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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3

93화 성배기사 제레아(4)

발바자가 눈을 부릅뜬 순간을 제레아 또한 목격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미 그의 검은 발바자에게 쇄도하고 있었고, 설사 이 그가 막아낸다 해도 상처를 입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법 <처형의 오라>

물체에 죽음의 성력을 덧씌운 일격필살의 성법.

닿는 즉시 성력이 침식해 기어코 대상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거리, 이 속도라면… 반드시 닿는다!’

자줏빛 섬광이 섬뜩하게 번뜩인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부릅 뜬 눈으로 따라간 발바자가 손을 뻗었다.

파악!

하고 발바자가 세검을 붙잡았다. 놀라운 반사신경. 제레아도 감탄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처형의 오라가 덧씌워진 검을 맨손으로 붙잡다니, 그 시점에서 끝──

“……!”

그 순간, 내리치는 도끼를 피해 제레아는 서둘러 몸을 뒤로 뺐다.

-촤악!

그러나 늦었다. 예상하지 못한 방심 탓일까. 제레아의 후퇴가 늦고 도끼날이 왼쪽 어깻부터 오른쪽 가슴께까지 주욱 긁는다.

갑옷의 틈새였던 어깨의 관절부가 베였지만, 갑옷의 본체는 찌그러지는 선에서 그쳤다. 제레아가 크게 뒤로 후퇴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깻죽지가 조금 베이긴 했어도 이쪽은 죽음의 권능으로 놈의 팔을 베었다. 침식된 죽음의 성력이 놈에게 파고들었을 터──

“잽싸군.”

“…….”

제레아의 검을 붙잡았던 발바자의 손에서는 불그스름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죽지 않았고, 오히려 자줏빛의 성력을 짓누르는 파괴적인 기운을 뿜고 있다.

“……헬칸의 권능.”

“그렇다. 나는 헬칸의 큰 손. 모든 것을 분쇄하고 파괴하는 힘을 손에 넣었지.”

오크 투신 헬칸은 자신의 챔피언에게 자신의 육신 중 하나를 덧씌운다.

발바자는 그중 헬칸의 큰 손을 권능으로 손에 넣었고 그 힘은 신성과 맞닿아 있다.

“너희 갑옷쟁이들의 잔재주도 이 팔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개념과 법칙을 주무르는 성배기사들의 성법도 저 팔 앞에서는 무력화된다. 라이온하트의 기사들은 결코 오크들의 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나 결국은 같은 신성인 탓.

신성과 신성의 대결은 결국 힘의 크기 싸움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가. 확실히 성가시긴 하군.”

“너희들만 신의 힘을 사용하리라 착각──”

발바자의 자신감을 비웃듯, 한순간에 번뜩이는 섬광.

날카로운 찌르기에 특화된 세검이 의식의 틈을 찔러 예술적인 기습을 행한다. 그 찰나의 습격을 고개를 까딱거리며 피하는 발바자.

자줏빛 기운이 스치며 공간에 잔여물처럼 남는다. 제레아의 섬격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쉬쉬쉭…!

일격, 이격, 삼격… 찰나에 십삼격.

공간이 꿰뚫린다면 이러할까 싶은 매서운 초신속의 찌르기.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때론 베이고 때론 갑옷으로 스쳐내기도 하면서 발바자가 도끼를 들었을 때였다.

“……!”

팔을 들어올린 순간 무언가에 침식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다. 전신이 마비라도 된 듯 움직이질 않았다.

마비?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지였다.

투사로서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짐승 같은 본능이 움직이면 죽는다고 경고한 것이다.

‘묵직하군…!’

투사는 곧장 이것이 어떤 위협에 의한 방어본능임을 깨달았다.

찰나처럼 느껴졌던 제레아의 연속공격. 그 검 끝에 맺혀 있던 묵직한 죽음의 덩어리가 자신의 온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닿는 즉시 즉사라고 경고하고 있다.

성법 <즉사경계>

과연, 갑옷쟁이 중 으뜸. 반해버릴 정도의 성력 운용이다.

피지컬 차이에서 오는 불리를 극복하여 이쪽을 크기만 큰 과녁으로 만들었다.

“이걸로 죽어줬으면 하는군.”

시니컬한 기사의 마지막 일격이 쏘아지려는 순간, 발바자를 구속하는 자줏빛 덩어리들이 일그러진다.

그를 옴짝달싹 못하도록 에워싸던 죽음의 성력들이 발바자가 팔을 휘두른 것만으로 흩어졌다.

“말했을 텐데. 잔재주론 나를 이길 수 없다고!”

헬칸의 큰 손. 그 거대한 힘의 권능이 도끼에 깃들어 휘둘러진다.

-콰아아아!

묵직한 굉음과 함께 도끼질의 여파가 드러난다. 헬칸의 기운은 대지를 쪼개며 무지막지한 분쇄를 자행했다.

“…….”

제레아는 곁눈질로 파괴의 여파를 확인했다.

‘도끼질로 땅을 으깼다.’

그 거리가 무려 500m에 달한다. 조금만 방향이 틀렸다면 협곡이 쪼개져 입구가 통째로 매몰됐을 것이다.

강하다.

성배기사의 갑주를 으깨는 완력도, 투신의 신력을 이용한 파괴력도.

과연, 투신의 챔피언.

발바자의 붉은 기운이 사납게 요동치며 달려든다.

육중한 거구와 달리 놈의 움직임은 무시무시하리만치 빠르고 강맹했다.

-꽈앙!

내리치는 도끼질. 회피했으나 분쇄된 대지에서 비산하는 돌조각들이 전신을 타격한다.

“큭…!”

끔찍하게 무거운 일격에 불평할 새도 없이 사나운 주먹질이 파고든다. 제레아의 세검이 간신히 그것을 흘려보냈다.

다음 순간부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하게 만드는 공방의 연속이었다.

“미친…….”

재혁이나 수호 같은 현대인은 물론…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숨만 삼키고 있다.

초월자와 초월자의 대결.

아무리 각성자들이라는 초인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무력의 끝은 말할 것도 없이 현대병기들이다.

게이트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대화기들은 지구에서 같은 인간을 상대로는 파멸적인 위력을 자랑한다.

제아무리 헌터의 스킬이 강력해도 폭격기가 떨구는 이천 파운드급 스마트 폭탄보다 강력할 순 없는 것이다.

하물며 레온의 시대… 아무리 성배기사라는 초력자들이라 해도, 그들 한 명 한 명이 핵미사일 같은 존재라 해도── 그 전심전력의 신벌을 내리기 전까지는 어디까지나 전근대적인 냉병기의 사용자일 뿐.

단지 그뿐이어야 할 텐데.

-콰앙!

-까앙!

강철과 강철의 충격이 이다지도 맹렬했던가.

붕 뜬 도끼가 일으킨 풍압이 폭풍을 일으키고,

빗겨지나간 섬광 같은 찌르기가 등 뒤의 계곡에 구멍을 낸다.

가진 힘의 열량이, 질량이 다르다.

초월의 사용자들은 단지 잠깐뿐인 기적을 일으키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의 생물체가 낼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어선 초월이었으며 기적과도 같은 존재.

오크 투신의 챔피언과 꿈과 죽음의 성배기사가 부딪치는 여파는 이미 하나의 그라운드 제로를 형성하여 접근하는 모든 이들을 떨어뜨리는 파멸의 장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신화재현.

재혁과 수호는 눈앞의 경이로운 현상에 아연실색한다. 그리고 새삼 감탄한다.

이런 것들이 우글거리는 시대에서 저 사자심왕은 홀로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되었단 말인가.

“크하하하하…! 잘 버티는구나, 늙은이!”

도끼가, 세검이 서로를 상처 입히며 피가 튀긴다. 즉사하는 맹독의 찌르기를 받아냈음에도 점점 불리해지는 건 제레아 쪽.

“짐승이… 생명령 만큼은 징그러울 정도로 크구나.”

그래, 이것이 문제였다.

헬칸의 챔피언. 투쟁에 특화된 헬칸의 권능을 수여 받은 발바자는 괴력도 괴력이지만, 경악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생명령을 가지고 있었다.

신성에 의한 죽음 강제가 통하지 않는 이상, 제레아는 발바자의 생명력을 조금씩 깎아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바자의 생명력이 무식할 정도로 거대해 그것이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후우…….”

완벽한 활력 이전에 빠져나간 피로 인한 빈혈에 휘청거리는 제레아. 그런 그를 향해 발바자가 비웃었다.

“뭐냐, 벌써 지친 거냐. 나이는 못 속이나보군.”

이쪽이 열 번의 공격을 성사시켜도 단 한 번 스친 놈의 일격이 형평성의 저울을 기울게 한다.

가진 힘의 위력이 달랐다.

“WHAAAAAAAAAA────!!”

짐승의 포효와 함께 돌진하는 발바자. 곧장 검을 고쳐 쥐고 받아내는 제레아였으나 양자의 힘 차이는 자명하다.

“크학…!”

소용돌이치는 붉은 기운을 머금은 도끼질에 지면으로 튕겨 나가는 제레아. 발바자는 야수와 같은 기세로 달려들어 그대로 도끼를 내리쳤다.

꽈앙!

아찔한 소리가 울리며 파공성이 주변을 갈기갈기 찢는다.

도끼의 무게에 무릎이 꺾인 제레아를 후려치는 도끼날. 그의 몸이 바닥을 튕긴다. 벗겨진 투구가 데구르르 굴렀다.

“예상대로다.”

발바자가 제레아의 투구를 한 손으로 쥐었다. 별의 기운을 머금은 별철 투구가 그의 손에 우드득, 우드득 우겨진다.

“결국 네놈도 나약한 인간일 뿐.”

“크읍…….”

신음을 흘리면서 제레아는 이해했다. 과연, 본래 자신의 역사는 이곳에서 이 오크에게 패배하는 것이었는가.

제레아의 시선이 지켜보는 왕에게 향했다.

“…….”

영광스러운 자신의 왕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 추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냉정한 듯 보이나 우악스럽게 손아귀를 붙잡고 있는 것이 들끓는 분노를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죄송스러운 일인가.

이 얼마나 불충한 추태인가.

승리의 영광을 바쳐도 모자랄 판에 짐승에게 땅을 구르고 피 흘리는 모습을 보이다니.

제레아는 실제 역사 속 자신이 레온에게 그런 불명예를 선사했었을 것에 분노했다.

“어딜 한눈을 파는 거냐!”

그때, 발바자의 주먹이 제레아의 흉갑을 파고들었다. 우지끈! 으스러진 흉갑이 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제레아의 신형이 바닥을 구른다.

흙먼지를 뒤집어 쓰며 피를 주르륵 흘리는 제레아에게 발바자가 야유를 퍼붓었다.

“끝이다, 늙은이. 성배기사란 그 같잖은 이름도 오늘 내 손아귀에 으스러질 것이다.”

도끼에 광폭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도끼가 내리쳤고, 제레아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 * * *

충돌의 전조와 함께 찾아온 정적 속. 잦아드는 심장의 고동소리처럼 주변은 고요하다.

“…….”

“…….”

정적 속 그것을 지켜보는 왕국군의 표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발바자가 내리친 도끼가 어깻죽지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절단했다. 그 육신이 반토막 나지 않은 건 최후의 순간 힘이 아주 약간 부족한 탓이다.

반면 제레아의 검은 한치가 부족했다. 발바자의 갑주를 관통하긴 했으나 그것에서 끝. 부족한 힘으로는 끝내 심장과 연결된 살갗을 조금 파고들었을 뿐, 치명상도 못 된다.

“으으…….”

수호는 눈을 돌렸다. 재혁은 고개를 떨궜다.

무적의 존재 같았던 성배기사의 패배에 누구나가 참담함을 느꼈다.

“내 승리로군.”

발바자는 거만하게 승리를 선언하며 도끼를 빼내려 했다. 하지만…….

“으음?”

도끼자루가 들리지 않는다. 깊숙이 박힌 탓일까? 힘을 주어 도끼를 회수하려는 그 순간, 발바자는 노구의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

피와 흙먼지로 더럽혀진 그가 또렷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제레아.

죽음의 순간, 마지막 불꽃인가?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나──

“만물의 최후를 관장하는 여인이시여.”

-푸욱.

“제 목소리를 들으소서.

“어?”

살갗을 파고드는 세검. 발바자가 당황했다.

“당신의 기사를 가호하소서.”

어떻게! 놈에겐 더이상 움직일 힘 따윈 없을 텐데! 몸을 반으로 갈랐다. 즉사했어야…….

“왜…….”

놈은 아직 살아있지? 어째서 몸이 두 쪽이 났는데도 살아있는 거지?

“죽음께서 나와 함께하신다.”

대성법 <죽음면역>.

그 어떤 죽음이라도 저항해내고 끝내 숨을 붙여놓는, 가장 어긋난 기적.

몇 번이고 죽음을 극복한 제 기사에게 플르가 내린 위대한 기적의 순간을, 제레아는 놓치지 않았다.

-푸욱!

심장을 관통하고 등쪽으로 파고나오는 세검. 그의 검에서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잦아든다.

발바자는 끝내 자신이 왜 패배한 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생명의 불꽃이 꺼져갔다.

“후욱…!”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으나 끝내 무릎을 꺾지 않는 제레아. 발바자의 주검 위에서 승리를 선언하는 그에게 병사들의 환호성… 그리고 다음 챔피언이 다가왔다.

“방심했군, 멍청한 놈.”

가면을 쓴 오크. 고크록의 챔피언 마그하르. 그는 비틀린 고목 지팡이를 든 채 제레아와의 거리를 확보하며 접근했다.

“그 꼴을 보아하니 곧 뒈지겠어. 어떠냐? 마지막 불꽃이라도 피워볼 테야?”

오크의 노화를 인간과 직접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그는 손끝에서부터 제레아만큼이나 노화가 느껴지는 주술사였다.

그가 두 번째 결투의 대상자로서 앞으로 나섰다. 제레아는 고민했다.

죽음면역이 풀리는 순간, 자신은 진정한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렇다면 최후의 순간까지 사자심왕을 위해 한 명이라도 더 길동무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여전히 투지를 불태우며 검을 쥐었을 때였다. 쏟아진 피의 양은 이미 치사량… 공급되지 않는 피에 제레아의 무릎이 꺾이려는 순간…….

“훌륭한 싸움이었다, 제레아 경.”

그의 팔을 붙잡고, 찬란한 금색의 기사가 제레아를 일으킨다.

“폐하…….”

“이만 쉬어라. 그대의 끝을, 짐이 지켜보고 축복할 것이야.”

“그것은…….”

불가한 일이다. 이제 자신의 생명은 다 타버린 촛불보다도 짧을 터인데.

“녹색짐승들아. 너희가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기회를 주마.”

레온이 성검을 뽑았다. 성창이 전개됐다. 성배가 그의 머리맡에서 띄어 올랐다.

“남은 것들 모두 한번에 덤벼라.”

“하…!”

그 오연한 선언에 비틀린 입꼬리를 숨기지 못했다.

“오만하군.”

오크 사냥신 스쿠닉의 챔피언 스키라 또한 마찬가지. 피어오르는 푸른 기운이 그의 분노를 대변했다.

“너 혼자서 우리 모두를 상대하겠다고? 신들의 선택을 받은 우리를?”

짐승신 백랑의 부족장인 다길 또한 맹렬한 시선으로 황금사자를 노려본다.

그들 모두가 레온이 감내할 수 없는 도발을 걸었다고 여겼다. 기사들 특유의 오만한 허풍을 지껄였다 판단했다.

“후후후후…….”

하지만 오직 제레아의 입꼬리만은 사납게 찢어졌다.

누구나가 허풍이라, 오만이라 여길 선언을 앞에 두고 제레아만큼은 다르게 여겼던 것이다.

“괄목하라.”

늙은 기사의 시선이 황금의 사자심왕을 향한다. 그가 팔을 넓게 벌렸다.

“인류 역사 정점의 힘을.”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The Knight King Who Returned with a God

singwahamkke dol-aon gisawangnim, The King of Knights Returns with the Gods, 신과함께 돌아온 기사왕님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returned to Earth as the invincible Knight King. But the Gods came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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