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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1

91화 성배기사 제레아(2)

신이 내려준 과업을 완수하고 사자심왕에게 하사받은 성배의 성수를 통해 수행기사는 비로소 육체를 재구성하고 성배기사가 된다.

성배기사가 가진 힘 중 대표적인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성질이다.

빛과 정의의 아리아나.

바다와 파도의 포마.

꿈과 죽음의 플르.

전쟁과 불꽃의 페토스.

생명과 풍요의 데메라.

철과 대장장이의 헤토.

하늘과 천둥의 울티마.

태양과 심판의 타타르.

달과 순결의 디나.

숲과 나무의 이르민.

어둠과 복수의 벤타시스.

신도들의 신앙으로 신격을 유지하는 그들은 자신의 대리인. 즉 ‘살아있는 성자’에게 제게 바쳐지는 신앙의 힘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의 성력에 한정해 이적을 일으키는 기사들과 달리 성배기사는 신에게 바쳐지는 모든 신앙을 성력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배기사란 해당 신과 신도들을 아우르는 거대한 신앙 보관소라 할 수 있었고 막대한 성력을 보유한 그들에게 자연히 주어지는 능력이 바로 ‘완벽한 활력’이다.

활력. 다시 말해 살아있는 힘. 생기.

언제 어느 순간에도 ‘완벽한 활력’을 유지하는 성배기사란 다시 말해──

“이 미친 놈들이 어떻게 사흘 내내 쉬지도 않고 습격을 자행한단 말이냐!!”

지치지 않는다.

어떤 격렬한 전투를 수일… 아니, 수백 년을 반복하더라도 그 몸에 활기가 떨어지는 일이 없다.

“벌써 삼백 번이 넘게 습격당했습니다!”

짐승신을 섬기는 야만족의 부족회의장. 그들은 사흘 전 밤부터 계속되는 무제한 습격에 질려 있었다.

밤의 야습이라면 이해한다. 아니,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전투라는 것은 최소한의 숫자가 성립해야 가능한 일. 그런데 이놈들은 단둘이서 온 사방팔방에서 출몰하고 있다.

겨우 두 명이서 수만 대군을 상대로 덤벼들고 있단 말이다.

심지어 기습은 낮에도 이루어졌다.

식량고를 급습한다던가, 무기 창고를 터뜨린다든가, 심지어 전쟁시 온 부족이 움직이는 오크의 아성체들을 학살하고 유유히 빠져나가기까지 한다.

‘그리 명예명예 노래를 부르는 광신도 놈들이…!’

기습은 명예롭지 못하다. 전투는 정면에서 정정당당하게를 외치는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이지만, 그들은 세 가지 부류를 상대로는 잔혹할 정도로 무지성이었다.

오크, 이단, 악마.

명예란 것은 지킬 대상을 고르는 법이라며 라이온하트식 내가 하면 명예, 니들이 하면 불명예 사고관을 숨기지 않는다.

“대체 왜 놈들을 붙잡지 못하는 거냐!”

“그야…….”

성배기사니까요.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모든 불리와 불가능을 뛰어넘는 존재. 존재 자체가 불합리한 괴이들.

그들은 물론이고 다그치는 부족장 다길마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단지 이 불합리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을 뿐.

“족장… 이대로라면 놈들에게 농락당할 뿐입니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방법? 그런 게 있다면 진작 성배기사들을 죽였을 것이다.

라이온하트의 오랜 적들이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수시로 도륙당한 이유가 무엇이던가.

지상 최강의 생명체들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적었던 탓이다.

“어떻게든 해야…!”

-콰앙!

그때였다. 야만족들의 부족회의가 열리는 천막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고깃덩어리가 안으로 던져졌다.

푸칵! 하고 천막 안에 던져진 고깃덩어리는… 곰의 형상을 한 사교도.

“무, 무슨?!”

철웅에 영혼을 바친 사교도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비대한 육신을 부여받는다. 그런 전사의 상반신을 날려버리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헬칸의 챔피언!”

그것은 천막의 입구에서부터 소리 없이 들어섰다. 육중한 몽둥이를 든 오크에게서 시뻘건 기운이 솟구친다.

저 기운은 오크 투신 헬칸의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 다시 말해 그가 헬칸의 챔피언이라는 소리다.

“내가, 어제까지, 뚫으라고 했다.”

육중한 음성이 천막 안을 짓눌렀다. 끔찍한 존재감이다. 야만족들은 그의 등장만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다길은 애써 그의 기운을 받아넘기며 버티려 들었다. 그는 흑수리 부족의 부족장이자 짐승신의 화신체를 소환할 권리가 있는 사교도의 장이다.

아무리 강력한 오크신의 챔피언이라 해도 여기서 밀리면 약육강식의 야만사회에서 그의 입지는 끝장이다.

하지만 헬칸의 챔피언은 그런 점을 배려할 자가 아니었다.

-콱!

“크읍?!”

순식간에 목덜미를 붙잡은 커다란 손에 다길이 신음했다. 강력한 백랑의 전사인 그가 즉시 짐승화를 시전했으나 붙잡힌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큭…! 무, 무슨 힘이!?’

그는 백전연마의 노장이다. 젊었을 적에는 성배기사와도 싸워본 몸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투사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그가 경험한 어떤 힘보다 강력했다.

‘이자… 성배기사보다도 강하다!’

60년 전, 괴력을 자랑하는 성배기사와 겨뤄본 그였다. 그때는 간신히 살아서 도주했지만, 눈앞의 오크는 그때의 성배기사보다 강했다!

“내일 총공격한다. 병력을 투입해라.”

“하, 하지만…! 놈들에게는 성배기사가 둘이나 있소!”

“나와 스쿠닉의 대전사가 손을 거들어주지.”

이에 다길의 눈이 번뜩였다. 역사서에서나 등장할 법한 오크신의 챔피언이 당대에 둘이나 있다니?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일의 전투는 결과를 따져볼 필요가 없었다.

“아, 알겠소.”

다길은 이글거리는 붉은 시선에 두려워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부터 총공격을──”

-부우우우우웅!!

다길이 부족장으로서 결정을 내리려던 그때였다. 협곡 쪽을 향해서 웬 나팔 소리가 거세게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일이냐!”

오크들이나 야만족들의 나팔소리와는 궤가 달랐다.

다길은 물론 오크 챔피언까지 천막을 나서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어라, 짐승들아!”

성배기사 제레아. 그는 대담하게도 오크들의 진지 코앞을 멤돌고 있었다.

“너희 천한 짐승들에게 사자심왕의 어명을 하사하니. 엎드려 분에 넘치는 제안을 들을 지어다!”

그 말과 동시에 제레아가 오크들 진지 한가운데로 있는 힘껏 창을 던졌다. 성배기사의 괴력에 의해 파공성을 일으키며 쏘아진 투창은 한 오크를 관통하고서야 멈췄다.

-커흑!

오크 한 마리가 절명하는 순간을 목격했으면서도 전령으로 나선 제레아는 조금도 미안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쯧, 폐하의 어찰이 더러운 녹색짐승의 피로 물들다니. 죽어서도 영혼을 찢을 대죄로다.”

오크 입장에선 분개할 만한 뻔뻔함이었으나 제레아는 말 머리를 돌려 왕국군 진지로 돌아섰다.

* * * *

“이런 건방진 놈들!”

투창을 통해 왕국군이 전달한 것은 간단했다.

「일대일로 함 뜨자.」

온갖 미사여구가 있었지만, 무식한 오크와 사교도들이 이해한 건 딱 이 정도였다.

각자 대전사를 정해 오크와 야만족들 그리고 왕국군의 결투를 벌이자고 말이다.

“받아줄 필요도 없소! 이 비열한 놈들이 여태 야습을 해올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결투라니!”

게다가 내용도 지나치게 왕국군에 유리했다.

자신들이 승리하면 물러날 것. 패배하면 자신들이 물러나겠다고 하지만, 그런 건 전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는 일이다.

반면 상대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라는 성배기사가 둘이나 있었다.

일대일로 싸우면 승산은 높지 않다. 애초에 성배기사 같은 괴물을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는──

“…….”

다길의 시선이 오크들을 향해 힐끔거렸다.

본래라면 함께 회의를 나누는 것 따위 하지 않는 두 종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오크 신들의 ‘챔피언들’이 있었고.

‘해볼 만 하다.’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오크 신들이 드물게 자신의 챔피언들을 선정했다.

오크 투신 헬칸.

오크 주술신 고크록.

오크 사냥신 스쿠닉.

강력한 오크의 신들이 저마다 챔피언을 선정한 강력한 오크 대전사들.

“어쩔 생각이지? 당신들이 나선다면 꽤 승산이 있다고 본다만.”

“…….”

오크 투신의 챔피언이 다길을 응시했다. 그에게 압도되었던 다길은 무심코 시선을 피해 눈동자를 굴렸고.

“응한다. 어차피 우리 역할은 이만하면 충분하니까.”

의외였다. 야만족들은 그 갑옷의 망토자락만 보여도 경기를 일으키는 게 성배기사다.

그들의 강력함과 초월적인 무력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리 야만족들이 같은 인간 취급도 못 받는 농노 후보자들로 취급받는다지만 일단 종이 같았다.

라이온하트 왕국도 기본적으로 교화랍시고 농노로 잡아가는 것에 비해 오크는 문답무용으로 도살했다.

두려워한다면 오크 쪽이 더 심각할 텐데, 그들은 오히려 이 대결을 반기는 분위기였다.

“성배기사인가. 한 번 상대해보고 싶었지.”

오크 투신 헬칸의 챔피언 발바자는 기꺼이 이 전투에 응했다. 투신의 챔피언 뿐만이 아니다.

“성배기사의 시체는… 내가 가지겠다.”

“가죽은 넘겨.”

오크 주술신 고크록의 챔피언 마그하르. 사냥신 스쿠닉의 챔피언 스키라.

세 명의 오크 챔피언들이 결투에 기꺼이 응했다.

치열한 싸움을 숭상하고 타고난 전투종족인 그들에게 강자와의 싸움이란 언제나 고대하는 것이다.

* * * *

요 며칠 베아트리체는 협곡을 빠져나가며 기사 생도들을 합류시켰다.

“와! 여왕님! 감사합니다! 크으… 무서웠어요오…!”

“괜찮으신가요? 다치지 않으셔 다행이에요.”

뿔뿔이 흩어져 있던 생도들을 틈틈이 찾아내 합류한 것도 벌써 사흘.

베아트리체가 속한 성물 호송단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몬스터든 추격대든 완벽하게 분쇄하고 있었다.

한번은 키메라 합성수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런 괴수들이 여왕의 적이 될 순 없었고.

“다른 사람들… 합류하지 않아도 되나요?”

천소연. 그녀는 습격해온 몬스터들의 피가 묻은 칼을 닦아내며 이 자리에 없는 이들을 언급했다.

새침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동료들을 걱정하는 눈치였기에 베아트리체의 입꼬리가 자애롭게 비틀렸다.

“여러분들의 퀘스트 중에는 ‘제레아 경’을 도와 본대를 사수하는 내용이 있었죠? 이 자리에 폐하께서 찾아오시지 않았다는 건 아마 그쪽에 계실 거라고 생각한답니다.”

베아트리체는 처음 게이트에 입장할 때, 생도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추적마술을 붙여두었다.

이곳에 없는 넷 중 둘은 레온과 함께 있었고, 남은 둘은 다른 호송단으로 추정되는 이들과 있다.

문제는 그 둘이 너무 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아카데미 동기인 재혁과 수호가 걱정이었던 소연은 내심 안도했다. 문제는 남은 셋이다.

구대성, 한하리… 그리고 야크트 스피너.

구대성과 한하리야 호송단과 함께하고 있다지만, 야크트 스피너는 당최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야피 경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죠?”

추적 마술을 붙여두었을 터인 베아트리체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알 수 없다는 얼굴만 했고.

“제 탐지범위를 넘어섰답니다. 이 협곡 내라면 구석구석 잘 살피고 있다 생각했는데 말이죠.”

대체 그 강인공지능 기사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어느 쪽이든 거들 것이지, 이래서야 직무태만이다.

물론 누구도 야크트 스피너가 게이트를 내팽개치고 사라졌을 것이라 여기는 이는 없었다.

그 야크트 스피너다.

무감정한 킬링머신, 효율의 끝판왕. 인간의 상식과는 아득히 벗어난, 만신전에서 가장 기상천외한 인물 아니던가.

“또 어디서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몰라.”

…………

………

……

죽음의 계곡과 제국 국경으로부터 고도 800km 상공.

신성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누구도 정복하지 못한 우주궤도에 당당히 ‘최초’로 들어선 도전자가 자리 잡은 지도 24시간이 흘렀다.

-궤도 정지. 중력영향 계산 중.

-클리어. 게이트의 세계재현률 관측 중.

야크트 스피너가 지구에 처음 당도했을 때는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지구의 문명과 과학레벨이 상상 이상으로 저질이었던 탓.

야피의 시대는 악마들의 침공만 아니었다면 위성 테라포밍과 우주개척을 눈앞에 둔 시대였다.

그 기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야피가 보기에 지구 문명의 우주기술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 수준.

하지만 아무런 인프라 하나 없는 이곳에서는 그것마저도 감지덕지라 저질적인 위성 발사체 기술이라도 개량해 띄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성공적이었고.

-게이트 내 위성발사 실험 성공적. 관측정보량 제한됨. 이상물리현상 계산 중.

하지만 게이트 내부에서 쏘아 올린 위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본디 게이트란 한 시대의 사건을 재현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구현된 곳은 어디까지나 한 지역과 관련된 영역에 한해서일 뿐, 행성 전체를 구현한 게 아니다.

일단은 우주에서 관측한 지상은 행성의 모양새를 하고 있으나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협곡과 제국 국경선 일부… 그리고 라이온하트 국경선을 제외하면 무엇하나 정보가 관측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자면 게임에서 아예 ‘구현이 안 된 장소’라는 것이겠지.

-전황 측정 중. 유사시 본체 사출 시스템 가동. 통합 무장플랫폼 MK.2 대기 중.

야피는 당장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다는 걸 관측한 뒤, 최대한 많은 정보량을 담기 위해 협곡과 제국, 라이온하트 국경선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관측을 계속하던 그때, 라이온하트 왕국으로 추측되는 국경선에서 대기 중인 한 무리의 기사단이 보였다.

-고에너지체 관측.

그것은 붉은 기사였다.

800km 상공에서 관측하고 있음에도 기계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끼는 존재감.

주변의 기사들과는 명백히 다른 무언의 기세가 저 기사에게 있었다.

자세히 살피기 위해 광각렌즈를 확대한 그 순간──

-끼룩?

붉은 기사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 야피는 자신이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고 연산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기계의 논리회로는 그것이 불가함을 주장했다.

이곳은 지상으로부터 800km 떨어진 우주궤도의 상공. 그곳에서 지상의 생명체와 눈이 마주친다는 건 있을 수 없을 것인데──

잘못 관측한 것이 아니라면.

붉은 기사의 입술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꺼져라.」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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