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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9화 기사도(2)

말에서 내린 듀라한을 보며 레온은 제 짐작이 맞았다 여겼다.

“과연, 명예로운 기사로다.”

레온은 허공에 검을 소환했다. 낡았지만 강건한 기운이 느껴지는 철검이다.

갑옷은 없었다. 오랜 시간 전쟁을 반복해오며 철과 대장장의 신 헤토께서 벼려주신 갑주는 부서지고 말았으니.

레온은 한 손으로 대검을 들고 허리춤에 머리를 끼고 있는 듀라한을 보며 배려의 한 마디를 건넸다.

“목은 내려놓아도 좋다. 그대의 검술, 본디 양손검술일 터. 한 손으로 휘둘러서야 진정한 결투가 성립되지 않는다.”

“……저, 폐하.”

그때,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하리.

“무슨 일이냐?”

“그… 듀라한은, 머리를 베지 않으면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 머리를 자르지 않고 대체 어떻게 듀라한을 이기겠다는 건가?

“상관없다. 승부를 가르는 건 기사들의 명예다.”

아니, 그러니까 안 죽는다니까요? 하리의 말을 가볍게 씹은 레온은 제 머리를 스켈레톤에게 맡기고 양손으로 검을 쥐는 듀라한을 보았다.

“빛과 정의의 여신 아리아나의 첫 번째 기사. 드라고니아의 대공이자 라이온하트의 사자심왕. 영예로운 기사에게 도전을 윤허한다.”

그 시대착오적인 소개와 오연한 선언이 채 끝나자마자였다.

절걱거리는 갑옷을 입고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듀라한이 내리찍듯이 대검을 그었다.

쿵! 하고 아찔한 소리가 났지만, 레온은 대검에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검날과 검날이 서로를 밀어내며 힘겨루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히, 힘은 호각인가?”

몸을 추스르던 김 과장의 말을 하리는 속내로 부정했다.

레온의 검은 평범한 롱소드다. 반면 듀라한의 검은 그 두 배는 될법한 그레이트 소드. 거기에 위에서 체중을 실어 내리찍는 자세의 유리함에도 레온은 조금의 미동도 없다.

‘무슨 힘이…….’

완력에서 레온은 듀라한을 압도하고 있었다. 오히려 저 상황에서 여유가 있는 쪽이 레온이다.

듀라한이 검날에 손을 집고 그대로 내리찍으려 든다. 하지만 그 찰나, 검의 날을 빗겨내듯이 비튼 그는 순식간에 소드 레슬링으로 듀라한의 가슴께 심장을 겨눈다.

“한 번이다.”

그 선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듀라한이 두 발자국 물러나더니 몸을 회전시켰다.

광풍을 일으키며 체중을 실은 그레이트 소드가 있는 힘껏 휘둘러진다. 방어째로 부숴버릴 광격.

그것을 처음에는 검날로 그것을 받아내는가 싶더니 그대로 폼멜로 짓눌렀다. 땅에 깊숙이 박힌 롱소드가 그대로 대검을 막아선다.

-……!

다음 순간, 발차기가 듀라한의 가슴을 찬다. 재빠른 발차기보다는 발로 밀어내는 것에 가까운 행위다. 그러나 어째선지 듀라한은 자세가 무너져 내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곧장 검이 겨눠지고 레온이 말한다.

“두 번.”

그 일련의 모습을 지켜본 헌터들은 대체 무슨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레온의 발차기는 가벼운 밀기 정도에 가까워 보였다. 그런데도 듀라한은 자세가 무너졌다.

누가 보았더라면 듀라한이 레온을 봐준 것처럼 보일 정도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대단해.”

“하리야?”

그와중에 방금 그것을 이해한 건 하리 뿐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검도 유망주로서 오랜 시간 검을 배워왔다.

권투니 검술이니 하면 주먹과 칼질만 잘하면 될 것 같지만, 어떤 무술이든 강조하는 것이 있다.

뿌리처럼 박은 하반신에서 오는 무게중심과 보폭 이동의 묘리.

가벼운 잽이라도, 견제구로 휘두르는 손목 치기조차도 모든 것이 하반신의 무게중심에서 시작된다.

레온이 한 것은 그 무게 중심을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일견 발차기를 하는 오른발에 힘을 집중한 것 같지만 진짜는 지면을 디디던 왼발이야. 마력으로 지면에 파공성을 일으켜 반경 2.5m 내에 작은 진동을 일으켰어.’

발폭만으로 지면을 흔드는 기술. 상대방의 자세를 흩트리면서 자신의 자세마저 흐트러지는 양날의 검 같은 기술이다.

그것을 레온은 아주 자연스럽게 행하며 듀라한의 보폭을 무너뜨렸다.

무너진 무게 중심에서 발차기는 아주 살짝 낭떠러지 앞에 선 사람을 민 것에 불과한 행위.

그 오묘한 기술의 묘리를 그 짧은 새에 자연스럽게 해낸 것이다.

“자세를 다시 잡거라.”

듀라한은 절그덕 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그 뒤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 * * *

사령기사 듀라한은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는 기사였다.

그러나 사령술사의 저주를 받아 사령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었다.

이제 그 사령술사의 속박은 사라졌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알 수 없는 곳에 틀어박혀 침입자들을 격퇴하는 일뿐.

그 무료한 작업을 반복하면서 이번에도 침입자를 격퇴하고자 군대를 지휘했다.

이번 침입자는 그럭저럭 강한 인간도 있긴 했지만, 그리 대단한 자들은 없었다.

“훌륭하다!”

단 한 남자만을 제외하고.

스스로를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라 자청한 자.

그는 자신에게 당당히 기사로서의 결투를 요구했다.

실로 오랜만이었다.

자신을 기사로 대하고, 결투를 청하는 기사는.

하지만 그것이 쭉정이의 난국을 헤쳐나가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높다. 말에서 내리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들었다면 누구나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듀라한은 그런 멍청한 소릴 하는 녀석에게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 분노했을 것이다.

저이를 보아라.

저 기사를 보아라.

수많은 전장을 넘어선 베테랑의 풍모와 올곧은 자세.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는 별의 눈동자를.

저자야말로 기사들이 추구하는 명예의 끝.

모든 기사들이 우러러 경외하고 도전해야 할 기사들의 왕.

저이를 보고 어찌 그러한 수작질이라 연상할 수 있겠는가.

“세 번이다. 더 하겠는가?”

-…….

세번째 죽음. 누가 보았다면 어차피 갑옷이 막아줬을 텐데, 억지가 아니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듀라한은 알았다. 이 남자가 자신을 압살하려 들었다면 언제든지 압살할 수 있었음을.

모든 기사들의 우상과도 같은 이 기사는 자신에 가르침을 하사하고 명예를 드높여주신 것이다.

그렇기에 듀라한은, 기사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사는, 이 사자심왕은… 사령으로 전락한 자신을 명예로 대해주는가.

그에겐 사령기사로서 가진 강력한 힘들이 있었다.

모든 물리력을 80%까지 상쇄하는 사령갑옷.

듀라한의 머리가 사용할 수 있는 사안의 흑마법진.

스켈레톤 병사들을 규합하는 뼈다귀들의 장군 등.

그가 사령기사가 되며 손에 넣은 강력한 힘들. 하지만 그것들 무엇 하나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기사로서, 올곧게, 사술 따위 없이 검과 검을 부딪치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 남자와 검을 맞대고 싶다.

이제는 잊고 살았던, 언젠가 명예롭게 세상을 떠돌며 명성 높은 기사들과 대결했던 것처럼.

“열 번이군. 점점 검술이 정교해지는군. 생전의 기억은 잘 더듬어 올랐는가?

아아.

명예로운 기사시여.

듀라한은 이 기사의 의도를 깨달았다.

사령술사의 비참한 종자가 아닌 기사로도 대하며, 그에게 영광의 시대를 되돌려준 것이다.

“더 하겠는가, 기사여.”

듀라한은 스켈레톤들에게 자신의 머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자신의 머리를 바쳤다.

자신의 처분을 맡기는 완벽한 항복이었다.

“훌륭하다. 그대가 명예를 되찾아 짐은 기쁘기 한량없구나.”

레온은 양손으로 제 머리를 바친 듀라한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경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를 위해 기도하겠다. 그대가 신앙하는 신이 있다면 그가 그대의 영혼에 안식을 주기를. 없다면 여신께서 정원의 끝자락에나마 인도하시기를.”

얼마나 오랫동안 살육으로 보낸 시간이던가.

명예 없는 싸움으로 반복해온 시간이던가.

“이 훌륭한 기사를, 신들의 만찬장에서 만날 일이 있기를.”

듀라한은 사령으로 전락한 자신을 기사로 대우해주고 기도하며, 축복해주는 이 기사에게 감격했다.

“빛이 있으라.”

레온의 손에서 빛이 났다. 그 따뜻한 빛이 자신을 인도함을 직감했다. 최후의 순간, 듀라한은 모든 스켈레톤을 허물어뜨리며 레온을 향해 경배했다.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에 영광 있으라!

그의 소리 없는 경외가 던전 내에 울려 퍼졌다.

* * * *

던전 보스 사령기사 듀라한이 쓰러졌다.

본래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보스를 쓰러뜨렸더라도 잡몹이 남아있다면 차분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약속을… 지켰네요.”

“지, 진짜… 결투로 끝냈어.”

최후의 순간. 듀라한은 자신의 의지로 사령군대를 허물어트렸다.

진심으로 강복한 듯 레온을 경배하듯 부복하며 최후를 받아들였다.

“바, 방금 저 빛은 뭐였어요? 빛이 있으라, 라고 한 거 같은데.”

“……신성력이라는 거 아니야?”

각성자들 중에서 신성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존자들조차도 신들의 존재는 주장했을지언정 그들이 실재하는 증거를 밝히진 못했다.

하지만 레온이 방금 듀라한을 단번에 정화한 그 힘은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보던 언데드나 악마의 천적 신성력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된다.

“어… 그, 그런 기술 있으시면 진작 쓰시지.”

하리는 무어라 직접 말을 못했지만, 누구나가 생각했을 법한 말을 입에 담았다.

“그리하면 저 명예로운 기사가 사령으로서 최후를 맞지 않겠느냐.”

듀라한에게 기사로서의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기사란 본디 명예와 명성을 따르는 존재인바. 명예는 행동에서 오며, 행동은 의지의 관철에서 온다. 고결한 기사라면 응당 그리 되었을 테지.”

하리는 레온의 말이 완전히 이해되질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불확실한 가능성.

실패했을 경우의 피해.

리스크를 계산하지 않는 비이성적인 행동과 비논리적인 주장.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밀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이 남자는, 그 모든 걸 알고서라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 행동할 것이기에.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며.

논리가 아니라 직감이며.

합리가 아니라 불합리 속에 피어나는 꽃이라는 것을.

누구나가 그것을 알기에 따라하지 못하는, 그렇기에 아름다운 꽃일 것임을.

“흠, 이제 전리품을 취하러 가볼까.”

“어… 네?”

“전투가 있었으면 응당 전리품을 취해야 하지 않겠느냐. 앞장서라. 무엇이 값진 것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챙겨야 할 것이야.”

이날, 던전 클로징을 하면서 협회 헌터들은 생각지도 못한 전리품을 손에 넣었다.

[듀라한의 망토]

[듀라한의 대검]

[사령술사의 보옥]

그 외 던전 보스가 사망하면서 급하게 챙겨온 마정석 등.

“와! 이 보옥 좀 봐! 척 봐도 엄청난 마력이 깃들었어! 이거 내다팔면 상당하겠──”

“버러지 쓰레기의 삿된 물건이다. 이런 물건은 분란만 일으킬 뿐.”

-콰직!

정정.

[기사의 망토]

[듀라한의 대검]

그 외 마정석 등.

전리품 득템 과정에서 약간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호남 평야 게이트의 클리어는 성공적이었다.

마소로 오염된 평야를 정화했을 뿐 아니라 축복받은 벼라는 어마어마한 기적을 목도했으며 주홍색 등급의 게이트도 완벽하게 처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불새 길드와 이용완이 이를 악물며 귀환했지만, 당장은 이 경사를 모두와 함께 축하할 차례였다.

다만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발생했다.

“저… 폐하. 세, 세금을 내셔야 하는데요?”

“어허! 어찌 왕이 타국의 왕에게 세금을 물 수 있단 말이냐! 이는 온전한 본왕의 전리품! 그것에 세금을 무는 것은 법도에 어긋나다!”

“아, 아니, 현찰로 안 내셔도 돼요. 그 전리품 중에 마정석으로 세금을 대신하셔도…….”

“왕은 동전을 세지 않는 법. 아랫것들이 해야 할 일을 어찌 왕에게 논하느냐.”

“아니, 그럼 폐하! 저희보고 어찌하라는 것이옵니까아아?!”

“그대 왕에게 보고할 것도 없느니. 그저 서로의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 세금 진짜로 한 푼도 안 내시겠다고요?”

“동전 이야기는 그만하라. 격 떨어진다.”

헌터 협회의 직원들은 옹고집을 부리며 격을 논하는 레온을 보며 한마음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 불새 길드보다 더 악질인 거 아닐까?”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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