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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2

91. 거지남매 – 모나크 남작

‘이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레오가 자세를 바로 하며 물었다.

“성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벨리타 왕국에는 게스타브 페테르라는 백작이 있다. 흔치 않은 이름이라 동명이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구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린 게스타브는 모나크 가의 남작이 맞습니다.”

“혹시 어떻게 생겼는지 외형을 묘사해주겠나?”

제니아 재커리는 ‘게스타브 모나크 남작’을 떠올렸다. 그녀가 만났던 남작은…

“큰 특징은 없습니다만, 머리카락 색이 조금 독특했습니다. 어두운 은발 머리를 가졌고, 키가 큰 편입니다.”

이어지는 제니아의 묘사를 듣고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이 맞다.’

그는 불길함을 느끼며 물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겠느냐?”

“물론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제니아 재커리는 콘라드 왕국 제1 기사단의 기사였다.

재커리 자작가의 서녀(庶女, 첩이 낳은 딸)로 태어난 그녀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았다.

평범하게 차별받았고,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고, 근사한 신랑감도 주선 받을 수 없는 장래가 그녀에게 약속되어 있었다.

서자(庶子, 첩이 낳은 아들)로 태어났다면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었다. 귀족의 서자들은 보통 가문의 인맥을 활용해 상단을 꾸리거나, 총관 또는 집사가 되거나, 왕국의 관료가 되곤 했다.

제니아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가문에 두둑한 지참금을 넘겨줄 부호에게 시집가게 될 운명이었다.

대부분의 서녀들이 그러했듯이.

너무나도 당연한 미래였기에 불행하다고 느끼지도 못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제니아에겐 재능이 있었다.

반쯤 장난으로 검을 건네받았을 때, 그녀는 그 차가운 금속에 매료됐다. 자신의 맘속 깊이 숨겨져 있던 폭력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검술에 맹진했다. 제니아 재커리는 빠르게 가문의 기사들에게도 인정받는 실력자로 성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충분히 제 몸을 지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가문을 뛰쳐나왔다. 몇 년간 용병 생활을 하며 검술을 다듬고, 왕실 제1 기사단에 입단했다.

젊고, 전도유망한 기사가 된 제니아. 한데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생활도 형편없었다.

한 번 결혼했으나 아이를 낳지 못했고, 그 이유로 이혼당했다.

부끄럽거나 불행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모험을 갈망했고, 그녀에게 결혼은 족쇄와 같은 것이었다.

– 난 아이를 낳는 도구로 쓰이고 싶지 않다. 기왕 도구로 쓰여야 한다면 검으로 쓰이기를…

그녀의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제니아 재커리는 인생에 둘도 없을 기회를 맞았다. 친하게 지내던 한 선배가 술이나 한잔하자기에 별생각 없이 따라간 곳에서 존귀한 분을 뵙게 되었다.

레오 드 예리엘 왕자님께서 살아계셨다.

흥분한 나머지 제니아는 기사의 예법마저 잊어버리고 절을 올렸고, 왕자는 ‘내게 충성을 바치겠느냐?’라고 물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는지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정오에 오라.”고 지시했다.

어젯밤, 제니아는 밤잠을 설쳤다.

드디어 나의 밋밋한 삶에 격랑이 몰아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변장하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주의하며 왕자님을 찾아왔다.

왕자님께서는 “귀족들과 관련해 아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좋으니 알려달라.”고 물으셨고, 그녀는 자신이 아는 것들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그다지 흥미가 없으셨는지 조금 심드렁하게 경청하시던 왕자님, 그분께서 갑자기 허리를 바로 하시며 관심을 보이셨다.

제니아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재커리 자작가의 서녀(庶女)입니다.”

레오는 고개를 끄덕여 이미 알고 있음을 밝혔다.

“왕국 북부에 있는 저희 재커리 자작령과 모나크 가문의 영지는 가까워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나크 가문에 대한 몇 가지 비사를 알고 있습니다.”

제니아는 이야기를 늘어놓기에 앞서 혀로 입술을 축였다.

“모나크 가문에는 후계자인 ‘베일리 모나크’와 영애인 ‘그라이넨 모나크’, 서자인 ‘바릭 모나크’가 있었습니다. 거의 사십 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 가문에 큰 난리가 났었습니다. 그라이넨 영애가 병에 걸려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게 됐거든요.”

레오는 긴 이야기가 될 것을 직감하고 바깥의 기사에게 차를 내오라 일렀다.

“그런데 시녀들을 통해 괴이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영애가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임신했다는 소문이었죠. 혼약도, 결혼도 하지 않은 귀족 영애인지라 헛소문으로 치부되어 널리 퍼지진 않았습니다만,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제니아가 속삭이듯 목소리를 낮췄다.

“그즈음에 바릭 모나크라는 서자의 행방이 묘연해졌거든요. 모나크 가에서는 그가 사제가 되기 위해 수도교회로 떠났다고 했는데, 시기가 다소 공교로웠죠. 영애가 병으로 쓰러진 시점에서 서자를 수도교회로 보낸다니… 병이 별것 아니었다면 모를까 일 년이 넘게 거동조차 하지 못한 병이었는데 말이죠.”

요청한 차가 도착했다.

제니아는 레오가 따라준 차를 황공하게 받아들고 말을 이었다.

“더 의심스럽게도 그라이넨 영애는 끝내 시집을 가지 않았습니다. 모나크령의 저택에서 평생을 살았죠. 아마 지금도 살아계실 겁니다. 어렸을 때 한번 뵌 적이 있는데, 연세에 비해 굉장히 정정한 분이셨거든요.”

“그렇군. 이것을 차에 타게. 맛이 더 좋아질 걸세.”

“아, 감사합니다. 왕자님.”

두 사람은 차에 ‘카넬라’라는 꽃가루를 넣었다.

딸그락, 찻잔을 휘젓는 소리가 울리고, 꽃가루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가운데 제니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당시에는 사라진 그 바릭 모나크라는 서자가 자신의 배다른 누이와 동침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는데… 모나크 가문이 완강하게 부정하기도 했고, 애당초 그라이넨 영애가 임신했다는 것이 확인되지도 않은 뜬소문이라 금방 잊혀졌죠.”

“그렇군. 그런데 그게 게스타브와 무슨 상관이지?”

제니아는 빙긋 미소지어 왕자님의 재촉을 가라앉혔다.

“게스타브 모나크는 양자입니다. 가문을 물려받은 베일리 모나크가 아들을 갖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베일리 남작이 죽고, 게스타브 모나크가 남작위를 양도받기 위해 왕께 찾아왔을 때 그를 본 적이 있습니다. 왕께서 병으로 쓰러지시기 일 년 전이었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귀족이 자식에게 가문을 물려주는 것은 귀족 가문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일이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왕의 허락을 받는 ‘바눈’이라는 수여식을 가졌다.

바눈은 아카이아 왕국을 세운 토들러 아키우넨이 거둔 첫 번째 신하의 이름이었다. 또, 그는 최초의 귀족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후계자가 가문을 물려받고, 왕께 충성을 맹세하는 바눈. 그것의 공증은 왕실 기사단이 맡았는데, 기사단의 신입이었던 제니아는 그때 처음으로 왕궁에 들어가 게스타브를 본 것이었다.

“그때는 바눈에 처음으로 참관한 것이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조촐한 바눈도 없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귀족들을 다 불러놓고 치르는 게 보통인데… 게스타브 남작은 혼자 와서 며칠 왕궁에 머물다가 수여식을 치르고 조용히 떠났거든요. 기사단의 기사를 몇 명 부르지도 않았고요.”

제니아는 찻잔을 우아하게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제아무리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여기사라 해도 귀족가의 서녀로 자란 그녀의 예법은 충분히 좋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전 베르크 추기경을 뵌 적이 있었습니다. 기사단에 입단하고 관례에 따라 검에 축성을 받으러 루티나 교회에 갔을 때 우연히 마주쳤죠. 그런데 게스타브 남작을 처음 본 순간 그가 베르크 추기경과 놀랍도록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외모에 큰 특징이 없긴 했습니다만, 똑같은 은발머리며… 분위기가 묘하게 비슷했거든요.”

“그러니까 자네 말은…”

“예상하고 계시는군요. 네, 전 사제가 되겠다고 떠났다는 바릭 모나크가 베르크 추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라이넨 모나크 영애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소문대로 그녀는 배다른 동생인 바릭 모나크와 동침하고 아이를 밴 것일지도 모르죠.”

레오의 말문이 막힌 사이 제니아는 자신의 추론에 결론을 내렸다.

“만약 이 추론이 맞다면, 모나크 가문의 양자인 게스타브 남작은 베르크 추기경과 그라이넨 모나크 영애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면 모든 정황과 소문이 맞아떨어지죠.”

“잠깐. 놀랍고 대담한 추론이긴 하지만, 비약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영애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서자가 사라졌다, 그러니 둘이 동침했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세. 허나 베르크 추기경이 바릭 모나크라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자네는 바릭 모나크라는 자를 본 적도 없고… 양자로 들어온 게스타브 남작과 베르크 추기경이 우연히 닮은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제니아는 왕자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훌륭한 지적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베르크 추기경에 대해 조금 알아봤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왼쪽 손목을 어루만지며 자세를 앞으로 기울였다.

“베르크 추기경은 약 15년 전에 우리 왕국의 추기경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제가 기사단에 입단하기도 전의 일이죠. 그전에는 수도교회에서 아주 잘나가는 인물이었다 하더군요.”

추기경은 십자교회의 직책이었다.

성녀 다음으로 높은 직책으로서 사실상 교회를 이끌어가는 중책이었다.

신성왕국에 있는 수도교회에는 네 명의 추기경들이 있지만, 각 왕국에는 단 한 명의 추기경이 배치되어 해당 왕국의 모든 교회를 통솔했다.

제니아는 입술을 다시 혀로 축이곤 말했다. 어느새 찻잔이 비어있어서 그녀가 마실 것이 없었고, 레오도 더는 따라줄 것이 없었다.

“그는 성전사 출신임에도 고위 사제가 되어 혁신적인 신학 이론을 내놓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교회의 공식 기록을 살펴보니, 베르크 추기경은 콘라드 왕국에 온 이후로 매년 북쪽으로 순례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항상 왕국 최북단에 있는 모나크 영지에 들렸더군요. 추기경이 행차하기엔 너무 먼데도 말이죠. 의심스럽지 않으십니까?”

“…”

“물론 베르크 추기경은 신성왕국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긴 합니다만, 그거야 수도교회에 들어가면서 적당히 써내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게스타브 남작과 추기경이 닮은 것은… 글쎄요. 은발 머리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레오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벨리타 왕국에서 만났던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 이 여기사의 말에 따르면 그는 콘라드 왕국의 모나크 남작과 동일인물이었다.

이건 거의 확실했다. 흔치 않은 이름에, 비슷한 외형을 가진 귀족이 두 명일 리가 없었다.

‘그래. 게스타브 백작은 내게 우리 콘라드 왕국이라고 말했었지…’

레오가 페테르 백작에게 정체를 들켰을 때, 그는 왕자에 대한 예의를 차리며 작게 속삭였었다. 왕자님께서 살아 계시면 ‘우리’ 콘라드 왕국이 시끄럽다고.

스파이 같은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는 두 개의 영지를 가진 귀족임이 틀림없었다.

한 귀족이 두 개의 영지를 가지는 것은 불법이었다.

한 가문에 하나의 영지만이 허락됐기에, 영지전을 벌여 다른 영지를 흡수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왕실에 바치거나 두 영지를 하나로 통합해야만 했다.

한 가문이 두 개의 영지를 가질 방법은 오직 ‘변경백’이라는 직책을 갖는 수밖에 없었다.

변경백은 국경 근처의 영지를 추가로 통치하는 대가로 다른 왕국과 전쟁이 났을 때, 원군이 도착하기 전까지 자신이 이끄는 가문의 힘으로 전선을 구축하고 지켜내야만 하는 막중한 직책이었다.

벨리타 왕국의 타티안 후작가, 오른 왕국의 가이단 후작가, 콘라드 왕국의 테르탄 공작가가 변경백의 직책을 가지고, 두 개의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데 게스타브… 그 사람은 콘라드 왕국에서는 모나크 남작으로서, 벨리타 왕국에서는 페테르 백작으로서 두 개의 영지를 따로따로 가졌다.

‘그래서 베나르 타티안 후작이 게스타브 백작을 두고 친구라고 한 건가?’

타티안 후작은 이걸 알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유일하게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을 친구라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소개하기 전에 ‘일찍 접시를 깨뜨린 친우가 있다.’라고 언급하며 친분을 드러냈었다.

타티안 가문의 위상을 생각하면 게스타브라는 사람이 가진 독특한 위치가 이해가 갔다.

두 왕국에 걸쳐 각각의 영지를 소유한 인물… 그 정도가 아니고서야 베나르 타티안 후작의 친구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더 붙었단 말이지…’

추기경.

이건 엄청나게 높은 직위였다. 한 왕국의 모든 교회를 통솔하는 자리다. 사제들이 모든 통신과 의료, 일정량의 교육을 도맡고, 수많은 신도를 이끈다는 걸 감안하면 그 정점에 있는 추기경의 위치는 까마득히 높았다.

그런 사람이 게스타브 페테르 백작의 아버지인 것이다.

이 여기사의 말이 맞다면.

‘그런데 아무리 사제가 되기 전에 한 짓이라지만, 사제가 아이를 가져도 되는 건가?’

십자교회는 사제의 결혼을 엄격히 금했다.

소꿉친구 시나리오에서 레나와 레오가 맺어지지 못하는 까닭도 순전히 레나가 사제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레오가 피곤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다만… 게스타브, 이 사람이 찜찜하게 걸린다.

시나리오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뭔가를 빠뜨렸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그를 오싹하게 감싸 안았다.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Raising the Princess to Overcome Death

A Princess Is Raised After Death, Desperately Making Her a Princess, Princess is Raised by Death, RPOD, The Princess Is Raised After She Dies, 正規エンディングまで異世界ループ転生, 공주는 죽어서 키운다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19 Native Language: Korean
Minseo was trapped in [Raise Lena]. With the emotionless text, “[Starting Raise Lena]” he became Leo and was imprisoned in an unfamiliar worl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Uh-huh?” “Leo? Why the long face? You! Are you messing with me again?” There, he met his childhood friend, Lena, skillfully picking berries. The lovely Lena. Leo marries her in a peaceful mountain village… [Lena is married! Congratulations.] [You have failed to clear Raise Lena.] [Restarting.] The happiest moment. Lena disappeared. And…. “Leo! Are you listening to me?” “Huh? Lena!” “Why have you been spacing out? And why are you looking at me like that? You wanna get beat up?” Lena, clad in thick leather armor and a sword on her shoulder, stared at him with unwavering eyes. It was a different scena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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