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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2

92화 성배기사 제레아(3)

레온이 오크들에게 결투를 신청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이 역사의 진상을 최대한 파악하기 위함이다.

어째서 제레아는 이곳에서 죽었고, 성물은 끝내 왕국에 당도하지 못했는가.

누가 이 역사에 개입했는가. 역사의 진상은 무엇인가.

성배기사를 쓰러뜨리고 호송되던 성물들마저 가로챌 오크의 전력.

만약 오크들이 응한다면 오크들에게 어떤 패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응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 없었다.

눈앞의 투쟁을 넘어갈 정도로 오크들의 우두머리가 교활하다는 뜻이니까.

“시간을 번다는 측면도 있다. 이곳에서 놈들의 본대가 묶인다면 성유물을 호송하는 이들도 훨씬 편해지겠지.”

물론 원래의 역사에서도 제레아는 오크 본대를 상당히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발타릭 병단과 제레아가 버티고 있는 사이 거리는 벌어졌고, 본대가 쫓아가기엔 거리가 꽤 벌어졌었을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송단은 성물을 호송하는 데 실패했다.”

“그럼… 큰일 아닙니까? 여기서 오크들을 막는다 해도 결국 실패한다는 것 아닙니까?”

재혁과 수호는 레온으로부터 이 성물 호송대가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게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 보상으로 예상되는 게 성물인데, 실패한다면 게이트 공략 또한 실패하는 게 아닌가?

“짐도 그것이 궁금하구나.”

제레아는 호송단을 위한 안배를 충분히 했다.

비록 성배기사인 자신에 버금가는 초인은 아니더라도 죽음과 과거의 재현을 반복하는 분신을 성물에 붙여둔 것이다.

성배기사가 되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며 경험을 쌓은 노련한 기사라면 오크들의 추적에도 능히 따돌렸을 터.

‘허나, 그는 라이온하트의 국경선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개입했다는 뜻이다.

레온의 이야기를 듣고서 곰곰이 생각하던 수호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저 폐하… 그럼 이곳에서 있을 게 아니라 호송단을 지원하러 가야하는 것 아닌가요?”

결국 이곳의 본대를 지키는 건 ‘부가미션’에 불과하다. 메인 퀘스트는 어디까지나 성물 호송.

이곳의 본대는 레온이 없다면 결국 밀리겠지만, 그래도 역사를 재현했을 뿐인 NPC가 아닌가.

“실리적으로 보면 그것이 옳다. 결국 이것은 짐의 개인적인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니까.”

레온은 자신이 보낸 임무 수행 중에 승천한 제레아에게 부채의식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함께해줬던 모든 이들에게.

그들 대부분이 신들의 낙원에 입장했고, 누구도 레온을 탓하지 않지만… 레온은 이 거짓된 역사 속에서나마 그들의 생존을 이어가고 싶었다.

물론 그저 부채의식만으로 퀘스트를 포기한 건 아니다.

“스피너 경과 베아트리체 여왕이 있다. 그 둘이라면 능히 짐의 부재를 해결하겠지.”

“그렇기야… 하네요.”

베아트리체도 야피도 ‘성배기사’의 반열에 이른 초인들이다.

물론 야피의 경우 청주의 악몽이라 불리던 본체를 회복하지 못했다지만, 어지간한 문제는 베아트리체 선에서 해결된다.

스페로 왕국의 마술사 여왕 그녀의 강함은 S급 헌터를 따위로 치부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그리고… 아마 그 남자까지 나선다면 문제없을 테지.”

“그 남자요?”

여기서 더 나올만한 이가 있었나? 수호가 고개를 기웃거리자 레온은 오랜 추억을 회고하듯 눈을 감았다.

“과거 이 시기… 제국의 반발로 무산됐지만, 호송단을 맞이하기 위해 그자의 기사단이 대기하고 있었다.”

15대 사자심왕 레온 드라고니아 라이온하트.

역대 최강이라 불리는 성배 수호자의 휘하에는 확실히 영광의 세대라 불리는 초인들이 존재했다.

성녀 아냑.

현자 군라르.

수호자 안토크.

성배기사를 포함해 한 명 한 명이 대륙을 진동케 한 난세의 영웅들. 그들 중 으뜸을 뽑자면 레온은 그 사내를 꼽을 것이다.

대전쟁 이전, 아직 레온이 어린 성배수호자일 무렵… 유일하게 그를 뛰어넘는 최강의 기사가 존재했다.

“그리운 전우다. 그리고…….”

성배기사 게오브릭과 같은, 신들의 낙원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성배기사.

불꽃.

도살자.

최강의 성검.

운이 좋다면 만신전의 누군가는 그를 마주할 것이다.

* * * *

북부와 제국을 가로지르는 대자연의 험준 계곡.

그곳을 틀어막은 왕국군의 코앞까지 수만의 녹색 물결이 진군해왔다.

이에 대치하는 건 좁은 입구를 바위처럼 틀어막은 채 버티고 있는 왕국군 수백.

상식적으로 결코 버틸 수 없는 압도적 전력 차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나흘 넘게 대군의 진격을 가로막고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왕국군의 절대적인 경험치와 숙련도… 그리고 성배기사들의 존재.

무한한 활력을 가진 성배기사들의 연이은 게릴라전에 고통받던 오크들은 그들의 결투 신청을 승낙했고 양군의 투사들이 한가운데에 집결했다.

“괜찮은… 검까? 이거 수틀리면 바로 쳐들어올 거 같은데요?”

재혁은 코앞까지 다가온 녹색 물결 앞에 기가 질렸다.

지금까지야 좁은 협곡을 무대로 어찌 버티고 있었지만, 오크 본대의 숫자는 정말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 대군을 상대로 버텼는지 신기할 정도로.

아니, 실제론 오크들도 전력을 투사할 순 없었던 거겠지.

워낙 좁은 협곡인 만큼, 투사할 수 있는 병력이 한정되어 있다. 오크들은 단순하지만 최소한의 군략도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다.

고화력 고출력 병기인 기사들이 우글거리는 협곡에 무작정 병력을 밀어 넣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진짜 확 밀고 들어오면 뚫릴 거 같은데…….”

하지만 눈앞의 수만 대군을 보자니 고작 수백에 불과한 왕국군은 폭풍 앞에 쓸려나갈 낙엽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

제레아는 재혁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안심시켰다.

“놈들이 저열한 짐승이긴 하나, 녀석들에게도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이 있다네”

오크들의 주신 투쟁의 신 헬칸.

헬칸은 무작정 피로 피를 씻는 대살육도 기뻐하지만, 결투와 같은 일대일의 대결도 기꺼워했다.

“오크들은 목숨을 건 결투의 승자를 결코 건드리지 않네. 놈들의 전통 중 몇 안 되는 미덕이지.”

지독히도 야만적이고 혈투만을 선호하는 오크들을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이 높이 평가하는 몇 안 되는 특성이다.

레온도 제레아의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소싯적 레온 또한 오크 투사들과 결투를 경험한 바가 있었으니까.

“이만 출발하지.”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왕국군의 본영에서 출발해 몰려든 대군의 코앞까지 다가서는 네 사람.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헬칸이 보고 있다!!

-갑옷 입은 놈들을 조져라!

투기장에 몰려든 오크들의 함성소리에 혀를 차는 레온.

“쯧, 품위 없는 것들.”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나 기세만큼은 시끄러운 것들입니다.”

결투의 대상자. 정확히는 재혁과 수호는 인원수 채우기지만, 상대방 측은 착실히 네 명의 결투 대상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크 세 명과 야만족 한 명.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오크 중에서도 유독 신장이 크고 거대한 도끼를 든 자였다.

“왔구나, 강한 인간들.”

큼직한 어금니, 단순하지만 묵직함이 느껴지는 방패 같은 갑옷. 그는 시니컬하게 말을 이었다.

“투쟁의 규칙은 간단하다. 죽는 자가 패자다.”

지극히 심플, 단순명료한 룰이었다. 오크가 외쳤다.

“나는 헬칸의 챔피언 발바자! 전승무패의 발바자다! 나와 싸울 전사는 누구인가!!”

신의 챔피언. 그 말에 제레아와 레온이 시선을 교환했다.

역시, 이 전장에는 신의 챔피언이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오크들의 우두머리인가?

어찌 됐건 상대 쪽에서 결투의 대상자를 내보냈다. 이쪽도 나서야할 차례.

“시건방진 짐승이 얕은 우물에서의 무패를 자랑하는구나. 황혼의 제레아! 꿈과 죽음의 성배기사여!”

“예! 폐하!”

“가서 저 부끄러운 줄 모르는 짐승의 목을 가져와라!”

“명 받잡겠습니다!”

제레아가 기꺼이 앞으로 나섰다. 제레아는 왕보다 앞서 나서게 해달라고 부탁한 참. 그는 발바자의 큼직한 도끼에 비하면 빈약한 세검 한 자루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네 녀석의 상대는 이 노구일세.”

“이름을 밝혀라, 갑옷쟁이.”

평범한 상대였다면 제레아는 기꺼이 자신의 영광된 이름을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모멸 찬 시선으로 발바자를 응시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짐승 따위에게 밝힐 이름은 없다. 너는 오늘 여기서 죽을 것이야.”

“늙은이, 불가능한 일은 입에 담는 게 아니다.”

“불가능 따위 언제든지 넘어왔다. 네 앞에 있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게냐.”

발바자가 도끼를 들었다. 그의 입가에서 푸드덕거리며 뜨거운 열기가 배출된다.

“그럼 오늘이 처음으로 불가능에 깨치는 날이겠군.”

그가 도끼를 휘둘렀다.

* * * *

오크 챔피언 헬칸의 대전사 발바자.

오크 워로드이자 일곱 개 오크 부족을 통합한 대족장.

그는 모든 오크들이 섬기나 유독 까다롭기 짝이 없는 투신 헬칸의 선택을 받은 자다.

다시 말해 그의 생애는 투쟁의 역사 그 자체였으며 헬칸이 만족스러워할 전사란 뜻.

라이온하트 왕국의 북부. 제국의 서북부.

통칭 야만의 땅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반지대는 온직 살육과 파괴, 지배와 굴종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발바자는 이 험준한 땅에 거주하는 오크 부족 중 가장 약소부족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발바자는 가장 어린 나이에 부족에서 가장 거대한 오크로서 족장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선언했다.

“나는 가장 큰 오크다! 내 부족은 가장 커야 한다!”

발바자는 인근의 오크 부족 전부를 정복했다. 가장 작은 부족조차도 발바자의 부족보다 세 배는 거대했으나 괴력의 대오크 발바자의 도끼질에 휩쓸렸다.

그야말로 챔피언의 숙명을 타고난 발바자는 끊임없이 싸워왔고 그 투쟁은 헬칸을 충분히 만족시켰으니.

그의 괴력은 틀림없이 이 시대 최강이라 할 수 있었다.

“죽어라, 인간.”

거대한 도끼였다. 제레아의 몸통을 통째로 덮을 만한 도끼였고, 충분히 성배기사의 갑주조차 으깰 만한 위력이었다.

반면에 그것을 가로막는 세검은 너무나 얇고 나약해 보였고… 그것은 발바자의 도끼질을 일합도 견디지 못했다.

-칵!

쇠가 잘리는 것이라기엔 너무나 가벼운 소리. 제레아의 검을 단숨에 쪼개버린 도끼가 그대로 노구의 기사를 내리찍는다.

“뭣…!”

경악으로 가득 찬 제레아는 도끼를 피하지 못했다. 다음 순간, 발바자의 도끼가 그대로 제레아의 정수리부터 쪼개고 들어가 두 쪽을 내고 말았다.

-콰지직!

강인한 성배기사의 육신이 갑옷과 함께 쪼개진다. 발바자는 일격에 쓰러진 제레아를 만족스럽게 내려보며 도끼를 번쩍 들었다.

“내가 이겼다!”

-와아아아아아아!!

오크들의 함성과 갈채가 그를 향해 쏟아진다. 그가 수없이 많이 들어본 소리. 발바자는 다음 상대를 지목했다.

……

“”…….””

투기장의 관객석. 오크들은 물론이오 재혁과 수호는 아까부터 꼼짝 않고 있는 발바자를 보며 의아한 눈을 했다.

발바자는 결투가 시작되고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탓이다.

이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건 오직 레온과 당사자인 제레아 뿐.

“잘 먹혀들었군. 역시 짐승은 짐승.”

제레아는 태연하게 발바자를 향해 걸어갔다. 결투의 대상자가 접근하고 있음에도 발바자는 고개를 꾸벅꾸벅 떨어뜨리고 있다.

‘아…!’

‘꿈과 죽음의 성배기사!’

그제야 두 사람은 제레아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성법 <환몽영역>.

꿈과 죽음의 권능을 하사받은 제레아에게 있어 눈앞의 오크 한 마리를 꿈속에 빠져들게 하는 건 쉬운 일조차 아니다.

지금쯤 발바자는 꿈속에서 승리의 미주를 취하고 있겠지. 현실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제레아는 자신의 세검에 죽음의 오라를 덧씌웠다. 닿는 것만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필살의 일격.

제레아가 선사하는 꿈과 죽음의 필살연계가 쇄도한다.

“달콤한 꿈속에서 죽어라.”

발바자에게 검이 쇄도하는 바로 그 순간──

“WHAAAAAAAAAAAAA────!!

괴성과 함께 투신의 전사가 눈을 부릅떴다.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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