“레나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물 마시고 자! 얼른! 제발!”

“……?”

레나의 또박또박한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동생은 왜 그러냐는 듯 한동안 눈을 깜박이더니 순순히 고개를 들어 물을 마시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레나는 깨어나지 않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그 뜨겁던 체온을 다 잃어버렸다.

[ 레나가 죽었습니다. ]

[ 레나 키우기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레나 드 예리엘 ]

[ 최종직업 : 무직 ]

[ 결혼 상대 : 미혼 ]

[ 레오 드 예리엘 ]

[ 최종직업 : 구두공 ]

[ 결혼 상대 : 크세니아 ]

[ 거지남매 엔딩 : 미인박명 ]

– 루티나 왕성에서 태어난 레나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레오와 넓은 들판에 숨겨졌고 눈을 떴을 때 들판은 온통 시체로 가득했다. 이후 레나는 레오를 따라… (중략) …레나는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죽었다. –

– 루티나 왕성에서 태어난 레오는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다.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레나와… (중략) …동생이 죽고 카시아와 함께 살던 레오는 독립해 자신의 신발가게를 차렸다. 우연히 만난 여자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아이는 낳지 못했다. –

레나는 병을 이겨내지 못했다. 오랫동안 허기로 약해질 대로 약해진 소녀가 견뎌낼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레오는 폐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끼며 초췌한 안색으로 누운 동생의 사진만 멀거니 쳐다봤다.

이대로 모든 게 무너져내리는 건 아닐까 싶었을 때, 레오의 정신이 부서져 내리며 민서가 드러났다.

‘멍청한 놈. 쓸모없는 놈. 나가 자빠져 뒈져버릴 놈!’

민서도 괴로움에 발악했다.

혈육이 떠난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눈앞에서 레나와 레오의 이야기가 올라가는데도 단 한 글자도 읽지 못했다.

내 부주의로 동생이 병에 걸려 죽었다. 자책감이 그를 난도질했다.

그 살 떨리는 고통에 민서는 도피를 선택했다. 그는 서서히 잦아드는 동생의 숨결을 잊어버리려 애썼다.

‘이런 일은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니야…’

기어이 민서는 지난 이틀을 가슴 깊이 묻어버렸다.

없었던 일처럼.

모두 잊어버렸다.

[ 레나 키우기를 클리어하지 못하셨습니다. ]

[ 레오 당신은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동생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위로의 뜻으로 {초기 자금}이 지급됩니다. ]

[ 다시 시작됩니다. ]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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