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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1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91화

26장 신성한 숲(3)

셀레나는 입을 벌린 채 깜박였다.

“그럼 여기가 숲이 아니라는 건가요?”

“숲이지. 동식물이 모여 살고, 울창한 나무들이 있잖아, 호수도 있고.”

“그치만 방금 꿈이라고 하셨잖아요.”

“뭐, 꿈을 현실에 불러온 것이기는 한데.”

마법은 현상을 불러오는 것. 그런 의미에서는 이 숲도 마법의 일종이다.

그 때문에 마법사가 아닌 자들은 마법을 ‘눈속임’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마법을 취소하면 화르륵 타오르던 불길이 사라지고, 한순간에 얼어붙은 빙판이 사라지니까.

하지만 화상과 동상은 남는다. 이 숲도 마찬가지.

이 숲 안의 동식물들은 이미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마나로 이루어지는 순환 체계이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현실과의 차이를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왠만한 사람들은 구분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가까운 꿈. 거기에 몇 십년 간 ‘신성한 숲’이라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증거.

이미 ‘눈속임’이라 하기엔 너무 긴 세월 동안 버젓이 존재했다.

“그런 걸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나요?”

“못하지. 멀린은 대마법사니까.”

“그, 그래도요. 꿈이라 해도 이 정도로 정교한 세계를 만든다니. 사람의 마나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이걸 몇십 년이나…….”

셀레나의 의문은 타당했다. 사실 나도 이런 짓이 몇십 년이나 가능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셀레나의 말대로, 단순히 인간의 마나 총량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거기에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긴 했으나, 일단 난 말을 아껴두었다.

“아무튼 서두르자. 네가 갑자기 질질 짜니까 시간을 허비했다.”

“……꼭 말을 그런 식으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난 다시 카시안을 몰았다.

한참 가던 중, 문득 생각 나 말했다.

“그런데 암살자는 고문에 익숙하지 않나? 훈련을 받을 텐데.”

“익숙해요. 그 괴로움과 아픔도. 모든 오감을 뚫고 들어오는 공포도. 그래서 울고 애원해도 정보를 발설하진 않도록 교육 받아요.”

“아픔에 견디는 게 아니고?”

“처음에는 그렇게 속여요. 아픔을 견디는 훈련이라고. 근데 아니었어요.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짓을 당해요. 울어도 애원해도 소리 질러도 끝나지 않아요. 하지만 정보를 누설했다간 더 강도가 심해져요. 그러면 한계를 넘은 고통이 뇌리에 박혀요. 그럼 아무리 괴로운 고문을 당해도, 울며 애걸복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보를 토하지는 않게 되죠. 그때의 공포를 기억하니까.”

……무서운 얘기다.

난 더 할 말이 없어 그저 조용히 앞을 보았다.

잠깐의 침묵 후,

“가만.”

셀레나가 말했다.

“근데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암살자라는 거. 전 호위역이라고만 했는데.”

“하는 짓이 암살자 같으니까.”

그런 건 모르겠고, ‘분석’ 스킬로 봤다.

“너야말로 그런 얘기 해도 괜찮냐? 고문 훈련을 어떻게 받았다든가. 상관인 하글리가 화내는 거 아니냐.”

“상관없어요. 만곶은 추악한 곳이에요. 그곳에 있는 모두가 스스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 추악한 짓을 감출 필요도 없죠. 정말로 숨겨야 될 것들만 숨기면 돼요.”

“…….”

그 말에 난 더 대답하지 않았다.

만곶은 비참한 곳이다.

나라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도피처 같은 곳이지만, 분노와 증오가 쌓여 언젠가 업화를 일으킬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말그대로 업화다. 대륙이 저질러온 ‘업’이며, 만곶은 그 불꽃이다.

물론 게이머의 입장으로는 그런 이해득실과 복잡한 감정 싸움을 떠나, 마물을 상대하기도 벅찬데 만곶까지 지랄을 해대니 미치고 팔짝 뛸 뿐이다.

때문에 싸우고 싶지 않다. 이는 클리어를 위한 마음이다. 엉뚱한 싸움만 하다가 이 세계의 인류는 개죽음을 당하니까.

만곶과 대륙이 평화를 맺을 수 있을까. 그건 내가 이 게임에서 실패한 많은 것들 중에서도 가장 불가능하다 여기는 일 중 하나다.

“……그런데, 길이 아까부터 쭉 이어지네요.”

셀레나가 기묘하다는 듯 말했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정말로 그, 호수가 나오나요?”

“아니. 따라가기만 하면 영원히 헤맬 뿐이야.”

이 숲은 멀린의 꿈이다.

직진처럼 보이는 이 길도, 그의 생각에 따라 기묘하게 뒤틀려 호수에 도달하지 못하게 만든다.

멀린이 내가 묠니르를 쥔 것을 보고 미련 없이 후퇴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나와 싸워 피를 보는 것보단, 차라리 호수에 도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다 판단한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요? 왜 계속 이 길을 가고 있나요?”

“나는 길을 아니까.”

이 숲은 사실 언젠가 아스터가 도달할 ‘시련’이다.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이 숲의 공략법은 안다.

근데 그건 사실 아스터의 격이 높아 멀린에게 인정받았기에, 멀린이 적절한 난이도를 제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늘 그랬듯, 난 프론디어.

나 같은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멀린이 호수를 내줄 리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인다. 이 꿈의 ‘허상’이.

‘분석’ 스킬로 보는 것이기도 한데, 그것보다 먼저 직감이 반응했다.

‘직조’라는 그 무엇보다 허상에 가까운 스킬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이 꿈의 세계에 묘하게 익숙한 냄새가 났다.

“카시안. 지금부터는 내 지시를 따라.”

나는 말한 뒤 고삐를 가볍게 움켜쥐었다. 카시안은 이해했다는 듯이 속도를 살짝 줄였다. 정말로 똑똑한 말이라 가끔 무섭기도 하다.

‘……후우.’

나는 풍경을 오롯이 눈에 담았다. 일단 이 직진으로 나아가는 길은 아스터로 플레이할 때와 같았다.

플레이어일 때는 이 길을 걷다 보면 멀린이 이것저것 힌트를 주지만, 나는 내가 알아서 찾아야 한다.

‘분석’ 스킬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이 세계 자체도, 특정할 수 있는 이상 ‘분석’ 또한 가능하다.

지금까지 분석은 아이템의 설명란처럼 부가설명을 내게 읽혀주었지만.

멀린의 ‘꿈’은 분명 프론디어의 ‘직조’와 비슷하다. 이 꿈의 실체를, 프론디어라면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됐다.”

분석된 이 꿈의 세계가 눈으로 들어왔다. 직조로 만들어지는 무기가 가느다란 실이 엮이는 것처럼 완성되듯이, 이 꿈 또한 수많은 실의 가닥이었다.

나는 밝혀진 허상의 세계로 카시안을 이끌었다.

“……이쪽으로.”

고삐를 좌측으로 당겼다. 거기엔 길이 없이 그저 빽빽한 나무들이었다. 하지만 카시안은 겁먹지 않고 내 말을 따라 머리를 밀었다.

순간, 그 빽빽한 나무들이 한순간에 갈라졌다. 그리고 여기가 본래의 길이라는 듯이 탈바꿈했다.

마치 오류를 수정하듯이, 미처 못 그린 그림을 서둘러 완료하듯이, 무대의 막 뒤에 숨겨진 공간을 들킨 것처럼.

“으윽, 어지러워요.”

셀레나가 말했다. 확실히 이 광경은 기이하다 못해 어지럽다. 마치 게임 속의 버그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기분이니.

나는 계속 카시안을 이끌어 나아갔다. 내가 방향을 틀 때마다 나무들이 갈라지고 길이 드러났다. 확실하게 호수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가주님.”

“몇 번이나 말하는데, 프론디어라고 불러.”

“소가주라고 부르면 좋아하신다던데.”

“만곶이 파악하고 있는 내 정보는 죄다 찌라시라고 생각하면 돼.”

“찌라시요?”

“구리다고.”

셀레나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등 뒤에서 셀레나의 머리 감촉이 느껴졌다. 아마 고개를 끄덕인 거겠지.

“그러면, 프론디어 님.”

“왜?”

“여기가 멀린의 꿈이라면, 호수의 위치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맞는 길을 찾아간다 해도 도착하기는 어려운 게 아닌지…….”

제법 그럴듯한 생각이었다.

여기가 꿈이라는 걸 인지한 뒤 거기까지 생각한 건가. 내 생각보다 셀레나의 적응력이 빨랐다.

하지만 그 추측은 틀렸다.

“호수의 위치를 옮기는 건 불가능해.”

“왜죠?”

“호수는 실재하니까.”

“……아.”

지금 보이는 주변의 모든 것은 멀린의 꿈이지만.

호수만큼은 진짜다.

반대로 말해, 그 호수 하나를 위해 멀린은 이 꿈을 설계한 거다.

쿠구구─

그때 나무들의 모습이 기묘하게 변했다.

평범했었던 풍경이 일그러지고, 나무들은 그 크기를 무식하게 늘려 가지를 뻗었다. 굵은 줄기가 뒤틀렸고, 벌어진 그 틈 사이는 마치 사람의 입가처럼 웃는 듯했다.

“어, 음, 프론디어 님……?”

셀레나가 불안한 목소리를 뱉었다.

“멀린이 확신한 거야.”

“뭘요?”

“우리가 길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길을 헤매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그러니 다시 한번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인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제 몸을 숨기고, 비교적 안전하게.

이미 나무들은 제 몸을 한참 부풀려 그림자가 되었다. 한순간에 어둑해진 숲 속에, 거대한 나무들이 굽은 등으로 내려다본다.

“……이건 꿈이니까, 맞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떻게 생각해? 맞으면 어떨 거 같아?”

“무지 아플 거 같은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무지하게 아플 거야.”

젠장, 셀레나는 중얼거린 뒤 제 품 안에 손을 넣어 바늘을 꺼냈다.

내숭이 사라지는 건 좋은데, 예의도 같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 * *

멀린은 호수 앞에 서 있었다.

그에게는 이 숲 안의 모든 것들이 느껴졌다. 작은 새의 사소한 숨결마저도.

프론디어는 이미 가까이 오고 있었다. 나무들을 이용해 막아내려 했으나, 여기에 도착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 혼잣말에는 다소의 울림이 있었다. 그저 순수히, 홀로 내뱉는 중얼거림이 아니었다.

[무엇을 그리 걱정하세요?]

멀린이 바라보는 호수 중앙의 물이 솟구쳤다.

다시 쏟아진 자리에 한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 등장하는 모습은 땅에서 솟아나왔던 멀린과 굉장히 흡사했다.

[호수를 지키지 못하게 되었어.]

멀린은 말했다.

[괜찮아요.]

호수의 여인이 답했다.

[이곳에 도달하는 자가 누구든,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랍니다.]

호수의 여인은 웃었다.

[만용은 죽음을 부를 뿐이지요.]

그때였다.

두두두두, 멀린이나 호수의 여인에게도 귀에 익은 소리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다.

파스슥!

풀숲을 헤치고 나온 것은, 역시 프론디어였다.

오는 동안 제법 격렬한 전투를 한 듯, 옷은 군데군데 찢어지고 해져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상처는 없어 보였다.

“헥, 헤엑…….”

반면에 뒤에 타고 있던 여자가 오히려 죽을상이었다.

“야, 뭘 늘어져 있어. 도착했어.”

프론디어가 뒤의 여자에게 핀잔을 주었다.

“비겁하잖아요. 자기는 거의 데미지를 안 받고, 나만 피하면서 싸워야 하고.”

“허상이니까, 정확하게 알면 피해를 입지 않아.”

“저도 생각했는데요? 허상이다, 가짜다, 그렇게 끊임없이 되뇌고 믿었는데 왜 저는 얻어맞냐구요.”

“믿는 게 아니고 아는 거라니까.”

멀린은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다가 미간을 모았다.

허상? 데미지를 입지 않아?

그럼 지금 프론디어가 멀쩡한 것이, ‘꿈’을 간파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

“아.”

그제야 프론디어가 멀린을 발견했다. 호수의 여인에게도 시선을 주었다.

“다시 만났네요, 멀린 경. 그리고.”

프론디어는 여인을 보고 짙게 웃었다.

“한참 찾았습니다. ‘호수의 마녀’.”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The Academy’s Weapon Replicator

AWR, 아카데미의 무기복제자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Etius, a game that no one has cleared. [GAME OVER] The moment all possible strategies failed, “Student Frondier ?” I became an Extra in the game, I became Frondier! [Weaving] •Saves and replicates images of objects. However, it is an illusion. All I have is the ability to replicate objects as virtual images! [Main Quest: Change of Destiny] ? You know the end of humanity’s destruction. Save humanity and change its fate. “Change the fate with this?!” Duplicate everything to carve out my dest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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