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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2

92화 마운틴포지 터널 (2)

92화 마운틴포지 터널 (2)

그렇게 우리는 터널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루나, 세실, 족제비도 돌과 바위를 옮기며 도왔다.

혼돈은 무제한으로 발현할 수 있는 힘이 아니기에 나와 카인은 많은 휴식 시간을 가져야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카인은 나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쉬었다.

‘저 녀석은 지치지도 않나.’

새삼 카인이 무한회귀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소설에서 카인은 장기전에 능했다. 소서러의 힘을 연이어 발현하다가, 힘이 떨어지면 검을 꺼내 오러 블레이드로 적을 썰어댔다. 그러다가 힘이 회복되면 다시 소서러로 변했고.

‘무시무시한 놈.’

살짝 소름이 돋았다. 만약 카인이 소설에서처럼 흑화한다면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카인의 흑화 가능성을 그리 높게 점치지 않았다. 지금의 카인은 소설과는 많이 달라졌다. 어찌 보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만큼.

“무리하지 마. 데미안.”

쉬고 있던 내 옆에 카인이 앉으며 말했다.

놀리는 건가 생각했는데, 녀석의 표정을 보니 나를 염려하는 것이었다.

“별로 무리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다행이고.”

카인이 싱긋 웃었다.

녀석은 나와 둘이 있을 때면 이런 부드러운 목소리를 낸다.

“카인.”

“응?”

“검 바꾸자.”

카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왜지?”

“말했잖아. 그 검이 마음에 든다고.”

“이유는 그것뿐이야?”

“그것 말고 또 무슨 이유가 있는데.”

“너는 루나를 어떻게 생각해?”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너는 루나를 어떻게 생각해?”

반대로 내가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카인이 루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먼지에 얼룩진 얼굴로, 깔깔 웃으며 돌을 나르는 루나.

카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위를 향했다.

“눈부시지. 루나는.”

그렇게 말하는 카인에게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역시 녀석은 루나에게 끌리고 있다.

게다가 소설을 통해 읽은 카인의 마음과, 직접 눈과 귀를 통해 알아낸 카인의 마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활자로는 느낄 수 없는 표정. 목소리. 오롯한 감정.

카인은 왜 루나를 살해했던 걸까.

“그래. 눈부시지. 루나는.”

그렇게 답하며 나도 루나를 바라봤다.

이런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마법처럼 빛을 발하는 아이. 어느새 드워프들도 루나의 빛에 물들었다. 바람숲의 엘프들도 그랬었지.

세상 어느 곳에 데려다 놓아도 자신의 빛을 잃지 않는 작은 달빛.

그 옆의 작은 그림자.

***

며칠 후 복구 작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여느 때처럼 카인이 만들어 낸 바위의 틈새로 세계수의 가지를 밀어 넣던 나는 묘한 진동을 감지했다.

쿵쿵쿵, 벽 반대편을 무언가가 두들기고 있다.

기계적인 소음은 아니다.

그렇다면.

“브로닉!”

나는 브로닉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브로닉은 껄껄 웃으며, 분명 마운틴포지의 워해머들일 거라고 했다.

소식을 들은 드워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무리해서 복구 작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음? 자네들은 누군가?”

저만치 구멍 너머에서 한 드워프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원래는 붉은색이었을 것처럼 보이는 수염도 잿빛으로 덮인 채였다. 나는 한눈에 그의 정체를 짐작했다.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의 족장, 토르그림 마운틴포지.

“어이 브로닉! 거기 있나!”

그가 외쳤다. 터널이 또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염려될 정도로 우렁찬 목소리였다.

“여기 있네 토르그림! 누음앗핫핫핫하!”

브로닉이 나와 카인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두 드워프는 먼지로 가득한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참이나 배를 잡고 웃었다.

“데미안! 카인!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기고 쉬게!”

마침 지칠 대로 지친 참이었다.

우리는 자연등불을 켜놓은 쉼터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데미안. 끝난 거니?”

“응.”

조르르 달려온 루나가 환히 웃으며 우리 앞에 마주 앉았다.

세실과 족제비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고생 많았어. 루나.”

“고생은 무슨. 배를 타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 헤헤.”

“세실도 고생 많았어.”

“응. 데미안도.”

땀과 먼지로 얼룩진 세실을 보고 있자니, 문득 광산에서 노동하던 것이 떠올랐다.

검댕으로 가득했던 세실의 얼굴.

그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자, 세실이 나와 눈을 마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데, 데미안. 왜 나한테는 고생했다고 안 해?”

“내게도 말하지 않았다. 데미안.”

복숭아 빙수를 먹이자 두 녀석 다 조용해졌다.

이후 우리는 숲샘을 이용해 손과 얼굴을 씻었다. 아, 먹기 전에 씻었어야 했나.

“아하하! 조조아킴! 땟국물 나오는 것 좀 봐!”

“그,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무슨 소리니? 나는 그런 거 안 나오거든?”

“나도 봤다. 루나의 땟국물이 꽤 짙더군.”

“카, 카인!”

루나가 홍당무처럼 얼굴을 붉히며 빼액 소리쳤다.

.

.

.

잠들었었나 보다.

눈을 뜨니 세실이 내 옆에 매미처럼 붙어있었다. 새근새근 아기처럼 잔다.

나는 세실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몸을 일으켰다. 쉴 새 없이 쿵쾅거리는 소음. 이런 와중에 깊은 잠을 자다니. 그간 얼마나 피로에 찌들었으면.

루나와 카인은 서로를 향해 누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호우호우!”

“호우우우!”

드워프들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잠든 사이 터널을 가로막은 바위들이 모두 사라졌다. 막혔던 통로는 뚫렸다. 물론 울퉁불퉁해진 지면을 다듬는 일이 남았지만.

“토르그림!”

“브로닉!”

두 드워프가 크게 웃으며 서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잠시 후, 토르그림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네가 브로닉에게 도움을 준 데미안이로군!”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쯤 동료들도 눈을 떴다.

우리 모두와 차례로 악수하며, 토르그림은 진심어린 감사를 표했다.

그러던 중 루나를 마주한 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는 설마 아르테미스?”

“앗!”

뒤늦게 루나가 후드를 뒤집어썼다.

토르그림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네! 마운틴포지는 아르테미스와 우호적 관계에 있으니.”

토르그림의 말대로다.

쿠훌린의 아버지이자, 아르테미스 왕국 최후의 왕인 ‘일리오스 아르테미스’는 토르그림과 깊은 친분이 있었다.

“아르테미스의 후손을 만날 줄이야. 이보게 데미안. 괜찮다면 마운틴포지로 함께 가지 않겠나? 자네들에게 근사한 술상을 대접하고 싶군.”

정말 가고 싶었다.

술 때문이 아니라, 지하도시 마운틴포지에 있을 무기와 방어구가 탐이 났다. 드워프는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들이니까. 더욱이 토르그림은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경지에 오른 ‘장인’이다.

“아쉽지만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저희는 서둘러 움직여야 하거든요.”

나는 내가 가진 기계차를 반납했다.

곧 마주할 전장의 한복판을 달리기에 기계차는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말보다 느리고, 소음도 크니까.

‘각각 따로 움직일 수도 없고.’

그렇다면 차라리 반납해 드워프들의 호감을 사는 편이 낫다.

브로닉이 말했듯, 그들에게 기계차는 대륙을 통틀어 서른 대도 되지 않는 보물 중의 보물이니까.

“뭐라고! 기계차를 반납하겠다고!”

내 결정에 브로닉은 크게 놀란 듯했다.

다른 드워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

“아르테미스 말고도 저런 양심적인 인간이 있었다니!”

“양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야! 헌신적이기도 했다 이 말이야!”

“암암! 저들이 없었다면 복구 작업을 이렇게 빨리 끝내지 못했을 테지!”

“맞다 이 말이야!”

나는 브로닉에게 말이나 마차를 구할 수 있는 곳까지만 태워달라고 했다.

“당연히 태워 줘야지! 이제 자네들은 우리 마운틴포지 드워프의 형제나 다름없네!”

“우리의 형제! 우리의 형제!”

“호우호우!”

“호우우우!”

우리는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기계차를 타고 떠나려는데 토르그림이 다가왔다.

“세르펜타인 동굴 입구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

나는 안다고 대답했다.

세르펜타인 산맥에 동굴이야 셀 수 없이 많지만, 토르그림이 말하는 동굴이라면 뻔했다.

지하도시 마운틴포지를 향하는 동굴.

“받게. 동굴을 지나는 데 도움이 될걸세.”

토르그림이 내게 금빛 펜던트를 건넸다.

그것을 알아본 나는 깜짝 놀랐다.

‘황금 나침반!’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오랜 시간 동굴에 미로를 건설했다. 아울러 수많은 함정까지도.

그것이 바로 마운틴포지 드워프족의 도움 없이 지하도시에 다다를 수 없는 이유다.

“무기를 봐도 되겠나?”

우리는 보물고에서 가져온 무기를 꺼내 토르그림에게 보여줬다.

세심히 무기를 살피던 토르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무기군. 쉽게 망가지지는 않을 걸세.”

그러고는 무기를 돌려주며 말했다.

“몸이 다 성장하거든 꼭 마운틴포지를 찾아오게. 자네들의 몸에 맞는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어 주지.”

무려 드워프 장인의 맞춤 장비라니.

이건 무조건 가야 한다. 드워프 장인이 만든 무기와 방어구는 천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보물이다.

토르그림이 족제비를 보며 말했다.

“아, 자네는 제외네.”

“네, 네? 왜요? 저, 저도 함께 노력했는데요······!”

족제비가 울상을 짓자 토르그림이 껄껄 웃었다.

“자네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가!”

“족제비. 활 마음에 안 들면 이리 내.”

“아, 아니야! 자꾸 그러지 마······!”

.

.

.

브로닉은 우리를 가까운 마을에 데려다줬다.

아직 전쟁 중이라 말을 구하기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브로닉은 무슨 수를 쓴 것인지 날랜 말 다섯 마리를 구해주고 돌아갔다.

“잊지 말고 마운틴포지를 찾아오게! 누음앗핫핫핫하!”

우리는 여관에 들를 것 없이 곧장 마을을 벗어났다. 한시가 바쁜 탓도 있었고, 터널에서 자둔 덕분에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며칠간 들판을 달리고, 강을 건너고, 호수를 지났다.

어느 날 노숙을 위해 장작을 주우러 가는데 루나가 슬쩍 나를 따라왔다.

“데미안.”

루나가 새초롬히 나를 흘겨봤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니?”

“응? 뭐가?”

루나가 뾰족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바람둥이.”

대체 왜 나를 바람둥이라고 부르는 걸까.

“나 바람둥이 아닌데.”

“바람둥이들은 자기가 바람둥이 아니라고 말한댔어.”

“누가?”

“엄마가.”

순간 루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리아논이 떠오른 것이겠지.

“걱정하지 마 루나. 네가 염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정말로?”

확신할 수는 없다.

어쩌면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응. 확실해.”

내 대답에 루나가 천사처럼 웃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불확실한 상황임에도 확실함을 가장했다.

루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였을까.

루나의 미소를 보고 싶었던 것일까.

“역시 너와 이야기하면 안심이 돼.”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루나가 말했다.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니?”

“어떤 말?”

“너는 늘 확신에 차 있어서, 조금 멋있다고.”

루나가 나를 보며 웃는다.

동그란 두 뺨이 조금 붉어 보인다.

노을 탓일까.

***

이튿날, 말에 오르려는 우리 앞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시니야오코네.”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The Remaker of Infinite Regression

Status: Ongoing
The protagonist, an infinite regressor, found himself possessed within a novel where the original protagonist had gone mad and turned dark. Now, with my unique abilities, I must write a new ending for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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